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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어들은 안녕하신가?
은어들은 안녕하신가?
  • 이상엽 l 사진작가
  • 승인 2022.04.04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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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로 새로 쓰는 24절기 - 4월 곡우/입하

나는 봄비를 좋아한다. 수많은 봄비 노래를 즐기는 것으로 보면, 어릴 적에 낭만을 즐기는 꼬마였을 것이다. 하지만 마당에 내리는 봄비가 달리 보이기 시작한 것은, 아무래도 고기리로 이사 온 후부터다. 봄비는 느긋하게 사람을 풀어주는 비가 아니라, 무척이나 바쁜 손길을 재촉하는 비다. 농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알림 같은 것이다. 

 

경북의 산골 마을이다. 계속에서 물을 대 논 농사를 한다. 이런 농경법은 수천 년 동안 바뀐 것이 별로 없다.

4월의 절기는 청명과 곡우지만, 변화된 기후로 인해 곡우와 입하가 들어섰다. 4월초까지는 청명이 이어지다가 4월 중순인 14일이 곡우고, 27일은 입하다. 곡우는 24절기 중 6번째 절기로, 말 그대로 봄비가 내려 100가지 곡식을 기름지게 한다는 의미다. 24절기에 대한 책을 쓴 농부 안철환은 곡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곡우가 되면 농부들은 정신없이 바빠진다. 춘분 때까지만 해도 사실 농한기의 여운이 남아 농부의 입가에는 여전히 하품이 맴돈다. 청명이 돼 따듯한 햇살에 막걸리라도 한 사발 목을 축이며 점심을 먹은 뒤에는 졸음이 찾아온다. 그런데 언제 그랬냐는 듯이 청명이 지나면 정신이 없다. 강낭콩에 완두콩을 심고 얼갈이, 아욱, 시금치, 홍당무, 상추를 이어 심노라면 정신없이 내달린 기분이다.” 

정말 농사꾼들의 곡우를 잘 표현한 문장들이다. 이렇게 때를 잘 맞춰 준비해야 서리를 피한다. 곡우의 비는 서리를 싹 가지고 가는 비다. 서리는 여름작물에 가장 큰 적이다. 봄 서리가 끝나야 비로소 여름작물을 파종할 수 있고 가을에 서리가 오기 전에 수확해야 한다. 

 

비오는 곡우와 논농사의 역사

 

경북 김천의 직지사 풍경이다. 곡우의 비를 맞으며 꽃들이 흐드러지게 폈다. 공양을 준비 중인지 굴뚝에서 연기가 솔솔 피어오른다.

곡우에 가장 중요한 일은 못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볍씨를 모판에 심고 못자리라는 일정한 공간에서 키워 벼의 모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것은 모내기라고 해서 본 논에 심어 벼로 키우는 것을 말한다. 이앙법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이런 농법이 본격화된 것은 100여 년 밖에 되지 않았다. 그 전에는 그냥 논에 흩뿌리는 직파를 했다. 이앙이든 직파든 논에는 물이 있어야 하니, 곡우가 무척 중요한 것이다. 마침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경북 김천에 갔다가 논에 물을 대는 농촌의 풍경을 봤다. 산 아래 계곡을 끼고 마을과 작은 논이 이어진다. 문뜩 ‘논농사는 계곡에서 먼저 시작됐을까? 평야에서 시작됐을까?’ 궁금해졌다. 

2,000년 전 삼국지 위서 동이전의 진한편에 따르면, “사람들이 계곡에 모여 살았다”. 넓은 경주평야를 두고 계곡에 모여 살았던 이유는 당시 농업기술 수준으로는 평야에 관개수로를 만들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물을 구하기 쉽고 배수가 용이한 계곡에 모여 농사를 지었던 것이다. 그렇게 보니 당시 유일한 식량 생산이 참으로 힘겨운 인간 노동에만 의존했구나 싶다. 이러하니 한해라도 비가 적어 흉년이 들면 굶주려 난민이 발생하고 왕권에 저항하는 난이 일어났다. 이러면 정치권은 전쟁이라는 약탈경제를 들고 나와 인민을 무마했다. 요즘 같은 현대 사회에서도 전쟁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것을 보면 그 원인이 전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해본다. 

 

 4월에는 비가 많이 내린다. 기후변화로 인해 봄은 비가 많고 여름에는 적다. 그 때문에 우리 강의 생태계도 변화하고 있다.

하동, 여름의 입구에서 

입하는 여름의 시작이다. 이제 4월 말이면 여름이 시작된다니, 기후변화를 실감한다. 이때쯤이면 제주도 청보리도 패기 시작해 입하를 ‘맥추’라고도 한다. 봄기운은 완전히 사라지고 산과 들은 초록 일색이다. 밤이면 집 밖에서 개구리 우는 소리도 들린다. 사람들은 활동하기 좋은 이때 나들이를 간다. 요즘은 별로 인기가 없지만, 전에는 관광버스가 사람을 한가득 태우고 전국의 유명 관광지를 내달렸다. 당일치기 여행이지만 단돈 3만원이면 가능했다. 더불어 점심 식사까지. 어떻게 이게 가능했을까? 기사가 손님들을 데리고 대형 쇼핑센터를 방문하면 그 기사는 쇼핑센터에서 커미션을 받는 방식이다.

그런 관광버스들 중에는 유명사찰만 다니는 차도 있다. 나이 드신 내 어머니가 사찰 여행을 즐기셨다. 어머니와 함께 둘이 하동 쌍계사를 갔다. 둘이 합해 단돈 6만원. 어머니와 쌍계사 법회도 보고 지는 벚꽃도 보며 하동 땅을 걸었다. 화개장터에도 들러 이것저것 구경을 하다가 식당 수조에 가득한 은어를 봤다. 햐! 역시 섬진강은 은어지. 버스에서 주는 점심을 마다하고 어머니를 끌고 식당에 들어갔다. 아들이 낸다며 은어 튀김 한 접시를 주문했다. 뼈가 물러 그냥 머리부터 꼬리까지 씹어 먹는다. 원래 은어는 수박향을 즐기려 회로 먹지만, 민물고기를 회로 먹는 것은 좀 꺼림칙했다.

하지만 이 은어는 자연산이 아니라 이맘때면 식당으로 공급되는 양식 은어다. 동북아시아 하천이면 어디에나 있던 자연산 은어는 이제 귀한 몸이다. 요즘은 하동에서 연례행사로 은어의 치어를 방류한다. 1년생 은어는 매년 9월 강어귀에 알을 낳고 죽는다. 알은 보름 만에 부화해 바다로 나간다. 연안에서 살며 몸집을 키워 다시 자신이 태어난 강으로 4월쯤 회유한다. 그리고 9월까지 강에서 사는 것이다. 

 

은어가 무사해야 할 텐데…

 

하동의 화개장터 식당 수조에 담긴 은어다. 은어는 바다빙어과로 회유성 어류다. 우리 강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섬진강에서나 구경할 수 있다. 수조의 은어는 양식이다.

하지만 그 흔하던 은어가 이제 우리 강에서 드물어졌다. 강과 바다를 막는 하구댐 뿐만 아니라 생태계 환경이 많이 오염됐기 때문이다. 자갈이 깔린 1급수에서 사는 은어는 이제 섬진강 정도에서나 볼 수 있다. 이제는 기후변화로 인해 강의 생태계조차도 은어를 위협한다. 현재 우리나라 강수량은 봄에 늘고 여름에 줄었다. 그리하여 육화 현상을 일으켜 강의 생태계를 변질시켰다. 강의 얕은 곳이 풀로 덮이고 종국에는 무성한 숲이 되는 것이다. 모래나 자갈, 물이 있어야 할 부분이 식물로 덮여 하천 고유의 모습이 사라지고 육상생태계로 바뀐다. 이런 식생이 과도하게 발생하면 홍수 때 물의 흐름을 방해해 큰 피해를 만들고 다시 환경을 바꾼다. 2020년 큰 홍수가 발생했던 섬진강의 경우 하천의 56%가 식생으로 덮여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렇게 진흙으로 뒤덮인 강의 바닥에서는, 도저히 은어가 살아갈 수 없다. 

나는 제목만으로도 낚싯대를 잡을 것만 같은 윤대녕의 소설을 찾아 다시 읽었다.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내가 태어나던 1964년 7월12일에 아버지는 울진 왕피천에서 은어 낚시를 하고 있었다. 여름이 되면 그는 왕피천과 호산 기곡천, 그리고 양양에 있는 남대천으로 계류낚시를 즐기러 가곤 했다. 그리하여 그날 칠월의 무더위 속에서 어머니는 땀을 뻘뻘 흘리며 혼자서 나를 낳았던 것이다. (중략) 나는 속성 재배하는 채마처럼 쑥쑥 자라 여름철이 되면 아버지를 따라 은어낚시를 다니곤 했다. 은어들은, 강을 거슬러 오르던 중에 우리의 털바늘낚시나 놀림낚시 채비에 걸려들었다. 우리는 은어가 산란을 하기 위해 하구로 내려오기 시작하는 구월 무렵까지 낚시를 계속했다. 은어가 봄이 되면 바다로부터 돌아와 여름내 강물을 거슬러 오르듯이, 나 또한 해마다 여름이 되면 그들을 따라 강으로 회유하곤 했다.” (윤대녕의 『은어낚시통신』중에서) 

 

 

사진/글·이상엽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고 논픽션 글을 쓴다. 우리 땅 변경을 기록한 사진으로 2015년 <일우사진상>을 수상했고, <파미르에서 윈난까지>(현암사)는 2011년 올해의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늘 기록은 힘이 세다 믿으며 예술노동자로 산다. 지금은 비정규노동센터의 이사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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