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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정치인들, 기업행 엑소더스
좌파 정치인들, 기업행 엑소더스
  • 세르주 알리미
  • 승인 2010.08.06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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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창]

연일 새로운 사실이 폭로되면서 프랑스 전체가 충격에 휩싸였다. 정치인이 재계 인사와 지속적으로 친분 관계를 유지해왔고 정당 지원금과 선거자금을 제공받았다는 것이다. 그 대가로 경영인들은 상당한 세금 감면 혜택을 받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2006년 도입된 ‘세금상한제’와 부유세 감세 덕분에 고소득자가 엄청난 혜택(10년간 총 1천억 유로 감면)을 받게 된 것도 결국 이런 정경유착의 결과라는 사실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세제 감면 효과를 몸소 체험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찾기보다는 재계로 자리를 옮기는 정치인(가족 포함)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베탕쿠르 사건’(1)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을 수면 위로 드러냈을 뿐이다.(2)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의 부인 베르나데트 시라크가 LVMH사(社)의 이사가 되었을 때, 조사에 나섰어야 할 기자들과 점잖은 대학교수들은 어디서 뭘 하고 있었는가? 베르나르 아르노가 회장으로 있는 LVMH는 프랑스 럭셔리 산업의 선두를 달리는 기업이다. 같은 시기에 플로랑스 뵈르트는 에르메스사의 이사가 됐다. 그녀는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부자인 릴리안 베탕쿠르의 재정담당으로 일한 적이 있다. 당시 이 사실은 논란거리조차 되지 않았다. 그녀의 남편인 에리크 뵈르트 노동부 장관은 “나는 남녀평등을 위해 일하는 장관으로서 내 입장 때문에 아내의 커리어를 방해하고 싶지 않다”(3)고 말했다. 누구도 그가 아내의 직업적 성공을 바란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의 ‘입장’에 대해서는 문제제기가 있어야 했다. 플로랑스 뵈르트는 베탕쿠르의 재정을 관리하면서 탈세를 위해 세이셸로 자금을 빼돌린 장본인이었으며, 남편 에리크 뵈르트는 사회문제를 담당하는 장관으로서 서민의 퇴직 연금을 삭감하겠다고 나섰던 사람이다. ‘베탕쿠르 사건’ 이전에는 이 모든 일이 가능했다. 돈과 권력의 관계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지만,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그때는 모든 게 좀더 쉬웠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번 ‘사건’이 주는 교훈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최근에는 젊고 야심에 가득 찬 고용담당 국무장관이 영국 출장길에 런던 금융계의 투기 자본가들을 만나 자신의 정치단체 ‘누벨 옥시젠’(새로운 활력)에 자금을 제공해줄 것을 요청한 사실이 밝혀졌다. 한편 베탕쿠르가 1년간 내는 소득세율은 1~6%에 불과하다고 한다(물론 세금상한제 덕분이다).(4)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는 이번 사건은 프랑스의 새로운 과두체제에 ‘마리 앙투아네트 목걸이 사건’(5) 같은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러려면 최소한 공직자가 사기업으로 자리를 옮기는 행태가 사라져야 한다. 물론 침묵을 통해 돈과 공모하는 기자 역시 바뀌어야 한다. 만약 현재의 분위기를 일소한다는 명분으로 니콜라 사르코지와 별반 다르지 않은 인물을 엘리제궁에 앉혀놓는다면 지난 한 달간의 소란은 공염불로 끝나고 말 것이다. 가령 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그는 대통령 출마 의사를 피력했다-역자) 같은 사람이 좋은 예다.(6) 경영인과 친한 이 사회주의자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부호들은 새로운 곳으로 자리를 옮겨 축배를 들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게 다시 반복될 것이다.

글•세르주 알리미 Serge Halimi

번역•정기헌 guyheony@gmail.com
파리8대학 철학과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역서로 <프란츠의 레퀴엠> 등이 있다.

<각주>
(1) 로레알 창업주의 상속녀 릴리안 베탕쿠르가 사르코지가 뇌이 시장직에 있을 때부터 그에게 돈봉투를 건네왔으며, 대통령 선거자금도 제공했다는 사실이 폭로됐다. 현 여당인 국민운동연합(UMP)의 자금 담당이기도 한 에리크 뵈르트 장관이 이 과정에 연루됐고, 그의 부인 플로랑스 뵈르트도 베탕쿠르의 자금관리 담당을 했다.
(2)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0년 6월호 특집 ‘황금과두체제의 시대’ 참조.
(3) <AFP>, 2010년 4월 21일.
(4) Thomas Piketty, ‘릴리안 베탕쿠르는 세금을 내는가?’, <리베라시옹>, 2010년 7월 13일.
(5) 1784년 희대의 사기꾼 라모트 백작 부인이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에게 목걸이를 대신 전해주겠다고 속여 루앙 추기경이 구입해온 값비싼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가지고 사라진 사건. 라모트 백작 부인은 1785년 재판에 회부돼 종신형에 처해졌지만 여론의 화살은 이미 평판이 좋지 않던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집중됐다.
(6) Olivier Toscer, ‘재계 인사들과 사이좋은 좌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3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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