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은 너무도 서둘러 옷을 갈아 입었다. 갑자기 다르게 느껴지는 어제와 오늘은 어색하고 생소하기 까지 하다. 우리가 준비할 곁을 주지도 않고 갑자기 달라진 계절 앞에 또 한 해의 마지막 즈음에 와있다는 생각에 갑자기 마음이 분주해 진다.
올 초, 하고 싶은 것에 대해 막연히 생각해 본적이 있었다. 좀더 여유 있게 여행도 다녀 보고 한가하게 미술관이나 영화관, 또는 자연 속을 걷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를 위한 시간, 나에게 의미 있는 시간을 누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별 대단한 일도 아니고 또 이제 그럴 때도 되었다 싶은 마음에 큰 맘먹고 계획이라는 것도 세워 봤다. 그러나 하고 싶은 것들은, 해야 하는 일들로 인해 늘 뒤로 밀린다. 그러다 정말 할 수 없는 일 들이 되어 버릴까 조바심이 든다.
6월 어느 날 잘 알고 지내는 후배의 초청으로 그의 공연을 보게 되었다. 공연에 몰두해서 보고 있는데 문득, ” 내가 뭐했던 사람이었지? “ 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리고 얼마 후 예전에 같이 활동 했던 지인에게서 무용공연에 참가 해 보는 게 어떻겠냐는 권유를 받았다. 이상하게 마음이 그렇게 하고 싶었다. 가끔씩 혼자 운동 삼아 연습은 하긴 했었지만 다시 무대에서 공연을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지는 않았다. 그러다, 아직 할 수 있을 때, 더 할 수 없게 되기 전에, 할 수 있다면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고 싶다고 다 할 수는 없겠지만 그 하고 싶은 일이 대단하거나 엄청난 일인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용기가 필요할 것이고 자기 긍정이 협조가 되어야 할 것이라 생각된다. 너무 목표지향적이거나 완성에 대한 집착 때문에 시작이 버거울 수 있고, 스스로를 부정의 틀에 가두어 놓는 다면 더 어려울 수도 있겠다. 그러나 어떤 경로로 기회는 오고 동기가 부여 되는 경우가 있다. 내가 하는 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있다. 그래서 잘못 될까봐, 괜한 일이 될까봐 부정적인 생각이 앞서기도 할 것이다. 새로운 일을 시도 하는 하는 것은 분명 어색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우연한 계기에 뜻밖의 상황에서 자극을 받거나 동기를 얻어 “나도 한번 해봐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기도 한다. 우리나라 속담에 ”시작이 반이다“ 라는 말이 있다. 시작하기가 그 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많은 사람들은 시작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생각만이 아니라 싶은 일들을 직접 하기까지 쉽지 않은 마음의 갈등이 있고 익숙한 일상에서 나와야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용기를 내서 시작하는 것이 어렵지 일단 시작하면 그 일을 해나가는 것이 어렵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라 믿는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그 동안 내가 해온 일에 대해 스스로 감동스러운 때가 분명 있을 것이다.
그렇게 10월, 우연한 기회에 용기를 내서 무용공연을 하게 되었다 할 수 있을 때, 하고 싶은 일들을 해보기 위해서였다. 다른 젊은 예술단과 같이 공연하려니 마음에 부담과 긴장은 되었지만 설레기도 했다. 요즘의 젊은 예술인들의 추는 춤을 보면 그들의 해석이 다양하고 속도감 있고 대범해졌다는 생각을 하였다. 나름 많이 배우고 공감했던 무대였다. 이번 기회에 현재의 나에 대한 가능성과 맞이할 한계에 대해 깨닫게 되었다.
무용은, 특히 창작무용은 춤 추는 사람을 드러내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춤추는 사람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고 관객과 같이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무용의 방식으로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림으로 화가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보는 것이 아니라 화가의 시각으로 본 세상과 소통하고 화가의 생각에 공감하며 화가의 소통하는 독특한 스타일을 통해 그 화가를 만나는 것과 같다.
3,,40 대에는 무용이 나의 중요한 임무며 유일한 일인 양, 지치지도 않고 연습하고 작품을 만들어 내고, 수없이 많은 공연과 경연, 축제에 참여하였었다. 10여분의 짧은 작품부터 1시간 이상 되는 장편의 무용공연 등 많은 작품을 기획하고 안무하고 출연하는 일이 일상이었다. 한 작품을 안무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느끼고 인식하는 일들을 알아야 하고 또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담아야 하기 때문에 많은 연구와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무용은 언어적인 소통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공감할 수 있는 신체 언어를 만들어 가는 일이 어려울 수 밖에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언어적 소통방식에 익숙해져 있고 다른 표현방식에는 어색함과 “이해할 수 없는” 이라는 인식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무용은 대사도 없고 전시처럼 유형의 결과물인 작품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며 시간이 흐름과 동시에 소멸되는 예술이기에 관객과의 소통과 공감을 얻어내기 어려운 분야 중 하나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무용수의 아름다운 춤사위를 보고, 어떤 사람은 무대의 화려함이나 기술들을 보기도 한다.
무용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스토리도 있어야 하고 춤으로 이야기할 주제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어 내야하며 많은 상징적인 압축과 핵심적인 동작을 창작해 내야 한다. 그래서 공연을 준비할 때는 전체적인 스토리 진행에 대한 개요 및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보여줘야 할 지에 대한 기획이 필요하고, 안무 노트를 몇 권씩 쓰게 된다. 공연장의 특징 및 무대 전반적인 분위기, 전환방식을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무용수들을 선별하고 무대에서의 무용수들의 위치 및 동선, 또 무용을 통해 나타내고자 하는 춤사위를 위한 음악의 색깔 및 특성을 염두에 두어야 하며. 의상의 느낌, 기능, 대략적인 디자인까지 미리 염두에 두고 작품을 만들어 간다. 또한 조명, 무대 미술, 의상, 분장, 특수효과, 음향 등 같이 제작할 스텝을 꾸리는 일도 포함된다. 기획부터 안무, 출연, 마케팅까지 그 전반적인 모든 일울 감당해야 한다.
돌이켜 보면 참 열심히 해왔던 일들이다. 그러고 보니 내 삶에서 춤 추어왔던 40여년을 빼면 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는 것이다. 개인적인 작업이 아닌 팀을 이루어 하는 일이라 팀원과의 이해와 협력도 중요하다.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될 수 없는 어려운 일인 것이다. 그렇게 복잡하고 힘든 과정을 매번 겪으면서 왜 그렇게 그 일 속에 묻혀 살았는지…..
무대에서의 무용공연은 보기 좋고 화려해 보이겠지만 무대 뒤는 어떤 기계 속 보다 복잡하게 엉켜 있고 공연 시작부터 마칠 때까지 그 전체 과정이 초를 다투는 긴장감으로 한치의 오차도 없이 돌아간다. 그래야 공연이 계획대로 진행되는 것이다. 때론 그 긴장감과 긴박함을 즐기기도 했던 것 같다. 살아있음을 강하게 느끼게 해주기도 했으니….
공연이 끝나면 공연의 흔적은 아무것도 남아 있는 것이 없다. 어쩌면 몇몇은 강한 자극과 감동을 마음에 담기도 하지만, 그저 내 기억 속에, 그리고 관객의 기억 속에 일정시간 기억될 뿐이다. 어찌 생각해 보면 겨우 공연 영상 하나 남기는 것 밖에 없는 그 소비적이고 소모적인 일에 내 삶의 거의 대부분을 쏟아 부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국가나 민족의 문화를 이야기 할 때 먼저 예술을 떠올린다. 이는 문화를 상징적으로 잘 표현해 주는 것이 예술이기 때문이다. 현대는 대중예술의 시대이고 그 영향력도 대단하지만 오랜 역사와 삶의 방식, 그 민족의 이념, 가치관을 담은 예술작품에 대한 평가와 가치는 시대를 초월하여 인정을 받고 있다. 그렇기에 무용공연은 그 춤을 통해 과거와 미래를 잇고 공유하며 전승되는 가장 우리다운 몸짓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의 정서를 담은 들이키고 내뱉는 숨결, 그 숨쉬기를 통한 춤사위가 어딘가 익숙하고 나와 닮아 있는 느낌을 가지게 되는 이유라 생각한다.
그러나 내 인생에 있어서 춤은 영상물로만 남아있는게 아님을 알게 되었다. 작은 성취지만 계획하고 목표를 정하고 이루어 가면서 작지만 의미 있는 맺음과 시작을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새로운 시작에 대해 기대와 희망을 가지게 되고 또한 무대를 마치며 잘 마무리하는 결실의 맛을 알아가게 된 것이다. 하나의 목표를 이루고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삶의 방법을 알아가고 작은 성취가 더 큰 목표를 가지게 할 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작은 것들이 축적되어 가면서 삶의 방법과 지혜가 쌓이고 다양한 방식을 활용할 줄 아는 능력이 길러 진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적은 나이가 아님에도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가지게 되고 못하겠다는 생각보다 어떻게 할까를 먼저 생각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타인과 소통하는 다양한 방법을 찾아내고 이를 다양한 방법의 신체언어로 표현하고 실행해 오는 과정에서 자신의 특성 및 창의성을 구축하게 되는 것, 남들보다 조금 더 열정이 있고 아직도 할 수 있다는 수줍은 자신감이 생기는 것을 보면 난 무대에서 삶의 방향을 찾고 잘 살아가는 방법도 같이 배워 온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잘해야 된다는 강박감 보다 나다움을 찾고자 노력하는 과정에서 나에게 다가오는 어렵고 힘든 일도 당연히 할 수 있고 극복하게 하는 나름의 저력? 이 길러지는 것 같다.
무대에서의 공연을 위해 준비하고 연습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작품을 만들고 공연만 한 것이 아니었다. 나의 삶을 만들어 온 것이다.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일이 같다면 정말 축복이 아닌가? 더 시간이 흘러 할 수 없는 일이 될 때까지 열심히 해보는 것으로 스스로에게 용기를 주고 토닥토닥 어깨를 두드려 준다.
글·이인숙
문화평론가, 교육학박사, 문화예술경영전공. 현재 청주대학교 영화영상학부 초빙교수로 재직하고있으면서 북경수도사범대학교 과덕대학 공연예술대학부학장, 한국문화예술위원회위원, 한국연기예술학회이사, 국제문화예술교육교류협회회장, 청주시 도시문화추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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