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레미제라블』에서 빅토르 위고는 1832년 6월 파리 시내에 세워 놓은 바리케이드에서 죽어간 노인, ‘마뵈프’의 이야기를 통해 빨간 깃발이 등장하는 장면을 극적으로 묘사한다.
“무시무시한 총성이 바리케이드 위로 울려 퍼졌다. 빨간 깃발이 쓰러졌다. 폭력적인 총기 난사, 빗발치는 총탄 세례에 깃대가 부러졌다. (...) 앙졸라스는 그의 발치에 쓰러진 깃발을 집어들고 (...) 말했다. ‘여기 용기 있는 사람 없나요? 누가 바리케이드 위에 깃발을 다시 세우시겠습니까?’ 모두가 묵묵부답이었다. 적들이 총을 겨누고 있을 그 순간, 바리케이드에 올라가는 것은 죽음을 예약하는 행동이었다.(...)
‘정말 아무도 없습니까?’ 앙졸라스가 다시 한번 호소하는 그 순간, 한 노인이 불쑥 나섰다. (...) 노인은 앙졸라스의 손에서 깃발을 빼앗아 들었다. (...) 여든 살의 노인은 머리를 흔들거리면서도 당당한 발걸음으로 도로를 뜯어낸 포석을 쌓아 만든 계단을 천천히 오르기 시작했다. 그 장면은 음울하면서도 장엄해 모두가 큰 소리로 외쳤다.
‘모자 벗어!’ 그가 한 계단씩 오를 때마다 엄청난 공포가 밀려들었다. 노인의 흰 머리카락, 늙어 빠진 얼굴, 주름지고 머리가 벗겨져 휑한 이마, 움푹 꺼진 두 눈, 놀라서 벌어진 입술, 빨간 깃발을 들어 올린 노쇠한 두 팔, 이런 모습들이 어둠으로부터 갑자기 나타나 횃불의 핏칠 조명 속에서 점점 확대됐다. (...) 노인이 마지막 계단 위로 올라섰을 때, 보이지 않는 1,200여 개의 소총들이 그를 겨누고 있는 그 순간, 어지러운 파편 더미 위에 올라선 그 처참하고 휘청거리는 유령은 죽음 앞에, 마치 죽음보다 더 센 존재인 양 우뚝 서 있는 바로 그때, 어둠에 휩싸인 바리케이드에는 거대하고 초자연적인 누군가가 와 있었다. 모든 것을 압도하는 그 경이로움 주위로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사방이 고용한 가운데, 노인은 빨간 깃발을 흔들며 큰 소리로 외쳤다.
‘혁명이여, 영원하라! 공화국 만세! 박애! 평등! 그리고 죽음이여!’ ”
국왕 루이 필리프를 물러나게 한 1848년 혁명을 계기로, 공화국을 선포한 시민들은 빨간 깃발을 앞세워 임시정부를 세웠고, 군중 대표는 백성들의 비참함의 상징이자 과거와의 단절의 표시인 빨간 깃발을 국기로 공식 인정할 것을 요청했다. 당시 임시정부의 일원이자 외무장관이던 작가 알퐁스 드 라마라틴은 점진적 개혁 즉 자유, 평등, 박애의 정신을 의미하는 ‘삼색기’를 옹호했으나, 어느새 유럽 전역의 사회주의와 혁명가들을 급속도로 결집한 색상은 바로 빨강이었다. 5월 1일이 ‘전 세계 노동자의 날’로 지정된 1889년 이후, 빨간 깃발의 영향력은 훨씬 더 광범위해졌다. 이때부터 전 세계 노동자의 날 행진에서는 늘 빨간 깃발이 등장했다. 빨강이라는 색은 강한 정치적 의미를 얻었다. 빨강은 정치적, 사회적으로 가장 앞선 사상에 동조하는 이들의 상징이 됐으며, 추후에는 혁명가의 상징이 됐다.
나는 개인적으로 빨강을 숭배한다. 아니, 추앙한다고 해야 되겠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표지를 매월 유심히 보신 분이라면, 표제 부분 색상에 빨강 계통이 유난히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빨주노초파남보처럼 빨강은 세상의 첫 색이자, 인간으로 태어날 때 처음으로 어머니의 자궁에서 처음 맞닥뜨린 생명의 원형질이며, 이 땅의 수많은 이들이 인간이길 포기하지 않고 흘린 불사(不死)의 색이기도 하다. 부패 관료들의 폭정에 낫과 호미로 분연히 일어난 무명의 동학혁명군, 일제 제국주의에 피로 맞선 독립운동가들, 군사정권에 죽음으로 저항한 민주투사들, 노동3권을 주장하다가 곤봉과 방패로 으깨진 노동자들이 뿌린 피는 빨강의 숭고함을 보여준다. 그들이 흘린 수많은 빨간 피가 퇴비와 거름이 돼 부족하나마 모두가 자유와 평등을 구가하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꽃피웠지만, 권력을 가진 자들이 그들만의 ‘자유’를 더 채우고자, 만인의 자유를 위해 피를 흘린 선대의 인물들을 ‘빨갱이’로 깎아내리고 있다.
‘빨갱이’는 어원이 불분명하지만 흔히 북한을 추종하는 공산주의자와 사회주의자를 경멸적으로 지칭하는 말로 쓰여 왔다. 군사독재 시절에 주로 권력의 하수인 노릇을 한 검찰과 경찰, 언론이 즐겨 사용한 용어, ‘빨갱이’는 매카시즘 용어의 일종으로 현재까지도 계속 사용되고 있지만, 지금은 주로 극우 성향의 정치인들, 권력의 비호를 받는 극우 평론가들과 유튜버, 그리고 이들의 글과 방송을 맹종하는 사람들이 도를 넘어, 자신들의 입맛대로 ‘빨갱이’ 낙인을 남발하고 있다. 급기야 교과서에 실린 항일운동가들과 군사독재와 노동 탄압에 항거한 이들마저 ‘빨갱이’로 내몰리고 있다.
지난 광복절 축사에서 최고권력자는 “공산 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 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시키는 반국가세력들이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다”고 포문을 열어, 자신이 극우세력의 ‘수호자’임을 분명히 했다. 뒤이어 국무회의에서 “공산 전체주의 세력은 늘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선동하고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 왔다”라며, 그들과 맞서 싸울 것을 주문했다.
국방부와 국가보훈부, 통일부를 중심으로 ‘빨갱이 척결’에 나선 것은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이 있고 나서다. 국방부 장관이 홍범도 장군과 김좌진 장군을 ‘빨갱이’라며 욕보인 뒤, 공교롭지만 지난 9월 6일 고등학교 1,2,3학년이 모두 치른 전국 연합 모의평가에서는 홍범도나 김좌진 등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사실, 지난 2020년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국내로 봉환되고, 영화 <봉오동>이 개봉하면서 관련 내용의 출제 빈도가 더욱 높아지는 추세였다. 그러나, 모의고사에서 ‘킬러 문항’을 배제했다는 이유로 교육과정평가원장까지 내쫓기는 마당에 출제자 모두 몸을 사렸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현 권력의 태도대로라면, 다음 교과서 개편 시에 삭제될 사회주의 성향의 독립운동가들은 10명 이상일 것이라고 교육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열혈 독립운동가로서 임시정부의 초대 국무총리에 추대된 이동휘, 신흥무관학교 졸업 후 조선의용대 지도자가 된 윤세주, 의열단을 세운 김원봉, 기생으로 3.1 독립운동에 참가한 여성 독립운동가 정칠성, 봉오동전투에서 홍범도와 함께 일본군을 격파한 군무도독부의 최진동 등 수많은 이들이 교과서에서 척결될 가능성이 높다.
한편, 역사학계에서는 이들 항일 독립운동가들을 ‘빨갱이’로 간주하는 것은 온당하지 못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1930~40년대 중국 북동부, 소련 지역에서 항일 무장 활동을 한 독립운동가들은 게릴라란 뜻의 ‘파르티장(Partisan)’, 즉 ‘빨치산’이라고 불렸을 뿐이지, 공산주의자인 ‘빨갱이’와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주권을 상실했던 시기에 일제와 싸웠던 모든 의병들, 즉 독립군들은 엄밀한 의미에서 모두 ‘빨치산’이라 할 수 있다. 홍범도는 주권을 일제에 빼앗긴 조선의 ‘빨치산’ 대장이었다. 백선엽이 일제의 괴뢰군이었던 만주국군의 간도특설대에서 독립군을 토벌할 때, 홍범도는 일제로부터 주권을 되찾으려 싸웠던 영웅이다.
집권 세력은 ‘빨갱이’의 ‘빨’과 ‘빨치산’의 ‘빨’을 동일시한다. 둘 다, 자신들이 척결해야 할 불순분자라는 것이다. 현 권력과 지지층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사를 풍전등화의 위기로 내몬 뒤 군부독재와 노동 탄압에 맞서 피를 흘린 민주열사들마저도 빨갛게 색칠할 조짐이다.
이미 행정안전부는 산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2022년 한국민주주의대상의 수상자 선정에서 이른바 노란봉투법 제정 운동, 여성가족부 폐지 저지 운동 등을 공적으로 인정하는 등 취지에 어긋나는 정치 활동을 벌였다는 이유로, 국고보조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고 구조조정하기로 해 이 같은 가능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집권 세력이 위기에 처하거나 ‘군기’를 잡을 때마다 ‘빨갱이’ 사냥에 나서는 것은, 자신들의 지지기반을 단단히 다지기 위한 전략적 선택의 일환이다. ‘빨갱이’의 원조 격인 소련 공산 정권이 무너진 지 30년이 넘었고, 수많은 ‘빨갱이 아류 국가들’이 자본주의로 돌아섰으며, 지구상의 유일한 ‘빨갱이’ 북한마저도 왕조 국가로 변질된 마당에 국가 권력이 나서 ‘빨갱이’ 척결에 나선 것은 기득권적인 친일 세력으로서의 자신들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재천명하려는 의도에서다.
기득권 세력의 ‘빨갱이’ 축출과는 달리, 사실 빨강은 인류 발전 및 진보를 도모한 혁명의 원천이자, 성스러움과 아름다움, 사랑과 창의력을 일깨우는 마법의 색이었다. 그리스인과 로마인들, 중세인들, 중국 황실, 기독교와 불교에서는 빨강은 종교적 사랑, 왕실의 권위를 빛내는 광채의 색이자, 사랑의 색이었고, 근대 격변기에 들어와서 도발적인 혁명의 색이었다. 미국 중서부의 지명이기도 한 스페인어 ‘콜로라도(Colorado)’는 ‘색상(Color)’과 ‘빨강(Red)’을 동시에 뜻하는 단어다. 빨강이야말로 ‘색 중 색(color of colors)’이라는 방증이 아닐 수 없다. 색채 전문가 미셸 파스투로는 “빨강은 고대벽화부터 레드카펫까지 인류와 가장 오랜 시간 함께한 색이었다”고 말한다.(1)
21세기의 4반세기가 다가오고 있는 상황에서 IMF에 버금가는 경제침체에 사상 최악의 무역적자, 무차별적 살인·폭력과 사회 불안의 위기 속에 청년들은 결혼을 기피하고 출산율은 0.7 이하로 수직 낙하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더 이상 국가권력의 철 지난 ‘빨갱이’ 타령을 용납지 않는다. 광화문 거리에서 빨간 깃발이 펄럭이는 현대판 ‘레미제라블 서울’을 집권 세력은 보길 원하는가? 더 이상 어이없는 ‘빨갱이 놀이’로 진짜 빨간 깃발의 분노를 자극하지 말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10월호는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빨간 피를 흘렸지만, 정작 해방된 조국에서는 ‘빨갱이’로 몰리는 독립운동가들의 현실을 특집으로 다루고자 한다. 부디, 일독을 권한다.
글·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1) 미셸 파스투로, 『빨강의 역사』(미술문화,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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