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온실가스 배출 등 인류의 활동으로 지구가 새로운 지질시대인 인류세(Anthropocene)에 들어섰음을 보여주는 표본지로 캐나다 온타리오주 크로퍼드 호수가 선정됐다.”
- 경향신문(2023년 7월 12일) -
느려진 비바람의 호흡으로 여름이 익어간다. 가지 끝에서 하늘을 향해 나팔 부는 듯한 주황색의 꽃이 눈을 뜬다. 허공과 바닥을 물들인 꽃들은 여름을 파편화시키며 오만과 편견을 흩뜨린다. 능소화로 피어나고 떨어진다. 시간이 흐르고 쌓여가며 흔적을 남긴다. 지구는 흙, 인간, 그리고 상상력으로 퇴적되어 간다. 3P(Petroleum~Plastic~Paradise)를 향해 나아가는 지구 여행길에 블루문이 뜬다.
홀로세(Holocene) / ‘자연’ 중심 / 석유(Petroleum)의 / 퇴적 시대
물, 불, 공기, 그리고 흙. ‘흙’이 나누는 지나간 지구의 얘기. 지구는 생성된 이후 시간의 흐름에 따른, 지질로 대표되는 역사를 갖는다. 이러한 지질 시대(Geological time)는 지구의 역사를 누대(eon)~대(era)~기(period)~세(epoch)~절(age)로 구분한다. 우리는 현생누대의 신생대를 걷고 있다. 신생대의 경우 약 6,500만 년 전 공룡 멸종 이후부터 약 200만 년 전까지를 제3기, 그 후부터 현재까지를 제4기로 부른다. 지구 전체 역사로 보았을 때 아주 짧은 제4기는 다시 플라이스토세를 거쳐 홀로세로 이어진다. 지금의 지질시대는 약 1만 1,700년 전 플라이스토세 빙하기가 끝난 이후의 신생대 제4기 홀로세다. 즉, 우리는 지금 ‘현생누대~신생대~4기~홀로세~메갈라야절’의 한 점으로 살고 있다. 현재의 공식 지질시대인 홀로세(Holocene)는 빙하기 이후 지금까지의 비교적 따뜻한 시기를 말하며, 약 1만 년가량의 시간에 해당한다. 홀로세는 ‘전부’를 뜻하는 그리스어 ‘Holos’와 시대를 의미하는 ‘cene’을 합친 단어로서, 전부 새로운 시대를 의미한다.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하는 원형(原型)과 그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원형은 같거나 비슷한 또는 다른 여러 개가 만들어져 나온 본바탕으로서, 모든 창조와 모방을 위한 근원적 형태인 그 무엇이다. 고유의 속성을 바탕으로 시공간에 따라 변화할 수 있는 다양성을 내포한다. 이러한 원형의 힘은 삼원색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빛의 삼원색인 빨강(Red), 파랑(Blue), 초록(Green)과 색의 삼원색인 빨강(Magenta), 파랑(Cyan), 노랑(Yellow). 원형으로서의 이들 삼원색은 가산과 감산혼합을 통하여 원하는 모든 종류의 색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다양성을 드러낸다. 이를 예술 측면에서 활용한 그림이 피터 몬드리안(Pieter Cornelis Mondriaan, 1872년~1944년)의 <빨강, 파랑, 노랑의 구성 Ⅱ>(Composition II with Red Blue and Yellow, 1930년)이다. 몬드리안의 그림은 자연적인 외형의 특성(형태와 색상 및 그것들의 조합)을 벗어나 탈자연화(denaturalized)를 추구한다. 자연이 나타내는 형태와 색상의 추상화를 위해 수직선과 수평선, 태초의 명징성을 가진 삼원색 및 삼무채색(흰색, 검은색, 회색) 등의 조형 요소를 통해 고유한 예술적 표현법을 찾고자 하는 신조형주의(Neo Plasticism)로 발전된다. 이를 통해 시공간의 접점에 따라 달라지는 대상의 가변성과 특수성을 벗어나, 자연과 세상이 갖고 있는 보편 불변의 법칙을 드러내고자 한다. 그의 그림 <빨강, 파랑, 노랑의 구성 Ⅱ>는 기하학적 사각형 형태 위에 삼원색과 무채색의 색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타내고자 하는 대상의 외형적 특성과 상관없이 수직선과 수평선 및 원색과 무채색을 활용한 지극한 단순함과 반복적 절제를 통한 원형의 캐어냄을 드러낸다.
홀로세는 지구의 역사에서 자연 중심적이며 조감적 원형을 중시하는 지질 시대이다. 구성 인자들은 각 개체의 고유 생태계를 인정하고 침범하지 않는다. 무지에 대한 두려움은 자연과 절대자에 대한 경외로 나타낸다. ‘전부’의 관점에서 전체 집합 내의 부분 집합적인 유한한 삶을 추구한다. 시간이 흐르고 쌓여가며 그들의 흔적을 남긴다. 석유(Petroleum).
인류세(Anthropocene) / ‘인간’ 중심 / 플라스틱(Plastic) / ‘회색 코뿔소’
홀로세가 떠나간 자리에 ‘살아있는 흙’이 나타난다. 인간을 뜻하는 라틴어 ‘Homo’(호모)는 살아있는 흙을 뜻하는 ‘Humus’(후무스)에서 온 것이다. 인간이 들어선다. 경향신문 보도(2023년 7월 12일)에 따르면, 과도한 온실가스 배출 등 인류의 활동으로 지구가 새로운 지질 시대인 인류세(Anthropocene)에 들어섰음을 보여주는 표본지로 캐나다 온타리오주 크로퍼드 호수가 선정됐다고 한다.
‘인류(anthropos)’와 ‘시대(cene)’의 합성어인 인류세는 인류로 인해 만들어진 지질 시대라는 의미로써,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네덜란드 대기 화학자 파울 크뤼천(Paul Jozef Crutzen, 1933년~2021년)이 2000년에 제안한 개념이다. 그는 과도한 산업화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과 핵 개발로 생성되는 방사성 물질 등으로 지구환경이 현재의 홀로세(Holocene)와 크게 다른 새로운 지질시대에 들어섰다며 이를 인류세로 부르자고 주장했다. 즉, ‘인류세’(Anthropocene)는 지금의 ‘홀로세’(Holocene) 이후의 지질 시대를 가리키는 개념이다. 새로운 지질 시대를 정하고 명명하는 과정에 대한 보수성과 객관적 시각의 반대 의견도 있지만, 내년 8월 부산에서 개최될 세계지질과학총회(IGS)에서 인류세가 비준된다면 우리는 새로운 지질 시대에 살게 된다.
한겨레(2023년 7월 3일)는 “인류세가 시작된 시점으로는 신석기 혁명, 유럽의 아메리카 침입, 산업혁명 및 핵무기 실험 등 여러 주장이 있는데, 인류세 실무그룹(AWG)은 ‘대가속기’(The Great Acceleration)가 시작한 1950년대로 보고 있다. 대가속기는 대량생산 대량소비에 기반을 둔 소비 자본주의가 확산한 시대다. 1950년대부터 이산화탄소 농도 등 12개 지구 시스템 지표와 세계 인구 등 12개 사회·경제적 지표가 폭증했다.”라고 한다.
인류세라는 새로운 지질 시대는 홀로세 등 기존의 층서(Stratigraphy) 명명과는 달리 기본적인 지질학적 특성 외에 인간의 진화에 따른 인류 주도적 활동의 폭과 넓이가 복합적으로 반영된 결괏값이다. 호주 국립 대학교(Australian National University)가 개발한 인류세 방정식(anthropocene equation)이 인류의 활동이 기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결과는 “지난 7,000년의 기록을 분석했을 때 태양의 활동, 지구 공전궤도 변화, 화산 폭발 등 자연 요인의 온난화 기여도는 지구 기온을 100년간 0.01℃ 높이는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 45년간 인간의 활동에 의한 기온 상승 속도는 100년 당 1.7℃로 분석되었다. 인간의 활동이 자연보다 170배나 빠르게 기후를 변화시켜 온 것”을 보여준다.
19세기 영국의 대표적 풍경 화가인 윌리엄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1775년~1851년)의 <전함 테메레르>(The Fighting Temeraire;1838년~1839년).
작은 증기선에 의해 끌려오는 테메레르 호는 1805년 트라팔가(Trafalgar) 해전에서 프랑스 나폴레옹과 스페인 연합함대 등과 싸워 혁혁한 위용을 보이며 승리를 쟁취한 전함이다.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하고 증기선에 끌려 해체되기 위해 예인되어 가는 큰 범선의 마지막 모습은, 역사의 한 시기가 끝나는 순간을 자연의 일몰과 대비하여 보여준다. 테메레르 호의 마지막 항해를 이끄는 증기선은 ‘대가속기’의 서막을 열어 주는 산업혁명을 상징한다. 인류세의 시점이 지질 시대를 규정하기 위한 인문사회학적 시각에서 결정된다고 하더라도, 산업혁명이 ‘대가속기’를 위한 핵심적 변속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인류세는 지구의 역사에서 인간 중심적이며 가속적 성장을 중시하는 ’회색 코뿔소‘형 지질 시대이다. 구성 인자들은 각 개체의 고유 생태계를 부정하고 침범한다. 무지에 대한 두려움이 얇아지며 자연과 절대자를 향한 도전을 즐긴다. ‘전체화’의 관점에서 부분 집합을 벗어나 전체 집합으로 무한 확장하는 삶을 그린다. 홀로세를 떠난 시간이 흐르고 쌓여가며 그들의 흔적을 남긴다. 석유(Petroleum)에 이은 플라스틱(Plastic).
AI세(AIcene) / ‘블랙 스완’은 / 배신당한 / 블루문 ?
살아있는 흙의 에너지가 자유로이 흘러넘친다. 에너지의 자유도를 타고 인류세가 황급히 떠밀려 나간 자리에, 덩그러니 놓인 휴대전화와 PC. 데이터가 걸어온다. 데이터는 진격의 거인이 되어, 나와 너의 휴대전화와 PC를 먹어 삼킨다. 데이터는 상호 공생 겸 보완 관계인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을 부른다. 자료를 활용해서 기계학습이나 딥러닝 알고리즘을 통해 학습하고, 그 정보화된 결과를 바탕으로 가치 창출을 위한 의사 결정과 조정을 위해 인공지능은 데이터와 공생을 한다. 또한, 인공지능 구현에 크고 작은 데이터를 이용하여 그 예측 가능성과 정확도를 획기적으로 증가시키고, 데이터 분석에 인공지능 기술을 도입하여 데이터의 시장성과 활용성을 확대하도록 하며, 상호 보완의 길을 걷는다. 데이터의 가락에 맞추어 인공지능이 춤을 춘다. 데이터와 인공지능은 인간 감성과 이성의 딥러닝 학습을 통해 두려움의 대상으로 전이하며 새로운 지질 시대를 열어 간다.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는 <호모 데우스>(Homo Deus, 2017년)에서 데이터교에 의해 주도될 미래의 역사를 그린다. “데이터교는 우주가 데이터의 흐름으로 이루어져 있고, 어떤 현상이나 실체의 가치는 데이터 처리에 기여하는 바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한다. 데이터교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이라는 종은 단일한 데이터 처리 시스템이고, 개인은 시스템을 이루는 칩이다. 인류가 실제로 단일한 데이터 처리 시스템이라면 그 산물은 무엇일까? 데이터교도들은 ‘만물인터넷(Internet-of-All-Things)’이라 불리는 새롭고 훨씬 더 효율적인 데이터 처리 시스템이 그 산물이 될 거라고 말한다. 이 과업이 완수되면 호모 사피엔스는 사라질 것이다. 새로운 종교가 떠받드는 최고의 가치는 ‘정보의 흐름’이다.”라고 한다. 언젠가 우리는 우리가 인류세에 동물들에게 한 일을 그대로 돌려받을 거라는 예측과 함께.
한겨레(2017년 11월 20일)는 미국의 IT매체 <와이어드>(Wired)의 기사를 인용하여, ‘인공지능 신’을 섬기는 교회가 있다고 전한다.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뛰어난 능력을 갖추게 되면 사람들이 인공지능을 믿고 따르는 일이 일어날까? 구글 출신의 엔지니어 앤서니 레반도브스키(37·Anthony Levandowski)가 ‘미래의 길’(Way of the Future)이라는 인공지능(AI)을 경배하는 종교단체를 2015년에 설립한다. 그는 “인간은 지금 지구를 책임지고 있다. 우리가 다른 동물들보다 더 똑똑하고 도구를 만들 수 있고 규칙을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래 인간보다 훨씬 더 똑똑한 무언가가 등장한다면 책임자 자리의 ‘이행’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건 인간으로부터 무언가로의, 평화롭고 고요한 지구 통제권 `이행‘이다.”라고 강조하며, 초지능이 인간보다 더 잘 지구 행성을 돌볼 것이라고 한다. 인류세를 지나면 다가오는 새로운 지질 시대, 인공지능(AI)세의 예언일까? ’미래의 길‘은 2020년 창시자에 의해 해산된다. 하지만 지금도 우리는 휴대전화와 PC 바라기를 통해 데이터~알고리즘~플랫폼의 삼위일체형 인공지능교를 만들어 가고 있는 건 아닌지.
인공지능세(AIcene)는 ‘인공지능(AI)’과 ‘시대(cene)’의 합성어로써, AI로 빚어진 지질 시대라는 의미이다. 이는 지구의 역사에서 인공지능 중심적이며 신적 지위를 향한 무한 욕망 충족으로 향하는 ’블랙 스완‘형 지질 시대이다. 자연과 인간의 지구 구성 인자들은 노예화되어, 인공지능의 생태계에 흡수되며 기계화된다. 무지에 대한 두려움은 호모 사피엔스처럼 사라지며 절대자의 지위를 향한 끝없는 도전만을 추구한다. ‘전제화’의 관점에서 전체 집합의 크기를 가감 혼합하며, 자연과 인간은 그의 하위 부분 집합으로 자족하며 함께한다. 홀로세와 인류세를 떠난 시간이 흐르고 쌓여가며 그들의 흔적을 남긴다. 석유(Petroleum)~플라스틱(Plastic), 그리고 황량한 지구(Planet).
2023년의 8월엔 1일과 31일 두 번에 걸쳐 슈퍼문 보름달이 뜬다. 슈퍼문이 나타나는 건 달의 공전궤도가 타원형이기 때문이며, 블루문(blue moon)은 양력 기준으로 한 달에 보름달이 두 번 뜨는 현상 중 두 번째 뜬 달을 일컫는 말이다.
어원적으로 'blue'와 같은 발음인 옛 영어 단어 'belewe'에는 '배신하다(betray)'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하나의 중심 주위를 도는 물체의 궤도는 원, 두 개의 중심을 두고 움직이는 물체의 궤도는 타원이다. AI 중심의 원형(圓形)이 아닌, 자연과 인간이 두 개의 중심이 되는 타원 궤도를 그리는 지구 지질시대가 새로운 원형(原型)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AI세(AIcene)를 배신하며 타원형 인류세의 지질 시대를 걸어가는 우리의 AI(Authentic Identity). 능소화를 비추며 블루문이 뜨면, 올여름의 시간도 창문으로 흐르며 쌓이고 축적된다. 석유(Petroleum)~플라스틱(Plastic), 이어서 낙원(Paradise).
글·최양국
격파트너스 대표 겸 경제산업기업 연구 협동조합 이사장
전통과 예술 바탕하에 점-선-면과 과거-현재-미래의 조합을 통한 가치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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