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메리 셸리 : 프랑켄슈타인의 탄생>은, 영화 자체보다는 영화의 배경에 관해서 할 이야기가 훨씬 많은 작품이다. 물론 그렇다고 영화 자체에 대해서 논할 내용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영화의 배경 이야기를 듣고 영화를 보면 맥락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그 맥락과 관련하여 <1987>이 1987년의 민주화운동을 기념한 영화이듯이, 이 영화가 소설 <프랑켄슈타인> 출간 200주년을 기념하여 제작되었다는 사실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기념 영화라는 이야기는 어느 정도 기록적인 성격을 갖는다는 것이어서, 앞서 지적한 대로 영화 제작진이나 관객이나 배경사를 잘 파악하여야 한다.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원제는 ‘Frankenstein: Or the Modern Prometheus’로, 이 영화가 다루는 메리 셸리(1797~1851년)가 18세에 쓴 소설이다. 셸리의 남편인 퍼시 셸리[Percy Bysshe Shelley, 1792~1822년]는 바이런, 키츠와 함께 영국 낭만주의 3대 시인에 속한다. 퍼시와 메리는 부부였지만 퍼시가 익사하여 요절하는 바람에 부부로 산 기간은 짧았다. 영화에서 소개했듯이 메리ㆍ퍼시 부부가 바이런과 함께 비엔나에 체류 중일 때 메리가 소설을 착상한 것으로 전해진다.
SF의 효시로 꼽히는 소설 <프랑켄슈타인>은 1818년 영국에서 익명으로 출간되었다. 흥미로운 대목은 저자를 익명으로 한 소설에 기명 서문이 실렸다는 점이다. 서문을 쓴 이는 남편 퍼시였다. 익명 상태에서 이 책은 세간의 주목을 받았지만 1831년 메리 셸리 본명으로 재출간된 이후에는 주목이 혹평으로 전환된다. 당시에는 여성이, 그것도 젊은 여성이 이런 소설을 쓴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으며,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작품이 남성이 대신 써준 것(예 남편 퍼시)이거나, 그것이 아니라면 형편없는 작품이어야 했다.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은 실제로 당대에 이 두 가지 방식으로 이해되었다. 영화에서도 이 모습이 그려진다.
오늘날 기준으로 여성혐오라고 할 이러한 모습은 당시로서는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오히려 메리가 시대 흐름에 역행했다고 할 수 있다. <프랑켄슈타인>이 발간되고 한 세기가 더 흐른 1929년에 발표된 <자기만의 방>에서, 버지니아 울프가 자신 시대의 ‘여성차별’ 혹은 ‘여성혐오’를 개탄하고 있으니, 메리의 세상이 얼마나 더 살벌한 것이었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페미니스트 모녀
영화 <메리 셸리 : 프랑켄슈타인의 탄생>에서는 주인공 메리가 그러한 남성중심의 동시에 여성혐오의 세상에서 전 존재를 걸고 고단한 싸움을 전개하는 모습을 절절하게 그린다. 흥미로운 사실은 메리의 그 싸움이 메리 자신만의 싸움이 아니라 어머니에서 이어진 대를 이은 싸움이란 것이다.(물론 더 크게 보면 여성 전체의 싸움이다.) 이쯤에서 근대 페미니즘의 선구자라고 할 메리 셸리의 어머니, 메리 울스턴크래프트(1759~1797년)를 살펴보자.
영화를 보지 않아도 눈치 빠른 사람은 알 수 있는데, 어머니 메리의 사망년도와 딸 메리의 출생년도가 같다. 기일과 생일 또한 인접하여, 어머니 메리가 그해 9월 10일 사망하였고 딸 메리는 8월 30일에 출생하였다. 어머니 메리가 딸 메리를 낳고 산고 끝에 곧 바로 숨졌는데, 영화 속에서도 이 사실이 딸 메리를 통해 안타까운 감정으로 표현된다.
근대 페미니즘 운동사에서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위상은 확고하다. 1792년 <여성의 권리옹호>를 출간하는 등 개인의 삶에서나 사회의 삶에서나 40년이 채 못 되는 인생을 여권투쟁에 온전히 바쳤다. 물론 당대에 그의 투쟁은 빛을 발하진 못했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가 생존한 시기는 계몽과 이성을 앞세운 근대의 여명기였지만, 그 희미한 빛은 여성에겐 전혀 비추지 않았다.
아직까지 여성이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한 그 시절에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여남평등을 주창하였다. <여성의 권리옹호>에서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이성을 갖고 있으며, 여성이 복종해야 할 대상은 아버지나 남성이 아니라 인간 고유의 이성(理性)”이라고 말했다. “열등한 이성을 지닌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되는 것이 곧 자연법”이란 주장을 편 장 자크 루소를 반박하는 등 당시의 차별적이고 혐오적인, 여성에 대한 사회적 통념에 맞서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여성 인권을 옹호했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개인의 삶에선 자유를 추구했다. 그때 자유라는 것이 인간, 즉 남자에게만 해당하는 덕목인 만큼 여자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가 자유를 추구했다는 것은 삶의 매순간이 투쟁임을 의미했다. 영화 <메리 셸리 : 프랑켄슈타인의 탄생>이 메리 셸리에 관한 것인 만큼 어머니 메리에 관해서는 이쯤에서 줄이기로 하고, 삶의 시기가 어긋난 바람에 비록 직접 교류하진 못했지만 메리 셸리에겐 그런 어머니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이 영화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적시한다.
제작진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극중에서 메리 모녀의 연결지점을 찾느라 부심한 흔적이 엿보였다. 영화에서 연결지점은 메리 셸리의 아버지이자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남편인 윌리엄 고드윈(1756~1836년)이다. 영화 속에서 시인 셸리의 스승이자 저명한 지식인으로 그려진 고드윈 또한 실제로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에 필적할 만한 사상사의 선구자였다. 고드윈은 러시아의 크로포트킨 등으로 계승되는 근대 아나키스트 사상의 창시자이다.
사상사에서 큰 획을 그은 두 사람은 보부아르와 사르트르의 계약결혼에 비견될 만한 매우 특이한 부부관계를 맺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오랜 우정이 사랑으로 발전한 사례에 해당하는데, 부부의 인연을 맺은 이후에도 두 사람은 남녀평등에 입각한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유지하였다. 기존 사회체제에 저항하였기에 이들은 결혼제도에도 회의적이었고, 그리하여 결혼이라는 기성 제도를 채용하였지만 그 안에서 그들만의 새로운 평등의 사랑을 구현하고자 애썼다(메리ㆍ퍼시 부부의 사랑 또한 메리ㆍ윌리엄 부부의 사랑과는 다른 방식으로 파격적인 것이었다. 메리ㆍ퍼시 부부의 사랑 이야기는 영화의 주요 줄거리를 이룬다.).
그 사이에 메리 셸리가 태어났다. 그러나 살펴보았듯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38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등지고, 같은 이름의 딸에게 자유와 투쟁의 삶을 바톤터치한다. 영화 속에서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고드윈의 대사를 통해 표출되고, 주로 메리 셸리와 겹쳐지는 방식으로 대사가 사용되었다. 딸 메리가 어머니 메리와 조우하는 애잔한 장면은 고드윈의 집 서재에서 딸 메리가 어머니 메리의 책 <여성의 권리옹호>를 펼쳐놓고 그 속의 어머니 메리의 사진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그려졌다.
여권 신장에 기여한 여성 감독
<메리 셸리 : 프랑켄슈타인의 탄생>에서 감독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이 영화는 사우디아라비아 최초의 여성감독 하이파 알 만수르의 두 번째 작품이다. 현재 여성의 권리가 가장 구조적이고 체계적으로 억압되고 있는 곳이 이슬람세계라고 할 때 이슬람 세계의 대표국가 사우디아라비아 최초의 여성 감독이란 사실은 상징적이다. 하이파 알 만수르 감독은 자신의 첫 번째 작품이자,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여성이 만든 첫 장편 영화인 <와즈다>(2012년)를 통해 실제 사우디 여성의 삶을 바꾸는 데 성공했다. 영화인이자 페미니스트 운동가인 셈이다.
‘와즈다’는 이 영화의 주인공으로 자전거를 타고 싶은 10살 소녀이다. 자전거를 타고 싶다는 말은 사우디에선 그때까지 여성이 자전거를 탈 수 없었다는 뜻이다. 소녀 와즈다의 유쾌한 반란을 담은 이 영화의 개봉 이후 사우디 여성은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됐다. 영화가 현실을 바꾼 드문 예이다.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2015년에는 사우디 여성에게 참정권이 부여되었다.
사우디에서 여성이 영화감독이 된다는 것과 메리 셸리가 소설을 출간한 것 사이에서 무엇이 더 어려운 일이었을까.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은 아닌 것 같다. 적어도 그러한 난관을 뚫고 나가는 중인 사우디의 여성 감독 하이파 알 만수르가 메리 셸리의 삶을 영화화한 것은, 그 자체로 영화보다 더 영화적이라고는 말할 수 있다.
하이파 알 만수르 감독은 연출의도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메리 셸리는 완벽한 인물이 아니기에 의문의 여지가 있는 선택도 하고 때론 실수도 한다. 하지만 그녀는 낙담하지 않고 상실로 인한 괴로움에 굴복하지도 않는다. 그저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가지고 있던 고통의 짐을 심오한 예술 작품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언제라도 포기하거나 뛰어난 부모 혹은 남편을 따르는 게 쉬울 수도 있었을 텐데도 메리 셸리는 결국 자기만의 내면의 목소리를 찾는다. 나 역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영화를 만드는 건 메리 셸리처럼 모든 사회적 편견을 깨고 나아가는 과정이었다. 나는 상실과 괴로움을 딛고 내면의 목소리를 찾았던 메리 셸리처럼 강한 여성의 삶을 기록하고 싶었다.”
“처음엔 메리 셸리라는 인물에 대해 관심이 없었는데 알면 알수록 동질감을 느꼈다”는 그의 고백을 반영하듯, 영화제목이 당초 ‘별들의 폭풍(A Storm in the Stars)’에서 ‘메리 셸리(Mary Shelley)’로 바뀌었다.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작가, 혹은 괴물의 창조자보다는 당시의 억압적이고 여성혐오적인 사회상을 그리면서 그 안에서 저항하는 인간 존재를 그려내는 것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제 구체적으로 영화를 이야기할 계제인데, 사실 영화 외적인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영화 자체에 대해서도 할 얘긴 거의 다한 듯한 기분이어서,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관람을 추천한다는 말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헐리우드 영화에 중독되어 다른 종류의 영화를 볼 수 없는 사람이 아니라면 관람을 후회할 만한 영화는 아니지 싶다.
국내에 개봉된 영화 제목은 <메리 셸리 : 프랑켄슈타인의 탄생>이고 원제는 <MARY SHELLEY>이다. 엘르 패닝과 더글라스 부스가 각각 메리와 퍼시 역을 연기했다. 지난 20일 개봉했다.
글·안치용 지속가능저널 발행인 겸 한국CSR연구소장으로 영화평론가로도 활동한다. 지속가능성과 CSR을 주제로 사회활동을 병행하며 같은 주제로 청소년/대학생들과 소통/협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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