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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겨울은 아직 오지 않았다’
‘나의 겨울은 아직 오지 않았다’
  • 박지애 | ‘낙엽’ 이달의 에세이 가작
  • 승인 2017.12.01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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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계절을 추모하다
 요란한 알람 소리는, 제발 오지 않기를 바랐던 아침이 다시 왔음을 알렸다. 무거운 눈꺼풀을 비비며 들어간 욕실에서 뜨거운 물을 들이부어 샤워했다. 스킨과 로션을 바르고 드라이기를 켰을 때 샴푸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출근길에 익숙하게 닫힌 회사 건물의 고정문을 자연스럽게 밀고 들어가려 했다. 열리지 않는 문을 무심히 흔들다가 옆 사람이 열어준 옆문을 따라 들어갔다. 점심시간마다 배가 고팠지만 무언가 집어넣고 싶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공백을 받아들이겠다는 쓸데없이 결연한 객기를 부렸다. 그렇다. 상실의 후유증이다. 

 그와의 이별은 간결했다. 무릇 간결하지 않은 것은 내 마음이었다. 미련이 많은 사람은 어느 한 계절을 남보다 조금 더 오래 산다.(1) 미련이 많은 나는 매일 밤 뒤척였고 자주 울었으며 이불을 움켜쥐고 잠들면 결국은 꿈속에서 그를 만났다. 무의식은 의식의 발현이란 것을 증명하듯 그는 시도 때도 없이 내 무의식에 방문해 그리움에 무게를 더했다. 그에 대한 기억은 마치 정처 없이 쏟아지는 가을의 빗물처럼 고여 텅 비어버린 오늘의 나를 반사했다. 

 그가 우리 집에 놓고 간 휴대폰 충전기와 담뱃갑 말고는 그 어디에도 그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처음부터 없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완벽한 그의 부재(不在), 그리고 완벽한 나의 상실(喪失)만이 남아 있었다. 그가 존재했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충분한 통증을 견뎌내야만 했다. 내 상태는 매우 불안정하고 부자연스러우며 위태로웠다. 수면제 없이 잘 수 없었고 고픈 배를 움켜쥐고도 밥이 싫고 면역력이 떨어져 감기약을 먹고도 밤마다 술에 의지했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 그 평범하고도 자연스러운 진리를 응당 그래야 할 것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자연스러운’ 나는 아직 온전히 짓지 못한 매듭을 쥐고 이리저리 쓸려 다녔다.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한다는 구태의연한 위로와 반복되는 음주로 인한 두통은 내 정신을 가을의 파도처럼 거칠게 부서뜨렸다. 무엇보다 내 일상의 균열은 살면서 몇 번이고 더 찾아올 상실과 결핍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됐다. 

 어떤 사람에게 나는 죽을 때까지 한 가지의 인상으로 존재할 것이다.(2)
 우연히 블로그에서 발견한 글귀를 읽고서 문장 위를 한참 서성거렸다. 한 가지의 인상, 박제(剝製)된 마지막 표정, 영원(永遠)과 회귀(回歸). 꼬리에 꼬리를 문 그 낱말들을 입안에서 웅얼거렸다. 문득 공연히 돌아가는 시곗바늘과 매월 자연히 넘어가던 달력을 봤다. 내가 그를 언제쯤 만났고, 그즈음 나는 그의 무엇에 반했고, 결국 그 모든 것이 지나간 뒤 어떻게 이 계절의 매듭을 지을 것인지 생각했다. 잠시 시간과 공간을 함께 공유했던 그를 이제 나는 다른 시간과 다른 공간에서 떠올렸다. 

 제법 날카로워진 바람에 두꺼운 외투를 걸치고 나갔던 날, 메마른 잎이 여름의 열기가 식어버린 아스팔트에 상처를 내듯 미끄러졌다. 어느 계절도 쉬이 보내지 않고 온 계절 온 힘을 다해 싹을 틔우고 색(色)을 입고 제 몫을 다한 최후의 얼굴을 마주했다. 올해 가장 더웠던 한여름 밤에 만나 젊은 날의 열기에 들떠 뜨겁게 엉겨 붙어 있던 우리의 계절이 서럽게 물든 표정을 바라봤다. 세상의 모든 잎은 그들 각자의 계절을 보내고 그들 각자의 매듭을 짓고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어느 날 아무렇지 않게 버려지거나 떠날 수 있는 세상의 모든 존재에 대해서. ‘때가 되면’ 흩어지거나 떨어지거나 죽어가 수명(壽命)을 다한 존재의 ‘지나친’ 자연스러움에 대해서. 

 여름날의 열기에 들떠 유난스러운 설렘을 한가득 품었던 계절이 서서히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할 때쯤 그는 차츰 뒷걸음질하고 있었다. 그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는데, 나는 끝내 놓지 못해 한 계절을 남보다 조금 오래 잡아두었다. 나는 그 계절을 그와 같은 속도로 서서히 흘려보내야 했다. 진작 놓아줘야만 했다. 옷장 깊숙이 넣어둔 스웨터를 꺼내 입듯, 자연스럽게, 여름과 작별하듯 그를 보내야 했다. 다들 초겨울이라 하는데, 나는 끝내 늦가을이라 했다. 

 서로에게 기억될 한 가지 인상, 박제(剝製)된 마지막 표정, 영원(永遠)과 회귀(回歸).
 낙엽이 지고 나서야 알았다. 얼룩덜룩 물든 낙엽이 온 여름의 열기를 듬뿍 머금어도 종국엔 바스락거릴 만큼 말라 시든다는 것을. 그러나 최후의 순간까지 열렬히 부풀었던 감정은 알록달록 물들어 그 날의 표정을 박제(剝製)한다는 것을. 내가 죽어라 붙잡고 있어도 잡히지 않는 계절처럼 떠나야 할 것은 의연히 제 갈 길을 간다는 것을. 그리고 끝내 야속히 멀어져 가는 그것을 보내는 것만이 나의 유일한 책무라는 것을. 무심히 가는 계절을 붙잡는 일이 내 소관이 아니듯, 누군가로부터 잊히는 일에 남은 사람은 그저 속수무책이 돼야 한다는 것을. 

 그날 자궁 속처럼 아늑했던 그의 품, 심장 위에서 나지막이 울려 퍼지던 낮은 목소리, 마치 그 순간이 마지막인 줄 알았던 것처럼 멀어지는 그에게 달려가 맞추었던 키스. 금방 다시 볼 것처럼 지극히 자연스러웠던 마지막 얼굴은 서로에게 남겨진 마지막 표정이 됐다. 우리는 서로 각자의 여름에 상대에 대한 한 가지의 인상을 새겼고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날들에 잠시 뜨거웠던 우리를 봉인했다.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날들과 반드시 반복되는 계절의 당연한 회귀(回歸) 사이의 간극, 그 틈에 나의 스물여덟 번째 가을이 놓여있다. 아직 매듭을 짓지 못해 위태롭게 매달린 나의 계절은 여전히 가을이다. 
 나의 겨울은, 아직, 오지 않았다. 

글‧박지애 serotonin711@nate.com
꾸준히, 그리고 기꺼이 방황하는 사람

(1) 오은, <계절감>, 시집 <유에서 유>, 문학과 지성사, 2016.
(2) 강성은, <살인은 연애처럼 연애는 살인처럼>, 시집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 창비,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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