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고, 보고, 믿는 것이 진실인가? 만약 아니라면, 이 음모들은 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이하 <르 디플로>) 2월호는 범람하는 정보 속 음모와, 음모론이 생성되는 과정을 조명했다. 또한 기발한 방식으로 발전해가는 중국의 영향력, 코로나 이후의 세계 등 국제사회의 다양한 소식을 전한다.
음모론과의 전쟁
트럼프라는 ‘돌연변이’가 끝났으니 ‘정상적’인 미국이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감이 싹튼다. 다만 갈 길이 멀다.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라는 저서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역사학자 토마스 프랭크는 1면에 게재된 ‘노멀이 힘든 미국인의 망상증’이라는 글에서 미국의 가치를 되찾는 데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을 말했다. 바로 엘리트층이 스스로 정의롭다고 굳게 믿으며 왜곡된 정보를 향해 돌진하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미 언론인들은 자신들이 그토록 경멸하던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낸다는 명분아래 언론윤리를 내던졌다. ‘러시아게이트’에 대해 가짜 뉴스를 보도한 언론인들중에 처벌받은 이는 아무도 없었다. 제도권은 신뢰를 잃고, 그 권위는 추락하고 있다. 트럼프를 몰아낸 세력이 이런 식이라면 미국이 다시 ‘노멀’해질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을까.
경제학자 프레데리크 로르동은 ‘제도권의 권위추락을 파고든 음모론’이라는 글에서 거대 언론이 엘리트주의적인 태도로 일관한다면, 사람들은 다들 언론 보도를 믿지 않고, 그 대신에 제 3의 미디어에 실린 가짜뉴스와 ‘음모론’을 믿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트랜스포머’ 중국
중국은 트랜스포머와 같은 변화의 한 가운데 있다. 시진핑 주석은 서구적 가치를 폄하하고 ‘중국식’ 가치를 강조해왔다. 누군가는 중국이 그 폐쇄성에 발목이 잡혀 결국 도태될 것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시진핑의 딸은 미국 하버드대 졸업생이라는 아이러니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사회학자 포르토르페뷔르는 ‘하버드를 베끼는 중국의 관료교육’라는 기사에서, 중국이 하버드대 공공행정 교육과정을 통해 관료를 양성해왔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언뜻 양립 불가능할 것 같은 중국식 관료문화와 서구적 개념이 매우 정교하게 맞물리고 있다. 해외의 사례와 경험은 중국 제도를 변화시키지만, 그렇다고 기존 체제의 안정성이 무너지지는 않는다.
중국은 생각보다 더 단단하게 성장하고 있으며, 국제적 영향력 역시 커지고 있다. 수지 개도는 ‘UN을 파고드는 중국의 영향력’이라는 기사에서 “중국은 유엔에 자금을 지원하면서부터 수년에 걸쳐 자국의 지위를 눈에 띄게 향상시켰고 경제 무대에서도 점차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새롭지 않은 ‘뉴노멀’의 도래
코로나가 휩쓸고 지나간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코로나 창궐 초기 사람들은 미세먼지 없는 하늘과 깨끗해진 베니스 운하를 보며 ‘다음 세상’의 도래를 꿈꿨다. 세상의 병폐가 사라진 듯한 이 풍경을 어쩌면 지속할 수도 있을 것이란 희망이었다. 그러나 희망은 곧 절망으로 바뀌었다. 세상은 사람들이 기대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경제학자 로랑 코르도니에는 기사 ‘새롭지 않은 뉴 노멀의 도래’에서 “경제붕괴에 따른 대가를 두고두고 가장 톡톡히 치르게 될 사람들에게는 이제 ‘정상적인 삶’마저도 과분한 일이 됐다”고 지적했다. 이제 어려운 사람들이 더 어려워진 이곳에, ‘기존의 세상’이 병폐를 가득 안고 귀환할 것이라는 얘기다.
난국을 타개하는 과정에서 지식인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조한욱 한국교원대 명예교수는 ‘지식인의 슬픈 초상’에서 “지식인은 자신을 알고 시대를 알면서도(알기에), 올바른 방향으로의 항해를 위해 확고하게 설정된 가치관을 가지고 그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마따나 도처에 숨어있는 참된 지식인들에 의해, 배는 결국 목적지를 향해 항진할 것이다.
내 몸의 주인은 누구인가
“코로나 집콕으로 얻은 건 살밖에 없다!” 하루가 다르게 불어가는 몸을 보며 현대인들은 한숨을 쉰다. 새 옷 살 돈도 아깝고, 건강도 걱정되지만 무엇보다 신경쓰이는 건 타인의 시선이다. <르 디플로> ‘문화’ 파트에선 ‘보여지는 몸, 내 것으로 만들기’ 기사를 통해 자본주의사회 몸의 의미를 심층적으로 다루었다. 디지털 사회에선 소통을 위해 굳이 몸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 사람 간 거리를 좁히는 기능은 이제 두 다리가 아니라 인터넷이 대신한다. 이렇게 몸의 기능은 축소되었지만 역설적으로 그 어느때보다 ‘몸’이 주목받는 시대다. 타인에게 보여지는 몸은 이제 하나의 ‘자본’이고, 또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마담, 일을 하셔야 합니다’
코로나 위기속에 미혼모들은 아무런 준비도 없이 노동시장으로 내몰린다. 언론인 뤼시 투레트에 따르면 프랑스의 미혼모들은 ‘일’을 해야 국가로부터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현실 앞에 무작정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 실업률을 낮추고 미혼모의 경제적 자립을 돕는다는 취지로 실행된 이 제도로 인해, 미혼모들은 오히려 교육받을 기회와 양질의 일자리를 빼앗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사회에서 여성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미혼모가 되지 않으려 할 것이다. 다양성은 저해되고 전통적인 가정 모델만 강화될 뿐이다.
“실용적 진보의 대학은 어떤 곳인가”
대학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로 대학에 비해 입학할 학생들은 턱없이 모자란 실정이다. 이런 와중에 ‘언택트’ 시대가 도래했으니, 자신만의 특성을 살리지 못한 대학은 곧 도태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성공회대는 탄탄한 인문학적 기반을 바탕으로 내실을 다져 다가올 미래에 대비하고 있다. 김기석 성공회대 총장은 인터뷰를 통해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성큼 다가오면서, ‘인간이 대체 어떤 존재인지’를 물으며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래 사회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생태 감수성, 즉 실용적 진보를 강조했다. 대학은 마네킹처럼 똑같은 학생들을 찍어내는 대신, 인문과 과학을 상호보완할 수 있는 인재를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르 디플로> 2월호는 ‘경제’ 면에서 ‘5G, 삶의 진보인가?’와 ‘보험회사가 된 상호보험조합’ 기사를 소개한다. 또한 문화 파트에서 ‘『악마의 시』로의 회귀’, ‘공공부채는 나쁜 것인가?’ ,‘하고 싶은 것을 향한 그들의 기록’ 등의 기사를 실어 일상의 다양한 이야기를 다루었다.
김유라 기자
- 정기구독을 하시면 온라인에서 서비스하는 기사를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