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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경의 시네마 크리티크] <장희빈> (1961): 여전히 유효한 최초의 장희빈
[김 경의 시네마 크리티크] <장희빈> (1961): 여전히 유효한 최초의 장희빈
  • 김 경(영화평론가)
  • 승인 2023.11.14 09: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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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화 감독은 1961년 새해 벽두를 <지평선>으로 힘차게 열었고, 6월에 <노다지>, 추석에는 <장희빈>으로 서울 개봉관 기준 10만의 흥행 행진을 한다. 그뿐만 아니라, <장희빈>은 ‘추석 흥행 공식은 사극’이라는 공식을 만들게 된 계기가 된다. 역사 드라마에서는 역사 속 인물을 소환하는 것 자체가 의미생산이다. 정창화 감독은 한국 영화 최초로 장희빈을 영화라는 매체로 불러들였다. 

 

포스터
포스터

1961년 5월 16일 군사 정변 이후 첫 번째 추석 흥행은 <장희빈>의 압승이었다. 군사 정변 이후의 사극 <장희빈>은 불안한 대중의 도피처거나 궁중 멜로드라마를 통한 대중 욕망의 발현 장치로 작용했을 것이다.

영화 <장희빈>의 탄생, 수많은 <장희빈>의 원조

정창화 감독의 영화 <장희빈>(1961)은 영화뿐만 아니라, 역사, 정치, 페미니즘의 맥락에서 논란이 되는 숱한 장희빈의 원조다. 영화와 드라마의 역사에서 ‘장희빈’은 별도로 분류되고 재해석되며 거듭 제작될 정도로 수많은 장희빈들이 탄생했다. 그만큼 ‘장희빈’은 매혹적인 캐릭터다.

 

영화 최초의 장희빈
영화 최초의 장희빈

그러나, 정창화가 창조한 이미지 ‘장희빈’은 60여 년이 지난 이 시점에도 거의 변하지 않았다. 장희빈에 대한 해석이 조금씩 달라지긴 했지만, 자기 욕망에 충실했던 뛰어난 미모의 여성이라는 점은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자못 아름다웠다’며 사서에까지 기록된 장희빈의 아름다움은 카리스마 넘치는 김지미 <장희빈>을 통해 여전히 유효하게 재생산된다.

신파와 사극: 민요와 트로트

정창화 감독은 그의 음악적 탁견을 <황혼의 검객>(1967)처럼 리드미컬한 편집에도 사용했지만, <죽음의 다섯 손가락>(1972)에서 쿠엔틴 타란티노가 오마주 했다는 효과음처럼 영상과 함께 입체적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영화 <장희빈>은 황금심의 노래 <장희빈>이 주제가로 사용되었다. 황금심의 민요풍 트로트는 <장희빈>의 멜로 사극과 시너지를 만들었다. <장희빈>에서 신파는 사극 멜로드라마가 되고, 민요는 트로트가 된다.

 

숙종과 장희빈
숙종과 장희빈

숙종(김진규)이 민심에 눈을 뜨게 된 중요한 계기 역시 동요다. 극 중 아이들의 노래, “장다리는 한철이고 미나리는 사철이다.” 는 마치 ‘서동요’처럼 구전동요를 영화에 차용하여, 음악이 드라마 구성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모던한 형식미의 오픈 엔딩

장희빈의 죽음을 묘사하는 장면은 매번 역대 장희빈의 관전 요소일 정도다. 권선징악과 과장된 비극적 결말이 강조되다 보니, 대개의 장희빈은 비현실적일 정도로 비참한 최후를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최초의 김지미 장희빈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자진 하라는 왕명에 대해 비교적 의연한 모습을 보인다. 장희빈은 죽음을 받아들이고 홀로 화면 위쪽으로 걸어가며 수많은 프레임이 중첩된 곳으로 사라져 들어간다. 마치 옵티컬 아트의 한 장면 혹은 누아르 영화의 한 장면 같이 그녀는 사각 프레임과 안개로 뿌옇게 흐려진 화면 너머로 걸어간다. 이처럼 오픈 엔딩을 통한 감독의 배려는. <내일을 향해 쏴라>(1969)나 <델마와 루이스>(1991)와 같은 울림을 준다.

 

 

글·김 경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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