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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군대의 승리를 거부하는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기억투쟁
붉은 군대의 승리를 거부하는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기억투쟁
  • 에릭 오노블 l 작가
  • 승인 2025.05.30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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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전승절을 둘러싼 러-우의 대립
제2차-세계대전의-우크라이나(1938년)
제2차-세계대전의-우크라이나 (1938년)

2023년, 키이우는 5월 8일을 히틀러 독일의 패배를 기념하는 날로 채택했다. 이는 러시아가 5월 9일에 기념하는 전승절과의 단절을 상징하는 조치였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오히려 이 역사적 유산의 상징적 가치를 적국(敵國) 러시아에 내어주는 듯하다. 소련군(붉은 군대)의 일원으로 나치즘과 맞서 싸운 우크라이나인들의 기억이 지워지고, 그들이 승리에 끼친 결정적 기여마저 의도적으로 가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5월 9일 전승절, 키이우는 5월 8일 히틀러 패배 기념일 1941년 독일군의 침공, 1943~1944년 소련군의 반격과 탈환. 그 두 차례의 대규모 작전에서 우크라이나는 독일과 소련의 수백만 병력이 오가며 치열한 전장(戰場)이 되었다. 그만큼 우크라이나는 제2차 세계대전의 핵심 격전지였다. 이 기간에 800만에서 1,000만 명의 우크라이나인이 목숨을 잃었다. 그중 300만~400만 명은 군인이었고, 500만 명 이상은 민간인이었다. 이들 가운데 150만 명은 유대인이었는데, 이는 홀로코스트 전체 희생자의 4분의 1에 해당한다.



일부 우크라이나인은 나치에 협력했다. 이들은 주로 1939년 몰로토프-리벤트로프 협정(독일과 소련이 체결한 불가침 조약으로, 비밀 의정서를 통해 폴란드, 발트 3국, 서부 우크라이나 등 동유럽을 양국이 분할 점령하기로 합의—역주)에 따라 소련에 병합되었다가, 1941년 독일군이 침공했던 서부 우크라이나 출신이었다. 협력자들은 독일 점령 아래 경찰과 행정기관에 복무하며 집단학살을 직접 도왔다. 지역 주민 일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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