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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민의 시네마 크리티크] <광주비디오: 사라진 4시간>
[이승민의 시네마 크리티크] <광주비디오: 사라진 4시간>
  • 이승민(영화평론가)
  • 승인 2020.06.30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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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워진 기록: 채워진 기억

광주 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광주비디오: 사라진 4시간>(2020, 이조훈)이 제작되었다. 주기 단위의 기념(일)은 과거의 역사적 사건들을 다시 소환하여 재조명한다. 이 과정에서 망각된 기억을 복원하고 기억의 재현을 통해 새로운 기억을 창출한다. <광주비디오: 사라진 4시간>은 광주 사건을 소환하면서, 그동안 사건과 인물에 초점을 맞추는 관점과는 다르게 ‘광주비디오’를 중심으로 사건을 재조명한다.

영화는 은폐된 광주 참상을 알리는 결정적 역할을 한 광주비디오를 중심으로, 이를 제작하고 복사하고 상영 운동을 한 이들을 찾아 나선다. 영화는 시간과 공간을 횡단하고 가로질러 당시 광주비디오 관련자를 지금 다시 만난다. 그러다 당시 광주 기록 속에서 비워진 결정적 4시간을 발견한다. 발표 그 순간의 4시간의 기록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영화는 이처럼 광주 민주화운동의 역사 속에서 또 다른 이야기를 발견하고 새로운 기억을 만든다. 역사의 주체를 시위 참여자나 광주 시민만이 아니라 광주 학살을 알려낸 다양한 영역의 드러나지 않은 사람들까지로 확장하는 한편, 발표 당시 비워진 시간을 짚어내면서 역사의 주름을 펼쳐낸다. 영화가 할 수 있는, 해야 하는 역사기록 방식이다.

 

광주비디오

광주비디오는 1980년대 한국 민주화 운동의 촉매이자 표상이다. 당시 광주 민주화운동을 접한 동시대인의 기억 속에 광주비디오는 충격과 일깨움 그리고 죄책감이 엉켜있는 감정의 덩어리이자 집단 기억이다. 영화는 이런 광주비디오를 불러와 물질로서 광주비디오 테이프와 비물질로서 기억을 형상화한다. 한국현대사에 광주비디오가 가지는 물질과 비물질, 즉 증거와 기억의 형상을 교차하고 병치하면서 영화는 광주 역사에 대한 또 하나의 이야기와 또 하나의 윤리적 질문을 발굴한다.

영화는 먼저 광주비디오를 증거(물)로서 소개한다. 자료 화면에서 출발하는 영화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청문회 모습을 담는다. 동문서답을 하는 모습에 분노한 국회위원들은 이어 광주 비디오를 단체 관람한다. 광주비디오는 광주학살의 증거자료인 것이다. 이렇게 영화는 광주비디오를 실증적인 증거 자료로 처음 소개된다.

영화는 유독 비디오테이프의 물성을 강조한다. 영화는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비디오테이프와 비디오를 재생하는 비디오데크와 구형 텔레비전 브라운관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이때 비디오테이프는 복합적 의미를 함축한다. 일차적으로는 프롤로그 장면이 제시했듯이, 역사의 증거물로 등장한다. 역사쓰기의 가장 보편적 방법론으로 실증적 증거인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이에 멈추지 않고 기억을 환기시키는 매개로 나아간다. 사람들을 만날 때 마다 비디오테이프는 보여지고 상영된다. 그렇게 영화 속 비디오는 기억을 소환하는 장치를 넘어서 기억의 전승 과정 그 자체로 나아간다. 기록된 이미지를 재생하고 복사하고 때론 닳아 흐릿해지는 비디오의 속성과 기념일을 중심으로 망각된 기억을 일깨우고 소환하고 재조명 과정은 서로 닮아있다.

 

과거와 현재의 중첩

영화는 현재 시점에서 광주비디오 관련자를 찾아 나선다. 당시 사건을 기록한 사람들, 비디오를 만든 사람들, 비디오를 복사하고 상영한 사람들을 만나가는 과정에서, 영화는 오래된 브라운관이나 단종된 비디오데크에서 재생되는 광주비디오를 지속적으로 보여준다. 현재 시점에서 과거를 연상하는 혹은 과거의 오브제를 함께 배치하는 방식은 때때로 낯설고 이질적이다. 비디오테이프는 쉽게 가시화되지 않는 과거 사건의 물적 증거로 현재 시공간에 틈입하여, 영화를 단순히 기억의 매개나 과거 그런 일이 있었다의 이야기로 머물게 하지 않는다. 과거를 불러오기 위해 과거로 가는 방식이거나 현재에서 과거의 흔적을 찾는 방식이 아니라 현재 시공간에서 과거를 적극적으로 배치하고 재연하면서 둘을 동일선상에서 엮어낸다. 과거와 현재를 겹쳐내는 흥미로운 방식이다.

또한, 현재 시공간에 놓여있는 오래된 오브제로서 광주비디오는 비디오 화면 속에서 마주하는 광주비디오와도 겹쳐낸다. 광주비디오는 영화 속에서 존재하기도 하고 영화 그 자체이기도 한 것이다. 동시대의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역사 감각을 일깨운다. 영화는 당시 광주비디오를 통해 사건을 경험한 이들과 영화를 통해 광주비디오를 메타적으로 접하는 관객을 동시에 포괄한다.

롯데월드에서 비디오테이프를 건네받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감독은 광주비디오 복사본 2개가 국내에 들어와 건네지는 장면을 직접 재연한다. 당시의 긴박함을 지금의 시공간과 겹쳐낸 장면은 이질적인 동시에 묘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사건을 인과적으로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시공간을 겹쳐내는 방식은 낯설음과 동시에 새로운 의미를 양산한다. 확장하자면, 감독 자신의 영화작업 역시 광주비디오 여정의 연속선상에 있음을, 나아가 역사를 만드는 여정에 있음을, 감독의 재연과 수행 사이 행위로 풀어낸다고 볼 수 있다. 영화는 이후, 광주비디오를 경유해 610항쟁과 촛불집회를 이어낸다. 역사는 더이상 과거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며, 권력자의 기술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런 시대임을 영화는 자기만의 시공간 배열로 항변한다.

 

사라진 4시간

영화의 또 다른 제목은 사라진 4시간이다. 쌍점으로 표시된 광주비디오와 사라진 4시간은 영화의 두 축을 언급하기도 하지만 대척점을 상정하기도 한다. 영화는 실증주의적 관점에서 증거로서 광주비디오와 광주의 기록에서 지워진 4시간의 부재를 짚어낸다. 그 동안의 역사를 보면, 권력은 결정적인 부분을 도려내는 방식으로 손쉽게 역사를 은폐해왔다. 사건의 단절 즉 연계 관계를 제거하는 것이다. 용산 참사에서 초등수사 기록을 지워내고, 세월호 참사에서 그날의 내부 기록들을 지워낸다. 영화에서 사라진 4시간 역시 유사맥락이다. 그러나 쌍점으로 나란히 놓여진 광주비디오와 사라진 4시간은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증거로 기능하는 광주비디오 속 사라진 4시간의 존재는 실증적인 증거만이 실제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는 역질문이 가능하다. 때론 물적 증거가 지워졌다는 그 자체가 증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기록에서 사라진 4시간을 들추는 동시에 4시간의 사건을 직접 경험한 사람들의 기억을 담는다. 기록의 부재를 밝히는 동시에 이를 기억으로 채워 다시 기록한다. 다시 말해 기록의 미완을 드러내는 동시에 기억으로 메워내는 작업은, 광주비디오와 사라진 4시간을 마주보는 거울처럼 활용한다. 다시 말해 영화는 결정적 순간의 기록의 부재를 고발하는 동시에, 실증적 증거가 부재한다고 사건과 순간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역설하면서 영화로 기록을 만들어간다. 그리고 물음을 던진다. 증거와 진실의 관계, 기억과 증거의 관계, 무엇보다 기록과 기억의 관계를 포스트-메모리의 관점에서 조용히 되묻는다.

영화는 사라진 4시간을 고발하지만, 이를 추적하는 작업에 돌입하지 않는다. 수사권이 없는 영화가 권력의 은폐를 밝히는 것이 어렵기도 하겠지만, 그것이 영화의 역할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영화는 지워지고 비워진 그 자체를 지적한다. 광주 민주항쟁에서 중요한 것이 기록 은폐나 증거 존재 유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영화가 사라진 4시간을 추적하고 추론하는 작업으로 향했다면, 영화는 광주민주화운동 사건 자체가 아니라 사라진 4시간을 규명하는 증거의 정치로 흐를 수 있기 때문이다. 증거의 정치로 길을 나서게 되면 영화는 음모론과 맞닿게 된다. 증거는 진실 규명을 위한 증거 자체보다 상대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활용되고, 나아가 증거의 부재가 기억에 토대한 증언의 허점을 파고들어 기억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실증주의 프레임에 가담하게 된다. 역사기술에서 실증이란 이름의 또 다른 폭력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영화는 사라진 4시간 자체를 질문하면서 광주 민주화운동의 현주소와 진실규명에 있어 증거와 기억의 몫을 짚어보는 지점으로 향한다. 그런 의미에서, <광주비디오: 사라진 4시간> 영화제목은 영화의 가장 짧은 서사이자 질문을 배치한 장치인 셈이다.

<광주비디오: 사라진 4시간>은 광주민주항쟁 40주년 기념 온라인 영화제 ‘시네광주1980’ 개막작이자 7월 개봉을 앞둔 작품이다.

 

사진출처: 네이버

글: 이승민

현장 비평가이자 기획자로 활동, 다큐멘터리영화와 독립영화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 <한국다큐멘터리의 오늘>(공저), <아시아 다큐멘터리의 오늘>(공저), <영화와 공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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