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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필립의 시네마 크리티크] 스타 페르소나와 초두 효과로 영리하게 쌓아 올린 왜곡된 충성심, <숨바꼭질>(허정, 2013)
[윤필립의 시네마 크리티크] 스타 페르소나와 초두 효과로 영리하게 쌓아 올린 왜곡된 충성심, <숨바꼭질>(허정, 2013)
  • 윤필립(영화평론가)
  • 승인 2023.11.06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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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숨바꼭질 공식 포스터(네이버 영화)
영화 숨바꼭질 공식 포스터(네이버 영화)

<숨바꼭질>(허정, 2013)은 관객들에게 적잖은 당혹감을 주는데, 그 중심에는 주희(문정희 분)라는 캐릭터가 있다. 관객들은 영화 속 주희로 인해 경악하면서도 그녀를 연민하며 날선 윤리적 잣대를 들이대지 못하는데, 그것은 일종의 왜곡된 충성심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왜곡된 충성심은 어떻게 형성되고 유지되는가?

스릴러 장르에서 범인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든 드러내지 않든 영화의 초반부터 등장하고, 범인을 제외한 주인공은 그 범인이 일삼는 엽기적 행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친다. 이때 일반적으로 카메라는 범인을 타자화하기에 관객들은 범인이 아닌 피해자를 자기와 동일시할 수밖에 없고, 덕분에 영화 속 피해자들이 느끼는 공포는 곧 관객들의 몫이 된다. 따라서 스릴러물의 장르적 성취는 이 공포감의 형성과 전달 그리고 그것에서 비롯되는 긴장감을 유지하는 데 달렸다고 볼 수 있다.

 

주희의 집을 방문한 성수(네이버 영화)
주희의 집을 방문한 성수와 가족들(네이버 영화)

영화 <숨바꼭질>에서는 이러한 스릴러의 장르적 특성을 십분 활용하고 있는데, 그것은 정체불명의 괴한이 가하는 습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성수와 그의 가족들의 모습에서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관객이 느끼는 공포감은 괴한의 엽기적 살인 행각에 근원하지만, 그것이 주는 긴장감은 근본적으로 이 영화의 내러티브가 의존하고 있는 스타 페르소나와 초두 효과에 의해 철저히 유지되고 보호 받는다.

<숨바꼭질>의 이 두 가지 이미지 전략이 플롯의 진부함을 극복하고 관객들에게 새로운 만족감을 선사하기 위함이었다면, 그 전략은 비교적 잘 맞아 떨어졌다. 그렇다면 그것은 <숨바꼭질>을 보는 관객에게 만족감이나 몰입감 외에 또 어떤 심리 작용을 일으키는가? 이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관객이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두 주인공 즉, 성수(손현주 분)와 주희에게서 느끼게 되는 양가적 감정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현관문 옆에서 수상한 기호를 발견한 성수(네이버 영화)
현관문 옆에서 수상한 기호를 발견한 성수(네이버 영화)

영화 속 두 주인공은 쫓고 쫓기는 잔혹한 술래잡기 놀이 그 끝에서 드디어 마주하게 되는데, 이때 둘은 모두 자신의 가면을 벗어 던진 상태이다. 성수는 죽은 형과 화해함으로써 결벽증으로 가린 자신의 더러운 위선의 가면을 벗어 던지고, 주희는 그동안 비루한 삶을 살아가는 힘 없는 여성의 이미지를 가려 준 검은 헬멧을 벗어 던지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영화가 숨겨 왔던 비밀이 마침내 밝혀지는 동시에 모든 서사의 종결을 시사하는 이 지점에서조차 관객들은 이들 캐릭터에 대한 도덕적이거나 윤리적인 판단을 유보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관객들은 <숨바꼭질> 전체에 걸쳐 가장 극적인 인물로 등장하는 주희의 실체를 목격한 직후 두 번의 당혹감을 느낀다. 우선, 첫 번째 당혹감은 여배우 문정희라는 스타 페르소나와 초두 효과로 유지된 주희의 이미지 즉, 재개발이 예정된 낡고 허름한 아파트에 사는 도시 빈곤층 여성의 비루한 모습이 일순간 전복됨으로써 발생한다. 그리고 곧이어 주희의 그런 실체에도 불구하고 관객 스스로가 여전히 주희를 동정하고 있음에 부수적인 당혹감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감정은 <원초적 본능>(폴 버호벤, 1992)의 캐서린 트라멜(샤론 스톤 분)과 <컬러 오브 나이트>(리처드 러쉬, 1994)의 로즈(제인 마치 분)의 실체와 마주한 관객이 느끼는 그것과 확연히 다르다는 점에서 그 당혹감은 배가된다.

 

공포에 휩싸인 채 딸을 안고 있는 주희(네이버 영화)
공포에 휩싸인 채 딸을 안고 있는 주희(네이버 영화)

주희를 향한 관객들의 동정심은 영화 초반에 형성된 신뢰와 그것에 기반한 충성심에서 비롯한다. 이러한 충성심은 관객들이 동정하는 그 캐릭터가 다른 캐릭터에 비해 상대적으로 선호할 만하거나 이야기 전반에 걸쳐 용인할 만한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숨바꼭질>에도 관객들이 주희에게 선한 인상을 품을 법한 결정적인 장면이 있는데, 영화 초반에 주희가 성수의 아내 민지(전미선 분)와 두 자녀를 동네 미치광이로부터 구출하는 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이때 관객은 주희라는 인물에게 높은 수준의 신뢰를 형성하게 되고, 이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도시 빈곤층으로 살아가는 주희에게 연민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신뢰와 연민은 여배우 문정희라는 스타 페르소나와 어우러져 강력한 초두 효과를 만들어 내고, 감독의 의도대로 그렇게 주희를 향한 관객들의 왜곡된 충성심은 처음부터 끝까지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결국, 관객의 특정 캐릭터를 향한 충성심은 이와 같이 영화 속에서 의식적으로 조작된 캐릭터의 이미지에 영향을 받아 발현하고, 그것이 만들어 낸 강력한 초두 효과에 힘입어 쉽게 전복되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특히, <숨바꼭질>에서 주희라는 인물 자체가 노숙을 하다 타인의 집에 숨어 들어와 사는 도시 빈곤층으로 설정되어 있고, 그것은 극단적인 양극화로 치닫는 우리 사회에서 사소화되어 가고 있는 한 개인을 묘사한 것이기도 하기에 관객들은 주희에 대한 충성심을 쉽사리 버리지 못한 채 여전히 연민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택시 드라이버>(마틴 스콜세지, 1976)를 보는 관객들이 광기로 폭주하는 트래비스 버클(로버트 드 니로 분)에 대해 느끼는 연민과도 닮아 있다.

마치 공포스러운 숨바꼭질 같은 이 이야기의 끝에서 주희는 이렇게 외친다.

 

"우리 집이야! 왜 우리 집에서 난리냐고!"

 

주희의 바로 이 괴물스러운 모습에서 놀이로서의 숨바꼭질은 순수하고 천진난만하나 삶으로서의 <숨바꼭질>은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잔혹한 게임의 현장임이 극명해진다. 더군다나 이러한 방식으로 유발되는 공포는 그 주체가 주희의 딸 평화(김지영 분)로 이어져, 아무도 몰래 심어 놓은 악의 씨앗처럼 완전히 소멸되지 않은 채 여전히 누군가의 생활공간 그 어디선가 자라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기에 더욱 소름끼친다.

 

영화 숨바꼭질 캐릭터 포스터(네이버 영화)
영화 숨바꼭질 캐릭터 포스터(네이버 영화)

 

 

글·윤필립

영화평론가, 응용언어학자. 대학에서 강의하며 한국 언어/문화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계명대에서 국문학, 영문학을, 연세대 대학원에서 국어학-한국어교육을 전공했다. 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 영상작가전문교육원을 수료했고, 무궁화 스토리텔링 공모전 동화 부문 입선, 서울국제사랑영화제 기독교 영화비평 대상 수상,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부문 당선 등을 했다. 만화평론상, 대종상,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의 심사위원 및 영평상 집행부 등을 역임했다. 필리핀 관광부(마닐라) 관광 개발 기획국에서 일했으며, 에모리대(미국) 대학원 펠로우십 후 국립정치대(대만) 한국어문학과 및 난양공대(싱가포르) 인문대학 교수로 지내다 귀국 후 연세대, 세종사이버대에서 강의하며 세종사이버대 한국어교육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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