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준 감독이 연출한 <그대가 조국>(2022)은 이른바 ‘조국 사태’를 다룬 다큐멘터리이다. 영화는 전 법무부 장관 조국이 법정에 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삶이 잔인한 비운의 고리 속으로 들어왔다”고 조국이 말할 때, 어두운 터널 장면이 길게 이어진다. 그는 왜 출구가 보이지 않는 기나긴 터널에 갇히게 된 것일까?
이후 영화는 2019년 5월부터 시작된 ‘조국 사태’를 시간순으로 따라간다. 조국의 법무부 장관 지명에서부터 반대하는 야당의 공세, 하이에나처럼 물어뜯는 언론의 공격, 검찰총장 윤석열의 진두지휘로 진행된 수사, 조국의 기자 간담회와 인사청문회, 장관 취임, 조국 수호와 검찰개혁을 외치는 시민들의 대규모 서초동 촛불집회, 조국의 장관직 사직서 제출, 검찰의 정경심 교수 억지 기소와 부당한 재판 과정과 결과 등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사건에 관련된 이들과 사건을 평가하는 이들의 인터뷰가 첨가되어 있다. 전자는 검찰 조사 과정이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무시무시하고 악랄했다는 점, 진술이 언론의 보도를 통해 악의적으로 왜곡된 점, 진실을 말했을 뿐인데 삶이 망가지게 된 점 등을 술회한다. 그들은 조국처럼 여전히 사건의 굴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후자는 정경심 재판 과정의 부당성과 판결문의 문제, 검찰이 사냥감을 여론 재판으로 몰고 가는 수법, 선민의식과 단죄의식으로 똘똘 뭉쳐 검찰에 적극 협조한 기자들의 행태 등을 지적한다. 그러므로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은 조국 사태의 과정에서 검찰과 언론 등이 극영화에서의 악당보다 더 잔인하게 행동했으며, 조국 일가는 그 악당들에 의해 너무나 억울하게 참혹한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울러 이 영화의 제목인 ‘그대가 조국’에서의 ‘그대’로 호명되면서, 검찰이라는 견제받지 않은 권력이 있는 잘못된 나라에서는 누구나 조국 일가처럼 죄가 없어도 멸문지화를 당할 수 있다는 주장에 동의하게 된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가장 아이러니한 장면은 2011년 12월 7일에 열린 ‘검찰개혁을 위한 토크 콘서트’의 일부이다. 조국 교수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양정철 등과 함께 한 자리에서, “검사들은 자기 스스로 칼을 쓰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그 칼의 방향, 속도, 강도를 잘못 조절하면 애먼 사람을 죽인다. 칼을 잘못 쓰는 검사는 그 칼을 뺏어야 한다. 아니면 그 칼을 막 쓰게 된다. 어떤 분이 법무부 장관이 되는가가 검찰개혁의 핵심 중의 하나”라면서, 문재인 고문을 향해 “누구를 임명하실 것인지?”라고 질문한다. 이때 문재인 고문은 웃으며, 청중을 향해 “여러분, 우리 조국 교수는 어떻냐”고 묻는다. 마치 농담처럼 오갔던 그 말이 그로부터 10여 년 후에 실현되자마자 바로 지옥도가 펼쳐진 이유는 무엇일까?
검찰이 ‘무소불위의 악당이기 때문에’ 이 모든 끔찍한 비극이 벌어졌다면, 조국 사태에서 빚어진 모든 부조리한 일들은 다 설명이 되는 것일까? 조국 사태의 악당인 윤석열 검찰은 전직 대통령 두 명(이명박과 박근혜)을 감옥에 넣었다. 그때도 그들은 역시 악당이었을까? 그때는 법과 원칙에 따른 정의의 수호자였는데, 여전히 대통령은 문재인인 시절에 갑자기 흑화되어 버린 것일까? 또 박근혜 탄핵에 손을 들어준 사법부가 정경심에게 징역 4년(그녀가 정말 동양대 표창장을 위조했다 해도 전혀 납득할 수 없는 형량이다. 참고로 4개월 아기의 눈과 코에 순간접착제를 뿌려 실명 내지 살해를 시도한 범인의 형량이 징역 2년 6개월이다)을 선고할 때, 그들 역시 흑화되었기 때문일까?
조국 사태가 벌어질 때의 대통령이 국민의 힘 출신이었다면 그나마 이해할 수 있겠지만, 윤석열을 검찰총장에 임명한 사람은 민주당 출신의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영화에서 조국은 “저는 사실상 조선 시대로 보면 귀양을 간 상태이다. 귀양 가고 유배된 사람은 어떤 말도 들어주지 않는다”고 한탄한다. 그런데 신하를 귀양 보내는 건 형조판서가 아니라 왕이 결정하는 거 아닌가? 또 조국은 “윤석열이 대통령의 인사권을 정면으로 침해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대통령은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조국 사태의 진행 과정에서 정말 납득이 가지 않았던 국면은 검찰의 만행에 분노해 수백만 명이 촛불 시위에 나섰지만, 검찰의 잔인한 도륙을 멈추게 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검찰총장 윤석열은 어떤 피해도 입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그는 지난 대선에서 승리까지 거머쥐게 되었다.
유튜버 최인호와 파란장미 시민들이 지은 책, 『김어준이 최순실보다 나쁘다』는 영화가 풀어주지 않은/못한 의문을 전부는 아니지만, 실마리는 찾게 해준다. 이 책에 의하면, “2019년 9월부터 2021년 1월에 이르기까지, ‘조국 수호와 검찰개혁을 이끄는 멋진 선수들’로 유명세를 얻게 된 유튜버, 정치인, 여론 분석 전문가, 평론가, 친민주당 계열 방송 패널, 변호사 등은 조국 장관과 조국 장관의 가족들에게 빨간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아주는 쇼를 집중적으로 펼치면서, 시민들의 눈이 조국을 찌른 자들에게 집중하지 못하게 만들었다(40~41쪽).” 그들은 당시 민주연구원 원장 양정철과 언론인 김어준의 논지에 따라(이 책에서는 그들을 통틀어 ‘양털(양정철+김어준) 패밀리’ 또는 ‘양털 카르텔’이라고 부른다), 윤석열의 검찰 쿠데타를 진압하려는 거센 민심의 흐름을 흩트려 버렸다. 그들의 주도로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면 안 된다(이 말은 “대통령을 지키자”로 연결된다. 영화에서 조국은 ”대통령에게 부담 주는 건 아닌가, 내가 빠져야 되는 건 아닌가”라며 사직서를 제출한 경위를 설명한다)“, ”윤석열과 검찰을 분리해서 봐야 한다“는 프레임이 작동하자, 수많은 시민이 우왕좌왕하게 되었다.
서초동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은 ‘윤석열 아웃’, ‘윤석열 사퇴’, ‘윤석열을 파면하라’는 피켓을 빼앗겼고(42쪽), 대신 ‘조국수호 검찰개혁’의 구호만 남게 되었다. 그리고 매주 토요일마다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 열리던 집회는 2019년 10월 19일, 여의도로 옮겨졌다. 촛불집회의 주최 측은 ”검찰개혁은 공수처가 답“이므로, 국회의사당 앞에서 공수처법 통과를 요구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런데 서초동의 마지막 집회 이틀 뒤인 10월 14일에 조국 장관이 사퇴했고, 10월 23일에는 정경심 교수의 구속 영장이 청구되고 24일에 영장이 발부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공수처법이 통과되고 공수처가 설치되었지만, 작금의 공수처 활동을 보면 그것이 검찰개혁의 답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그게 아니라면, 2019년 가을의 촛불 시위에서 시민들은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한 셈이다(조국과 그 가족의 물리적 죽음을 막았다고 자위하기는 한다). 만일 그 수많은 시민이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 ‘윤석열 사퇴’ 또는 ‘파면’을 줄기차게 외쳤다면,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까? 만일 시민들이 다음과 같은 생각-”대통령이 당연히 져야 할 부담이고, 그 부담을 지고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에 대통령을 하는 것이다. 시민들이 목소리를 높여서 선출 권력에게 헌정 질서 수호를 위한 특별 조치를 취하라고 요구하는 것이야말로 시민들이 민주주의의 정신에 충실하게 행동하는 것이다“(75쪽)-을 당연하게 여기면서 누군가가 설계한 프레임에 농락당하지 않고 계속 밀고 나갔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용기를 갖고 양심의 목소리를 따라 진실을 지키려고 하다가 너무나 큰 상처를 입은 이들, 아직도 감옥에 있는 정경심 교수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은 조국 가족, 그들의 고통과 비극은 크게 줄어들었을 것이다. 어쩌면 지난 대통령 선거의 결과까지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시점에서 이 책을 읽으며 조국 사태를 복기할 때, 회한이 너무 크다. 영화 <그대가 조국>과 함께 책 『김어준이 최순실보다 나쁘다』의 일독을 권한다.
사진출처: 네이버
글·김경욱
영화평론가. 세종대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하면서 영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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