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 1일 오후, 고려대학교 안산병원 응급실로 한 청년이 이송되었다. 숨이 차다고 호소한 그 환자는 33세 임부 곽현주였다. 그는 이송 3일 만에 배 속의 아이를 잃었고, 자신의 목숨도 보전하지 못했다.
둘째를 임신 중이던 그는 숨이 자주 가쁘다며 “첫째 때보다 더 힘들다”라고 가족에게 말하곤 했다. 1월 중순 즈음 호흡곤란과 가슴 통증으로 산부인과를 방문했지만 별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약 2주 뒤 그는 갑작스러운 상태 악화로 대학병원 응급실에 실려 갔다.
2월 1일 입원하자마자 진행한 엑스레이와 심장 초음파 검사에서 별다른 문제가 발견되지 않아 곽현주는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 하지만 불과 이틀 뒤인 2월 3일에는 청색증과 호흡 부전 증상이 나타나 중환자실로 이전되었다. 급하게 다시 찍은 엑스레이 판독 결과 심각한 폐 손상이 발견되었다. “두 달에 한 번꼴로 임신부가 이런 증세로 실려 오는데 원인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생존율은 1%도 안 됩니다.”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2월 4일 뱃속 태아의 심장 박동이 희미해졌다. 급하게 제왕절개를 진행했으나 아이는 숨이 멎은 채로 세상에 나왔다. 곽현주의 상태가 더욱 나빠져 강제로 산소를 혈액에 주입하는 에크모 기계를 가동해야 했다. 이 모든 과정이 진행되는 내내 그는 수면 유도제를 맞고 있어 가족과 제대로 된 말 한마디 나누지 못했다. 2011년 2월 8일 곽현주의 숨이 멎었다. 병원에 들어선 지 일주일만이었다.
‘원인 미상’ 폐질환
2011년 상반기 서울아산병원에는 원인 미상의 급성 폐 질환을 겪는 임산부 환자 7명이 입원했다. 6월엔 이들 중 네 명이 사망한 상태였다. 언론은 ‘원인 미상 폐질환’을 집중 보도하였고 바이러스, 방사능 등 병의 원인을 두고 추측이 난무했다.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처럼 새로운 바이러스성 전염병이 생긴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된 의료진은 질병관리본부에 역학조사를 요청했다. 미생물 검사에서는 특별한 원인균이나 바이러스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다 조사 도중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는데, 2006년에 원인 미상의 급성 간질성 폐렴을 앓는 어린이 환자 수십 명이 병원에 입원했고 그 중 상당수가 사망했다는 내용이었다. 2008년 7월까지 급성 간질성 폐 질환으로 입원한 환자만 78명이었고 그중 36명이 사망했음이 새롭게 주목받았다.
어린이와 임산부 환자에게서 발견된 이 폐 질환은 공통으로 늦겨울에서 초봄에 주로 발병했다. 의료진과 질병관리본부 역학조사관은 겨울철 실내환경 요인에 주목했다. 그 결과 유력한 병인(病因) 용의자로 떠오른 것이 가습기 살균제였다. 이어진 가습기 살균제 독성시험에서 실험 대상 제품 4종류(가습기메이트, 세퓨, 옥시싹싹, 와이즐렉)의 용량 의존적인 독성이 드러났다.
2011년 8월 31일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는 역학조사 결과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 미상 폐 손상’의 위험요인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하고 가습기 살균제 사용 자제를 권고했다. 갑작스럽게 사망한 곽현주의 사인이 반년이 지나서 밝혀진 것이다. 그는 2010년 10월경부터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다. 대한민국을 뒤흔든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난 순간이었다.
2021년 3월 현재 정부에 접수된 가습기 살균제 사건 국내 피해자는 총 7,372명이며 그중 사망자는 1,647명이다. 하지만 제품 판매 기간이 18여 년이었고, 정부가 규정한 피해자 기준이 엄격했으며, 가습기 살균제 사용과 피해 사이의 역학관계를 피해자가 스스로 입증해야 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공식적인 통계 외에 더 많은 피해자가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와 대학 연구진의 2020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실제 건강피해 경험자는 약 95만 명, 사망자는 약 2만여 명 규모일 것으로 추정된다.
가습기는 미세한 물방울을 공기로 분사하는 기구로, 실내 습도를 조절하기 위해 사용하는 가전제품이다. 한국은 급속한 도시화에 따라 아파트 거주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실내온도가 높게 유지되는 아파트 거주환경에 한국의 건조한 겨울철 기후가 겹치면서 실내 건조를 해결하기 위해 가습기를 사용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실제로 2011년에 가구별 가습기 보유율은 33%로 653만 대에 달했다. 하지만 가습기를 위생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정기적으로 세척하고 건조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이때 등장한 것이 가습기 살균제였다.
가습기 살균제는 가습기에 넣는 물에 일정량을 같이 부어 쓰는 형태로 개발된 제품이다. 1994년 가장 처음으로 개발된 가습기 살균제인 유공(현 SK케미칼)의 ‘가습기메이트’는 “가습기의 물에 첨가하면 세균을 완전히 살균해주는” 제품이라고 광고했다. 제품 뒷면의 사용 방법 안내에 따르면 가습기를 따로 씻을 필요 없이 ‘가습기 물을 갈아줄 때 넣어주기’만 하면 효과를 볼 수 있었다. 가습기 살균제는 곧 가습기 청소의 번거로움과 위생 고민을 해소하는 획기적인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인식에는 기업 광고와 언론 보도가 큰 영향을 미쳤다. SK케미칼(구 유공)에서 재료를 받아 애경산업이 2001년 시판한 ‘가습기메이트’에 대해 매일경제 중앙일보 등에서는 “질병을 일으키는 세균을 완전히 살균해주는” 신제품이 나왔다고 보도했다. 또 기사 내용에 ‘인체에는 전혀 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라는 문구를 포함하기도 했다. 그 뒤에 개발된 다른 회사의 가습기 살균제도 “인체에 해가 없는 안전한 제품”, “피톤치드 성분으로 심리적 안정과 정신적 피로 해소에 효과”, “아이에게도 안심”이라는 문구를 넣어 제품을 광고했다.
실제로 피해자의 상당수가 가습기를 청소하지 않으면 심각한 감염병을 일으킬 수 있다는 기업의 선전과 언론의 보도를 보고 살균제를 구매했다고 증언했다. 단지 가족을 위하는 마음에서 더 열심히, 더 부지런히 살균제를 구입하고 사용했다. 감기 걸린 딸이 쐬는 가습기를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해 가습기 살균제를 구매한 어느 엄마는 그 이후 이유도 모른 채 아픈 아이를 보면서 마음을 졸여야 했다.
“판매원이 요즘 이거 안 쓰면 엄마도 아니다, 무식한 부모다, 그랬거든요. (…) 진짜 내가 죄인인가…”
어떤 부모는 미숙아로 태어난 아기를 위해 더 많이, 더 자주 가습기를 쐬면서 더 많은 살균제를 썼다. 가습기 입구에 연결한 굵은 호스를 아이 코 밑에 고정하고 세균이 생길까 두려워 가습기 살균제를 열심히 넣어주었다. 아이는 발달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단지 가족의 건강을 조금 더 신경 쓰겠다는 마음에 가습기 살균제를 구매한 이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아픔과 죽음 속으로 몰아넣은 장본인이라는 생각에 죄책감과 분노를 떨치기 힘들어한다. 이들 중 일부는 피해자 대열에 합류했다.
“기업이 국가가 안전하다고 했다. 헌데 사람이 죽었다. (…) 사용자가 잘못 사용했다고 한다. 그래 결국 내가 잘못했다. 국가를 믿은, 기업을 믿은 내가 잘못했다.”
최초로 제품이 개발ㆍ판매된 1994년부터 가습기 살균제의 문제가 밝혀진 2011년까지 18년간 약 40여 종류, 998만 개의 가습기 살균제가 팔렸다. 800만 명에 달하는 사람이 1회 이상 가습기 살균제 사용 경험이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실제 피해 규모가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피해자 숫자보다 훨씬 클 것이라고 예측되는 이유이다.
유해 물질이 가습기 안으로
가습기 살균제를 제일 처음 개발한 곳은 유공(현 SK케미칼)이다. 유공의 생물공학 연구팀은 1994년 ‘가습기메이트’라는 제품을 출시했다. 2001년에는 애경이 SK케미칼로부터 재료를 받아 1994년 유공의 출시 제품과 동일한 이름인 ‘가습기메이트’로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하기 시작했고 옥시레킷벤키저(이하 ‘옥시’) 등 여러 생활화학용품 기업도 이 시장에 뛰어들어 비슷한 제품을 잇달아 내놓았다.
가장 문제가 된 것은 가습기 살균제에 들어가는 화학물질의 성분이다. 2001년에 출시된 ‘가습기메이트’는 CMIT/MIT라는 물질을 원료로 만들어졌다. 우리나라에서 이 물질은 유독성 물질이 아닌 일반 화학물질로 고시된 반면 미국과 유럽연합(EU)은 1998년에 같은 물질을 유해 물질로 지정하였다. 심지어 EU의 소비자 안전과학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동물을 대상으로 한 실험 결과 CMIT/MIT는 흡입의 경우 소량으로도 죽음에 이를 수 있으며, 피부ㆍ안구 등 다양한 부위에 심한 자극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SK케미칼이 CMIT/MIT 성분을 특허로 등록하면서, 같은 물질을 사용할 수 없게 된 경쟁사들은 더 강력한 살균력을 지닌 다른 화학물질을 원료로 상품 개발에 착수했다.
그렇게 새롭게 가습기 살균제 원료가 된 화학물질의 대표적 예가 PHMG와 PGH이다. 일반적으로 어떤 물질의 독성 값이 1을 넘어가면 위험한 수준이고, 그 수치가 커질수록 더욱 심각한 것으로 간주된다. 가습기 살균제에 들어간 CMIT/MIT의 독성 값은 9.41, PHMG는 2500, PGH는 무려 10500였다. 가습기 살균제의 대표적인 원료 세 가지가 모두 높은 위험 수준을 나타낸 것이다. 이렇듯 가습기 살균제를 개발한 기업들은 농업/공업용 살균제로 널리 활용되거나 해외에서 유독성이 있다고 판단된 물질을 사용했다.
기업들은 물질의 유독성을 알면서도 외면하거나, 제대로 된 안전 검증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최초로 가습기 살균제를 개발한 유공은 서울대 수의과대학 이영순 교수실에 제품의 흡입 노출시험을 의뢰하여 6개월을 진행했다. 그 결과 1995년 7월 “안전성 확보를 위해 추가시험이 필요하다”라는 결론이 나왔다. 하지만 유공은 시험이 끝나기도 전인 1994년에 이미 시중에 제품을 판매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추가 시험을 진행하지 않았다. 유공 외에 가습기 살균제를 개발한 옥시, LG생활건강, 애경산업 등 다른 기업도 제대로 된 인체 흡입독성시험을 하지 않았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폐쇄적인 환경에서 이러한 화학물질이 함유된 공기에 장시간 노출되었다. 공기로 방출된 화학물질 미세입자는 폐 깊숙이 침투하여 자극을 주는데, 이러한 자극이 지속되면 폐포와 기관지에 염증이 생긴다. 염증이 반복되면 폐포가 굳는 폐 섬유화가 나타나거나 폐가 찢어지는 기흉이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질환이 생기면 폐가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못해 몸에 필요한 만큼의 산소를 공급하지 못하게 된다. 특히 폐는 재생능력이 없는 조직인 만큼 한번 기능을 상실하면 치명적이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숨을 쉬기 위해 목을 절개해서 산소호흡기를 삽입하고, 코에 산소 줄을 달고, 폐 이식을 기다려야 했다.
기업과 학계의 불온한 담합
2011년 8월 가습기 살균제에 관한 정부의 첫 발표 이후, 질병관리본부는 추가 시험을 통해 옥시와 세퓨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 미상 폐 질환과 인과관계가 있다고 결론지었다. 이 결과에 기반해 11월에 가습기 살균제 수거 명령을 내렸다.
환경부의 발표 이후 옥시는 피해자 소송에 대비하기 위해 서울대 교수 조명행에게 2억 5천만 원의 연구용역비와 1,200만 원의 자문 비용을 주고 흡입독성 시험을 의뢰했다. 시험에서 가습기 살균제 성분을 쥐에게 4주간 투여한 결과, 임신한 쥐에게서 14마리의 태자가 죽거나 기형이 되는 결과가 발생했다. 또 일반 쥐의 폐에서는 간질성 폐렴으로 의심할 수 있는 병변이 발견되었다. 중간보고서를 받은 옥시는 임신 쥐에 관한 실험은 별도로 분리하고 폐의 이상이 나타난 결과는 보고서에서 제외할 것을 요구했다. 결국 최종 보고서의 결론은 쥐에게 어떠한 이상도 나타나지 않은 것처럼 서술되었다.
비슷한 시기 옥시가 호서대 교수에게 의뢰한 가습기 살균제의 공기 중 노출 실험도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다. 이 실험에서는 130번 중 3번꼴로 심각한 고농도가 관찰되었다. 그런데 교수는 데이터를 분석할 때 관측된 농도들의 평균을 내서 고농도 수치가 티 나지 않게 만들어 버렸다. 심지어 적합한 근거 없이 가습기 살균제가 아니라 실내 곰팡이가 폐 손상의 원인일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옥시가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KCL)에 의뢰한 실험에서는 가습기 살균제를 흡입한 쥐가 사망하는 등 강한 유독성이 발견되었는데, 이 역시 옥시의 지시로 실험이 중단되었다.
옥시는 이렇게 데이터를 누락하고 조작한 시험 결과들을 근거로 “가습기 살균제와 폐 손상 사이의 인과관계가 증명되지 않았다”라며 “폐 손상의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가 아니라 곰팡이 등 미세입자에 의한 것일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 연구 결과들 때문에 안 그래도 스스로 피해를 입증해야 했던 많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가 더욱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기업의 압력에 눌려 터무니없는 합의를 진행했다.
호서대 교수는 2017년 9월에 배임수재 등의 혐의로 1년 4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서울대 교수 조명행도 2016년 검찰 수사로 용역연구 비리가 드러나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으나 2심에서는 일부 무죄를 선고받아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카펫 항균제를 가습기 살균제로…제도의 구멍
이렇게 위험한 제품이 대체 어떻게 허가되어 시중에 판매될 수 있었을까. 시중에 판매되는 제품의 안전성 관리는 ‘품질경영 및 공산품 안전관리법’(이하 ‘품공법’), 유해화학물질 관리법, 약사법 등에 따른다. 그런데 법이 있음에도 정부로부터 제대로 검사받는 제품은 얼마 안 됐다. 제품이 법에 따른 관리대상으로 지정되지 않는 이상 따로 감시하는 체계가 없었기 때문이다.
품공법의 안전성 검증 대상이 되려면 ‘안전인증 대상 공산품’에 속해야 한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일어났을 때 안전인증 대상 공산품은 시중의 수많은 제품 중 13개 품목에 불과했고 가습기 살균제는 이 품목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래서 가습기 살균제 안전성 검사는 제조기업에서 ‘스스로’ 진행하고 보고하면 완료 처리되었다. 또한 가습기 살균제는 의약외품으로 지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약사법의 관리대상이 아니었다. 사건이 터지고 난 뒤인 2013년에야 뒤늦게 의약외품으로 지정되었다.
정부에서 가습기 살균제에 대해 안전인증 품목 심사를 직접 진행한 딱 한 번의 사례는 2007년 코스트코코리아가 ‘가습기클린업’이라는 제품을 만들었을 때이다. 기업 측에서 처음으로 가습기 살균제를 ‘살균제’가 아니라 안전인증 대상 공산품인 ‘세정제’ 품목으로 신고했기 때문이었다. 이때 산업통상자원부는 흡입독성 시험 없이 모니터링 후 KC 인증을 해주었다. 정부의 직접적인 심사대상으로 선정되었음에도, 미비한 감독으로 인해 안전 인증을 받은 것이다. 이렇듯 품공법과 약사법은 생산된 가습기 살균제 제품에 대해 아무런 검증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가습기 살균제의 원료에 대한 관리와 규제는 없었을까. 당시 화학물질을 감독하는 법안은 유해화학물질 관리법이었는데, 이 법의 세부 규정에 따르면 신규 화학물질을 제조하거나 수입할 때는 의무적으로 유해성 심사를 신청해야 했다.
정부는 유해성 심사에서 감독 책무를 똑바로 수행하지 않았다. 1996년 유공은 카펫 첨가 항균제 용도로 PHMG의 유해성 심사를 신청했다. PHMG의 제조신고서에는 항균제를‘물에 20% 희석시켜 분무’하는 방식으로 사용한다고 적혀 있었다. 또 물질에 직접 접촉을 삼가고, 흡입 시 신선한 공기를 마셔야 한다는 등 유해성을 경고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유해화학물질 관리법 규정에 의하면 이렇게 호흡기 노출 우려가 있는 물질은 흡입독성 시험 성적서가 필요했다. 그러나 환경부는 흡입독성 시험 자료는 물론이고, 유해성 심사에 필요한 독성자료의 제출을 요구하지 않았다. PHMG는 이듬해 심사를 통과했다.
이후 논란이 되자, 환경부는 유공이 PHMG의 용도를 카펫 제조 공정에 사용되는 항균제라고 했기 때문에 흡입독성 시험 자료를 요청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환경부의 논리대로라면 PHMG의 용도는 공업용으로만 한정해야 한다. 같은 물질도 노출경로가 달라지면 인체에 미치는 독성 영향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환경부는 이러한 용도 제한 없이 PHMG가 유독성 물질이 아니라고 판정했다. 이 당시에는 등록된 화학물질의 사용 용도가 달라질 때 재심사를 하는 제도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엄격한 심사나 제한 없이 안전성을 공인한 것은 정부의 화학물질 규제 제도의 미비를 보여준다.
PGH의 심사 과정도 비슷했다. 2003년 한 업체가 PGH를 수입하면서 고무, 목재, 직물을 보존하기 위한 항균제 용도로 유해성 심사를 신청했다. 심사 신청서에 스프레이 혹은 에어로졸 형태로 제품이 배출된다고 명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환경부는 흡입독성 시험 성적서를 제출받지 않았고, PGH를 심사에 통과시켰다. 이렇게 카펫용 항균제로 등록된 PGH와 PHMG는 흡입독성 시험 없이 안전성을 인증받아 가정용 가습기 살균제로 둔갑했다.
결국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을 확인할 방법은 두 가지밖에 없었다. 심사대상으로 규정된 제품과 화학물질 원료에 대해 엄격한 정부 심사를 진행하는 것, 또는 기업이 자발적으로 유해성 실험을 진행하고 양심적으로 행동하는 것. 그러나 기업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고 정부도 관리 감독의 의무를 소홀히 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계기로 이러한 제도의 구멍이 드러나면서 새로운 법안이 만들어졌다. 유해화학물질 관리법을 개선한‘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과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이 2013년 5월 제정된 것이다. 두 법은 대기업 생산 제품의 주요 성분을 표시하도록 한 것은 물론 기존 화학물질의 유해성 자료 제출을 의무화하고, 생산공장의 안전관리를 강화했다. 2018년에는 ‘생활화학제품 및 살생물제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살생물제 관리법)이 추가로 만들어져 가정뿐 아니라 사무실과 다중이용시설에 사용되는 생활화학용품까지 관리하고 있다.
지난한 싸움, 미흡한 배상
2021년 3월까지 가습기 살균제 피해의 정부 지원 대상자로 산정된 이들은 4,168명이다. 이들 중 실질적으로 배상을 받은 사람은 650명에 불과하다. 누적된 피해 신청자가 7,300명가량인 것을 생각하면 터무니없이 적은 숫자이다.
이 정도의 피해보상조차 오랜 기다림의 결과였다. 2011년 8월 정부에서 처음으로 가습기 살균제를 피해 원인으로 꼽았을 때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들은 입을 다물고만 있었다. 수거 명령이 발표된 2011년 11월에도, 가습기 살균제 정책 설명회가 열린 2012년에도, 기업들은 어떤 사과나 배상 계획도 발표하지 않았다. 2013년에 국정감사가 열리고 나서야 옥시와 홈플러스 대표가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인도적 기금 조성을 약속했다. 그러나 옥시는 사과 발언 이후에 피해자를 상대로 진행 중인 소송을 중단하기는커녕 김앤장과 같은 대형 로펌을 대동하여 회사의 무죄를 주장하는 이중행보를 보였다.
이들에 맞서는 피해자는 어떠한 도움도 받지 못했다. 이들이 배상을 받는 방법은 직접 기업에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걸거나, 언제 해줄지 모르는 보상을 기다리는 것밖에 없었다. 피해자의 위급한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국가가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시민단체의 끈질긴 요구 끝에 2013년 피해구제에 관한 국회 결의안이 통과되었으나, 예산 문제로 무용지물이 되었다. 이듬해인 2014년 4월 2일에야 정부는 환경법 내의 시행령을 근거로 피해자들에게 피해 정도에 따라 의료비와 장례비를 지급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정부의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지원책은 전향적 조치이지만 여러 문제를 안고 있었다. 우선 피해를 인정하는 기준이 매우 협소했다. 기본적으로 정부 지원은 ‘폐손상조사위원회’의 판정을 따랐다. 1등급인 ‘거의 확실함’과 2등급인 ‘가능성 높음’은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3등급 ‘가능성 낮음’이나 4등급 ‘가능성 없음’, 또는 등급 외 ‘판정 불가’로 분류된 피해자는 거의 지원을 받지 못했다. 2013년 6월까지 진행한 1차 피해조사에서는 조사대상 361명 중 절반 정도인 168명만이 1ㆍ2등급 판정을 받았다.
3ㆍ4등급이라고 해서 피해가 가벼운 수준인 것은 아니었다. 만성질환이 있거나 폐 질환에 앞서 다른 수술을 받았다면, 그리고 폐가 아닌 다른 신체 부위에 피해가 생겼다면 대부분 지원 대상에서 배제되었다. 피해자 박 씨는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만성폐쇄성폐질환을 선고받았다. 폐의 기능이 15%밖에 남지 않아 인공호흡기에 의지하면서 24시간 간호가 필요했는데도 3등급을 받았다. 폐 손상 환자가 택하는 마지막 수단인 폐 이식 수술을 받거나 권고받은 3ㆍ4등급 피해자도 여럿이었다.
피해자 지원에 이렇게 엄격한 기준이 적용된 이유는 정부가 기업에 구상권을 청구하는 방식으로 지원금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먼저 지원금을 지출한 후,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체에 소송을 청구해서 금액을 회수하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아 소송에서 불리한 피해자는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피해 인정 범위가 늘어나 2021년 현재까지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 질환은 폐질환, 간질성 폐질환, 천식, 기관지염, 태아 피해, 독성간염 등이다. 그러나 가습기 살균제 노출자를 조사한 결과 정부가 인정하는 피해 질환 외에 안과 질환, 아토피 등 피부질환, 내분비계 질환, 신장질환, 심혈관계질환, 알레르기, 두통, 그리고 정신적 트라우마 등의 진단이 빈번했다. ‘공식적’ 피해로 인정받지 못한 이러한 질병에 대한 배상은 개별소송에서 승소하는 길밖에 없지만 당장 치료비 마련에 급한 피해자들은 소송에 참여하는 것조차 버겁다.
정부의 행정 처리 또한 문제로 지적됐다. 예를 들어 피해 신청을 하려면 피해자가 직접 진료기록, CT 사진, 가습기 살균제 구매 기록 등 피해를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준비해야 했다. 그렇게 피해 접수를 하고 나서도 조사위가 판정을 내리기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2016년 4월에 피해 신청을 한 김 씨는 조사위 검사가 2018년 초까지 밀릴 수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 판정 업무를 수행하는 곳이 서울아산병원 한 곳밖에 없던 탓이었다. 같은 해 6월이 되어서야 정부는 피해조사․판정 병원을 8개 더 늘렸다. 입원 치료 때 흔히 맞는 수액도 가습기 살균제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다는 이유로 피해자가 자비 부담하는 것으로 처리되었다.
어렵게 피해 판정을 받아 지원 대상자가 되어도 실제 지원금은 피해자가 정상적으로 치료받고 생활하기엔 미진한 수준이었다. 2014년 첫 의료비 지원에는 간병비와 생계수당이 포함되지 않았다. 2016년 발표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추가 지원 대책’에서 처음으로 간병비와 생활비 지원 내용이 담겼으나, 기준이 까다로워 실제로 지원받은 사람은 14명에 불과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법’(이하 ‘피해구제법’)이 2017년 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 법에 따라 그동안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했던 3ㆍ4등급 피해자는 가습기 살균제 제조기업에 부과되는 분담금을 통해 특별구제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2021년 3월 현재 가습기 살균제 피해의 정부 지원 대상자로 산정된 4,168명은 피해구제법과 그 시행령에 따른 것이다. 앞서 밝힌 대로 이들 중 실질적으로 배상을 받은 사람은 650명에 불과하다.
누구보다 많은 책임을 져야 할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 기업은 배상에 대부분 침묵했다. 이들이 2016년 검찰의 소환 조사를 앞둔 시점에 급하게 대국민 사과를 발표했다. 옥시, 롯데마트, 홈플러스는 이후 개별 배상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과연 이들이 진정성 있는, 그리고 충분한 배상을 했는지는 의문이다. 롯데마트는 100억 원의 자금으로 피해보상을 진행하겠다고 발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피해자들과의 민사 소송에서 합의금이 많다는 이유로 이의신청서를 제출했다. 기업들은 정부가 판정한 1․2등급 피해자에 대해서만 배상을 진행했으며, 정부가 청구한 구상권에 따른 벌금이나 기업 분담금을 거부하는 곳도 있었다. 아직도 몇몇 피해자는 이들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진행 중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아직 종결되지 않았다
2018년 1월 25일 대법원은 신현우 전 옥시 대표 및 제조․판매업자 14명과 홈플러스 법인에 업무상과실 혐의로 유죄를 선고했다.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하고 판매한 기업에 대해 최종적으로 내린 유죄 판결이었다.
반면 몇 달 뒤인 2021년 1월 12일 서울중앙지법은 SK케미칼, 애경산업, 이마트 등을 비롯한 가습기 살균제 제조 판매사 임직원 17명에게 1심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권장사용량의 833배에 달하는 가혹한 동물 실험에서도 폐나 코의 변화가 없었고, 연구 책임자들 역시 해당 성분이 폐 질환이나 천식을 일으킨다고 확신하진 못했다”며 무죄선고 이유를 밝혔다. 이 기업들의 가습기 살균제 성분인 CMIT/MIT의 인체 유해성이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뜻으로 “지금까지의 증거만으론 무죄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재판 결과가 발표되고 한 피해자는 이렇게 말했다.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이 다 증거인데 왜 그 증거조차 인정하지 못하나요?”
재판에 참여한 과학계 전문가들조차 피해자 측에 유리한 증언과 자료는 배제․누락된 것 같다고 발언할 정도였다. 과거 독일에서 임부의 입덧방지제로 출시된 ‘탈리도마이드’제로 인해 1만 명의 아이가 기형아로 태어난 사건이 있었다. 출시 전 동물 실험에서 아무런 부작용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약이 시중에 유통된 후 엄청난 피해를 일으켰다. CMIT/MIT 성분의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자는 전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의 10%정도이다.
무죄 판결 몇 달 전인 2020년 8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박영숙이 13년의 투병 끝에 숨을 거두었다. 그는 SK케미칼과 애경이 제조한 CMIT/MIT 성분의 이마트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다. 곽현주, 박영숙을 비롯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죽음, 그리고 수없이 많은 피해자의 망가진 몸보다 더 명백한 증거는 어디에 있을까. 이들은 언제까지 합당한 도움 없이 하루하루를 고통스럽게 살아가야 할까. 책임을 져야 할 가해자 대신 피해자가 수십 년째 외로운 투쟁과 힘겨운 삶을 이어가는 중이다. 그들 중 일부는 그사이에 죽었고, 죽어가고 있다.
송휘수: 서강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과 3학년. 어렵고 머리 아프지만 글을 쓰고 생각하는 일을 멈추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안치용: 청년협동조합지속가능바람 이사장. 사회책임과 지속가능성 의제화와 영화·문학·신학 공부가 관심사다. 바람저널리스트들과 '청년의죽음역사의눈물'을 함께 진행한다.
노수빈 :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4학년 재학. 영화와 소설을 좋아하며 무엇이든 읽고 보고 쓰는 것에 열심이다. 요즘은 늦은 밤 홀로 걷는 것에 빠져있다.
박서윤: 이화여자대학교 커뮤니케이션 미디어학부 3학년. 연극과 뮤지컬에 빠져 살았지만, 코로나 덕분에 새로운 취미를 찾아 나서고 있다. 지나치게 감성적인 탓에 이성적인 사람을 동경하지만, 정작 팍팍한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아 이도 저도 못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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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이 증거다"…'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 오열 (2021.01.13/뉴스투데이/MBC)
“이걸 안 쓰면 엄마도 아니라고 했어요”,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블로그, https://blog.naver.com/sdscsns/221907738461
"[피해사례 4, 안성우] 어느 엄마와 아기를 위한 진혼제", 환경보건시민센터 추모기록관, http://www.eco-health.org/bbs/board.php?bo_table=sub09_01&wr_id=23&page=3
연합인포맥스, "<리걸인사이트> 살생물관리법 제정 및 화평법 개정", <리걸인사이트>, 2018.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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