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우면서도 차가운 책이다. 시의성 있는 사회적인 사건들에 대해 큰 시차 없이 글을 써냈다는 것이 전자의 이유라면, 미디어나 언론에서처럼 즉각적이고도 즉물적인 반응이 아니라 한 걸음 뒤에서 비판적인 거리로 사유한 글을 써냈다는 것이 후자의 이유이다. 국내의 사건뿐만 아니라 국외의 사건들까지 넘나들면서 2010년대를 정신사적으로 고찰하고자 하는 열 편의 글은 동시대인의 감각으로 공감하는 것에서 나아가 직접 경험하지 못한 일들을 간접 경험하면서 공명하게 만든다. 2011년부터 2020년까지 축적된 글들은 세월호, 촛불집회, 정권 교체, 코로나 팬데믹 등 국내의 사건들과 아랍의 봄, 월스트리트 점거, 후쿠시마 사태 등 국외의 사건들이 다양하게 등장하면서 폭넓은 관심사를 드러낸다.
이를 확장하면 사건의 단순한 나열이 아닌 사상의 펼침이 될 텐데, 저자가 말하는 사상은 ‘감정과 이미지에 공유 가능한 언어를 입히고, 공동의 표현을 발효시키는 과정을 통해 안을 통해서 안을 넘어서는 전망을 추구하는 것’(35)이다. 각각의 글이 독립되어 있어 반드시 선형적인 독서를 할 필요는 없겠지만, 다소 긴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는 이 사회를 허투루 살아가고자 하지 않으려는 고민과 사유들이 담겨 있다. 또한 감정과 이미지를 언어화한다는 것처럼 시대의 감정과 그 흐름에 대해서도 숙고하고자 한다.
이 시대는 감정의 사용법을 생각하게 만든다. 이 시대는 감정을 자주 상처 입힌다. 그리고 민주주의를 퇴행시켜 그나마의 정치적 수단을 빼앗는다. 그렇게 무장해제당한 자에게 남아 있는 것은 감정이다. 이 시대에는 어떻게든 버티며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감정을 조정하고, 더 나아가 감정을 활용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바로 오진의 역학이란 울분과 체념이 쌓여 무기력하게 웅크리고 있는 게 아니라 그 감정을 파고들고 분해하여 거기서 활용가능한 자원을 건져내는 일이다. (33)
그러니 이 책에서 시대와 상황, 사건을 진단하는 정확한 언어를 발견하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겠지만, 각각의 사건에서 나타나는 감정들이 어떻게 드러나는지 감정의 움직임들을 따라가는 것도 새로운 독법이 될 듯하다. “감정은 아무리 부조리하게 비칠지라도 문제에, 세계에 응답하는 정신의 몸짓”(18)이라고 했던 것처럼 이는 시대를 읽어 내는 중요한 방법이 될 수 있다. 특히 이 책에 실린 대부분의 글이 여러 재난을 소재로 한다는 점에서 재난과 감정의 관계를 살펴보는 것은 재난에 대응할 또는 할 수 없는 감정들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열 편의 글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재난을 소재로 느슨하게 연결된다는 점에서 시의성 있는 사건, 사회, 사람을 연결하는 데 감정 또한 유효한 것이다.
분노는 슬픔에서 파생된 감정으로서 슬픔의 사회적 유통기한과 함께할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분노는 전에도 여러 차례 겪어 보고 그 끝이 어찌되었는지를 경험해본 감정이기에 전에 그랬듯이 감정 자체가 점차 형해화될 공산이 크다. 그리고 슬픔과 분노는 여전히 외부 대상을 향한 감정이라는 점에서 재생력이 약하다. 반면 가령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은 타자를 매개해 자신을 향한다. 부끄러움으로 이어지지 않는 분노는 시간이 지나면 강도가 약해져 안이한 연민만을 남길 것이다. 연민은 부끄러움과 달리 상황 바깥에 있는 자가 품는 감정이다. 정신의 안쪽을 거쳐간 감정이라야 오래 지속될 수 있다. (89)
이렇게 슬픔이 분노로, 부끄러움으로, 연민으로 번져 가거나 방향을 바꾸는 움직임들은 사회적인 사건들과 연결될 때 개인적/사회적인 것을 넘어선 시대적인 것으로 확장된다. 단순히 그 사건에 결부되는 감정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변화하고 얽히는지를 드러내는 정동인 것이다. 이는 머릿속에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움직임으로서도 드러난다. 저자가 제주 제2공항 건설을 막기 위한 천막촌에서 지내면서 함께하는 사람들을 통해 “같이 있다 보면 다른 사람들이라서 공명이 일어난다”(242)라는 것을 느꼈던 것처럼,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 겪은 실제의 체험과 경험은 죽어 있는 활자가 아니라 읽으면서 다가오는 살아 있는 활자를 만들어 낸다.
이러한 현장성은 이 책이 저자의 단독적인, 하나의 목소리로 온전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함께 얽혀 있는 장소라는 점에서도 이어진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 후 일본에 있는 지인이 보내 준 편지, 4‧3을 겪은 고씨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김임만의 증언 등 다채로운 목소리들이 겹쳐져 있는 것이다. 사건에 대한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기록뿐만 아니라 주관적이면서도 진실된 기록들을 함께 수록함으로써 사건들의 색채들은 더욱 짙어졌다. 이는 이 책에서 잘 드러나는 특징으로서 미디어에 대한 비판인 “하루살이의 일화(日話)고 하루 지나면 사라질 일화(逸話)”(161)처럼 단기간에 휘발되는 것이 아니다. 소화되기 쉽지만 스쳐 지나가고 떠돌아다니는 미디어의 조각들이 알려 주지 않는 삶-사건의 조각들은 소화되기 어렵지만 “모험이고 시련일 수 있는”(233) ‘책-체험’으로서 깊이 각인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스쳐 지나간다는 것은 저자가 말하는 ‘스침의 시간’과는 결이 다르다. ‘스침의 시간’은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는 사고를 가능하게 한다. 이와 같은 시간은 모래시계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절망의 시간인 동시에, 떨어지면서 서로 스치며 아픔을 동반하는 변화를 이끌어 내는 시간이므로 존재와의 마찰 속에서 희망을 사유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또한 최근의 재난을 통해서는 기후 위기까지 사유함으로써 국가 간의 경계도 넘어선다. “지난 재난을 어떻게 살아낼 것”(127)인지를 비롯해 재난이 경계하는 것들을 재사유하게 하는 글들은 말을 경계하는 것으로까지 나아간다. 메타적인 경계로서 날카로운 의식을 가다듬고 문장들을 벼리는 자기성찰을 끊임없이 하는 것이다. 미디어에 함몰되어 안일해지는 것을 경계(警戒)하면서, 그렇다고 해서 문제 밖으로 빠져나가 타인의 일인 것처럼 판단하지 않는 경계(境界)에 머무르면서 물음을 묻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이는 책 속에서 ‘위험-재난-위기-파국’으로서의 단계를 이야기할 때, 현재의 재난이 파국으로까지 나아가는 것을 경계하기 위한 노력이기도 하다.
따라서 『물음을 위한 물음』은 책에 나온 대로, 통각이 무디어지지 않기 위해 헤쳐 나간 “말과의 부대낌”(10)들의 흔적이다. “물음이 물음답게 읽히고 물음이 읽는 자에게서 또 다른 물음으로 증식”(19)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오롯이 전달되었다. 아직 물음을 묻는 태도를 체화하기에는 부족하지만, 부단한 현실을 살아내면서 은연중에 무감해졌을 태도에 꽂아 넣는 날카로운 일침들이 설익은 물음들을 건져 낼 수 있기를 바라게 되었다. 경계(警戒)하는 경계(境界)인의 조각들과의 마찰이 이를 가능하게 한 셈이다.
글 · 권혜린(이화여자대학교 국문과 박사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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