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릉은 뛰어난 자연경관 속에 자리 잡고 있으며, 보통 남쪽에 물이 있고 뒤로는 언덕에 의해 보호되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터이며, 멀리 산들로 둘러싸인 이상적인 자리를 선택해 마련되었다.
- UNESCO 세계유산 조선왕릉 개요 중에서
영조와 조선왕릉 이야기 – 서오릉과 의릉, 혜릉
조선의 21대 왕 영조(1694년~1776년)는 숙종의 두 번째 아들로 어머니는 숙빈 최씨이다. 19대 숙종부터 숙종의 두 아들 20대 경종과 21대 영조의 재위 기간은 숙종46년(1674년~1720년), 경종 4년(1720년~1724년), 영조 52년(1724년~1776년)을 합하여 102년간이나 되어 조선 왕조 27대 518년 중 거의 5분의 1에 해당한다. 숙종과 영조대는 긴 재위기간과 더불어 상세한 기록, 궁궐 내 여성들의 이야기가 두드러져서 각종 드라마와 영화의 단골 소재가 되어 왔다. 이들의 왕릉과 관련된 장소들을 찾아가는 것은 역사책이나 드라마와 영화 속 인물들의 실체를 마주하게 할 뿐만 아니라 역사의 장면들이 입체적으로 다가오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영조의 아버지 숙종과 서오릉
숙종(1661~1720)은 인경왕후 김씨, 인현왕후 민씨, 인원왕후 김씨를 포함하여 부인이 9명이었으나 자녀는 장희빈 소생의 경종, 숙빈 최씨 소생의 영조, 명빈 박씨 소생인 연령군 이렇게 아들만 셋이었다. 아버지 현종에 이어 적장자로 경쟁자도 없이 정통성을 지니고 14세에 즉위(1674년)한 숙종은 46년간 왕위에 있으면서 경제와 국방 등 여러 분야에서 많은 업적을 이루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숙종의 업적보다는 드라마 속 인현왕후(1667~1701)와 장희빈(1659~1701), 동이(숙빈 최씨 1670~1718)를 먼저 떠올린다. 이런 상황에서 숙종이 재위기간 동안 숭릉(명성왕후 김씨), 휘릉(장렬왕후 조씨), 익릉(인경왕후 김씨), 장릉(단종), 사릉(단종비), 명릉(인현왕후 민씨), 혜릉(단의왕후 심씨)등 무려 7개의 능을 조성하였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숙종의 능은 명릉인데 서오릉에 있다.
서오릉은 ‘서쪽에 있는 5기의 능’이란 뜻으로 구리 동구릉 다음으로 규모가 큰 조선 왕릉 군이다. 세조의 맏아들 의경세자 (추존 덕종)의 경릉을 시작으로, 예종의 창릉, 순회세자(명종의 아들)의 순창원, 숙종의 첫 번째 왕비 인경왕후의 익릉, 숙종의 명릉, 영조의 첫 번째 왕비 정성왕후의 홍릉이 조성되었다. 이후 1970년대 사도세자의 생모 영빈 이씨의 수경원, 경종의 생모 옥산부대빈 장씨의 대빈묘가 이곳으로 옮겨져 현재 5기의 능과 2기의 원, 1개의 묘가 있다. 숙종이 원했는지는 모르지만 왕비 3명과 희빈 장씨, 아들 영조의 왕비와 후궁 즉, 며느리 2명이 함께 하고 있는 서오릉에서 주인공은 숙종이라 할만하다.
숙종의 첫 번째 왕비 인경왕후 김씨(1661~1680)가 20세에 천연두로 세상을 떠났고, 익릉이 조성되었다. 1681년(숙종7) 숙종은 21세의 나이로 15세의 인현왕후 민씨(1667~1701)를 계비로 맞았다. 숙종은 1701년(숙종27) 인현왕후가 세상을 뜨자 능을 조성하면서 명릉(明陵)이라 이름을 짓고, 그 옆에 자신의 능자리를 정하여 쌍릉의 형태로 조성하였다. 인원왕후 김씨(1687~1757)는 15세였던 1702년(숙종28) 제2계비가 되었는데 당시 숙종의 나이가 41세였다. 이들 3명의 왕비 사이에서는 자녀가 없었고, 경종은 인현왕후 민씨, 영조는 인원왕후 김씨의 양자가 되었다. 숙종이 승하했을 때 인원왕후 김씨의 나이는 34세였는데, 인원왕후는 경종 즉위시 왕대비가 되었고, 4년 뒤 영조가 즉위하자 대왕대비에 올랐는데 영조(1694~1776)와는 불과 일곱 살 차이였다. 인원왕후는 1757년(영조33) 3월 26일 71세로 승하하였는데, 바로 얼마 전 2월15일 영조의 비 정성왕후 서씨(1692~1757)가 세상을 떠났다. 영조는 명릉 근처에 정성왕후의 능인 홍릉을 조성하면서 자신의 능을 마련하고자 봉분 왼쪽을 비워 놓고 쌍릉 형식에 맞추어 석물도 배치하였다. 영조는 아버지 숙종 옆에 묻히고 싶었던 것 같다. 1757년 3월 19일 홍릉 산역이 시작되었는데 3월 26일에 대왕대비의 승하로 서오릉 북쪽과 남쪽에서 4월 19일부터 5월2일까지 두 개의 왕릉 조성 공사가 동시에 이루어졌다. 인원왕후의 능은 쌍릉인 명릉 옆에 분명히 하나의 다른 능처럼 보이는데 능의 이름이나 정자각도 따로 있지 않고, 심지어 숙종의 능 위쪽에 위치하여 풍수에 문외한인 사람이 보기에도 약간 어색하다. 비용과 인원이 많이 들어가는 왕릉 공사가 동시에 이루어졌고, 영조의 입장에서는 피가 섞이지 않은 어머니의 능이라서 신경을 덜 쓴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더욱이 영조가 어머니 숙빈 최씨의 소령원에 대해 기울인 노력과 정성을 알고 나면 누구라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인원왕후릉과 동시에 조성되었던 홍릉 옆 자리는 아직도 비어 있다. 영조는 홍릉이 위치한 서오릉 반대편 멀리 동구릉에 있는 원릉에 묻혀 있기 때문이다.
대빈묘
경종의 어머니 옥산부 대빈 장씨(1659~1701)는 1688년(숙종14)에 경종을 낳아 희빈이 되었다. 기사환국때 왕비가 되었다가 갑술환국때 다시 희빈으로 강등되었다. 희빈은 1701년 (숙종27) 인현왕후가 세상을 뜨자 인현왕후를 무고한 혐의로 자진하였다. 아들 경종이 즉위하자 1722년(경종2) 왕의 사친으로 옥산부대빈으로 추존되고, 사당의 이름은 대빈궁, 묘소는 대빈묘가 되었다. 대빈묘는 1702년(숙종28) 양주 인장리(현 구리시 인창동)에 조성하였는데, 묘소자리가 불길하다 하여 1719년(숙종45)에 광주 진해촌 (현 광주시 오포읍 문형리)로 천장(이장)하였다. 1969년에 서오릉으로 이장되었다. 대빈묘는 주변이 이끼로 덮힌 채 서오릉 한구석 초라하게 자리잡고 있다.
하교하기를 “이제부터 나라의 법전을 명백하게 정하여 빈어(嬪御)가 후비(后妃)의 자리에 오를 수가 없게 하라”하였다.
숙종실록 숙종27년 신사(1701)10월 7일
영조의 이복형 경종 - 의릉과 혜릉
경종(1688~1724)은 숙종의 첫 번째 아들로 어머니인 희빈 장씨는 드라마의 단골 소재로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이지만, 경종에게는 단 한명의 자녀도 없고, 재위기간(1720~1724)이 4년 밖에 되지 않아서 역사에서 비중이 높지 않다. 경종과 관련된 능은 두 곳이다.
경종의 첫번째 부인 단의왕후 심씨(1686~1718)는 1696년 (숙종22)에 왕세자빈이 되었으나 경종이 즉위하기 전 1718년(숙종44)에 세상을 떠났다. 단의왕후 심씨의 혜릉은 처음 왕세자빈묘의 형태로 조성되었다가 1720년 경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후로 추존하고 묘를 능으로 올려 혜릉이라 하였다. 1722년(경종2) 능의 형식에 맞게 난간석과 무석인, 망주석등의 석물을 추가로 설치하였다.
선의왕후 어씨(1705~1730)는 1718년(숙종44) 14세에 31세였던 경종과 혼인하였고, 1720년 (경종1)에 왕비로 책봉되었다. 1730년 (영조6) 세상을 떠나 경종의 능 아래에 장사를 지냈는데 26세였다. 경종과 선의왕후 어씨의 능인 의릉은 서울 성북구 석관동에 있다.
의릉의 수난
1962년 의릉 자리에 중앙정보부가 들어서면서 일반인들의 접근은 금지되었고, 왕릉의 원형이 심하게 훼손되었다. 왕릉의 능선을 깎아서 넓은 축구장을 조성하였고, 콘크리트 건물을 세우기 위해 좌측 능선의 산허리를 잘라냈으며, 홍살문과 정자각 사이에 땅을 파서 연못을 만들었고, 관상어를 길렀으며, 돌다리를 놓고 외래수종을 식재하였다. 당시 만들어진 중앙정보부 강당에서 1972년 7월 4일 ‘7·4 남북 공동 성명’이 발표되었는데, 이 건물은 2004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국정원(옛 중앙정보부)이 1995년 서초구 내곡동으로 이전하면서 1996년 일반인에게 공개되었고, 한국예술종합학교가 들어섰다. 이후 금천교 복원 등 기본적인 복원공사가 이루어졌지만, 2009년 의릉이 세계유산에 등재되면서 새로운 고민이 시작된 것 같다. 국정원이 옮겨간 곳은 하필이면 헌인릉 옆이다. 현재 헌인릉의 재실은 헌인릉 입구 밖으로 도로 옆에 있다.
글 · 김정희(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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