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 샤갈, 그는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절대주의를 의식했던 것일까? 아니면 당대에 유행하던 새로운 예술 사조에 맞춰보려 했던 것일까? 1914년 이전에 입체주의적 요소들을 작품 속에 녹여냈듯, 샤갈은 구상 미술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으면서 한동안 기하학적 형태를 연습하는데 몰두했다.그러나 그는 곧 이 같은 시도를 그만두고, 자신의 영감의 원천과 상상의 세계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환상적이고 시적인 사실주의로 방향을 틀었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의 예술적 부흥기를 논할 때 우리는 흔히 말레비치와 샤갈을 함께 언급하곤 한다.샤갈은 학교를 설립함으로써 당대의 예술적 흐름인 아방가르드가 민중들의 삶속에 스며들 수 있도록 했다.그러나 곧 아방가르드의 구상 예술을 거부하는 움직임이 나타나면서 샤갈의 입지는 크게 좁아졌다.
1918년 어느 가을 아침의 모스크바. 한 남자가 인민위원회 안으로 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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