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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숭범의 문화톡톡] 마동석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현재- <범죄도시> 시리즈
[안숭범의 문화톡톡] 마동석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현재- <범죄도시> 시리즈
  • 안숭범(문화평론가)
  • 승인 2022.07.18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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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영화를 홍보하는 자리에서 ‘한국형 프랜차이즈 영화’라는 표현이 심심찮게 사용되고 있다. 이 용어에는 흥분 섞인 기대감 이외에 다른 감정이 스며 있다. 여기서 ‘한국형’이란 말은 K-드라마, K-팝 등으로 보편화된 ‘K-’라는 수식어와는 어감이 다르다. 국가적 자부심이나 과장된 긍지, 상상적 도취의 분위기가 일정 부분 희석되어 있다. 제작자의 입장을 유추해서 말하면, 애초에 할리우드처럼 만들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한국형’이라는 말속에 반영되어 있다. 기술력을 논외로 두더라도, 자금력과 산업적 인프라,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 기획력에서 할리우드는 수평 비교의 대상이 아니다. 글로벌 팬덤을 거느린 만화나 그래픽 노블, 소설, 애니메이션 등을 통해 가치 있는 IP를 이미 확보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국경 바깥에서 티켓 파워가 검증된 스타들이 있지만, 그 수준을 할리우드에 견주긴 어렵다. 프랜차이즈 영화 앞에 붙은 ‘한국형’이라는 단어에는, 영화산업 규모와 ‘제작-소비 생태계’의 차이에 대한 냉정한 자각이 담겨 있는 것이다.

물론 ‘한국형 프랜차이즈 영화’라는 말에는 호기로운 자신감이 배어 있다. 잘 알려진 대로 오늘날 문화콘텐츠 산업계는 국경을 넘나들며 IP 전쟁을 치르고 있다. 미디어 믹스 환경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확장력을 가진 ‘캐릭터’와 ‘스토리’를 손에 쥐려는 각축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그 때문에 한국형 프랜차이즈 영화를 향한 영화 제작사들의 도전은 피할 수 없는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돌이켜보면 팬데믹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K-시네마’라는 호명에 부응할 만한 한국 영화의 성장 잠재력이 축적되고 있었다. 지금도 한국은 수준있는 콘텐츠를 자체 제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나라로 글로벌 OTT 기업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한국의 웹콘텐츠(웹소설, 웹툰 등) 경쟁력은 세계 시장을 선도할 만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 대규모 웹콘텐츠 플랫폼을 통해 독창적인 스토리 IP가 지속적으로 창출된다는 것은 한국 문화콘텐츠 산업 전반의 성장 동력이 되고 있다. 그처럼 한국은 향후 더 가열될 IP 확보 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가능성이 있고, 스토리콘텐츠를 기반으로 프랜차이즈 비즈니스를 펼쳐나갈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해가고 있다. 영화 기획·제작 분야에서도 할리우드와 같은 ‘규모’는 아니더라도 ‘질’적 가치를 담보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어 가고 있는 형국이다.

그럼에도 ‘한국형 프랜차이즈 영화’라는 표현에 어울릴 만한 시리즈물이 몇 개 없다는 건 사실이다. 1980년대 이후의 작품에 한해 생각나는 대로 말하면, 당시 홍콩 액션 영화와 경쟁하던 <돌아이>, 에로영화 붐을 일으킨 후 한 시대를 풍미한 <애마부인>, 일본의 특촬물과는 구별된 개성을 보여준 아동용 영화 <우뢰매> 등이 생각난다. 1990년대 들어서는, 실존 인물 김두한의 일생을 각색한 액션 활극 <장군의 아들>이나 비리 경찰을 등장시킨 버디 무디 <투캅스>도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이들 영화가 차별화된 캐릭터와 안정적인 장르 문법을 앞세워 지속 가능한 흥행성을 확보했느냐고 묻는다면, 긍정적인 답을 하기 어렵다. 더 근본적으로, 영화를 둘러싼 시장 환경과 소비문화 자체가 열악했기에 ‘프랜차이즈’라는 용어에 부합하는 기획을 선보이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보면 <공공의 적>과 <조선명탐정> 시리즈 등이 오늘날과 같은 프랜차이즈 영화로서의 가능성을 처음 선보인 것이라 여겨진다. 프랜차이즈 영화 앞에 ‘한국형’이라는 용어가 가장 어울리는 시리즈물로는 <신과 함께>도 언급할 만하다. 다시 한번 강조하면, 이들 작품은 개성이 뚜렷한 캐릭터, 혹은 개릭터 구도를 가졌으며 장르적 쾌감을 끌어낼 수 있는 전략적 기획을 증명한 바 있다.

 

그런데 냉정하게 볼 때, 그들 작품도 글로벌 시장에 통용될 만한 가능성을 확인시키진 못했다.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영화 중 최고 흥행작이라고 할 수 있는 <신과 함께>가 판타지 영화로서 보편성과 세계관의 특수성을 동시에 보여준 점은 인정된다. 그러나 프리퀄, 시퀄, 스핀오프로 확장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대형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정도로 품이 들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최동훈 감독의 <타짜>, <도둑들> 등도 프랜차이즈 영화로 연장될 수 있는 매력 요인을 지녔다고 판단했지만, 아쉽게도 <타짜>는 이미 그 기회를 잃어버렸다. 그처럼 ‘한국형 프랜차이즈 영화’의 안정적인 정착은, 매우 섬세한 기획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한국 영화 산업은 아직 그런 경험을 쌓아가는 과정에 있다.

이제 <범죄도시> 시리즈의 연속적인 흥행이 갖는 의미를 조명해보고자 한다. 2022년 7월 14일 현재 개봉 중인 <범죄도시 2>는 온갖 위기론이 난무했던 극장가에 부활의 신호탄이 되었다. <범죄도시 2>의 관객동원 결과는 영화 전문가들의 예상치를 훨씬 웃도는 것으로, 엔데믹 시대 ‘보복 소비’의 한 양상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주목해야 할 대목은, 영화관 방문을 통해 실천되는 ‘보복 소비’가 왜 <범죄도시 2>를 통해 폭발했느냐는 것이다.

N스크린 시대, 이제 대중은 특정 문화콘텐츠를 향유하기 위해 방문해야만 하는 물리적 공간의 구획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TV와 스마트폰, 태블릿 PC와 노트북을 넘나들며 구독경제 메커니즘과 초개인화 추천 시스템을 갖춘 플랫폼에 접속하고 있다. 특히 영화를 소비하는 이들 상당수는 OTT 플랫폼을 통한 자기 주도적 영상 소비에 더욱 익숙해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영화관 체험은 콘텐츠 선택권의 제약, 능동성의 결여, 조작적 수용의 불가능성을 받아들인다는 전제에서 가능하다. 그리고 대형 스크린만이 제공할 수 있는 시청각적 스펙타클을 누군가와 ‘함께’ 즐길 수 있다는 특장점이 부각되어야 한다. 특정 감독과 배우, 장르, 브랜드화된 영화사 등 선호하는 대상을 향해 효능감을 누리고, 충성도 높은 팬덤으로 참여하고픈 욕망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마동석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탄생과 진화 과정은 흥미로운 논점을 제공한다. 먼저 마동석의 위압적인 신체는 그 자체로 액션 판타지를 견인하고, 의외의 웃음을 유발할 가능성까지 갖는다. 그가 마블 의 슈퍼히어로 대열에 합류하게 된 것도, 그가 대체하기 힘든 매력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먼저 평범한 배우에게서는 볼 수 없는 근육질의 신체는 ‘과잉’의 힘, 곧 초인적 강인함에 대한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캐릭터의 성격이 구축되는 데 단 한 신(scene)이면 충분한 경우도 있다. 일반적으로, 서사 무대 속 캐릭터의 서사적 지위가 구체화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절차가 필요하다. 연속되는 사건에 의해 캐릭터에 대한 중요 정보가 인과적으로 누적되어야 하고, 주동인물과 반동인물 사이의 캐릭터 구도가 짐작되어야 한다. 때로는 내밀한 감정선이 공유되어야 한다. 그러나 마동석은 등장만으로 직관적인 기대감을 이끌어내고, 차별화된 성격을 고지한다. 서사적으로 캐릭터 빌드업을 해나가는 과정이 단축되는 셈이다. 요컨대 마동석은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는 데에는 일정한 한계를 가질 수는 있지만, 그와 잘 맞는 장르물에서는 확실한 판타지를 제공할 수 있다.

<범죄도시 2>의 엄청난 흥행은 그 사실을 방증한다고 할 수 있다. 우선 <범죄도시> 시리즈는 마동석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한 전형을 보여주면서 ‘한국형’ 범죄 장르의 흥행 방정식을 실감시킨다. 범죄 장르는 현실에 있을 법하지만, 좀처럼 만나기 힘든 극단적인 캐릭터들 간의 대결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마동석은 선과 악, 어느 쪽에서나 위압적인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신체 조건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이웃사람> 속 악덕 사채업자 혁모는 마초적 남성성의 분출 방향이 사회의 공공선을 깨뜨리는 쪽에 해당한다. 마동석 시네마틱 유니버스 구축기에 출연한 <군도: 민란의 시대>나 <부산행>에서는 주동인물 내에서 초인적인 힘을 담당하며 특별한 정체감을 보여준다. 주연급 톱 배우로 확실히 자리매김한 이후의 작품에서는 강인한 하드 바디 영웅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성격은 다르지만 <성난황소>, <챔피언> 등은 이 부류에 속한다. 한편 마동석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입체성은, 엄청난 완력을 가진 캐릭터에 대한 판타지가 예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허물어지는 순간에 만들어진다. <굿바이 싱글>의 평구나 <시동>의 거석이형은 일명 ‘마블리’, ‘마요미’ 캐릭터의 면모가 부각되어 있다. 마동석이 소화한 캐릭터들 안에서 서사적 ‘긴장’과 ‘이완’의 가능성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셈이다.

그렇게 보면 <범죄도시> 시리즈 속 마석도는 마동석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입체성을 종합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먼저 그는 마초적 남성성을 공공선의 회복과 유지를 위해 분출시키는 하드 바디 영웅에 해당한다. 추측하건대 ‘석도’라는 이름 자체에 칼부림이 난무하는 현장을 돌주먹으로 제압하는 이미지가 담겨 있다. 두 번째로 주목할 점은 <범죄도시> 시리즈 전반에 걸쳐 로맨스 플롯이 배제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배우의 보편적 인상으로부터 뽑아내기 힘든 역할, 곧 섹슈얼한 매력을 어필해야 하는 과업이 애초에 생략된 것이다. 마지막 특징으로는 ‘마블리’, ‘마요미’의 면모를 공감시키기 위해 삽입한 장면들이다. 연애에 관심이 많지만 여성 앞에서는 주눅이 들며, 소개팅 자리에서는 번번이 퇴짜를 맞는 설정은 마동석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이미 클리셰에 해당한다.

 

<범죄도시 2>가 엔데믹 시대 첫 번째 ‘천만 영화’(한국에서는 메가 히트작의 상징을 천만 관객 동원 여부로 판단하는 관례가 있다)가 된 것은 다른 관점으로도 설명될 수 있다. 이 영화는 사건 해결 과정에서 지적인 추리 능력이나 예리한 판단력을 요구하지 않는다. 등장인물들은 내적 갈등에 사로잡혀 고뇌하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관객에게도 진지한 성찰이나 고민의 순간이 전가되지 않는다. 빌런이 몇 명이든, 자기 신체를 믿고 쳐들어가는 마석도는 관객의 믿음을 단도직입적으로 실천할 뿐이다. 그는 칼과 도끼를 사용하는 잔혹한 빌런들의 세계를 완력으로 평정해가며 날 것의 스펙타클을 전한다. 대형 스크린에 굶주렸던 이들에게 단순하지만 즉각적인 오락적 체험을 선사하는 것이다. 전편(청불 관람가)과 달리 15세 이상 관람가로 등급을 낮추면서 가족 오락 영화로서 가능성을 안고 출발한 점도 중요한 흥행 포인트였다고 판단된다.

이미 우회적으로 언급한 셈이지만, <범죄도시> 시리즈가 한국형 프랜차이즈 영화로의 가능성을 갖는다는 건, 더 디테일한 해명이 필요하다. 먼저 <범죄도시>는 ‘한국형’ 범죄 장르의 흥행 문법을 재확인시키고 있다. 일반적으로 장르물은 대중의 꿈과 욕망에 부응하는 패턴의 활용을 통해 굳어지는 것이다. 이때의 패턴이란 스토리를 텍스트화하는 틀로서 공식(formula)과 서사 관습(convention), 전형성(stereotype)을 가진 캐릭터와 그들 간의 구도를 통해 확인된다. 또한 도상(icon)적인 표현방식, 곧 영화만의 시각적 약호화 방식으로 완성된다. 이미 설명한 대로 <범죄도시> 시리즈의 경우 마동석이 여러 영화에서 구축해온 캐릭터의 매력이 브랜드화의 토대다. 여기에 장첸(윤계상)과 강해상(손석구)은 빌런으로서 이상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들은 마석도의 대타적 위치에서 한국 사회의 은밀한 그림자를 보여주며 압도적인 위악성을 보여준다. 그들의 존재감은 <범죄도시> 가 매번 다른 매력의 빌런을 ‘악’의 또 다른 얼굴로 규정해가며 고유한 시리즈로 지속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범죄도시 3>의 빌런도 공동체가 합의하고 있는 가치관과 도덕적 이상이 유린되는 장면에서 탄생하고, 통제되지 않는 위험인자라는 사실을 공표하며 긴장성을 배가할 것이다.

그처럼 <범죄도시> 시리즈는 철저한 응징과 완벽한 축출의 판타지로 완성되는 고전적인 권선징악 서사를 거듭할 것이다. 사건의 전개 과정은 ‘피해-복수’, ‘살인-해결’, ‘일탈-처벌’ 사이의 극적인 가치 이동, 혹은 변화를 동반하는 운동으로 나아갈 것이다. 구조적으로 매우 단순한 전개이지만, 이는 대중적인 스토리밸류를 확보하는 틀림없는 방안이기도 하다. 여기서 ‘한국형’이란 용어에 부합하는 서사적 특수성을 한 가지만 이야기하면, 전일만(최귀화)과 장이수(박지환)의 기능을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천만 영화’로 공인된 28편의 영화 중 한국영화 20편을 보면, 긴장을 이완시키며 유머 코드를 살려내는 ‘트릭스터’의 역할이 매우 컸다. 그들은 서사 분량과 무관하게 매우 중요한 지위를 갖는다. 때로는 뜻밖의 선택과 행동을 통해 웃음을 유발하기도 하고, 관객의 평범한 예측과 기대를 무력화시키기도 한다. 진영 간·캐릭터 간 길항 구도 안에 자잘한 난맥상을 만들어내면서 서브 플롯을 만들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전일만과 장이수는 등장신의 수효와 상관없이, 흥행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앞으로도 활약할 필요가 있다.

<범죄도시>는 청불영화라는 한계 속에서도 688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고 <범죄도시 2>는 15세 이상 관람가로 제작되어 2022년 7월 14일 현재 1262만 명을 동원했다. 마석도 캐릭터는 마동석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입체성을 수렴하고 있으며 대체 불가능한 매력을 앞세워 전형성을 확보했다. 대결 구도는 완성되었고 극적 긴장과 이완을 낳는 패턴은 검증되었다. 사람을 죽였으면 그에 합당한 응징이 이뤄져야 한다는 상식은 대중의 의식 속에서 법보다 우선된다. 수사권 남용이나 공권력의 과잉 취조 장면으로 비칠 수 있는 ‘진실의 방’ 장면이 오히려 통쾌한 쾌감을 낳는 것도 그와 관련된다.

마석도는 아이언맨처럼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억만장자는 아니다. 배트맨처럼 고뇌하지도 않는다. 장첸이나 강해상도 다스베이더처럼 우주적 스펙타클을 몰고 다니진 않는다. 그러나 마동석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등에 업은 <범죄도시> 시리즈는, 한국형 프랜차이즈 영화란 무엇인가란 질문에 이미 일정한 답을 내놓고 있다.

 

* 이 글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행하는 국가 홍보 영문 매거진 <KOREA>에 수정을 거쳐 영문으로도 게재되고 있다.

 

 

글 · 안숭범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영화평론가. 시인. K-컬처·스토리콘텐츠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으며 EBS <시네마천국>을 진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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