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있니 물어보면은/ 나는 가만 하늘을 본다./
구름 하나 떠돌아 가고/ 세상 가득 바람만 불어/
~ (중략) ~
아~, 나는 연을 날렸지/ 저 하늘 높이 꿈을 키웠지./
이 세상 가득 이 세상 가득/ 난 꿈이 있었어./
~ (중략) ~
사랑도 생의 의미도/ 꿈을 키운 생의 의미도/
세월 따라 흔들려 오면/ 내 눈가엔 눈물이 고여.”
- 세월 (김주형, 시) -
가을이 겨울나무에서 흔들린다. 미처 떠나지 못해 수척해진 단풍이 가을로 걸려 있다. 하얀 아침의 햇살은 지붕을 넘어와 파문으로 일렁인다. 작은 새들의 휘파람 군무와 함께 새 한 마리가 맴을 돈다. 하늘이 열리며 연이 떠 오른다. ‘엄마’와 ‘어린 시절’도 날아오른다. 존재와 관계를 향한 연(Kite) 음악회가 시작된다. 마음속 조각들을 악보로 맞추며 지붕 위의 바이올린 연주자가 된다. 점과 선의 화음은 카덴차(Cadenza)인 해넘이와 어우러지며 가을의 동면을 재촉한다.
하늘에 / 떠오른 꿈 / ‘엄마’ 연 / 존재의 연
이청준(1939년~2008년)의 연작소설 《새와 어머니를 위한 변주-연, 1977년》. ‘엄마’의 연이다.
아비 없이 키운 아들을 상급 학교로 보내지 못하는 가난한 형편의 어머니. 불만을 가득 안고 상급 학교 진학을 단념한 아들은, 또래 아이들이 학교로 가고 나면 연을 날린다.
마을 쪽 하늘에선 연이 떠오르지 않는 날이 없다. 언제 어디서나 새처럼 하늘을 떠도는 연을 볼 수 있다. 아침나절에 띄워 올린 연은 해 질 녘까지 마을을 세상 삼아 하늘을 맴돈다. 연은 머나먼 하늘 여행을 꿈꾸는 작은 새처럼 보인다. 연이 하늘에 떠올라 상승하는 동안 어머니의 마음은 차라리 편하다. 그러나 연실이 얼레에서 팽팽하게 늘어지는 것과 맞물려 언젠가는 연이 실 줄을 끊고 어머니의 하늘을 떠나가 버릴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연의 상승과 하강만큼 오히려 불안하다. 해 뜰 때 연에 실려 허공으로 날아오른 아들의 마음이, 해 질 무렵 하늘을 내려오는 저녁 연처럼 조용히 다시 어머니의 땅으로 가라앉기를 기다릴 뿐이다. 어머니에게 연은 아들의 얼굴을 그려볼 수 있게 하고, 아들의 마음을 읽게 해 준다.
그러던 어느 바람이 세게 불던 날, 연의 모습이 하나의 작은 점으로 멀어져 간다. 어머니는 아들이 도회지로 떠나감을 직감하고 담담하게 이별을 받아들인다. 어머니는 아들의 연이 날아간 그 무심한 하늘을 향해 가는 한숨을 삼키며 허망스럽게 중얼거린다. “아가. 어딜 가거나 몸이나 성하거라…….”
어머니의 하늘과 땅에는 아들에 대한 존재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관계에 따른 이합집산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엄마’의 연은 가장 근원적인 존재의 연이다. 존재의 크기와 영역보다는 유기체적인 존재의 상태만이 의미가 있다. 존재 자체에 대한 ‘있음’과 ‘없음’의 이분법만이 어머니의 언어 세계에 머무른다. 존재의 연은 기다림이다. 하늘로 날아간 연을 쫓아 달려가지 않고, 점과 점의 들어서 있음만을 마음 깊이 안으며 확인한다. 누군가 지붕 위에서 하늘을 향해 바이올린을 연주한다. 관계를 쫓아 떠나간 존재를 향한 어머니의 노래가 울린다.
“Is this the little girl I carried? (이 아이가 내가 안고 다니던 그 조그만 소녀일까?)
Is this the little boy at play? (이 아이가 뛰어놀던 그 어린 소년일까?)
I don't remember growing older (세월이 흐른다는 걸, 난 잊고 있는데)
When did they? (그 애가 이렇게 자랐다니)”
연들을 / 쫓아가는 / ‘어린 시절’ / 관계의 연
《연을 쫓는 아이》(The Kite Runner, 2003년)는 할레드 호세이니(Khaled Hosseini)가 쓴 장편소설이다. 이는 1973년 군주제 폐지, 1979년 소련의 침공, 탈레반 정권,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전쟁(2001년-2014년)등에 이르는 아프가니스탄의 역사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인 아미르가 1975년(12살)~2002년(39세)의 기간 동안 겪은 하산(아프간 시절 하인인 알리의 아들이자 이복동생, 1살 차이)과 아프간 카불에서의 어린 시절 ‘연’을 매개로 한 굴절된 우정과 이기적 배신, 그리고 시공간적 다양한 흐름을 이어가며 영원한 속죄와 구원을 추구하는 아프간 이민자 삶의 궤적을 따라 걷는다. 이 소설은 라힘 칸(아미르의 하산에 대한 잘못된 행동과 거짓을 알고 있는, 아버지인 바바의 친구)의 전화를 받은 아미르가 미국에서 26년 전인 어린 시절을 회상(1인칭 주인공 시점)하며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며 시작한다.
“2001년 12월-나는 1975년의 어느 춥고 흐린 겨울날, 지금의 내가 되었다. 그때 나는 열두 살이었다. 나는 그날, 무너져가는 담장 뒤에서 몸을 웅크리고 얼어붙은 시내 가까이의 골목길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오래전 일이다. 사람들은 과거를 묻을 수 있다고 얘기하지만, 나는 그것이 틀린 말이라는 걸 깨달았다. 과거는 묻어도 자꾸만 비어져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지난 26년 동안 아무도 없는 그 골목길을 내내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 같다. ~ ( 중략 ) ~. 이른 오후의 햇살이 물 위에서 반짝이고 있을 떄, 문득 눈을 들어 하늘을 본다. 기다란 남색 꼬리가 달린 두 개의 붉은 연이 떠 있다. 두 개의 연은 공원의 서쪽 끝에 있는 나무들과 풍차들 위에 이제는 내가 고향이라고 부르는 샌프란시스코를 내려다보며 두 눈처럼 나란히 떠 있었다.”
아미르의 하늘과 땅은 하산의 존재보다는 관계를 더욱 중요시하며, 이에 따른 관계의 회복(아프간 전쟁 상황에서 죽은 하산의 아들인 소랍에 대한 입양)을 통한 ‘착함’으로의 회귀를 이루고자 한다. 아미르로 대변되는 ‘어린 시절’의 연은 관계의 연이다. 존재의 상태보다는 관계를 위한 이어짐과 그 시공간적 크기와 영역이 의미가 있다. 관계는 시간 속에서 이어짐과 끊어짐이 지속해서 일어난다. 공간상에서는 일정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통속적 계산에 따른 분절이 가능하다. 관계는 현존재 상호 간 내던져진 상태에 대한 교집합의 결과물이다.
복수 존재 간 ‘이어짐’과 ‘공통영역’을 영위하는 다양한 언어 세계를 추구한다. 관계의 연은 이어짐이다. 하늘로 날아간 연을 쫓아 달려가며, 점과 점의 연결고리를 확인하는 선의 길이다. 누군가 지붕 위에서 땅을 향해 바이올린을 연주한다. 관계를 향해 달려간 아미르의 노래가 들린다.
“Sunrise, sunset. Sunrise, sunset (해가 뜨고 지고. 해가 또 뜨고 지고)
Swiftly flow the days (하루가 한 해를 향해 흘러가네)
Seedlings turn overnight to sunflowers (어린 싹들이 밤새 해바라기가 되어)
Blossoming even as we gaze (우리가 지켜보는 동안 꽃으로 활짝 피어나기도 해요)”
존재와 / 관계의 균형 / Sunrise(썬라이즈) / Sunset(썬셋)을
12월. 연의 전설을 안고 눈이 오는 마을. 눈 덮인 지붕 위에서 하늘과 땅을 향해 바이올린을 연주한다. ‘엄마’와 ‘어린 시절’이 함께, 존재와 관계의 균형을 노래(“Sunrise, Sunset“)한다.
“Is this the little girl I carried? (이 아이가 내가 안고 다니던 그 조그만 소녀일까?)
Is this the little boy at play? (이 아이가 뛰어놀던 그 어린 소년일까?)
I don't remember growing older (세월이 흐른다는 걸, 난 잊고 있는데)
When did they? (그 애가 이렇게 자랐다니)
~ (중략) ~
Sunrise, sunset. Sunrise, sunset (해가 뜨고 지고. 해가 또 뜨고 지고)
Swiftly flow the days (하루가 한 해를 향해 흘러가네)
Seedlings turn overnight to sunflowers (어린싹들이 밤새 해바라기가 되어)
Blossoming even as we gaze (우리가 지켜보는 동안 꽃으로 활짝 피어나기도 해요)
~ (중략) ~
Sunrise, sunset. Sunrise, sunset (해가 뜨고 지고. 해가 또 뜨고 지고)
Swiftly fly the years (세월은 화살과 같이 흘러)
One season following another (한 계절이 지나가고 또 다른 계절이 오네)
Laden with happiness and tears (행복과 눈물로 가득 찬 계절이)"
‘엄마’의 연이 떠 오른다. 존재로서의 세대~지역~가치, 그리고 ‘나’. ‘어린 시절’의 연을 쫓아 달려간다. 관계로서의 세대와 세대, 지역과 지역, 가치와 가치, 그리고 ‘나’와 ‘너‘. 닭들이 울고 마을 언덕 위로 해가 떠오르면서 오늘이 또 시작된다. 얼레를 놓고 활을 잡는다. 우리는 어느 영화의 첫 장면처럼 지붕 위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세월을 노래한다. 하늘과 땅으로 더불어 어우러지는 가락을 만들고, 어린 시절 ’엄마‘의 마음 같은 지붕 위에 서서 삶의 균형을 잡아가며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
현존재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어린 시절‘ 마을 언덕에서 연을 날리고 싶다. 몰가치적이고 무분별한 관계 수용으로 인한 세대~지역 간 단절, 가치의 이원화, 자아의 피동적 예속화를 날려 보내기 위해 ’엄마‘의 마당에 얼레를 놓고 싶다. 지금 우리는 참존재로의 진화와, 관계를 통한 공동선의 지속적 확대를 추구해야 하는 마지막 변곡점에 서 있는 건 아닐까? 삼월에 눈이 푹푹 내리면, 그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피고 싶다는 시인이 사는, 샤갈의 마을로 가서 살아야 할까?
글 · 최양국
격파트너스 대표 겸 경제산업기업 연구 협동조합 이사장
전통과 예술 바탕하에 점-선-면과 과거-현재-미래의 조합을 통한 가치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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