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속의 위기, 위기 속의 변화
위기는 외부에서 가해진 충격이든 내부적인 파열이든 사회에 변화를 가한다. 일단 위기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사회구성원들은 생존본능과 불안심리에 사로잡혀 한시라도 빨리 탈출하기 위한 극약처방을 선택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극약처방은 위기상황을 속전속결로 벗어나는 대증요법일 뿐 선택과 배제의 원리에 따른 부작용을 파생한다. 위기 속의 위기가 지속되는 이유이다.
한편, 위기는 변화의 동력을 제공한다. 강자 중심의 위기 대처법은 부작용에 대한 내성이 생긴 약자에게 극약처방을 거부하거나 기존의 규율에 대응하는 또 다른 대처법을 마련할 틈새를 주기 때문이다. 크고 작은 혁명은 위기 속에서 발생하는 변화이다.
1997년에 일어난 IMF 외환위기는 현재까지 진행형이다. IMF의 제안에 따라 구조조정이라는 극약처방을 단행하고 부작용의 완화를 위해 미국의 자기계발 담론을 수입했지만, 사회와 문화, 정치 등 모든 국면을 상업화하고 인간의 모든 영역을 상품화하는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했다. 신자유주의적 경제위기가 또 다른 위기 즉, 무한경쟁에 지친 피로사회를 몰고 온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위기 속에서 2000년대의 2,30대 여성들은 변화를 꿈꾸었다. 이들은 결혼이나 육아에 전념하는 전통적인 여성상에서 벗어나 사회적 성공과 고액연봉을 성취하며 주체적으로 자유와 희망을 구가하는 골드미스의 욕망을 욕망했던 것이다. 그러나 자기계발 담론의 최대 소비자였던 이들 대부분은 자신의 활동이나 업적에 의해 즉각적으로 평가와 보상을 받는 비정규직 종사자들이었다.
당시 미디어들은 앞장서서 골드미스를 향한 여성들의 욕망을 자극했다. <섹스앤더시티>나 <프렌즈>, <오프라윈프리쇼> 등과 같은 서구의 트렌드를 선도하는 문화상품을 연일 방영하고 유리천장을 뚫은 극소수 여성들의 성공신화를 기사화했으며, 싱글녀들의 사생활을 관찰하는 프로그램을 편성하여 ‘싱글녀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당대 사회구성원들은 변화를 꿈꾸는 여성들의 욕망을 불편하게 여겼다. 크고 작은 위기 때마다 여성들의 희생을 당연시했던 가부장적 도덕 레짐에서 개인화된 여성들은 국가적인 고통분담에 참여하지 않은 이기적인 존재로 비쳤던 것이다. ‘된장녀’는 이런 불편함이 투사된 명명이다.
2000년대의 싱글녀들은 그 이전까지 한국사회에 존재하지 않았던 신인류이다. 이들은 <섹스앤더시티>와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주인공들이 구가하는 사회적 성공과 자유분방함을 동경하는 한편, 비정규직의 불안한 일자리에 연연하면서도 자기계발 담론을 적극 소비했던 새로운 여성상이다. 이들의 애환을 그린 로맨틱코미디는 더 이상 이전의 로코 문법을 따르지 않는다. 2000년대 부조리한 현실을 견뎌내는 싱글녀들의 고군분투 로코는 로코가 아닌 블랙코미디로 읽어야 한다.
자기계발 시대의 싱글녀, 골드미스를 꿈꾸지만 현실은 ‘골병미스’ 1)
“여러분~ 부자되세요”라는 광고카피는 2000년대의 사회상을 한마디로 압축한다. 2000년대는 1997년 IMF 경제위기의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든 국민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기 위해 시장에 뛰어들었던 시대였다. 남보다 더 많이 가진 부자가 되기 위해서 재테크와 자기계발에 몰두해야 하는 신자유주의 체제로 접어들었던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야누스의 얼굴로 다가왔다. 처음에는 어떤 조건에도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 설정한 목표를 추구할 수 있는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선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자유롭게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달콤한 말에 현혹되는 순간, 시장경제에서 소비력을 갖춘 부유한 개인이 되어야 한다는 선제조건을 내세우며 얼굴색을 바꿔버린다. 서둘러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미국에서 개발한 신자유주의를 수용했지만, 이미 적자생존과 승자독식의 법칙이 난무하는 생존경쟁의 정글로 뛰어든 것이다.
2000년대 2,30대 여성들이 신자유주의적 자기계발 담론에 매료됐던 이유 역시 ‘자유’였다. 여성들도 경제적 능력만 갖추면 얼마든지 자유롭게 살 수 있다는 자기계발 담론은 학교 졸업 후 조신하게 사회생활 몇 년 하다 적당한 남자와 결혼하여 가정주부로, 엄마로 살아가는 가부장적인 생애주기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을 가르쳐준 혁명적인 복음서였다.
이 복음서의 시장성을 발견한 미디어들은 앞 다퉈 2,30대 직장여성들을 미혼녀가 아니라 ‘싱글녀’로 포장하며 싱글녀 담론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신생 케이블방송(온스타일)은 <섹스앤더시티>와 <앨리맥빌>, <프렌즈>, <오프라윈프리> 등을 연일 방영하여 타 방송사를 압도할 만큼 성공가도를 달렸다. 자유를 향한 혁명을 꿈꾸었던 여성들은 드라마와 쇼프로그램을 수도 없이 반복적으로 시청하며 미국 골드미스들의 사회적 성공과 고액연봉을 거머쥔 거침없고 당당한 삶을 동경했고 자기계발 서적을 탐독했다.
여성잡지 역시 각계에 숨어 있는 극소수 간부급 여성들의 성공신화를 대서특필하고 그들의 재테크와 자기계발의 노하우를 전수하는 특집기사를 실어 싱글녀 담론을 확대했다. 여성 구독자들은 이들을 롤모델 삼아 초라한 ‘미혼녀’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개인으로 살아가는 싱글녀’로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과 욕망을 한껏 키워나갔다.
2000년대에 등장한 싱글녀 담론은 미국과 영국에서 유행했던 자기계발 담론의 여성 버전인 골드미스(정확히 swan)담론의 로컬화이다. 싱글녀는 단순히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싱글을 선택하고 독립적인 삶의 방식을 누리며, 결혼을 거부하지는 않되 결혼에 얽매이지 않으며 자신을 인생 설계의 중심에 두는 자기주도적인 여성상이다.
그러나 여성들이 꿈꾸는 세상은 그들이 살아가는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섹스앤더시티>의 주인공들처럼 사회적 성공과 고액연봉을 보장받을 수도 없고 자유분방한 성생활도 허용되지 않았다. 게다가 브리짓 존스가 곤경에 처할 때마다 아버지처럼 묵묵히 이끌어주는 마크 다씨와 같은 신사도 존재하지 않는 현실이다.
당대에 성공한 싱글녀로 손꼽혔던 여성들은 이런 현실을 “골드미스라 화려하게 포장하지만 실상은 골병이 들대로 든 골병미스”라고 증언했다. 여성들의 일자리는 대부분 남성에 비해 훨씬 적은 연봉을 받는 비정규직의 시간제이며, 직장은 성차별과 성희롱, 외모차별 등이 난무하는 전쟁터이고, 일상은 시도 때도 없이 시집이나 가라는 폭언이 넘쳐나는 생지옥이라는 것이다.
화려한 싱글라이프를 구가하는 고소득의 전문직 여성이라 하더라도 승진과 커리어 축적을 위해 끊임없이 자기계발에 몰두하다 보면 어느새 서른 중반이 되어 결혼 적령기를 놓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회 통념에 맞게 남자의 나이와 학벌을 고려하면 결혼상대가 될 만한 남자들은 이미 유부남이 되어 있으니, 유능하고 똑똑한 여성일수록 미혼이 될 확률은 훨씬 높아 더 비극적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골드미스를 꿈꾸지만 현실은 골병미스인 2000년대 싱글녀 담론은 소비주체로 급부상한 2,30대 여성들의 소비력에 주목한 상업적 생산물이다. 그럼에도 분명 위기 속에서 혁명을 꿈꾸었던 여성에게 자유로운 삶과 사회적인 성공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자기주도적인 삶에 대한 희망과 욕망을 자극한 정동이었다.
싱글녀들의 로코가 블랙코미디인 이유
<올드미스 다이어리>(극장판, 2006)의 인트로는 2000년대 싱글녀들의 욕망과 심리를 표상한다. 경비행기를 타고 파란 하늘을 날며 행복하게 웃던 미자는 별안간 내리치는 번개와 천둥을 맞고 밀림으로 추락한다. 힘겹게 일어나려는 미자를 향해 다시 번개가 내리치며 다음과 같은 내레이션이 이어진다.
“이 세상에 생존할 확률이 제로에 가까운 세 가지 불가사의한 일은 2만 피트 상공에서 추락한 비행기에서 살아남을 확률, 추락한 비행기에서 벼락 맞고 안 죽을 확률, 애인도 없는 노처녀 백수가 거지같은 삶에서 벗어날 확률. 다시 날고 싶다 훨훨! 언제까지 내 인생은 이럴까?”
경비행기를 타며 즐겁게 웃는 미자의 모습이 자유롭고 멋지게 살고 싶은 싱글녀들의 욕망을 상징한다면, 이내 번개와 천둥을 맞고 추락하는 광경은 골병미스의 고달픈 현실을 비유한다. 확률 제로에 가까운 세 가지 불가사의 중 두 가지가 이뤄졌으니, 노처녀 백수가 거지같은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암시하며 꿈에서 깨어난다.
<올드미스 다이어리>는 <브리짓 존스의 일기>와 여러모로 유사하다. 미자는 브리짓 존스처럼 언제나 말썽을 일으키며 어리숙하고 천진한 32살의 노처녀이고, 직장인의 필수요건인 TOP(시간, 상황, 장소)에 맞지 않는 실수를 반복하는 아마추어이다.
힘들 때마다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로부터 위안을 받는다거나 일기 형태의 전개방식도 흡사하다. 심지어 미자를 성추행하는 바람둥이 박피디와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지피디가 비를 맞으며 싸우는 장면은 <브리짓 존스의 일기> 영화 편에서 바람둥이 다니엘과 대표급 영국신사 마크 다씨가 분수대에서 싸우는 장면과 오버랩 된다.
그러나 독하게 살려고 번번이 마음을 다져보지만 변변하게 돈벌이를 못하는 백수 노처녀 처지라 함께 사는 고모들로부터 “미쳐도 곱게 미쳐라”는 모진 구박을 견뎌야 하고, 어렵게 다시 합류한 영화 더빙 작업과정에서 동료들과 상사의 눈치를 보며 전전긍긍 살아가는 골병미스라는 점에서 다르다.
동명의 시트콤(KBS, 2004.11.~2005.11)을 영화한 까닭에 온 가족이 서른이 넘도록 시집도 못가는 백수 노처녀의 애인 만들기에 몰두하는 파란만장한 노처녀 탈출기가 콘셉트이다. 이에 따라 어렵게 시작한 영화더빙 작업은 싱글녀들이 처한 부조리한 현실을 보여주는 배경일 뿐, 젊은 부하 여성들에게 성희롱과 성추행을 일삼는 박피디와 싸가지 없는 지피디 사이를 오가며 연하남 지피디와의 연애에 성공하는 과정이 코믹하게 전경화된다.
때문에 싸가지는 없어도 인간적인 기본 매너는 갖춘 지피디를 애인으로 만들기 위해 올인하는 미자와 가족들의 집착이 과도하게 부각되어 있다. 자유롭게 살고 싶은 욕망을 꿈꾸었던 2000년대 싱글녀들의 고민은 소거되고, 저승사자도 무서워 하는 세 명의 늙은 고모들과 동네를 가득 메운 여성 독거노인들을 배경삼아 노처녀의 싱글라이프가 비정상성으로 극대화된다.
<올드미스 다이어리>는 두 남녀가 티격태격 다투는 과정을 거쳐 연애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로코에 해당하지만 그 웃음은 결코 발랄하거나 경쾌하지 않다. 오히려 과도하게 코믹한 미자의 푼수끼 넘치는 행동은 부조리한 삶을 견디는 자가 풍기는 음울하고 냉소적인 웃음을 동반한다. 핸드마이크를 들고 지피디를 향해 “내가 그렇게 우스워? 왜 함부로 해?, 왜 예의를 안 지켜?”라고 울부짖는 미자의 절규는 더 이상 로코가 아니라 골병미스의 블랙코미디인 것이다.
2000년대에는 골병미스의 블랙코미디가 넘쳐난다. 가장 대표적으로 <미쓰 홍당무>(2008)는 자기계발에 몰두하며 치열하게 노력했지만 재능이나 능력이 아니라 오로지 외모로 평가받아야 하는 싱글녀의 절규와 울부짖음을 코믹터치로 담아낸다.
외모 컴플렉스에 시달리다 대인기피증과 안면홍조증에 걸릴 정도로 외모지상주의가 만연한 사회를 풍자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오직 사랑받고 싶다는 일념으로 과대망상증과 자기비하에 사로잡혀 있으면서도 정작 자신이 뭘 원하는지도 모를 정도로 정신분열 상태에 이른 미숙의 단발마적 비명은 부조리한 현실에 피폐해진 싱글녀들의 내면을 기괴스러울 정도로 극대화한 것이다.
블랙코미디의 맹점은 그들의 절규와 울부짖음을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할 경우 단지 유쾌하고 유머스러운 코미디 정도로 가볍게 소비된다는 데 있다. 이런 까닭에 2000년대 싱글녀들이 살아가는 잔혹하고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풍자의 의미를 인식하지 못한 채 골병이 들대로 든 싱글녀들의 광기와 같은 절규를 ‘징글징글한 코미디’ 정도로 규정했던 것이다.
<S 다이어리>(2004) 역시 싱글녀 담론을 이해하지 못한 시대 착오적인 영화이다. 영화는 세 남자와의 연애담을 그린 전반부와 복수극을 그린 후반부를 대비한 여성 성장서사를 지향한다. 전반부에서 진희는 순수한 성당오빠, 터프가이 복학생 선배, 자유분방한 연하남을 만나는 동안 몸과 마음을 바쳐 사랑에 헌신했지만 이유도 모른 채 버림받는다. 후반부에서 진희는 옛 일기장을 들춰보며 세 남자들을 차례로 만나 사랑의 순수성을 측정하지만, 자신의 순정이 농락당했음을 파악하고 복수극을 펼친다. 세 남자들에게 자신이 바친 사랑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여 청구서를 보내고 그들의 취약점을 공략하여 통쾌하게 복수한다는 내용이다.
진희는 <별들의 고향>(최인호 작, 1973)의 경아나 <겨울여자>(조해일 작, 1977)의 이화의 계보를 잇는 순정파 여성이다. 복수극이 끝난 후에도 여전히 사랑의 순수성을 믿는 진희는 남자들의 사과를 받아낸 후 자신의 일기장과 입금통장을 돌려주며 용서하고,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이 추억>이라는 번역서를 출간하면서 싱글녀로서 독립선언을 선포하며 정신승리에 도취된다.
이처럼 영화 전반을 관통하는 시점은 자유롭고 당당하게 살고 싶은 싱글녀들의 욕망과 희망을 이해하지 못한 채 가부장적 도덕 레짐에 머물러 있다. 진희를 사랑한 것도 남자(세 남자)이고 주체적인 여성으로 성장한 계기 역시 남자(네 번째 남친의 충고와 게이 친구의 도움으로 복수에 착수)이므로 그들의 진정성을 이해하며 인정해야 한다는 전형적인 오빠페미니즘인 것이다.
<싱글즈>(2003)는 일본드라마 <29세의 크리스마스>(1994, 후지TV)를 각색하여 2000년대 싱글녀들의 좌충우돌 독립생활, 일과 결혼 그리고 우정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영화이다. 자유를 꿈꾸는 솔직·대담한 싱글녀와 소극적이고 현실적인 싱글녀의 대비를 통해 부조리한 현실에 대응하는 2000년대 여성들의 고달픈 속내를 밀도 있게 포착했다. 또한 싱글녀 못지않은 싱글남의 팍팍한 삶을 포괄한 점에서 독보적이다.
어릴 적부터 친구였던 소탈한 정준과 그의 작은 빌라에 얹혀사는 동미, 근처에서 살면서 거의 같이 살고 있는 거나 다름없이 드나드는 나난과의 29살 동갑인 우정공동체는 <프렌즈>와 유사하다. 그러나 시간제 알바이트생인 정준과 회사를 박차고 나온 백수 동미가 공과금을 내기도 벅찰 정도로 누추하게 사는 빌라는 <프렌즈>의 주인공들이 거주하는 아파트에 비해 작고 초라하다.
영화는 크게 동미와 나난의 성차별적이고 성희롱이 난무하는 직장에 대한 상이한 대응방식과 뒤늦게 찾아온 연애와 결혼을 둘러싼 고민에 관한 두 부분으로 나눠진다. 성차별과 성희롱이 일상화된 직장문화는 신자유주의적 시장논리에 따라 성과급제로 작동되면서도 여성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거나 여성의 업적을 가로채는 남성 중심적인 2000년대 사회의 한계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싱글녀들은 이런 부조리한 현실을 거부하고 당당하게 개인화된 여성으로 살아가는 자유를 꿈꾸었던 것이다.
화통하고 야무진 동미는 자신이 10개월 동안 야심차게 준비한 프로젝트의 최종 프리젠테이션을 마실장에게 고스란히 뺏기고 파티준비나 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부당한 명령에 강력하게 항의하는 동미를 향해 마실장은 ‘여자 어시스턴트에게 프로젝트를 맡긴 전례가 없다’는 이유를 들어 묵살하고 얼렁뚱땅 성희롱으로 농락하려 한다. 자기 주체적이고 당찬 동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대응책은 팀장을 성추행범으로 몰아 통쾌하게 복수하는 것이다. 그러나 통쾌함은 순간이고 무일푼의 백수로 살아가야 하는 가난하고 고달픈 현실이 남겨진다.
동미는 일과 연애에서 뛰어난 능력과 자신만만한 패기를 보였던 <섹스앤더시티>의 주인공과 흡사하지만, 그들이 누렸던 사회적 성공과 고액연봉을 결코 보장받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퇴직 후에 경력을 살려 조그만 사업체를 차리지만, 결혼자금 대신 받아간 자금으로 되지도 않는 사업을 한다며 노여워하는 아버지가 들이닥쳐 어렵게 차린 고사상을 뒤엎어버리는 바람에 영영 백수가 되고 만다. 성차별적인 직장문화와 아버지의 폭력성은 개인화된 싱글녀의 욕망과 꿈을 용납하지 않았던 가부장적 도덕 레짐의 상징이다.
한편, 패션회사의 디자이너인 나난 역시 뉴욕 출장에 대비한 프로젝트 아이디어를 천팀장에게 뺏기고 외식사업부로 좌천된다. 그러나 현실적이고 소극적인 나난은 동미처럼 시원하게 항의하거나 사표를 쓰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패밀리레스토랑의 매니저로서 서빙업무를 담당하며 분을 삭이는 길을 택한다. 동미와 달리 현실과 타협했지만 속으로는 골병이 들대로 든 골병미스로 살아가는 것이다.
오랫동안 만난 남자로부터 실연당하고 직장에서 좌천당해 좌절감에 빠져 있는 나난에게 다가온 수헌은 비현실으로 다정다감하고 헌신적인 남자이다. 수헌은 추락한 여성의 자존심을 살려주고 존재 가치를 인정해주는 로맨스의 전형적인 남자 주인공답게, 레스토랑의 매상을 올려주고 성추행한 천팀장을 혼내준다. 피곤에 지친 나난을 매일 차로 퇴근을 시켜주고, 세심하게 나난의 집에 고장난 수도 꼭지도 고쳐준다.
잘 나가는 증권사 애널리스트인 최상급 신랑감 수헌이 학비를 지원해줄 테니 함께 뉴욕에 가서 디자인 공부하라는 제안은 골병미스의 삶을 한 방에 끝낼 수 있는 달콤한 유혹이다. 현실적이고 소심한 나난은 다시 오지 않을 좋은 기회임을 알고 고민하지만, 디자이너로 성공할 자신이 없다는 핑계를 대고 거절한다.
나난은 결혼하여 주부로, 엄마로 살다보면 결코 자신을 인생 설계의 중심에 두는 자기주도적인 삶을 살 수가 없게 될까 두려웠던 것이다. 멋진 싱글라이프를 구가하며 살겠다는 꿈은 멀어지고 몸과 마음이 지쳐 있는 나난에게 가부장제의 결혼생활은 감당하기에 버거운 또 다른 굴레이다.
이즈음 자유분방한 동미 역시 어린 여자 친구에게 차인 정준을 위로하다 실수로 잠자리를 갖고 임신에 이른다. 그러나 동미는 정준과의 결혼을 제안한 나난의 충고를 거부하고 싱글맘의 길을 선택한다. 단지 아이의 아빠라는 이유로 사랑이 아니라 우정의 관계였던 정준과의 결혼을 거부한다는 말은 표면적인 겉치레에 불과하다. 동미는 소탈하고 착하지만 가난한 정준과 결혼하면 대범하고 당찬 자신이 억척스럽게 가정을 꾸리며 그악한 아줌마로 살게 될 것을 예견했던 것이다.
나난과 동미는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며 멋지게 자기주도적인 삶고자 했던 싱글녀들이다. 비록 꿈과 다르게 초라한 올드미스로 남게 됐지만, 가족이란 이름으로 자신을 억압하는 가부장적 도덕 레짐으로 돌아갈 수 없다. ‘서로 엄마와 아빠가 되어 아이를 같이 키우자’는 나난과 동미의 약속은 굳건한 신념에 기반한 선택이 아니라 두렵고 불안하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어 어쩔 수 없이 가야 하는 외통길이다.
나난과 동미는 그 이전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신인류이다. 1등 신랑감의 달콤한 제안도 저버리고 미혼모라는 사회적 비난도 감수하면서 위기 속에서 힘겹게 변화를 꿈꾸는 싱글녀들이다. 자신의 욕망과 꿈을 용납하지 않은 가부장적 도덕 레짐 속에서 폭압적 일상을 견뎌내는 이들의 로코는 블랙코미디로 읽어야 비로소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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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 구글
1) 윤단유·위선호, 『결혼파업, 30대 여성들이 결혼하지 않는 이유』, 모요사, 2010. 39쪽.
참고문헌
송제숙, 『비혼여성, 임대주택, 민주화 이후의 정동』, 황성원 옮김, 2016.
싱글즈 편집부, 『싱글예찬: 아름다운 개인으로 살다』, 북하우스, 2007.
윤단유·위선호, 『결혼파업, 30대 여성들이 결혼하지 않는 이유』, 모요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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