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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채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놉>, 이토록 영민한 조던 필, 그러나...
[김채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놉>, 이토록 영민한 조던 필, 그러나...
  • 김채희(영화평론가)
  • 승인 2023.02.13 1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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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육 현장의 고디, <놉> 중에서

<놉 Nope> 첫 번째 독법, 기묘한 공포/스릴러 영화

영화가 시작되면 ‘고디’라는 이름을 가진 침팬지가 평온했던 가정집을 살육의 현장으로 만들고 책상 밑에서 주프라는 아시아 소년이 이를 지켜본다.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살해한 고디가 숨어 있던 주프를 발견하고 그 둘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질 듯한 순간 경찰관이 들이닥쳐 고디를 사살한다. 프롤로그가 끝나면 목장에서 말을 조련하던 노인이 보이지만 그는 곧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지는 정체불명의 물체에 맞아서 사망한다. 다음 장면에서는 사망한 노인의 자녀인, 오제이와 에메랄드 남매가 등장하는데 그들은 아버지에게서 헤이우드 할리우드란 회사를 이어받아 운영하는 중이다. 할리우드란 단어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조그만 사업체의 주 업무는 영화에 출연시킬 말을 조련해 필요한 영화사에 공급하는 일이다. 하지만 촬영 도중 흥분한 말이 소동을 일으켜 제작진이 상처를 입으면서 남매는 곤란한 상황에 처한다. 여기서 관객은 영화를 관통하는 힌트 하나를 얻게 된다. ‘(말 혹은 다음에 등장하는 ‘이것’의) 눈을 쳐다보지 말 것‘

목장 근처에서 뭔가 불길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한 남매는 집 주변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한다. 하지만 소동을 일으킨 정체불명의 ‘이것’은 카메라에 포착되지 않는다. ‘이것’의 정체가 UFO라고 생각하는 남매는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할 기회가 보장되는 ‘샷’을 찍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러던 중, 성인이 된 주프가 말 거래를 하기 위해 이들 남매와 만난다. 주프는 고디가 벌인 처참한 사건의 생존자면서 엄청난 ‘스펙터클’을 목격한 인물이다. 스펙터클의 노예가 된 주프는 ‘주피터 파크’라는 어트랙션을 운영하면서 지상 최대의 쇼를 준비한다. 주프는 ‘럭키’라는 말을 천으로 덮어 ‘이것’을 유인하고 그 장면을 관객에게 보여주려 하지만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이것’에 빨려 들어간다. 한편 남매는 최고의 촬영감독이자 호승심 가득한 홀스트를 설득하여 ‘이것’의 정체를 밝혀줄 ‘윈프리 샷’을 찍도록 종용한다.

이 기묘한 사건을 놓칠 리 없는 방송국에서는 최신 장비로 무장한 카메라맨을 파견해 스펙터클 포착 게임에 참여한다. 하지만 그는 본격적으로 판에 끼기도 전에 ‘이것’에게 빨려 들어가고 만다. ‘이것’을 포착하는 데 어떤 전자장비도 소용없다고 느낀 사냥꾼 홀스트는 오래된 수동식 카메라로 ‘이것’을 포착하려다 결국 잡아먹히고 만다. 이제 남은 건 남매뿐이다. 남매의 오빠 오제이는 ‘이것’과 사투를 벌인다. 그는 영화 초반부에 등장했던 ‘눈을 쳐다보지 말 것’이라는 교훈을 떠올리며 간신히 살아남는다. 동생 에메랄드 역시 ‘이것’의 공격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치다가 주피터 파크까지 다다른다. 그녀는 헬륨 가스를 넣어 부푼 카우보이 풍선을 하늘 높이 띄운다. 풍선을 집어삼키기 위해 ‘이것’이 입을 벌리는 순간 에메랄드는 주피터 파크에 설치되어 있던 가장 원시적인 장치, 우물(샘) 카메라로 ‘이것’의 정체를 포착하는 데 성공한다. 잠시 후, 집어삼킨 헬륨 풍선이 터지면서 ‘이것’ 또한 사멸한다.

공포/스릴러 흐름을 따라가는 것은 가장 일반적인 독법이지만 약간 허무한 뒷맛을 남긴다. ‘이것’을 UFO로 설정한 것은 이해되지만 왜 이 UFO는 기존에 알려진 것들과 생김새가 이다지도 다른가?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것’은 왜 ‘사진 찍히는 것을 그토록 거부할까?’라는 물음에 적절한 답을 이 독법은 주지 못한다. 이 독법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다음 독법은 어떨까?

 

<겟 아웃> 포스터

<놉 Nope> 두 번째 독법, 분리된 챕터 제목 따라잡기

이 영화는, ‘NOPE’, ‘GHOST’, ‘CLOVER’, ‘GORDY’, ‘LUCKY’, ‘JEAN JACKET’ 등 6개의 챕터로 나뉘어 있다. 앞선 두 작품에서 간명한 제목으로 시선을 끌었던 조던 필. 그러나 이 간명함 안에 영화는 다의적 함의를 내포하고 있다. 데뷔작 <겟 아웃 GET OUT>의 제목의 의미는 이상한 집에서 탈출하라는 메시지 혹은 주인공 크리스가 사로잡혀 있던 심령의 방에서 빠져나오라는 뜻을 지닌다. <어스 US>는 자신와 똑같이 생긴 복제인간을 보면서 놀란 등장인물이 외친 “It's us”라는 대사에서 나온 제목이다. 정체가 뭐냐는 질문에 복제인간은 ‘미국인’이라고 답한다. 그러므로 US는 United States, 즉 미국으로도 해석 가능하다. 그렇다면 ‘NOPE’은 무슨 뜻일까? ‘놉’은 ‘No’에서 파생돼 단호한 거부를 뜻하지만 영화에서는 ‘고맙지만 사양하겠다’, ‘오지 마라’, ‘모른다’, ‘싫다’, ‘보지 마라’ 등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가장 일반적인 해석은 살아있는 생명체를 빨아들이는 ‘이것’의 만행을 목격하면서 등장인물들이 느낀 극단적인 두려운 감정(안 돼!)을 한 단어로 표현한 것이다.

 

<어스> 포스터

한편 오프닝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침팬지 고디는 흑인 음악의 산실, 모타운의 설립자(베리 고디)에서 유래한 이름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그는 인종차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할리우드식 트레이닝 시스템을 도입했고, 그 결과 수많은 스타를 발굴해 흑인 음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음반 제작자가 되었다. 사람들을 즐겁게 하면서 쇼 프로그램에서 인기를 독차지하던 고디는 한순간에 돌변해서 살육 잔치를 벌인다. 침팬지 고디처럼, 베리 고디 역시 쇼 비즈니스 세계의 빛과 어둠의 양면을 상징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렇듯 숨은 의미가 고디에게 존재한다면 네 마리 말들의 이름도 관객들의 관점 혹은 선취한 지식에 따라 달리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다분하다. 럭키 챕터를 유심히 본 관객은 ‘이것’의 미끼로 선택된 말의 이름이 럭키라는 것 그리고 고디의 살육 현장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내 주프가 스스로를 ‘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고스트는 말 이름이기도 하지만 정체 모를 ‘이것’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오제이의 회상에서 잠시 등장하는 아버지는 “고스트를 풀어 놓으니 제 세상 만난 듯 뛰어다닌다. 길들일 수 없는 동물도 존재하는 법이지.”라고 읆조린다. 아버지의 말처럼 고스트로 은유 된 ‘이것’은 운 좋은 사내 주프도 길들일 수 없는 불가항력의 존재다. ‘이것’이 벌이는 난장판에서도 살아남은 클로버는 주프와 달리 진정한 ‘행운의 상징’이 되며, 진 재킷은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이미지들, 이를테면 카우보이 인형, 챙이 넓은 모자, 대평원처럼 서부극의 주요 도상이라고 상정할 수 있다. 가장 거친 말이자, 서부극의 도상으로 기능하는 진 재킷은 영화에 실제로 등장하지 않지만, 주인공 오제이는 ‘이것’을 진 재킷으로 부르자고 제안한다. 좀 더 호기심이 왕성한 관객들은 진 재킷이 다른 의미를 가질 수도 있지 않을까 추측해볼 것이다. 그렇다면 이 말들을 묶을 수 있는 공통 분모의 존재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머이브릿지, <The Horse in Motion>
탈주하는 오제이, <놉> 중에서

* 사진 설명 :에드워드 머이브릿지의 연속된 사진의 방향을 90도 회전시키면 <놉>의 엔딩 장면과 겹친다. 양옆에 늘어선 공기 인형들은 끊어진 줄(영화에서는 미끼)을 연상시키며, 모자처럼 생긴 UFO 혹은 ‘이것’은 ‘말 운동의 진실’에 대한 상징으로 읽힐 수 있다.

 

<놉 Nope> 세 번째 독법, ‘그날’을 재현하다.

릴랜드 스탠포드, 그는 캘리포니아 주지사였고 센트럴 퍼시픽 철도를 설립했던 4인 중 일인이었다. 스탠포드는 친구와의 운명적인 ‘그날’의 내기에서 이만 오천 달러를 잃었지만, 차후에는 상원의원까지 지낸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날 내기의 정황은 이러하다. 여러 사업을 통해 거부가 된 후, 심신이 편안해진 스탠포드는 사업대신 경마에 열정을 쏟아부었다. 1870년대 대중을 사로잡은 호기심거리 중 하나인, ‘말이 뛸 때 네 발 중 하나라도 땅에 닿는가?’라는 논쟁에 뛰어든 그는 유명한 사진사였던 머이브릿지에게 이 가설을 증명해달라고 의뢰했다. 1872년에 처음 의뢰를 받은 머이브릿지는 여러 차례 실패를 거듭한 끝에 드디어 1878년 6월 15일, 이 가설이 틀렸음을 증명했다. 스탠포드는 내기에서 졌지만, 이 내기로 인해 영화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따라서 <놉>은 영화사의 태동을 가능하게 했던, 달리는 말 실험에 얽힌 6년간의 실패와 성공 과정을 담고 있다. 그러므로 <놉>은 영화에 대한 영화이자, 영화로 만든 영화사의 머리말이다.

6년 동안 머이브릿지가 계속 실패하자, 스탠포드는 그사이에 머이브릿지의 라이벌들을 여러 차례 고용했다. 하지만 그들 역시 매번 임무에 실패한다. 절치부심한 머이브릿지는 결국 혁신적인 방법을 찾아냈고 이름 모를 흑인 기수의 도움을 받아서 드디어 임무를 완수한다. 조던 필은 이 에피소드에서 역사에 누락된 흑인 기수의 존재에 집중했고 ‘그날’의 사건을 장르적으로 재구성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스탠포드의 말에 관한 내기는 UFO의 존재 가능성에 대한 내기로 바꾸었다. 이만 오천 달러의 판돈을 십만 달러로 올리자, 얼치기 사냥꾼들이 이 내기에 앞다퉈 등장한다. 조던 필은 무명의 흑인 기수에게 역사성을 부여하기 위해 바하마 출신, 알리스테어 E. 헤이우드라는 이름을 선사한다. 그리고 헤이우드 가문은 여전히 할리우드 언저리에서 말 조련을 하며 살아가는 것으로 설정한다.

알스테어 헤이우드의 후손들인 오제이와 에메랄드는 결국 영화적으로 각색된 머이브릿지의 임무, 즉 '이것'의 이미지를 포착하는 게임에 뛰어든다. 그러므로 주프, TMZ 방송국 카메라 기자,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촬영 실력’을 가진 홀스트와 같은 극중 등장인물들은 모두 머이브릿지의 경쟁자인 동시에 헤이우드 남매의 경쟁자들이다. 그리고 1878년까지 말의 운동을 제대로 기록하지 못했다는 역사적 사실은 현재, 카메라를 통해 제대로 UFO의 존재를 기록한 사진이 부재하다는 내용으로 치환된다. 운명의 그날, 머이브릿지가 수많은 난관을 뚫고 말의 진정한 운동을 기록했듯이 <놉>에서도 바하마 출신 기수의 후예인 헤이우드 남매가 결국 ’이것‘의 정체를 기록하는 데 성공하면서 영화는 마무리된다. 조던 필은 발상의 전환을 통해 머이브릿지 못지않게 그날의 사건에서 큰 역할을 한 기수와 그의 후손에게 더 많은 애정을 쏟는다. 헤이우드 남매는 머이브릿지의 역할까지 흡수하면서 무명의 바하마 출신 흑인 기수의 존재를 영화사에 아로새기려 한다.

영화사는 1878년 6월 15일을 기억한다. 그날 머이브릿지는 12대의 카메라를 1피트 간격으로 배치한 후, 말이 달리는 트랙 한편에 카메라 셔터를 줄로 연결했다. 말이 지나가면서 줄이 끊어지면 셔터가 자동으로 작동해 그 순간이 기록된다. 이렇게 촬영해서 얻어진 12장의 사진은 스탠포드의 기대와는 달리 어느 순간 말의 네 발이 허공에 머문다는 것을 증명했다. 스탠포드는 머이브릿지의 기술을 내기에 이용했지만 움직이는 그림(Motion Picture)의 열망에 사로잡혀 있던 영화의 선구자들은 말의 발이 허공에 머문 순간이 아닌 12프레임으로 구성된 움직임 자체에 주목했다. 그리고 영화는 이렇게 탄생했다.

 

<놉 Nope> 그러나...

<겟 아웃>, <어스>를 통해 조던 필은 인종 차별 문제에 주목했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놉>에서도 이어진다. 스파이크 리가 1980년대 후반, ‘흑인을 위한 흑인에 의한 흑인의 영화’에 치중한 것처럼 조던 필 역시 21세기에 흑인의 이야기를, 그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서 말하려 한다. 그런데도 조던 필이 스파이크 리에 비해 좋은 흥행 성적을 기록한 이유는 공포/스릴러라는 장르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그는 복제 인간, 장기 밀매, UFO라는 첨예한 소재를 끌어들여, 혹시나 제기될 수도 있는 주제에 대한 거부감을 희석한다. 조던 필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던 머이브릿지의 사진 속, 흑인 기수에게 주목하면서 영화사를 다시 쓰려했고 동시에 영화사에 누락된 흑인들의 역할을 복원시키길 원했다. 하지만 산업의 논리로 보면, 이런 의도를 가진 영화에 선뜻 투자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래서 그는 영화화가 힘든 이 소재에 UFO 이야기를 곁들여 대중이 좋아하는 공포/스릴러 장르로 외피를 감싼다. 여기서 마무리했더라면 참으로 근사한 결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조던 필은 이에 만족하지 않았다.

사회현상에 대해 ‘한 마디’씩 했던 전작들에 비해 뭔가 밋밋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던지 그는 스펙터클에 중독된 현시대의 관객들을 향한 충고를 끼워 넣는다. 사실 이 영화에서 침팬지 고디가 등장하는 시퀀스는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면 약간의 사족처럼 보인다. 우리는 등장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고디가 벌이는 살육 행위가 담긴 영상이 마니아들 사이에 은밀히 돌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현장에 있다가 고디에게서 간신히 벗어난 주프는 본인이 동물과 교감할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났다고 믿으며 지독히 운 좋은 사람이라고 여긴다. 그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원인은 살육의 현장에서 유일하게 피해를 입지 않은 당사자였으며, 고디가 사살당하기 전에 했던 행동이 마치 교감을 원하는 제스처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스펙터클 쇼의 소품 정도로 치부되던 유색 인종과 동물에 대한 조던 필의 연민이 느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물론 오제이가 살아남을 수 있던 원인 역시 ‘동물에 대한 존중’에 있고 이 존중은 생존에 필수적인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다른 사람들이 어떡하든 ‘이것’을 제대로 쳐다보고 포착하려고 할 때 오제이는 직시하는 것을 포기함으로써 삶을 얻는다. 이와 달리 주프는 존중 대신 오만으로 가득차 자신의 상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는 동물 서커스 위주로 진행되는 어트랙션을 만든다. 모든 동물과 교감할 수 있다고 맹신하는 주프는 ‘이것’과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지만 과신과 착각 속에 최후를 맞는다.

 

조던 필(Jordan Peele)

주프는 고디와 함께 쇼에 출연했고 고디가 벌인 살육 행위를 지근거리에서 맨눈으로 본 인물이다. 이 엄청난 스펙터클에서 그는 결코 빠져나올 수 없다. 그는 성인이 된 이후에도 자신을 사로잡았던 스펙터클을 그대로 구현하고 싶어 한다. 주프는 그러므로 스펙터클을 무한정 믿으며 한편으로는 스펙터클의 노예로 살아가는 영화 관객을 상징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스탠포드, 머이브릿지, 그리고 무명의 기수가 탄생시킨 영화는 20세기에 곧장 스펙터클로 전락했다. 조르주 뒤아멜이 노예들의 소일거리라고 조롱한 대로 오늘날 관객들은 이 ‘타락한’ 스펙터클을 시청하면서 여가를 보낸다. 그렇다면 조던 필이 주프를 등장시켜 스펙터클의 폐해를 비판하는 것을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약간 우스꽝스럽게 보이지만 엄청난 크기의 ‘이것’이 선사해주는 시각적 쾌감,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면서 헤이우드 목장 뒤편 골짜기에 똬리를 틀고 있는 그 자태, 그리고 라스트 시퀀스에서 몰아치는 엄청난 추격전은 스펙터클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리고 두말할 나위 없이 가장 효과적이면서 충격적인 스펙터클의 화룡점정은 고디의 살육 장면이다.

 

M. 나이트 샤말란(M. Night Shyamalan)

조던 필은 분명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무명의 흑인 기수를 영화사에 복원시키기 위해서 <놉>을 기획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놉>이 실제로 영화화되기 위해서는 관객의 호응이 필수적이며, 그 호응은 스펙터클에서 나온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서사적으로는 공포/스릴러의 화법을 채용하고 시각적으로는 SF 문법을 도입했다. 말 운동에 관한 진실에서 시작된 영화가 한순간 스펙터클로 타락하고 자신 역시 이 스펙터클을 이용해서 영화를 만들어 흥행을 도모한다는 자기모순을 그는 예상하지 못했을까? 예상했더라도 그런 것쯤은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했을까? 필자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식스 센스> 이후 실망스러운 행보를 보였던, 나이트 샤말란의 길을 조던 필이 따라가지 않길 진심으로 바란다. 샤말란은 초자연적인 현상에 매달린 나머지 매너리즘에 빠져 우리를 실망시켰다. 아마도 우리가 조던 필에게 등을 돌린다면 그것은 <어스>에서부터 약간의 싹이 보였던 자기모순 혹은 자기기만적인 태도 때문일 것이다. 사족이지만 그의 기상천외한 상상력을 진심으로 아끼는 마음에서 이 말은 꼭 해주고 싶다. Nope!

 

 

글·김채희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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