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에서 교사로 이동한 카메라의 시선
학교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는 1975년 <제3교실>에서 시작하여 1990년대 <학교> 시리즈로 이어지며, 전성기를 누리던 시기가 있었다. 이들 드라마는 수많은 청춘스타들을 탄생시켰다. 지금까지 학교 드라마는 학생들이 주인공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입시경쟁, 왕따, 학교폭력 등이 주요한 이야기로 다루어진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재미있는 사실은 학생이 주인공이긴 했지만, 매번 누군가의 관점을 통과하여 그려졌다는 것이다. 그 누군가의 자리에는 교사가 있었다. 학생들의 고민과 갈등은 교사의 관점에서 관찰되거나 이해되어야 했다. TV 학교드라마에서 선생님은 큰 비중을 차지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 TV드라마에서 교사는 무너지는 교권, 불합리한 시스템 속에서도 스승으로서 성숙한 모습을 지켜야 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학교 시스템은 흔들려도, 아이들은 방황해도, 참된 교사 한 명만 존재하면 해결되었던 학교 드라마의 반복 속에서 우리는 그들의 현실에는 무관심한 채, 의무만을 기대하고 강요하지 않았나싶다. 2020년 tvN 드라마 <블랙독>은 냉혹한 교육현장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교사들의 현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이제까지의 학교드라마와 출발이 다르다.
<블랙독>에서 고하늘(서현진)은 강남의 한 고등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첫 사회생활에 발을 내딛는다. 학창시절 재난사고에서 선생님의 희생으로 죽음을 모면했던 경험을 가진 그녀에게 교사라는 직업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학생을 위해 망설이지 않고 자신의 목숨을 내던졌던 선생님에 대한 기억을 붙잡고 교사의 꿈을 키워왔던 고하늘의 믿음은 우리가 막연하게 상상했던 이상적 교사에 대한 기대하고도 일치한다. TV 학교드라마는 좋은 선생님의 이미지를 강박적으로 생산해왔다. <블랙독>에서 고하늘은 교사의 사명감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일인지를 냉혹하게 경험한다. 근무한지 며칠 만에 그녀는 교무부장의 낙하산이라는 오해를 뒤집어쓰고 기간제 교사 사이에서 왕따가 된다. 기간제 교사들이 고하늘과 말도 섞지 않고, 밥도 같이 먹지 않으려는 이유는 시기와 질투의 유치한 반응만으로 볼 수 없다. 그들은 정교사가 되기 위한 치열한 경쟁구도 속에서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각자의 생존을 위해 누군가의 특혜에 분노하고 그 대상에게 폭력적인 방법으로 대처한다. 학교에서 기간제 교사의 현실은 불안정한 계약직에서 벗어나 정규직인 정교사가 되기 위해 서로를 경쟁상대로 경계하는 각자도생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을 향한 순수한 열정이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한 과도한 행동이거나 생존을 위한 전략쯤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드라마 <블랙독>의 고하늘은 자신의 과거 경험이 얼마나 특별한 것이었는지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이 간직한 선생님에 대한,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아프게 자리 잡았던 기억들을 마주한다. 그녀의 목숨을 살렸던 선생님은 보상금조차 받을 수 없는 계약직, 기간제 교사였다.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교사의 또 다른 현실은 늘 존재했다. 전부는 아닐지라도, 수많은 TV 학교드라마에서 나쁜 교사와 좋은 교사라는 이분법적 구도에서 이상적 교사를 만들어내는데 치중하느라 관심에서 멀어진 이야기들이 있었다.
정교사가 되어야 하는 이유
언젠가는 떠날 사람이라서, 지속적인 업무를 부여하지 않으면서도 살아남아야 하는 간절함을 이용하여 기간제 교사에게 과도한 일을 맡기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 학교 현장은 여느 사회와 동일하다. 다만 학교의 기간제, 비정규직들의 고통은 ‘교사’라는 직업이 가진 특수성에서 부과되는 부분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블랙독>의 고하늘은 학생을 가르친다는 점에서 기간제 교사나 정교사나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교육 현장의 냉혹한 현실 속에서 수없이 흔들리고 갈등한다. 학생들에게 기간제 교사라는 사실은 밝히지 않아야 할 비밀이어야 한다. 기간제 교사는 수업을 진행하고 학생들을 상담하고, 고민을 들어주는 등 교사로서 같은 일을 하지만, 정교사/기간제 교사라는 구도에서 부끄러운 존재가 되곤 한다. 학교에서 이 구분은 암암리에, 또는 드러내놓고 이루어진다. <블랙독>은 교사 앞에 ‘기간제’를 수없이 떼었다 붙이며, 그들을 온전한 동료교사로 수용하지 않는 학교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책임을 부여할 때는 ‘교사’로, 그들의 권리를 보호해야 할 때는 ‘기간제’로 구분하는 <블랙독>의 장면은 송영태(박지환)처럼 생각 없는 몇몇 교사의 행태만은 아닐 것이다. 기간제 교사는 학교의 효율적 시스템을 위해서 들어나기도, 숨겨지기도 해야 한다는 점에서 불안정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블랙독>은 고하늘이 교사가 되어야 하는 이유를 스스로 질문하고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정교사가 되고 싶습니다. 더 이상 불안하고 싶지 않아서요. 불안하지 않으면 학생이 더 잘 보일 것 같습니다.” 정교사가 되어야 하는 이유에 대한 그녀의 고백은 솔직하게 느껴진다. 개인적 경험과 상상으로부터 이상화된 교사의 이미지는 현장에서 깨지기를 반복하며 현실적인 이유들로 단단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사를 계속하고 싶은 이유에 대해 “학생들이 이뻐서, 너무 이쁘기 때문”이라는 고하늘의 대답은 과거 학교 드라마에 비해 설득적이기까지 하다. 누구도 불안한 삶을 지속하고 싶지 않으며, 불안한 조건 속에서 직업에 대한 의미, 사명감을 찾기는 쉽지 않다. 교사도 마찬가지이다.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직업이기에, 불안한 삶을 견디며 스승의 길을 걸어야하는 의무를 무조건 짊어질 수는 없다. 드라마 <블랙독>은 지금까지 TV 학교드라마가 좋은 선생님 만들기에 치중하여 잊고 있었던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동안 학교 드라마는 교육적 효과를 이루기 위해 숨겨진 세세한 이야기에 얼마나 무관심하였던가?
어느 곳에나 있는 블랙독
‘블랙독(Black Dog) 증후군’은 단지 색이 검다는 이유만으로 검은 유기견 입양을 터부시했던 역사와 관련되어 우울증, 낙담 등의 부정적 뜻을 담고 있는 사회적 현상이다.[1] 드라마 <블랙독>에서 고하늘을 비롯한 기간제 교사는 정교사와 구별되며 ‘블랙독’으로 취급된다. 물론 드라마에서 모든 인물이 그들을 ‘블랙독’으로 구별하는 것은 아니다. 박성순(라미란) 진학부장을 비롯한 진학부 선생님들은 교사 자체의 진심을 들여다보려 애쓴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기간제 교사는 학교에서도, 스스로에게도 ‘블랙독’으로 의식되며 불안함을 감출 수 없다. 선택받지 못할까봐 두려워하는 존재, 사회적 외면 속에서 우울증을 안고 살아야하는 블랙독은 비단 드라마 <블랙독>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 수많은 비정규직들이 ‘블랙독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다. 드라마 <블랙독>이 단지 학교 드라마로만 읽히지 않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드라마 <블랙독>은 실제 현실에서 경험하고 겪어내며 교사라는 직업으로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찾는 사회 초년생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한 청년의 성장담을 그린 드라마이기도 하다. 성장 스토리는 개인에게 많은 역할을 감당케 한다는 점에서 장단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아직 진행 중인 드라마 <블랙독>이 고하늘 혼자만의 성장이 아니기를 기대해보며, 남은 4회를 기다려본다.
참고문헌
[1] 나무위키 https://namu.wiki/w/블랙독
글: 문선영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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