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 사건과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 비색의 탄환>
영화와 애니메이션에서 열차는 생존, 살인, 모험 등 흥미로운 소재를 제공한다.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2013)에서는 빙하기 마지막 생존지역에서의 반란을 다루며, 열차에서의 위치로 계급 위계질서를 보여준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열차 안의 낯선 자들>(Strangers On A Train, 1951)에서는 열차에서 만난 남성이 교환 살인을 제의하면서 가족의 살인 사건이 이어진다. 시드니 루멧 감독의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Murder on the Orient Express, 1974)에서는 과거의 납치/살인 사건과 현재의 살인/복수 사건을 보여준다.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애니메이션 <폴라 익스프레스>(The Polar Express, 2004)는 소년이 크리스마스 이브에 북극행 특급열차를 타고 놀라운 신비를 발견하는 이야기를 그려낸다. 일본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銀河鐵道 999, 1978)에서는 소년이 우주를 달리는 열차 999를 타고 엄마를 찾아 안드로메다로 떠나는 여정을 보여준다. 일본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劇場版「鬼滅の刃」無限列車編, 2020)에서는 비밀조직 귀살대가 승객들을 구하기 위해 식인 혈귀와 목숨을 건 대결을 벌인다. 이렇듯 열차는 열차 차량이라는 갇힌 공간과 목적지라는 열린 공간의 결합을 통해서 생존, 살인, 모험의 여정을 보여줌으로써 영화와 애니메이션에서 흥미로운 제재의 역할을 수행한다.
<명탐정 코난: 비색의 탄환>(名探偵コナン: 緋色の弾丸, 2021)에서도 초고속 열차를 배경으로 살인, 생존, 모험의 여정을 보여준다. 세계 스포츠 게임 대회 WSG(World Sports Games)의 개최를 기념하여 시속 1,000km를 자랑하는 진공 초전도 리니어의 개통식을 하게 된다. 명탐정 코난은 WSG의 공식 후원사 기업의 총수들이 연쇄 납치되는 사건을 해결하지만, 끝내 초고속 리니어의 위험한 질주가 시작되면서 범인과 목숨을 건 대결을 하게 된다.
과거의 살인 사건과 현재의 복수 사건
<명탐정 코난: 비색의 탄환>에서는 과거의 살인 사건과 현재의 복수 사건을 보여준다. 전 세계인의 축제인 WSG(월드 스포츠 게임) 일본 개최를 기념하여 리니어 개통식을 하게 되는데, WSG의 공식 후원기업의 총수 세 명이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첫 번째 소노코 그룹의 소노코 회장의 납치 사건은 코난의 추리력과 어린이 탐정단 겐타의 냄새 추적으로 해결한다. 두 번째 미츠즈카 제과의 미츠즈카 에이코 사장이 납치 사건이 발생 후 무사히 돌아오지만 계속되는 사건으로 긴장감이 고조된다. 코난은 예리한 추리력으로 세 번째 타카라 자동차 회사의 존 보이드 사장의 납치 사건을 예견한다. 이처럼 <명탐정 코난: 비색의 탄환>의 전반부 내러티브에서는 과거의 살인 사건이 현재의 복수 사건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어린이 명탐정 코난이 WSG 후원기업 총수 세 명의 납치사건을 해결하고 범인을 찾으려는 탐정영화의 플롯이 전개된다.
<명탐정 코난: 비색의 탄환>에서는 정보 전략으로 긴장감을 보여준다. 고교 명탐정 쿠도 신이치는 검은 조직의 음모로 어린이 코난이 되지만, ‘키는 작아져도 두뇌는 그대로!’, ‘진실은 하나!’를 외치며 어려운 사건을 해결한다. 이런 <명탐정 코난> 시리즈의 전체적인 정보를 초반에 제시함으로써 사건의 배경을 이해하게 만든다. 15년 전 사건에서도 제과 회사 대표, 대기업 대표, 자동차 회사 대표가 납치되었다는 정보를 사전에 제공함으로써 관객이 과거와 현재의 사건을 비교/대조하며 사건을 추리하는 등 참여하게 만든다.
애니메이션의 처음에 제시되는 과거 15년 전의 살인 사건 장면에서 골목길에서 구슬프게 하모니카를 부는 연주자와 묶인 채 도망치다가 지하철에서 살해되는 희생자를 교차편집으로 보여줌으로써 죽음의 비장미를 강조한다. 이런 과거의 살인 사건과 현재의 대회/개통 축하소식을 연결하는 편집은 죽음과 축제를 대비시킴으로서 불안한 예감을 느끼게 만든다. <명탐정 코난: 비색의 탄환>의 전반부에서는 과거 15년 전의 살인 사건과 현재의 납치 사건을 연결시키는 복선을 제공하면서 정보의 무지로 인한 궁금증에서 부분정보로 인한 긴장감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범죄 플롯의 긴장감과 로맨스 플롯의 웃음
<명탐정 코난: 비색의 탄환>에서는 범죄의 긴장감과 로맨스의 웃음을 결합시킨다. 코난은 15년 전의 WSG 후원기업 대표의 납치 사건을 바탕으로 자동차 회사 대표 존 보이드 사장의 납치 사건을 예견하고는 도청기를 부착하고 하이바라도 그 사실을 눈치 챈다. 코난은 납치된 세 명의 총수들을 찾기 쉬운 곳에 두었다는 사실에서 범인은 세 명을 해칠 생각이 없다고 추리한다. 이어서 코난은 WSG 앨런 회장이 과거 FBI 장관으로서 15년 전 사건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는 세 건의 납치 사건은 진짜 납치 사건을 가리기 위한 위장 전술이라는 것을 알아낸다. 코난은 박사가 만들어준 탐정 도구인 블랙라이트로 형광물질을 추적해서 앨런 회장을 찾아낸다. 이렇듯 <명탐정 코난: 비색의 탄환>의 중반부에서는 세 번째 자동차 기업 총수의 납치 사건을 해결하지만 가짜 속임수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네 번째 WSG 앨런 회장의 납치 사건이 진짜 목표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명탐정 코난: 비색의 탄환>에서는 범죄와 웃음의 결합이라는 부조화를 보여준다. 중반부에 15년 전 범인 이시하라가 형무소에 수감된 후 살해되고 딸이 증인 보호 프로그램으로 이름을 바꾸었다는 정보를 제공한다. 그래서 관객은 새롭게 등장한 두 명의 여성 인물을 용의자로 의심하면서 코난의 추리에 함께 동참한다. 리니어 열차의 재난 사건 예감과 역사적인 순간을 기념하는 축포는 대비를 이룸으로써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하네다 슈키치와 미야모토 유미의 로맨스에서 뛰어난 지략을 자랑하는 장기 챔피언이 여자친구에게 꼼짝 못하는 설정은 약한 남자와 강한 여자의 대비로 웃음을 창출한다. 그리고 깐깐한 여성인 유미가 술에 취해 자신의 쾌활한 성격을 드러내고 술김에 하네다의 청혼을 승낙하는 설정도 성격의 아이러니로 웃음을 자아낸다. 그리고 <명탐정 코난> 시리즈에서 어린이 탐정 코난의 유능함과 어른 탐정 코고로의 무능함의 대비도 재미있는 웃음 포인트이다. 이번 애니메이션에서도 자신의 의뢰인이 납치되고 대규모의 재난 상황이 예고되는 가운데 사건 해결보다는 장어덮밥에 집착하는 모리 코고로(란의 아버지)의 캐릭터가 웃음을 선사한다. <명탐정 코난: 비색의 탄환>의 중반부에서는 범죄 플롯의 부분 정보를 통해 긴장감을 고조시키면서 로맨스 플롯과 코믹한 캐릭터를 통해 웃음을 창출함으로써 부조화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탐정 플롯의 아이러니와 재난 플롯의 상상력
<명탐정 코난: 비색의 탄환>에서는 탐정 플롯의 아이러니와 재난 플롯의 상상력을 보여준다. 코난은 MRI 작동으로 인해 전화가 작동되지 않는다는 하이바라의 조언으로 첫 번째 범인을 밝혀낸다. 첫 번째 범인인 이시하라 마코토는 무죄를 주장하다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 이시하라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 앨런 회장에게 복수하고자 하였지만, 과거 자신의 아버지가 진짜 범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FBI 최고의 저격수인 아카이 슈이치가 쏜 은으로 만든 탄환이 전자기 유도로 리니어를 쫓아가 마코토를 쏘게 되지만, 앨런과 코난의 협력으로 마코토는 목숨을 건진다.
리니어가 통제 불능의 상태가 되면서 리니어 엔지니어가 두 번째 범인으로 밝혀지고, 장기 챔피언 하네다 슈키치가 범인의 도주 경로를 예측하여 FBI와의 합동 작전으로 범인을 생포한다. <명탐정 코난: 비색의 탄환>의 후반부에서는 천재과학자 하이바라의 과학적 지식, FBI 최고 저격수의 사격술, 장기 챔피언의 범인 도주 경로 예측으로 인명 피해를 막아내고 범인을 생포함으로써 ‘흉악범이라도 해치지 않는다’는 코난의 원칙을 확인시켜 준다.
<명탐정 코난: 비색의 탄환>은 매력적인 캐릭터와 액션 스펙터클을 보여준다. 리니어가 정체불명의 프로그램으로 인해 속도가 계속 높아지지만 초전도 자석이 있어 탈선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하이바라의 분석에 어른들이 놀라자, 하이바라는 ‘과학을 좋아하는 평범한 초등학생’이라며 자신의 정체를 숨긴다. 이때 관객은 천재과학자 하이바라가 코난처럼 검은 조직의 약을 먹고 어린이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무지한 다른 인물들보다 우월한 위치를 차지하여 쾌감을 느끼게 된다.
관객은 저격수 아카이가 리니어를 향해 총을 쏘는 장면에서는 그 행위에 대해서 무지하지만, 나중에 그 총알이 리니어의 초경량 소재를 뚫고 범인을 저격하게 되면서 뒤늦게 인지하게 된다. 장기 챔피언 하네다가 도망치는 범인을 잡기 위해서 자신의 장기 실력과 주변 지리를 활용하여 첫 번째 수, 두 번째 수, 세 번째 수, 네 번째 수가 차례대로 펼치면서 관객은 무지에서 인지로 나아가게 된다. FBI가 범인이 제 발로 들어온 것이 무슨 마술이냐고 질문하자, 하네다는 웃으면서 ‘장기!’라고 대답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경기장에 박힌 리니어 열차를 익스트림롱숏으로 강조함으로써 액션영화의 스펙터클을 보여준다. <명탐정 코난: 비색의 탄환>의 후반부에서는 천재과학자 하이바라, FBI 최고의 저격수 아카이, 코믹한 장기 챔피언 하네다라는 매력적인 조력자 캐릭터로 상상력을 보여주며, 대규모 열차 재난 사건을 통해 액션 스펙터클을 보여준다.
액션영화·재난영화의 장르 혼합과 극장판 스펙터클
<명탐정 코난: 비색의 탄환>은 장르 혼합과 스펙터클을 보여준다. 탐정영화의 장르 법칙에서는 범인(가해자), 희생자(피해자), 탐정이 삼각축을 이루며, 탐정은 이미 일어난 사건 혹은 앞으로 일어날 사건의 범인을 찾는다. 이때 탐정은 잔혹한 범인과 무능한 공권력을 뛰어넘는 지략과 용기로 범인을 잡음으로써 정의를 실현하는 영웅이다.
한편 <명탐정 코난> 시리즈의 즐거움은 뛰어난 지략과 용기로 범인을 잡는 탐정이 바로 어린이 코난이라는 아이러니한 사실이다. 어른들은 어린이들을 보호의 대상이라고 생각하며 사건에서 배제시키지만, 명탐정 코난과 천재과학자 하이바라는 어린이의 신분으로 모든 사건을 해결한다는 점에서 쾌감을 선사한다. 특히 하이바라는 천재적인 두뇌, 냉철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코난에 대한 동지애와 사랑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코난과 란의 관계를 질투하는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 즐거움을 선사한다. <명탐정 코난: 비색의 탄환>은 어린이 탐정과 천재과학자가 사건을 해결한다는 점에서 탐정영화의 장르 법칙을 전도시키고, 탐정의 납치/재난 사건의 해결, FBI 저격수의 활약, 인물들 간의 로맨스, 열차의 재난 사건 등 탐정영화, 액션영화, 로맨스영화, 재난영화의 장르적 혼합과 극장판 애니메이션의 스펙터클을 보여준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글 · 서곡숙
문화평론가 및 영화평론가. 비채 문화산업연구소 대표로 있으면서, 세종대학교 겸임교수, 서울시 영상진흥위원회 위원장,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한국본부 사무총장, 르몽드 아카데미 원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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