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더 파벨만스>...왜 감동적인가?
스필버그(Steven Spielberg)는 2005년 <뮌헨 Munich>을 제작할 당시 시나리오 작가였던 토니 커슈너(Tony Kushner)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더 파벨만스 The Fabelmans>(2022)를 구상하게 되었다. 스필버그가 가진 위상과 영향력이라면 밀레니엄 초창기에 영화는 완성되고 개봉되었을 텐데, 우리는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후에 그의 회고담을 듣게 되었다. 여기엔 꽤 감동적인 사연이 있다. 그 당시는 1917년 출생인 아버지, 아놀드 스필버그(Arnold Spielberg)와 1920년 출생인 어머니 레아 아들러(Leah Adler)가 생존했던 시기였기에 그는 어떤 ‘비밀’을 엄수하기 위해 기다려야 했다. 어머니는 97세인 2017년에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103세인 2020년에 돌아가셨다. 그러나 남은 가족인 세 명의 여동생이 문제였다. 시나리오 초고를 보냈을 때 셋 중에 한 사람이라도 영화화에 반대하면 제작을 단념하겠다는 조건으로 스필버그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2년 후에 기적처럼 우리는 <더 파벨만스>를 영접(!)하게 되었다. 그러니 이 어찌 감동적이지 않겠는가? 이미 <더 파벨만스>는 영화가 되기 전부터(pro-filmic) 우리를 감동에 빠트릴 조건들을 갖추고 있었다. 여기에는 인고의 기다림과 인간에 대한 예의가 있다. 하지만 디제시스 밖에서 이뤄진 감동의 요소는 영화 자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우리가 이러저러한 에피소드를 접하는 시간은 영화를 보고 난 이후이며, 이런 요소들은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나온 우리의 감정을 좀 더 고양하는 차원에서만 작동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필버그의 기다림과 예의에 대한 추앙을 멈추고 오직 디제시스 안으로만 들어가야 한다.
아버지는 천재적인 엔지니어, 감성이 풍부한 피아니스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유대인 소년이 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연주하는 곡의 가장 열렬한 청중이며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가 얼마나 자신을 배려하고 사랑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소년 밑으로 세 명의 여동생도 있다. 말썽꾸러기 한 사람 없는 그들 가족은 화목하다. 불안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소년의 할머니는 기품 있는 듯 행동하지만, 꽤 유별난 기질로 며느리를 힘들게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설정은 긴장감을 유발할 수는 있을지언정 가정을 송두리째 뒤흔들만한 요소로 작용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아버지에겐 조수이자 친구인 유쾌한 남자가 있다. 그는 친구가 결혼해서 아이를 넷 둘 동안 왜 홀로 지내는가? 바로 소년의 어머니 때문이다. 아버지가 자신의 배우자에 대한 남자의 연정을 눈치 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소년은 우연한 기회에 어머니의 밀회를 목격하게 된다. 어머니와 조숙한 소년은 비밀을 유지하기로 협약을 맺는다. 몇 년 후 그들 가족은 아버지의 이직으로 인해 유쾌한 남자를 뒤로한 채 서부에 정착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를 잊지 못해 우울증에 사로잡혀 집안일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다. 결국 아버지와 어머니는 서로를 배려하면서 헤어진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리워하던 유쾌한 남자에게 간다. 가족이 해체되기 직전 그녀는 소년에게 이렇게 말한다. “모든 것은 가슴이 시키는 대로 하려무나.”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자신도 그렇게 살았기 때문이다. 소년은 이 말에 용기를 얻어 자신의 꿈을 찾는 삶을 살기로 마음먹는다.
이상이 <더 파벨만스>의 이야기이다. 물론 여기에는 ‘영화적 모멘텀’들이 빠져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순간들이 삭제된 이야기 역시 자못 감동적이긴 하다. 엔지니어와 예술가라는 상반된 캐릭터가 만나서 서로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지만, 그들은 서로에게 성실하고자 노력했고 가족을 무척 사랑함으로써 갈등을 봉합한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각자의 삶을 택하게 된다. 너무나 우아한 방식의 이별, 나는 이런 이별을 보지 못했고, 상상해 본 적도 없다. 그래서 감동적이었다. 하지만 그 감동은 낯선 감동이었고 현실감 있게 와 닿지 않았다. 내가 느낀 또 다른 감동은 부자, 모자 관계였다. 아버지는 자신과 다른 성향의 아들을 위해 본인이 할 수 있는 수준에서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어머니 역시 아버지 못지않게 아들을 격려하고 공감하려고 노력한다. 영화는 내가 경험하지 못한 이런 식의 세련된 우아함이 곳곳에 배어 있다. 나는 이 우아함에 감동했으리라. 어쩌면 그것은 감동이 아니라 부러움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소년의 부모는 영화에서보다 더 추잡하게 서로를 헐뜯으며 갈라섰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스필버그의 회고담을 보는 중이기 때문에 그런 상상은 허락되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스필버그가 펼쳐놓은 이야기를 따라가면 된다.
전술한 것과 다른 빛깔의 감동도 있다. 바로 소년이 꿈을 이루는 과정이다. 나의 꿈은 도대체 몇 번이나 바뀌었던가? 의사, 변호사, 사업가, 과학자, 만화가, 유엔 직원, 소설가 그리고 지금은…. 아무튼 골백번도 더 바뀌는 유년기의 꿈을 이 소년은 그대로 유지한 채, 마침내 그 분야에서 최고로 성공한 인물이 된다. 여섯 살 때부터 바라던 꿈이 한때 시련을 맞이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단련한다. 그렇기에 고난을 극복하는 과정 역시 감동적이다. 소년은 어린 나이에 엄청난 비밀을 알게 되지만 이에 성숙하게 대처하여, 미숙했던 유년 시절의 나를 돌아보게 한다.
171cm, 소년이 성인이 된 다음 그의 최종 신장이다. 또래보다 작은 이 유대인 소년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다양한 폭력을 경험했다. 자신보다 한 뼘 이상 큰 동급생들은 “예수를 죽인 유대인”이니 사과하라고 놀려대고, 사물함 안에 베이글을 대롱대롱 달아놓으면서 겁을 주기도 했다. 그런데도 그는 참으로 의연하다. 그는 절대 비굴하지 않았고 영웅처럼 굴지도 않았다. 하지만 실제로 스필버그의 학창 시절이 그러했을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우리는 단지 그가 펼쳐 보이는 회고담을 조용히 따라가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이 부분을 상상하는 것 역시 금물이다.
다시 한번 이 영화가 왜 감동적이었는지를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고심 끝에 이렇게 답한다. 그것은 감동이라기보다는 부러움. 인물들이 보여준 우아함과 꿈의 지속을 가능하게 하는 의지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던 풍요로운 이 나라의 물적 토대에 대한 부러움이었다. 감동과 부러움을 구분하지 못한 평론가라니….
2. <더 파벨만스>... 왜 관객보다는 전문가에게 환영받는가?
정신을 차려야 할 필요성을 스스로 제기해본다. 감동과 부러움을 구분하지 못한 채 극장을 나섰던 나 자신을 책망하면서 신문과 잡지의 글들을 봤고, 로튼 토마토 평점을 살폈다. (물론 신랄하게 비판하는 외국 평론가도 있었지만) 소셜 미디어에서는 한목소리로 감동을 이야기했다.이들이 말하는 감동의 요체는 무엇일까? 대여섯 번 등장하는 영화와 인생과의 유비, 그리고 이를 아우르는 스필버그의 영화론. 그것이 전문가와 시네필을 감동으로 이끈 요체일 것이다. 세실 B. 드밀(Cecil B. DeMille)과 존 포드(John Ford)가 영화사적으로 얼마나 위대한 감독인지 아는 것 그리고 스필버그가 처음으로 만든 서부 영화가 <리버티 발란스를 쏜 사나이 The Man Who Shot Liberty Valance>(1962)에서 영감을 얻었다거나 여섯 살 때 벌인 그 엄청난 영화적 경험이 드밀의 <지상 최대의 쇼 The Greatest Show on Earth>(1952)를 따라 한 것이라는 사실의 발견은 전문가와 시네필에게 자족감을 준다. 이 글을 쓰는 나는 전문가 행세를 해야 하기에 여기서 멈추지 않고 좀 더 분석적으로 그러나 조금은 반항적인 태도로 이 감동의 요체에 접근해보기로 했다.
* 영화적 모멘텀 1. - 스펙터클의 위력을 깨닫다.
우리는 <더 파벨만스>에서 다섯 개의 단편 영화 혹은 영화적 모멘텀을 본다. 첫 번째는 드밀의 <지상 최대의 쇼>를 보고 감동 받은 여섯 살 소년, 샘이 기차 탈선을 재현한 장면이다. 아버지는 과학자답게 영화의 원리인 잔상 효과를 세심하게 설명한다. 하지만 샘은 자상한 아버지의 설명에는 관심이 없다. 어린 샘은 영화를 보고 온 그날 밤, 꿈에서 본 장면을 재현하는데 골몰한다. 이 에피소드는 샘, 그러니까 어린 스필버그에게 영화가 주는 첫 번째 의미, 즉 스펙터클로 읽힐 수 있다, 유대인의 명절, 하누카의 선물로 받은 기차를 이용해 사고(?)를 저지른 샘을 대하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태도는 확연히 구분된다. 어머니는 “꿈은 좋은 거란다.”라고 그를 응원하고 아버지는 “왜 충돌을 봐야 하는 거야?”라고 푸념한다. 샘이 기차 충돌 장면을 재현하는 것을 보면서 그가 일으킨 소동이 훗날 우리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갔던 스필버그의 작품들 곳곳에 펼쳐져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흐뭇해진다. 영화로 재현된 스펙터클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율과 쾌를 불러일으키는 SFX의 적자는 제임스 카메론(James Cameron)이지만 그 이전에는 응당 스필버그였다. 그는 데뷔작 <듀얼 Duel>(1971)에서는 소박하게 트럭 한 대를 전복시켰지만 이후 점차 규모가 커져 바다를 상어의 살점과 피로 도배하고 자전거 탄 소년이 하늘을 날게 한다. 그리고 1억년의 시공을 초월하여 공룡을 소환하면서 어린 시절, 그 자신을 매혹했던 스펙터클로 무장한 환영의 세계로 관객을 인도한다. 이 세계에서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던 스필버그의 첫 번째 영화적 모멘텀은 그러므로 충분히 설득적이며 개연성 있는 에피소드였다. 자신이 매혹된 세계로 자신의 영화 관객을 인도하는 일. 이 엄청난 일은 기껏 여섯 살 때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 영화적 모멘텀 2. - 거짓으로 진짜(진실)를 만드는 법을 깨닫다.
우리는 영화적 사건을 만드는 네 가지 방식을 알고 있다. 거짓(가짜)을 가지고 거짓을 만드는 재담꾼의 방식, 거짓을 가지고 진짜(진실)를 만드는 예술가의 방식, 진짜(진실)를 가지고 거짓을 만드는 사기꾼의 방식, 진실(진짜)을 가지고 진실(진짜)을 만드는 다큐멘터리스트의 방식. 이 네 가지 조합 이외에 우리는 다른 방식을 상상하기 어렵다. 물론 진실과 거짓의 이분법을 해체하고 ‘거짓의 역량’이라는 니체의 언어에 기댄 수많은 현대 예술영화들이 존재하지만 이는 스필버그와 같은 스펙터클 전문가에겐 어울리지 않는 개념이다. 영화(예술)적 사건을 만드는 네 가지 방식은 어떤 한 영화를 이끄는 방식이기도 하지만 작품 속에 혼재되어 있기도 하다. 스필버그는 <더 파벨만스>에서 우선 거짓으로 진실을 말하려 한다. 샘은 스필버그 자신이지만 한편으로 창조된 인물이다. 그러므로 이 영화의 외형은 거짓이다. 그런데 거짓으로 진실 만들기는 지금껏 스필버그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의 진정한 관심사는 거짓으로 거짓 만들기였다. 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거짓은 우리가 그것을 진짜(진실)라고 믿도록 유혹한다. 거짓 혹은 가짜를 가지고 진짜 혹은 진짜처럼 보이게 하는 기술을 스필버그는 청소년 시절에 이미 깨달았다. 이 두 번째 영화적 모멘텀 역시 어머니가 그에게 인도한 것이다. 서부로 가기 전에 중간 정착지였던 애리조나 피닉스에서 보낸 중학교 시절, 샘은 급우들을 동원해서 조악한 서부 영화를 만든다. 하지만 편집한 러쉬 필름을 보면서 그는 총싸움 장면에 박진감이 떨어진다는 것을 깨닫는다. 샘은 어머니의 하이힐에 찍힌 악보에서 힌트를 얻어 필름에 미세한 구멍을 뚫는다. 이 뚫린 구멍 사이로 빛이 들어오자, 총구에서 총알이 발사될 때 발생하는 ‘번쩍거림’이 비로소 완성된다.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사건, 즉 가짜를 진짜처럼 만들어서 우리를 전율에 빠트리는 스펙터클의 위력을 그 어린 나이에 깨달은 샘 혹은 스필버그는 가짜에 또 다른 가짜를 덮어씌워 진짜처럼 보이게 만드는 법까지 터득한다. 가짜의 위력에 빠진 소년이 마냥 스펙터클의 세계로 내달렸다면 과연 오늘날의 스필버그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당연하게도 영화 <더 파벨만스>는 아름다운 가짜에 현혹된 자신에게 한 번 정도는 반영적으로 사고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기대할만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만 76세에 이른 감독이 자신의 70년 영화 인생을 반추하는 ‘인생 드라마’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좌절과 굴곡이 없다면 그것은 드라마의 자격이 없을 것이다.
* 영화적 모멘텀 3. - 영화가 진실을 포착할 수 있다니!
스필버그에게 ‘삶의 진정성’을 기대하면서 그의 영화를 보러 가는 관객이 얼마나 될까? 스물다섯 살에 데뷔한 이후 할리우드의 기린아로 추앙받던 그는 어느 순간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탐하기 시작한다. 가짜와 스펙터클 양산에만 머무르진 않겠다는 다짐을 우리는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종종 목격한다. <컬러 퍼플 The Color Purple>(1985)과 <쉰들러 리스트 Schindler's List>(1993)는 분명, 변화 모색과 이에 따른 자기 확신을 통해 만들어진 작품이다. 유년 시절 찍었던 영화에서 발견한 위대한 진실의 순간을 피처 필름으로 이식하려는 욕망. 샘과 스필버그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던 이 욕망은 가족 피크닉 영화를 편집하다가 우연히 알게 된 어머니의 불륜 사실에서 촉발된다. 아버지 친구인 베니와 함께한 여행, 하지만 가족들은 야외에서 즐기는 한가한 놀이에 빠져 그 누구도 진실을 알아채지 못한다. 베니는 특유의 유머와 위트로 가족들을 즐겁게 한다. 분위기에 취한 어머니는 모닥불을 배경으로 춤을 춘다. 눈치 빠른 베니는 즉시 자동차 조명을 켜서 이곳을 무대로 만들어버린다. 어머니는 베니가 만들어준 촬영장에서 배우 노릇에 빠져있다. 잠옷을 통과한 불빛이 어머니의 굴곡진 몸매를 그대로 드러내자, 조숙한 여동생은 가족이 아닌 베니가 보지 못하도록 그녀를 가로막는다. 하지만 이때에도 가족들은 어머니와 베니의 은밀한 연애를 짐작조차 못 한다. 가족들의 눈, 이 눈은 카메라의 눈과 달리 온정적이며, 인간적이다. 그런 눈을 가진 인간에게 비밀은 속살을 쉽게 내비치지 않는다. 어머니는 왜 이런 파격적인 행동을 감행했을까? 그녀가 벌인 이상한 공연은 어떤 관객을 가정했을까? 가족들이 간과했던 진실은 탈인간적인 카메라의 눈에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다. 카메라에 중독된 샘은 이 비인간적인 시각에 내재된 진실을 발견한다. 그동안 눈속임과 가짜로 진짜 만들기 놀이에 빠져있던 샘에게 이 발견은 진실을 넘어 두려운 감정으로 다가온다. 카메라의 무서운 힘을 알게 된 소년은 이제 영화가 무서워진다. 하지만 카메라의 눈에서 벗어나려고 해도 그럴 수 없다. 사물의 운동에 관한 진실을 포착하는 카메라의 눈을 자연스럽게 장착한 샘은 그래서 할머니의 죽음을 누구보다도 빨리 알아챈다. 카메라와 식별 불가능한 눈을 가진 그 앞에 나타난 친척 할아버지는 “예술이 네 삶과 가족을 찢어놓을 것”이라고 말한다. 예술이라는 마약에 중독된 자신의 현재를 반복하려는 손자에게 보내는 이 늙은 배우의 애정 어린 조언이자 섬뜩한 경고는 샘을 우울하게 만든다. 진실의 무서운 힘을 깨달은 그는 영화를 멀리하려 한다.
* 영화적 모멘텀 4. - <Escape to Nowhere>
어릴 적 생각했던 것과 달리 영화가 즐거움만을 주는 수단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영화에 매달린다. 어쩌면 그가 유년 시절 만든 소박한 전쟁 영화, <Escape to Nowhere>는 제목 그대로, 가족 관계에서 좌절을 겪은 샘의 ‘피할 수 없는 도피처’였을 것이다. 주연 배우를 연기했던 덩치 큰 친구 녀석은 샘에게 연기 디렉팅을 받다가 어느 순간, 영화와 현실을 구분할 수 없는 지경에 빠진다. 컷 사인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내러티브에 흠뻑 빠진 이 친구는 눈물을 머금고 ‘전우들이 죽어 널브러진’ 들판을 가로질러 석양이 지는 노을 저편으로 한없이 걸어간다. 그때 스필버그의 카메라는 이 장면을 의미심장하게 쳐다보는 샘을 클로즈업한다. 샘은 이 에피소드를 통해 다시 한번 영화와 이야기의 위력을 깨달았을 것이며, 통제력의 한계를 절감했을 것이다. 마을에 있는 영화관에서 정식(!) 개봉한 이 영화에 지인들은 열광했고 어머니는 이제 샘이 일반인이 아니라고 추켜세운다. 그녀는 자신이 못다 이룬 예술가의 꿈을 아들이 대신하는 것을 보면서 환호작약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샘의 고민이 깊어간다. 그녀는 점점 거리를 두는 아들과 가까워지려고 애쓰지만 샘은 여전히 어머니를 차갑게 대한다. 참다못한 그녀가 그 이유를 묻자 샘은 진실이 담긴, 그러나 가족 피크닉 영화에는 누락 되었던 ‘진짜’를 보여준다. 가짜가 아닌 진짜를 본 그녀는 오열한다. 그리고 샘과 어머니는 이 ‘비밀’을 봉인하는 데 합의한다. 물론 이 봉인은 60년쯤 후에 해제되어 우리 앞에 펼쳐진다. 영화에 담긴 비밀을 회피하고 싶었고 가족이 산산이 찢긴 삶이 두려웠던 그는 이제 영화를 그만두기로 한다. 잠정적으로.
* 영화적 모멘텀 5. - 진짜를 가지고 거짓 만들기
디치 데이(Ditch Day), 일명 스킵 데이(Skip Day)라고도 불리는 이날은 미국 고등학교 학생들이 공식적으로 땡땡이치는 날이다. 갑갑한 캠퍼스에서 벗어난 학생들은 탁 트인 해변에서 마음껏 젊음을 발산한다. 그동안 영화를 포기했던 샘은 운명처럼 다가온 첫사랑의 설득으로 인해 다시 감독으로 복귀한다. 그가 컴백을 선언한 이유는 알 수 없다. 독일산 16mm 애리플랙스 카메라를 사용해보고 싶다는 순수한 열망과 첫사랑 소녀의 간절한 눈빛이 그런 결정을 내리게 했다고 짐작할 뿐이다, 일단 카메라를 잡은 샘은 여섯 살 때부터 갈고 닦았던 모든 역량을 <디치 데이>에 투여한다. 샘은 진짜(사람, 갈매기, 아이스크림)를 몽타주 해서 갈매기에게 봉변당하는 사람이라는 완벽한 가짜를 만들며 자신의 옛 기량을 확인한다. 그리고 가족 피크닉 영화를 제작하면서 여실히 깨달은 카메라의 역능을 발동시켜 급우들의 비밀스러운 행동을 관객들에게 누설시킨다. 그리고 영화를 통해 누구도 예상치 못한 복수를 감행하려 한다. 그 와중에 마침내 부모는 이혼을 선언한다. ‘가족이 산산이 찢긴 삶’ 속에서도 편집에 몰두하는 샘을 보면서 여동생은 자신들을 버리고 베니에게 간 어머니와 똑같은 인간이라고 비난한다. 하지만 “모든 것은 가슴이 시키는 대로” 살라고 말한 어머니의 충고를 영혼에 새긴 샘에게 여동생의 푸념은 들리지 않는다. 자신을 가장 이해했던 어머니와 첫사랑마저 떠난 샘에게 남은 건 영화밖에 없다. 그는 영화를 통해 자신을 괴롭혔던 일당들 특히 무리의 대장, 로건에게 드디어 복수를 감행한다.
샘은 <디치 데이>를 상영하던 날, 자신을 곤경에 빠뜨리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로건을 그리스 신화의 영웅처럼 만들어 모두의 환호를 받게 만든다. 하지만 정작 스타가 된 로건은 어찌할 바를 모른다. 그렇게 괴롭혔건만 도대체 왜 자신을 이렇게 영웅처럼 묘사했을까? 궁금증을 참지 못한 로건은 샘을 찾아온다. 그리고 로건은 샘의 영악함을 그리고 한편으로는 ‘과분한 선물’의 의미를 깨닫는다. “왼쪽 뺨을 때리면 오른쪽 뺨을 내주어라.” 폭력을 폭력으로 되갚게 되면 영원히 복수의 사슬을 끊을 수 없다. 자신이 저지른 폭력에 미소로 화답한 샘에게 로건은 모멸감을 느끼지만 그를 진심으로 두려움에 떨게 만든 것은 샘이 만든 예술의 위력이었다. 평범한 것을 위대한 것으로 둔갑시켰다면 그 반대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가짜와 진짜를 조합해서 생산한 ‘무서운 결과’ 앞에 로건은 결국 백기를 든다.
* 영화적 모멘텀 6. - 존 포드가 어쨌기에
금방 손에 잡힐 것 같았지만 샘에게 영화는 아직은 요원한 것이었다. 그는 공부를 잘해서 명문대에 입학한 것도 아니며, 유력한 집안의 아들도 아니었다. 유년 시절 만들었던 단편들은 그의 빛나는 재능을 증명해주었지만 샘은 여전히 기회를 잡지 못한다. 그는 좌절하지 않고 줄기차게 자기소개서를 여러 제작사에 보낸다. 그러다가 영화제작사가 아닌 방송국에서 연락이 온다. 지푸라기라도 잡을 심산으로 방문한 방송국, 그곳에서 샘은 자신의 영웅을 만난다. 미국 영화의 아버지 ‘존 포드’, 유년 시절 만들었던 어설픈 서부 영화 장르를 완성한 거인을 마주하게 된 샘. 단답형으로만 대답해 인터뷰하기 가장 힘든 인물로 꼽히던 살아있는 전설, 포드는 조무래기 감독 지망생에게 그답지 않게 ‘장황하게’ 한 수 가르쳐준다. 그들의 대화를 간략하게 요약해서 들어보자.
포드 : 저 그림 보이냐?. 거기 앞으로 걸어가라. 그리고 묘사해 봐라(마뉴먼트 벨리를 배경으로 서 있는 말 탄 두 남자)
샘 : 두 사람이 있고 그들은 뭔가를 찾고 있습니다.
포드 : 아니야 그런 거 말고 지평선이 어디에 있지?
샘 : 지평선이요? 아래쪽에 있습니다.
포드 : 그럼 저 그림 쪽으로 걸어가 봐(움푹 팬 큰 구덩이 속에 다섯 정도의 카우보이가 적에게 총을 겨누고 있다)
샘 : 5명의 카우보이가….
포드 : 빌어먹을 지평선이 어디냐니까
샘 : 그림의 맨 위에 있습니다.
포드 : 좋아, 이것을 꼭 기억해라. 지평선이 바닥에 있을 때 그건 흥미롭다. 지평선이 맨 위에 있으면 그것도 재미있다. 지평선이 중간에 있을 때는 지랄 같게 지루해지지. 행운을 빈다.
진짜와 가짜를 영화적으로 버무리는데 능숙해진 스필버그에게 진짜 ‘도사’ 포드는 이렇게 딱 한 수를 가르친다. 그것은 바로 ‘시점’의 문제. 어떤 시점으로 인물을 배치하는가에 따라서 흥미가 유발될 수도, 반감될 수도 있다는 조언, 이 조언을 그대로 실행하려는 듯, 영화의 엔딩은 지평선의 미장센을 좀 더 위로 끌어 올리면서 마무리된다. 영화를 보는 관객은 이 장면 이전에 이미 샘이 스필버그의 유년과 청년기를 이식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인식한다. 그러나 샘이 만든 영화에 포드의 조언을 반영한 쇼트를 삽입하는 것이 아닌 <더 파벨만스>를 만든 스필버그가 포드의 조언을 실행했다는 사실이 기입된 이 장면으로 인해 우리는 샘과 스필버그의 상동성을 의심할 수 없게 된다. 물론 포드의 교훈을 그대로 따라 하는 현대의 ‘감독 지망생’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 포드의 교훈이 영화의 유일한 비밀이었다면 이 세계에는 포드식 영화만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평선이 중간에 있다 하더라도 영화는 별 탈 없이 작동되며 심지어 재미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포드의 교훈은 영화라는 가공의 디제시스를 현실과 엄격하게 구분 지어야 한다는 고전적 예술관에 기인한 것이다. 우리가 현실에서 보는 지평선은 대부분 중간에 걸쳐있다. 카메라가 땅에 붙어 앙각으로 자리 잡고 있을 때나 지평선이 아래쪽에 위치할 것이다. 그리고 카메라가 인물과 이 세계를 부감으로 쳐다볼 때만 지평선은 저 멀리 위에 존재하게 될 것이다. 앙각과 부감은 부자연스러운 시점이다. 그것은 현실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시점이 아닌 가공된 디제시스를 현실과 구분하려는 예술가의 시점을 대변한다. 그러므로 포드의 교훈은 철저히 고전기 할리우드의 패러다임을 역설한다.
이로써 우리는 스필버그가 만났던 영화적 모멘텀들과 포드의 교훈을 경유하여 스필버그의 영화론 강의를 상세히 들어봤다. 이를 요약해보자. “영화는 일차적으로 꿈, 즉 스펙터클을 생산해야 하며, 거짓과 진실을 조합해서 다양한 영화적 사건을 만들어 내야 한다. 그것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진실을 드러낼 수 있으므로 때에 따라서는 매우 위험하다. 좋은 영화란 현실 그 자체와는 다르다. 영화는 일종의 디제시스를 창조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현실과 다른 관점으로 영화가 만들어져야 한다. 관객이 지루하게 만들지 않아야 이 디제시스는 의미를 지닌다.” 그렇다면 우리는 스필버그의 영화론 강의에서 무엇을 느끼는가? <미치광이 피에로 Pierrot le fou>(1965)를 본 한 기자가 고다르(Jean-Luc Godard)에게 유혈이 낭자해서 너무 잔인하지 않냐고 시비를 걸자, 그는 “이것은 피가 아니다, 붉은 색이다(Ce n’est pas du sang, c’est du rouge)”라고 답한다. 영화사에 등재된 이 유명한 대거리는 바야흐로 고다르의 이미지 페다고지(pedagogy)의 시작을 알린 일성이었다. 우리는 영화와 이미지에 관련된 페다고지의 몇 가지 선례를 알고 있다. 시각적 에스페란토를 도모했던 베르도프(Dziga (Dzyga)의 <카메라를 든 사나이 Man with a movie camera>(1929), 변증법적 몽타주와 상징적 몽타주라는 서로 다른 방식이 공존하는 ‘문장-이미지’라는 개념을 통해 이미지 읽는 법을 교육하려던 고다르의 <영화의 역사(들) Histoire(s) Du Cinema>(1988-1998) 그리고 지난 2016년에 작고한 키아로스타미 Abbas Kiarostami)의 <24 프레임 24 Frames>(2017) 그리고 아직 영화사에 등재되지 못한 무명의 위대한 예술가의 그것.
그렇다면 이 목록에 과연 스필버그 철 지난 교훈이 추가될 수 있을까? 물론 그렇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전술한 위대한 작가들은 이미지(시네마) 페다고지라는 개념에 어울리는 영화를 만들었지만, 스필버그는 할리우드를 오랫동안 지탱했던 고전적 패러다임을 글자 하나도 고치지 않고 반복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두에서 말했던 감동 요소에서 그의 영화 교육론을 지워야 한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감동 요소는 단 한 가지뿐이다.
3. 차라리 고별사이기를...
정말 훌륭한 ‘영화에 관한 영화’ 즉 메타 영화는 너무도 많아서 그 목록을 일일이 거론하기란 참으로 지난한 일이다. 그러므로 <더 파벨만스>는 스필버그가 처음으로 시도하는 메타 영화라는 이유만으로 내게 감동을 주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만약 이 영화를 메타 영화로 규정한다면 <더 파벨만스>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왜냐하면 <더 파벨만스>를 메타 영화의 명작 목록에 끼워 넣으려면 다음 질문에 긍정적인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자기 반영적인 차원에서 예술가의 자기 점검을 다루는가?”, “새로운 미학을 선보이는가?”, 그것도 아니라면 “영화를 가능하게 하는 디스포지티프와 꿈의 상관관계를 새로운 차원에서 다루고 있는가?” 조금 더 단순하게 접근해서 꿈과 영화가 양산한 스펙터클 사이의 유비 관계를 논하는 작품이라면 버스터 키튼(Buster Keaton)의 <셜록 주니어 Sherlock Jr.>(1924) 보다 감동적인 작품은 없다. 등장인물이 보지 못한 숨겨진 진실이 화면 속에 기입되어 있다는 것을 주장하는 영화라면 안토니오니(Michelangelo Antonioni)의 <확대 Blow-Up>(1966)의 인식론을 따라갈 작품은 없다. 그렇다고 스필버그의 단편들이 미장아빔으로 기능하는 것도 아니다. 단순한 영화적 모멘텀들로 꾸려진 에피소드는 철 지난 교보재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홍상수나 고다르의 기묘한 미장아빔을 기대할 수 없다. 하다못해 <더 파벨만스>는 정지영의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1994)처럼 인물의 시네필적인 면모가 적극적으로 드러나지도 않기에 영화관에서 이를 지켜본 시네필들의 공감을 사지도 못한다. 집단적 노스텔지어를 자극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아카이브로 인해 주세페 토르나토레(Giuseppe Tornatore)의 <시네마 천국 Cinema Paradiso>(1988)이 주었던 환희 역시 기대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파벨만스>를 메타 영화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어떤 미학적 성과 없이 단지 영화적 모멘텀이 삽입된 작품을 보고 감동했다는 사실을 ‘영화하는 사람들’은 인정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더 파벨만스>를 보고 느낀 감동의 요체는 이 작품을 스필버그의 ‘고별사’라고 여겼기 때문인 것 같다. 스필버그의 젊은 감각과 노익장은 72세 때 만든 <레디 플레이어 원 Ready Player One>(2018)에서 충분히 증명되었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고별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머니와의 비밀 협약을 지키기 위해 무려 60년을 버틴 회고담으로 구성된 <더 파벨만스>를 보면서 나는 스필버그가 ‘자신의 퇴장을 이렇게 알렸으면 좋겠다.’라고 절실히 바랐던 것 같다. <뉴욕의 왕 A King in New York>(1957)과 <홍콩에서 온 백작부인 A Countess From Hong Kong>(1967)이 있지만 나는 언제나 채플린(Charles Chaplin)의 진정한 고별사를 <라임라이트 Limelight>(1952)라고 생각해왔다. 마찬가지로 레네(Alain Resnais)의 고별사는 <사랑은 마시며 노래하며 Aimer, boire et chanter>(2014)가 아닌 <당신은 아직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 Vous n'avez encore rien vu>(2012)라고 여긴다. 채플린의 고별사는 언제 봐도 슬프고 레네의 고별사는 그 자체로 겹겹이 쌓인 우주를 대면하는 것 같다. 고별사를 발화할 생각이 없는 감독은 자신의 불멸을 상상한다. 그러나 아무리 위대한 예술가도 세월을 이길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더 파벨만스>가 스필버그의 고별사라면 시기와 주제적 측면에서 너무도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비밀의 봉인 해제를 위해 긴 세월을 기다린 만큼 스필버그는 적잖은 소득을 얻었다. 비록 수상하지는 못했지만, 아카데미는 감독상과 작품상 포함 일곱 개 부분에 노미네이트했으며, 골든글러브는 감독상과 작품상을 동시에 수여했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버릇없는 나를 제외한 대부분 평자에게 상찬도 받았다.
박찬옥의 <질투는 나의 힘>(2002)에서 출판인으로 등장하지만, 한때나마 예술가를 꿈꿨던 윤식(문성근)은 이렇게 말한다. “예술가란 말이야, 평생을 팔아먹을 수 있는 상처가 있어야 해. 근데 나는 너무 행복하거든. 그래서 포기했지.” 스필버그는 그 상처를 당장 팔아먹지 않고 버텼다. 그리고 고희를 훌쩍 넘어서 이를 영화로 만들었다. 이만하면 최고의 마무리이자 고별사가 아닐는지.
글·김채희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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