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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늙을 수 있는 ‘평등사회’
잘 늙을 수 있는 ‘평등사회’
  • 뤼시앙 세브 | 철학자
  • 승인 2010.01.04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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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이윤 차원서 존엄성을 헌신짝 취급
죽는 순간까지 왕성하게 활동하는 사회로

프랑스와 독일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 등 인구 노령화를 걱정하는 국가가 많아지고 있다. 노동인구의 감소로 연금 재원 확보도 어려워질 것이라고 한다. 이런 전망을 뒤집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서른 살 전에는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기가 힘들고 쉰 살만 넘으면 회사에서 소외되거나 해고되고, 직장을 가진 사람들은 그들대로 강도 높은 노동에 몸과 마음을 바쳐야 하는 사회적 악순환을 멈추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최근 ‘노년층’에 대한 수많은 담화가 쏟아지고 있지만 내용은 대부분 비슷하다.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프랑스 같은 나라들에서 기대수명이 급격히 높아지면서 비노동인구를 부양하기 위해 노동인구의 부담이 지나치게 늘어났다. 긴급하게 연금 시스템을 축소해야 하는 상황까지 몰린 것이다. 다음으로는, 단지 더 오래 사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잘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좀더 개인적 차원의 문제가 제기된다. 한마디로 ‘잘 늙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제기된다. <<원문 보기>>

   
▲ <목욕 중인 노인>, 2006-안 루베

연금 시스템 문제에 대해서는 많은 대안이 제시되고 있지만(1) 두 번째 문제에는 비판적 고찰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했다. 잘 늙는다는 문제는 의학적·심리학적 주체인 개인의 몫으로만 여겨진다. 다시 말해, 노화라는 불가피한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의 문제로만 남는다. 가령 심리학 잡지 <프시콜로지>에는 ‘잘 늙는 법도 배워야 한다’는 제목의 글이 실렸다.(2) 글 말미에는 잘 늙기 위한 ‘6가지 요령’이 소개돼 있다. 1. 건강을 챙길 것(잘 먹고 적절한 운동을 하고 담배를 삼갈 것…) 2. 외모를 가꿀 것(손쉽게 실천할 수 있는 노화 방지 요법, 마사지에서부터 성형외과까지) 3. 철학책을 읽을 것(세네카, 몽테뉴, 베르그송: 철학한다는 것은 잘 죽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4. 폐경기를 잘 보낼 것(“모성으로부터 해방되고 나면 더욱 풍요로운 성생활을 즐길 수 있다”) 5. 심리치료를 시작할 것(“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정신상담의를 만나보라) 6. 선배 노인들에게 배울 것(가령 일본 오키나와의 100살 노인들처럼 친목모임을 연다거나 82살의 나이에도 “제기랄, 이런 X 같은” 따위의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클로드 사로트 같은 사람을 흉내내는 것도 한 방법이다)

개인적 건강관리 차원 협소화

이런 담론들은 지나치게 협소한 개인주의적 개념으로 가득 차 있다. 사회적 활동의 가능성은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가령 다음 세대에게 지식이나 직업적 경험을 전수하거나,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자원봉사를 통해 사회활동에 참여하거나, 다양한 형식으로 창조적 활동을 계속할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이런 방식의 ‘노인교육학’은 ‘노령층’을 사회 속에서 무위도식하는 존재로 본다. 이게 문제의 핵심이다. 이런 관점은 노화라는 위협에 직면한 사람들에게 부담스런 충고로 귀결될 뿐이다. 다시 말해 편협한 개인주의적 삶을 권장함으로써 ‘잘못 늙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사회적으로는, 갈수록 ‘제3의 삶’의 시기에 접어든 사람들을 부담스러운 존재로 보며, 그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노년을 책임져야 한다는 식의 냉소적 시각을 부추기고 있다.

이런 관점은 분명한 사실에 기초한 듯 보이기에 비판하기가 쉽지 않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몸뿐 아니라 정신도 늙어가게 된다는 생각이 그 한 예다. 성장·유지·쇠퇴라는 인간의 ‘생물학적 사이클’에 ‘심리적 사이클’ 곡선이 대응하기 때문에 노인들은 사회활동에서 물러나 점점 제한된 활동을 영유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3) 시몬 드 보부아르 또한 이런 의사 유물론적 관점에 사로잡혀 있었다.(4) 그녀는 노년기에도 왕성한 정신적 활동을 수행한 사람들에게 경탄을 금치 못했다. 베르나르 퐁트넬에서부터 레온 톨스토이까지, 요한 볼프강 폰 괴테에서부터 80살에 <팔스타프>(Falstaff)를 작곡함으로써 자신의 음악에 새로운 경지를 연 주세페 베르디까지. 그러나 그녀는 불변하다고 여겨지는 자연의 법칙 앞에서 이 위대한 인물들의 성과는 설명이 불가능한 ‘예외’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설명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5) 심리학자 알렉시스 레온티에프의 작업이 하나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그의 ‘사회·전기적(傳記的) 인격’ 개념은 ‘생체·심리적 개체’ 개념과 구별된다. 생체·심리적 개체 개념이 선천적으로 타고나거나 유아기에 형성되는 것에 반해 사회·전기적 인격은 후천적으로 구축된다. 여기서는 사회생활의 논리와 각 개인의 삶이 더욱 중요한 결정 요인이 된다. 각 개인은 이 과정에서 상대적 자율성을 획득하게 된다.

여든 넘어서야 반성한 사회학자

간단히 말해, 생체·심리적 개체는 각 개인의 지속적인 성격적 측면이라고 할 수 있다면 사회·전기적 인격은 미래를 향해 열려 있는 각 개인의 삶의 이력이라고 할 수 있다. 신체 장애나 알코올 등에 대한 의존, 기억상실 같은 심각한 경우를 제외하면, 기본적인 정신기능의 노화는 개인적 역량에 간접적으로만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다양한 방식의 노화가 가능하다. 가령 정신 기능은 멀쩡한데 아무 일도 못 하는 경우도 있고, 여러 가지 장애를 극복하면서 풍요로운 삶을 영위할 수도 있다. 베토벤은 완전히 귀가 먼 상태로, 스스로도 명곡으로 꼽는 14번째 4중주곡을 작곡했다. 인간의 사회·전기적 인격의 측면을 이해하지 못하면 몇몇 얄팍한 ‘노화 방지’ 요법만으로도 잘 늙어갈 수 있다고 믿게 된다.

이 문제에 천착하다 보면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 문제와 만나게 된다. 사회학자 뤼시앙 레비브륄(1857~1939)은 양차 세계대전 사이에 ‘미개인’들은 이성적 사고를 할 수 없다는 ‘전(前) 논리적 정신’ 이론으로 유명해졌다. 이 이론은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다양하게 수용되었다. 그는 1938~39년 여든이 넘은 나이에 <수첩>(Carnets)이라는 자서전에서 자신을 유명하게 만들어준 이론을 가차 없이 반성한다.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내가 틀렸다”(6)고 인정하고 자기반성을 토대로 향후에 진행할 새로운 연구 계획을 수립했다.

레비브륄의 자서전을 읽다 보면 노년기에 머리가 굳고 고집스러워지는 것이 불가피한 현상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물론 그런 경우도 있지만 불변하는 법칙은 아닌 것이다. 가령 레비브륄의 정신적 장수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 비결은 몇 가지로 설명된다. 그는 우선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았다(고등사범학교(ENS) 졸업, 철학교수 자격 취득).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전 삶을 통틀어 자신의 활동, 지식, 관심 분야를 끊임없이 확장했다는 것이다(독일 철학에서 시작해 윤리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를 진행하다가 ‘미개인’에 대한 인류학적 연구로 옮겨간다). 끝으로, 생애 마지막까지 자신의 작업에 대한 비판을 열린 마음으로 수용하려 노력했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 왕성하게 정신 활동을 지속한 것이다.

노년기에도 왕성하게 창조적 활동을 함으로써 사람들의 경탄을 자아내는 이들의 삶을 좀더 깊이 연구해보면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높은 수준의 교육,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동기, 능력, 활동-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그리고 세계뿐 아니라 자신으로부터도 점진적으로 자율성을 확보한 점 등을 들 수 있다. 인간은 심각한 신체적 문제를 겪지만 않는다면 활발하게 정신 활동을 계속해나갈 수 있다. 결과적으로 잘 늙는다는 것은 일생을 어떻게 살아왔느냐에 달렸다고 볼 수 있다.

퇴직자의 사회적 조직화 문제

인간을 타산적 개인주의자로 살아가게끔 프로그램화된 동물(호모에코노미쿠스)이라고 여기는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함께 인간 존재를 생물학적으로 환원시키는 개념은 여기저기서 많은 폐해를 낳고 있다. 그러나 언어 사용에서 비판적 지성까지, 실용적 지식에서 윤리의식까지, 인간의 인격은 유전자가 아니라 각자의 방식으로 사회관계 속에 어떻게 적응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노화’ 담론은 지배적인 용어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노인’, ‘노령인구’, ‘연장자’ 등의 용어가 쓰이다 요즘은 점점 ‘시니어’(senior)라는 말이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전형적인 완곡어법이다. 라틴어 세니오레스(seniores)는 ‘노인들’이라는 뜻이다. 프랑스에서는 이런 식으로 1300만에 달하는 사람들을 단지 나이를 기준으로 간단하게 분류함으로써, 수많은 사회·전기적 문제를 단순화해버린다. 중요한 것은 ‘퇴직자’들의 미래를 어떻게 사회적으로 조직할 것인가다. 실제로 맺고 있는 사회관계에 걸맞은 이름을 그들에게 되찾아줘야 한다.

나이에 기초한 편견을 벗어나- 물론 생체의학의 중요성도 간과할 수는 없다- 사회적 비판으로 나아가려면 개인의 삶의 이력을 지배하는 사회제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특히 현재 가장 광범위하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본주의 기업의 ‘인적 자원’(human ressource) 정책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우리는 놀라운 패러독스를 발견한다. 1970년부터 현재까지 프랑스인의 기대수명은 10년이 늘었지만 퇴직연령은 12년이나 앞당겨졌다!(7) 이제 대부분의 프랑스 회사에서는 40대만 돼도 노인 취급을 받는다. 세르주 게랭은 “프랑스 기업들은 직원이 45살만 넘으면 예비 퇴직자로 간주하고 직원교육 명단에도 이름을 올리지 않는다”고 말한다.(8) 기업들은 조기퇴직이나 정리해고 등 갖가지 방식을 동원해 이들을 내쫓으려 한다. “프랑스의 55~64살 노동인구 비율(38.3%)은 유럽에서도 가장 낮은 편에 속한다.”(9) 수십만 명에 달하는 프랑스의 50대 회사원들은 불리한 조건으로 퇴직을 강요당한 채 오랫동안 일한 직장을 떠나야 한다.

자살 내모는 경영의 공포정치

건강한 상태로 누릴 수 있는 수명이 평균적으로 80살을 웃도는 시대에 50대라는 나이는 직업 활동을 접고 ‘제3의 삶’을 준비하는 결정적 시기가 되고 말았다. 여기서 제3의 삶이란 결국 퇴직자의 삶을 뜻한다. 새로운 역량을 개발해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지 않으면 비활동적인 노년기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 이들은 이윤 논리의 지배를 받는 기업의 ‘인적 자원’ 관리 방식에 따라 헌신짝처럼 버려진다. 최근 프랑스텔레콤 직원들이 차례로 자살한 사건은 ‘경영의 공포정치’가 어떻게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고 갔는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러나 수익성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경영 독재에 대한 비판은 좀더 넓은 관점에서 이뤄져야 한다. 첫 취직에서 퇴직까지의 기간을 포함한 삶의 전체 과정이 강요된 논리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위기는 단지 금융·경제·사회·환경의 위기일 뿐 아니라 인류학적 위기이기도 하다. 인간의 정신적·육체적 활동을 이윤 추구의 대상이나 일회용 상품처럼 취급하는 잔혹한 논리가 지배하는 시대에 인간의 가치와 존재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퇴직인구 2천만 시대가 머지않았다. 프랑스인은 젊은 시절엔 안정적인 첫 직장을 얻기 위해 수년간을 참고 기다려야 하고, 직장에서는 소외된 노동을 수행하다가, 50대에 접어들어 회사를 나와 우울한 퇴직자의 삶을 살며 실버산업의 소비자로 전락할 것인가? 이처럼 갈수록 피폐해지는 삶의 질 문제는 극지방 빙하 감소 문제보다 덜 심각한가? 이 문제는 빙하 감소가 야기할지 모르는 재앙에 맞먹는 위협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2040년 진정 노후한 사회는?

노년기까지 창조적 활동을 왕성하게 펼친 인물들을 단지 생물학적 예외로 봐서는 안 된다. 이들의 예는 카를 마르크스가 말한 대로 ‘환경을 인간적으로 구축’함으로써(10) 이런 예외가 보편적 현상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모든 사회적 연령에 걸친 대대적 개혁이 필요하다. 그 방안을 나열해보면 다음과 같다. 모든 사람이 고등교육의 혜택을 누려야 한다.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노동의 소외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안정적인 취업과 직업교육이 보장되어야 한다. 노동에 대한 빈약한 보상에 불과한 여가시간이 아닌 노동자 자신의 개발을 위한 풍부한 활동으로 가득 찬 여가시간이 되어야 한다. 50대 예비 퇴직자들이 노년기를 잘 설계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공적 퇴직연금 제도를 이윤 추구의 논리에서 벗어나 부의 공평한 재분배가 이뤄지도록 개선함으로써, 수십 년에 이르는 퇴직 후 삶에 대해 새로운 전망을 세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런 방안들을 실현할 수 있다면 2040년 우리 사회는 ‘노후한 사회’라는 말을 듣지 않아도 될 것이다.

부를 창출한 주체이면서도 착취받고 있는 수많은 사람의 삶을 바꾸려면 진정으로 ‘잘 늙는 방법’을 고안해내야 한다. 이 방법을 통해 새로운 인간적 행복과 더 향상된 사회적 효율성을 창출할 수 있다. 생체의학의 진보로 인간 수명이 늘면서, 인구 구성도 급격히 바뀌었다. 이런 변화는 우리에게 평화적이면서 급진적인 방식으로 진정한 사회·전기적 혁명에 참여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원문 보기>>

글·뤼시앙 세브 Lucien Seve

1926년생. 프랑스 에콜노르말 출신의 철학자로서 한평생 공산당 중앙위원으로 활동하며 인간의 본질과 개인의 소외 문제에 천착해왔다. 고등학교에서 20여 년 동안 철학교사로 일하다 물질주의 세태를 비판한 <인류학적 관점의 학교와 세속성>(1965)이라는 책을 펴낸 뒤 순식간에 주목받는 철학자의 반열에 올랐다. 이어 프랑스의 대표적 좌파 출판사인 ‘에디시옹 소시알르’(Editions sociales)의 편집장으로 활동하면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이해>(1974)를 비롯해 <공산주의의 재출발>(1990), <오늘날의 마르크스를 생각하다: 마르크스와 우리>(2004) 등 일련의 저서를 출간했다.

번역·정기헌 guyheony@ilemonde.com

파리8대학 철학과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역서로는 <프란츠의 레퀴엠> 등이 있다.

<각주>

(1)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그동안 이 주제에 많은 지면을 할애해왔다. 가장 최근의 기사로는 2008년 9월호에 실린, Pierre Concialdi, ‘연금 확보를 위한 노동 개혁’이 있다. 그 밖에 참고할 만한 자료로는, Jean-Christophe Le Duigou & Jean-Marie Toulisse, <연금제도의 미래>, L’Atelier, Ivry-sur-Seine, 1999. Paul Boccara & Catherine Mills, <연금제도- 즉각적인 투쟁에서 대안적 개혁까지>, Le Temps des Cerises, Pantin, 2003 등이 있다.

(2) <Psychologies>, Paris, 2009년 10월호, p.68~89.

(3) Charlotte Buhler, ‘인간 삶의 과정’, <Journal de Psychologie>, Paris, 1932, p.818~829.

(4) Simone de Beauvoir, <노년기>, Gallimard, Paris, 1970(2007년 재판 발행).

(5) <마르크스로 현재를 생각한다> 제2권 <인간?>, La Dispute, Pantin, 2008 뒷부분과 비고츠키와 레온티에프에 관련된 부분 참조.

(6) <뤼시앙 레비브륄의 수고(手鼓)>, 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 Paris, 1949.

(7) Serge Guerin, <시니어들의 사회>, Michalon, Paris, 2009, p.59.

(8) 같은 책 p.63.

(9) 같은 책 p.62.

(10) Karl Marx, <신성가족>, Editions sociales, Paris, 1972,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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