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에 있는 사물을 반사하고, 무의식 깊은 곳의 욕망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수단이 되곤 하는 거울은 종종 영화 속에서 내면을 들여다보는 소재로 모습을 비춘다. 겉으로는 표출되지 못하던 감정의 심연을 보여주는 산물이 되는 것이다. 장 콕토 감독의 <시인의 피>(1930)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초상화와 거울밖에 없는 좁은 방 안에서 남자가 방을 나갈 수 있는 출구는 없다. 거울에 비친 자신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남자는 거울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마치 깊은 동굴 속에 들어간 듯 빛 하나 없는 심연 속을 헤매던 남자는 호텔 복도에 도착한다. 그런가 하면,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해리 포터(다니엘 래드클리프)는 소망의 거울 앞에서 죽은 자신의 부모님의 모습을 보고, 마법사의 돌을 거울로부터 얻기도 한다. 알버스 덤블도어는 "이 거울이 보여 주는 건 우리 마음속 가장 깊고도 간절한 욕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란다"라며 해리에게 조언을 하기도 한다.
하라 케이이치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 '거울 속 외딴 성'(2023)은 거울을 매개로 중학생 코코로의 세계를 확장시키며 상처를 치유해 주는 방식을 택한다. 영화는 동명의 원작 소설(츠지무라 미즈키)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서사는 비교적 간단하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마음 둘 곳 없이 외로운 시간을 보내던 중학생 코코로가 어느 날 방 안의 거울이 빛나는 것을 보고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코코로를 비롯해 리온, 스바루, 마사무네, 우레시노, 후카, 아키는 모두 영문도 모른채 거울로 이곳에 넘어왔다. 거울 속 공간은 다른 세상과는 교류가 차단된 성이며, 늑대 가면을 쓴 어린 여자 아이는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열쇠 찾기 게임을 진행한다는 뜬금없는 말을 한다.
무슨 이유로 그들은 거울 속으로 들어오게 된 것일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외딴 성에는 꼭 지켜야만 하는 한 가지 규칙이 있다. 일본시간 기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만 이 성에 남아있을 수 있으며, 정해진 시간이 지나도 남아있을 경우에는 연대 책임으로 성에 방문한 모두 늑대에게 잡아먹힌다는 수칙이다. 그 외에는 어떠한 지령도 규칙도 없다.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며 학교 가기를 중단한 코코로에게 거울 속 세상은 잠시나마 휴식의 공간이 된다. 7명의 아이들 역시 불만을 토해내던 것도 잠시 방문 도장을 찍듯 외딴 성을 방문하고, 이곳에서 현실세계의 고민은 잠시나마 잊힌다.
하와이의 축구 전문 학교를 다니는 중학교 2학년 리온, 중학교 3학년의 스바루, 손에 게임기를 들고 다니는 중학교 2학년 마사무네, 감정 표현은 서툴지만 따스한 마음을 지닌 중학교 1학년 우레시노, 피아노가 특기인 중학교 2학년 후카, 쿨한 매력으로 여자팀 리더가 된 중학교 3학년인 아키까지. 겉보기에 중학생이라는 점 말고는 공통점이 없는 듯 하지만, 리온을 제외하고 6명의 아이들은 모두 학교를 가지 않는다. 학교를 가지 않는 이유는 모두 다르지만, 본질적으로는 현실세계에서 학교를 다니는 것이 버거운 것만은 사실이다. 현실을 경계 짓는 거울은 오히려 외딴 성이기에 안심되고 보호받는다는 느낌을 가져다준다. 하지만 거울 속 세상에는 한계가 있는데 방문이 가능한 시간도, 이런 관계를 지속하는 것도 1년이라는 제약이 있다. 뿐만 아니라 다급하게 거울 속에서 튀어나온 아키가 입고 있던 교복을 단서로 성의 아이들 모두 유키시나 제5중학교 학생임을 알게 된다. 하와이 중학교를 다니는 리온 역시 이 학교를 다닐 예정이었지만 유학을 가게 되었던 상황이며, 7명의 만남을 우연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어딘지 절묘하다.
<거울 속 외딴 성>은 아픔은 어떤 식으로 치유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학교폭력의 원인은 괴롭힌 상대에게 있지만, 대체적으로 피해를 당하는 아이들은 문제의 원인을 본인에게서 찾으려고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들이 함께 연대하고 앞으로 나아가면서 내면에 파고든 아픔을 치유하는 단계를 겪도록 한다. 마치 늑대가면을 쓴 소녀처럼 따로 개입을 하지 않고, 멀리서 바라보는 형식이다. 더불어 현실과 외딴 성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을 수조차 없다. 현실의 아픔에서 구제해 주려는 아이들은 같은 시간에 학교에서 만나자고 언급하지만, 1984년에 사는 스바루와 1991년에 사는 아키와 2005년에 사는 리온, 2006년의 코코로, 2012년에 사는 마사무네, 2019년에 사는 후카, 2026년에 사는 우레시노까지 이들은 같은 시간대에 중학교에 다니지 않기 때문이다. 의미심장한 것은 리온과 코코로를 제외하고는 저마다 7년씩 시간적 격차가 존재하는 것.
영화는 외딴 성의 규칙을 어긴 아키와 코코로를 제외한 성 안에 있던 아이들이 모두 늑대에게 잡아먹히면서 코코로가 소원의 열쇠를 찾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때, 주목해야 할 것은 열쇠가 숨겨진 위치다. 괘종시계 안에 숨겨져있던 열쇠는 각기 다른 시간대에 살던 이들을 다시 맞춰주는 조각이자, 코코로가 용기 내 멈춘 시간을 다시금 흐르도록 한다. 그동안 학교를 가지 못했던 코코로는 시간이 멈춘 채로 고립된 생활을 지속했다. 하지만 외딴 성에서 코코로는 위안을 얻었고 거울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왔으며, <거울 속 외딴 성>는 시계태엽처럼 맞물리는 시간을 통해 이전에 지나왔고 앞으로 나아가며 치유될 상처의 시간들을 보듬어준다.
어쩌면 코코로에게 거울은 자신이 만들어놓은 편견이자 이미지인지도 모른다. 자신을 가두던 틀을 깨부수듯 깨진 거울을 뒤로한 채, 이들은 이곳에서의 기억은 없지만 살아갈 힘과 용기를 얻게 된다. 외딴 성이 만들어진 연유는 중학교를 가고 싶어했지만 가지 못했던 누군가의 간절한 소망과 염원으로부터였다. 병에 걸려 중학생이 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던 리온의 누나는 늑대 가면을 쓴 소녀이자 이들의 안내자였던 것. 외딴 성은 단순히 고립이 아닌 고난을 함께 헤쳐나갈 동지를 만들어주는 일종의 학교였던 셈이다. 리온의 누나처럼 코코로의 소망이나 욕망이 거울을 통해서 발현된 것이 아닐까. 원하고 평범한 학교 생활과 친구들과의 대화는, 코코로가 지녔던 외딴성과 다른 이들의 외딴 성이 포개지면서 이뤄낸 결과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글·이하늘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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