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치용의 프롬나드]100년 전 볼셰비키의 혁명을 기억하는 3월, 첫날에 밤비 내리다
아직 떠나보낼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말. 하나마나한 얘기들 길가의 눈 녹듯 별리(別離)는 임박한다. 더 이상 눈 오는 아침이 없을 것이고, 눈 오는 아침의 설렘도 없을 것이다. 다만 반복되는 출근길 아침의 라디오방송에서 하이 톤의 호들갑으로 기억된다. 다행이다. 춥지 않아도 된다.
눈 소식은, 이제 지나가려는 그 계절의 최종 징후는 그 색감이 배태한 원죄 때문일까, 사랑에 빠진 이들에게는 물론 사랑에서 탈출하려는 이들에게 새삼 사랑의 욕망을 일깨운다. 시쳇말로 네가 곁에 있어도 나는 네가 그리운 게다. 나는 네가 곁에 없어서 말할 수 없이 그립다. 불시에 저렇게 무작정, 또 아무 조건 없이 막무가내로 하늘을 덮어버리는 사건은 사랑밖에 없다. 어쩌면 혁명밖에 없다. 사랑은 원죄이고 사랑은 업(業)이다. 혁명도 그렇다. 어쩌면 사랑만이 유일한 혁명이다.
눈이 오는 아침이 더 이상 설레지 않게 되었을 때,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점점 희미해지면, 어딘가에 소복소복 쌓인 너를 나는 여전히 그리워할 테지만, 나는 네가 곁에 없어도 비 맞아 꽃 피우며 잘 살아나갈 게다.
술병 비우듯 그렇게 온전히 떠나보내는 사랑은 없다. 술집에서 빈 잔을 리필하듯 그렇게 “리셋” 되는 컴퓨터 같은 혁명은 없다. 가끔 서늘하게 지난 계절의 바람이 불어오고, 그렇게 개 목줄을 잡은 맨손이 시리겠다만, 목줄의 팽팽해진 장력에 매혹된 나비 한 마리, 그 위에 살포시 내려앉으면 나의 개가 고개 돌려 바라보겠다.
글ㆍ안치용 지속가능성과 CSR에 관심이 많다. 한국CSR연구소장이며, 지속가능청년협동조합 바람 이사장과 한국사회책임네트워크 집행위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지속가능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news)’을 대학생/청소년들과 함께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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