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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승의 시네마 크리티크] '마약 영화' 속 인터-아시아, <범죄도시 1, 2, 3>
[김현승의 시네마 크리티크] '마약 영화' 속 인터-아시아, <범죄도시 1, 2, 3>
  • 김현승(영화평론가)
  • 승인 2023.07.10 10: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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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도시> 시리즈와 <쓰리, 몬스터>를 중심으로
출처 : 네이버 영화
출처 : 네이버 영화

<쓰리, 몬스터>(2004)는 동아시아 삼국의 감독들이 한 편씩 연출을 맡아 제작된 옴니버스 형식의 호러 영화다. 당시 국내에서는 <올드보이>(2003)로 주가를 올리던 박찬욱 감독이 참여하며 화제를 불러 모았다. 하지만 영화가 개봉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정성일 평론가는 자신의 글(정성일의 영화세상)에서 이 영화의 ‘불순한 목적’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서로 다른 국적을 가진 감독이 함께 영화를 만든 목적은 시장을 하나로 합치기 위해서다. 그것은 영화의 토대가 결국은 자본이기 때문이다. … 투자자에게 기쁨을 주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는 박찬욱의 인터뷰는 역겹다.” 요약하자면 세 명의 감독이 자본의 논리에 포섭되었고, 그렇게 제작된 영화가 서로에게 시장의 부담을 전가하는 역할을 할 뿐이라는 지적이다.

정성일 평론가는 <쓰리, 몬스터>가 “서로 다른 문화권 사이의 차이에 대한 논쟁을 벌일 생각이 없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비판을 구체화한다. 그에 따르면 “아시아 영화의 연대는 허울 좋은 명분”일 뿐이다. 현대 영화가 자본에 토대를 두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또한 역사적으로 자본의 평화로운 공존은 존재한 적이 없기에, “서로의 문화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더더구나 연대를 하면 안 된다.” 그는 투자자의 주도로 한국 영화 관객이 아시아의 관객으로 전환될 때, 이로 인해 관객이 얻는 것은 “무국적성-비역사성-탈민족성의 삼위일체”라며 비판을 이어나간다.

정성일 평론가의 분노 서린 글이 쓰인 지 약 20년 뒤, 한국 영화계는 전례 없는 위기를 맞았다. 전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팬데믹과 더불어 OTT 업계의 약진으로 극장에서 한국 영화를 찾는 관객의 수가 현저히 감소한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흥행 신화를 이루어낸 영화가 있다. 이상용 감독의 <범죄도시> 시리즈다. <범죄도시>(2017)의 후속작인 <범죄도시 2>(2022)와 <범죄도시 3>(2023)은 각각 1227만, 1043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흥미로운 점은 후속작들에 대한 평가에 ‘반복’이라는 키워드가 자주 언급된다는 것이다. 서사 진행은 물론 개그의 타이밍까지 후속작이 전작의 변주에 불과하다는 의견이 많은 관객의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런데, <범죄도시> 시리즈의 변주에 유독 눈에 띄는 요소가 있다. 바로 악역들의 다양한 국적이다. 첫 번째 시리즈에서 조선족이 많이 거주하는 가리봉동이, 두 번째 시리즈에서 베트남이, 세 번째 시리즈에서 중국과 일본이 주요 로케이션으로 설정된다. 뜻밖의 ‘인터-아시아’ 영화가 제작된 이유는 영화가 마약 범죄를 다루기 때문이다. 마약을 중심으로 아시아 국가들이 한데 모이는 사례는 한국 상업 영화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도합 20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불러 모은 <극한직업>(2018)과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2020)는 각각 중국과 태국을 마약이 유통되는 공간으로 묘사한다.

이처럼 국내 상업 영화에서 마약의 출처는 대부분 해외거나 타지로부터 온 외국인이다. 대한민국을 마치 마약 청정국처럼 묘사하는 설정은 범죄의 원인을 한민족 바깥으로 돌리며 견고한 선악의 이분법을 세운다. 그런데 이때의 이분법은 ‘국민국가’의 틀에 갇힌 기존의 한국 역사영화와 차이점을 갖는다. 오히려 이는 ‘우리’와 ‘타자’만을 나누는 타자-배제적 태도에 가깝다. 국민국가의 틀에 갇히기 위해서는 각국의 특수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와 반대로 <범죄도시> 시리즈는 동아시아 내부의 역사·사회·정치적 맥락을 무화한다. 가령 영화에서 마약을 공급하는 조직의 국적은 한반도 바깥에서 온 타자라는 점을 제외하면 무의미하다. 중국, 일본, 베트남 등 다양한 로케이션은 벤야민적인 의미에서 상품의 ‘반복 동일성’을 감추는 데 그친다. 이는 결국 정성일 평론가가 과거 지적했던 “무국적성-비역사성-탈민족성의 삼위일체”로의 복귀와 같다. 악을 처단하는 최종적인 해결자가 항상 ‘한국’ 남성 형사 마석도라는 사실은 영화가 그어놓은 ‘우리-타자’의 구도를 완성한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출처 : 네이버 영화

대중문화 속 마이너 트랜스내셔널리티

국내 상업 영화는 외국인 타자에게 마약 범죄의 원인을 돌리고 악의 역할을 떠넘겼다. 하지만 이렇게 배제된 타자들 또한 현실에서 피해자 중 일부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급속도로 증가하는 약물 오남용은 더 이상 치안이 좋지 않은 일부 국가에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약 영화’에도 변화한 현실을 반영하는 새로운 대안 서사가 요구된다. 급증하는 마약 투여가 아시아 전체 혹은 범세계적 경향임을 염두에 둔다면, ‘마이너 트랜스내셔널리즘(minor transnationalism)’ 개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제 대중문화는 범람하는 마약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재현의 범위를 단일 국가 너머로 확장해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마약을 다루는 영화가 초국가적인 연대를 제시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범죄도시> 시리즈를 비롯한 픽션 영화에서 불법 약물은 대부분 서사의 즐거움을 위한 장치로 소비된다. 이와 같은 영화들이 현실에서 고통받는 피해자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공명하기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다큐멘터리는 약물 오남용 피해자들의 모습에 직접적으로 주목한다. 가령, 넷플릭스에서 제작된 <슈퍼맨 각성제>(2018)와 <헤로인 vs 히로인>(2017)은 미국 내 마약 문제의 심각성과 일상화를 경고했다. 하지만 두 다큐멘터리 모두 한 국가 내의 약물 오남용만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다양한 국적을 가진 피해자들의 연대를 제시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대중문화 속 초국가적 연대의 사례를 발견하기 위해 약간의 우회를 거칠 필요가 있다. 바로 코로나 팬데믹을 다룬 영화들이다. 21세기 최악의 바이러스는 삶의 모든 영역에 큰 변화를 일으켰고 대중문화도 예외는 아니었다. 팬데믹은 영화의 제작과 관객 수는 물론 작품의 내용에까지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미야케 쇼 감독의 <너의 이름을 들여다보면>(2022), 나가에 지로 감독의 <사메지마 사건>(2020), 롭 자바즈 감독의 곡비(2021) 등 아시아의 많은 감독이 코로나(혹은 전염병) 시국을 전제로 시나리오를 작성했다. 본 기사는 2021년 서울여성영화제에서 상영된 마웨이자 감독의 다큐멘터리 <나의 전염병 검역 곰>(2021)에 주목하고자 한다.

상하이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감독은 신작 단편 애니메이션 작업을 위해 프랑스에 도착한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 프랑스가 봉쇄되면서 서둘러 중국으로 복귀해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된다. 가까스로 중국에 도착한 그녀는 ‘의무 격리’라는 새로운 봉쇄를 맞닥뜨리게 되고, 직접 카메라를 쥐어 공권력에 의해 좁은 공간에 갇힌 인간이 마주한 폭력성을 고발한다. 그녀가 머무는 격리 시설은 국가가 운영하는 공간임에도 최소한의 물자만을 제공한다. 와이파이 연결이 끊겨 가족과 연락이 힘든 것은 고사하고, 물과 식사마저 넉넉하게 제공되지 않는 최악의 수용소에 갇히게 된 것이다.

 

출처 : 서울국제여성영화제(SIWFF)
출처 : 서울국제여성영화제(SIWFF)

이 다큐멘터리에서 눈여겨볼 만한 지점은 함께 격리된 사람들의 인종 구성이다. 중국인이 대부분인 이곳에는 외국에서 물 건너온 ‘타자들’이 여럿 포함되어 있다. 영화의 초반부까지 중국인과 외국인은 언어의 장벽으로 인해 단절된 것처럼 묘사된다. 그러나 오랜 격리 기간에서 비롯된 지루함은 이들에게 소통의 창구를 제공한다. 마웨이자 감독은 외국인에게 노트북을 빌려주어 가족과 연락하는 것을 돕는다. 이후 서로 부족한 음식과 물자를 나누며 친밀감을 형성한 이들은 함께 무료함을 견디기 위해 ‘놀이’를 만들기 시작한다. 위 사진에 등장하는 ‘이불로 만든 곰돌이 인형’이 대표적이다.

과거 코로나의 정식 명칭에 대한 논란이 국가 간의 갈등으로 이어진 바 있다. 코로나가 우한 지역에서 발생했다는 것을 감추려는 중국 정부와 이에 맞서는 세계인들이 불꽃 튀는 신경전을 벌이게 된 것이다. 이 같은 갈등은 그저 전염병의 명칭에만 머무르지 않고 중국인 혐오, 더 나아가서는 아시아인 혐오의 정당화로 이어졌다. 이처럼 타자에 대한 혐오가 만연한 시대에 영화는 다양한 국적을 가진 피해자들이 연대하는 모습을 그려낸다. 초반부에 묘사된 프랑스의 봉쇄 정책에서 알 수 있듯이 코로나에 고통받는 피해자는 세계 각국 어디에나 존재한다. 격리 시설에서 감독이 직접 촬영한 트랜스내셔널한 일상, 목소리, 기억은 코로나 팬데믹에 대한 국민국가의 틀을 넘어서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이처럼 예술가들은 대중문화를 활용해 ‘초국가적 연대’를 코로나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제시했다. 다국적의 피해자들이 각자의 일상과 경험을 기록한 아카이브는 연대를 촉발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마약 범죄가 전세계를 관통하는 보편적인 화두로 부상했음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상술한 것처럼 많은 관객을 소구한 국내 대중 ‘마약 영화’의 대부분은 여전히 타자를 배제하며 다양한 국적을 가진 피해자들의 연대를 가로막는다. 마약을 소재로 다루는 영화는 이제 ‘마이너 트랜스내셔널리티’의 관점에서 초국가적인 연대를 지향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정성일 평론가의 지적처럼 마약이라는 키워드 혹은 연대의 ‘초국가성’에 포섭되어 서로 다른 문화권 사이의 차이를 도외시하는 태도는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글·김현승
영화평론가. 2022 영평상 신인평론상으로 등단하였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이론과 예술전문사에 재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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