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베르, <닥터앤닥터의 육아일기>
소소한 당신의 일상에 입장합니다
일상의 공유가 익숙한 시대. 당신의 일상은 우리의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일상을 공유하는 일상툰은 웹툰에서 가장 익숙한 장르다. 웹툰의 특성상 활발한 상호작용은 필수적이다. 일상툰은 특히 자기 자신의 일상을 공유하기 때문에 독자와의 적극적인 소통이 필요하다. 소재와 화자가 다양한 일상툰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통해 작품에 쉽고 빠르게 빠져들게 한다. 거대서사 대신 미시서사를 기본으로 한 일상툰은 본인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현실 상황의 재구성을 담보하기 때문이다. 분명 모든 사람의 하루하루는 각자 다른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일상툰은 ‘지금-여기’의 공통적 감각을 일깨운다. 당신의 일상에서 나의 일상을 찾고 당신의 일상에 동기화하는 것이다.
사실, 개인이 그려내는 일상을 살펴보는 것은 관음증적 시선의 공유다. ‘나’의 일상을 공유하는 것은 스스로 용인한 범위 내에서 자신의 인생에 들어와 달라고 스스로 동의하는 것이다. 웹툰, 특히나 일상툰은 공감이라는 감정을 통해 ‘나’의 일상에 ‘타인’을 적극적으로 관여시킨다. 타인의 일상의 틈에 끼어들면서 독자들은 자신의 일상에서의 문제를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게 되거나 곱씹기도 한다. 더 나아가 자신의 일상까지 댓글로 적극적으로 공유하며 ‘당신’과 ‘나’의 일상을 ‘우리’화 한다.
일상툰 속 ‘나’라는 내포화자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적극적으로 각색한다. ‘나’에서 시작한 일상은 나를 이루는 모든 환경으로 확장된다. 이때 환경은 개괄적인 의미로, 인물을 포함한다. 일상툰의 에피소드가 대부분 ‘나’와 나의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상이라는 단어가 내포하는 의미는 점차 넓어진다. 확장된 의미를 지닌 ‘일상툰’에서 우리는 ‘나’와 ‘아이’의 관계의 일상을 담은 육아툰이라는 하위장르를 구분할 수 있다. 육아툰은 ‘나’에서 확장한, 동시에 ‘나’의 시선을 거친 일상에서 ‘육아’란 복잡한 상황을 각색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확장된 ‘당신’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육아툰을 보며 아이를 키우는 ‘나’에서 멀어지기도 하며 아이를 키우지 않지만, 아이를 그저 귀여워하는 ‘나’는 ‘너’의 육아에 참여한다. ‘너’의 소소한 육아에 공감이라는 이름으로 사적 공간에 침투한다. 당신의 이야기에 입장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다. 임신을 준비하는 ‘나’, 임신 중인 ‘나’, 육아 중인 ‘나’, 그저 아이를 보는 것이 좋은 ‘나’ 모두.
특별한 당신의 육아
여기 ‘아빠’를 찾으며 우는 아이 ‘레서’가 있다. 엄마보다 아빠를 먼저 말한 아이, 레서는 <닥터앤닥터의 육아일기>(이하 닥앤닥)의 핵심이다. <닥앤닥>은 엄마보다 아빠라는 단어가 익숙한 아기 ‘레서’와 출산 후 복직한 엄마 ‘안다’, 레서가 태어나자마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아빠 ‘베르’의 이야기다. 닥터 앤 닥터의 육아일기의 특이성은 아빠가 공학 박사 학위를 유예하면서 육아를 선택하는데 있다.
육아툰은 소재와 표현 방식이 다양하지만 ‘엄마’가 ‘아이’를 낳고 기르는 방식의 이야기를 따른다. 이미 웹툰에서 여러 방식으로 재현되었던 육아는 <어쿠스틱 라이프>처럼 일상의 삶을 보여주다가 일상의 연속·확장의 방향으로 출산과 육아가 진행되는 방식이다. <아기 낳는 만화>와 같이 시리즈로 <아이 키우는 만화>로 변경되어 연재되기도 했다. 개인의 삶의 변화, 일상이 되기 때문에 ‘육아’로 확장되는 수순이다. 일련의 과정에서 당연히 ‘엄마’의 입장에서 육아는 진행되고 엄마 개인의 복합적인 감정들이 드러난다. 이 지점에서 독자는 완벽하게 엄마인 작가와 동일시된다.
엄마의 시선이 아닌 아빠의 시선에서 임신과 출산, 육아는 독특하다. 거리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성은 임신과 출산의 당사자 임신과 출산에 있어서는 분명히 여성의 몸 안에서 태아가 자라고 있기 때문에 직접적 당사자는 ‘여성’이라고 한정한다. 그리고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변화와 두려움에 대해 집중한다.
그러나 닥터베르는 다르다. 어느 정도 거리감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임신, 출산, 육아에 관한 정보를 취합하여 제시한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임신, 출산, 육아의 과정에서 특수한 상황을 맞이하지만, 보편적인 정보를 담고 있는 다수의 논문들을 통해서 ‘적당선’의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는 닥터베르가 논문과 익숙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적절한 논문을 찾는 것과 병원에서의 에피소드는 아내 안다의 역할이 크다.
임신과 출산에서 거리감이야말로 <닥앤닥>이 타 육아툰과 변별적인 지점이다. 닥터베르는 분명 ‘아빠’의 입장이기 때문에 거리감을 지니고 각 에피소드를 풀어나간다. 동시에 유머를 통해 더욱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작화의 디테일과 수많은 밈과 짤을 기반으로 한 개그를 통해 작품을 채워나간다. 상황적인 과장과 적당한 드립을 통해 유머 감각을 드러낸다. 대부분의 에피소드에서 개그감이 발휘되지만 특히 임신을 다시 한 에피소드 20화 제목이 ‘오 마이 드림카’라는 점은 특히 유머가 넘친다. 아이에게 태몽을 설명하며 ‘네 태몽은 모르쉐였단다. 치타보다 빠르고 곰보다 강하지’라는 말로 마지막 장면을 장식하며 스포츠카에 대한 아쉬움을 짙게 남기는 유머 감각은 닥터베르의 마음을 갈음한다. 또 다시 유산을 겪을까봐, 이제야 되찾은 일상이 무너질까 두려운 마음을 드립으로 대신하는 것이다.
다르지만 같은
일상툰에서 공감은 중요하다. <닥앤닥>은 분명 아빠가 양육하면서 겪는 차이점과 거리감을 통한 재미를 얻고 있다. 그러나 차이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육아의 과정에서 ‘공감’의 상황을 그려낸다. 육아를 마주하며 겪는 복잡한 감정을 공유하는 것이다. 차별적인 지점에서 공감의 요소를 찾아낼 때 독자는 더욱 각 에피소드의 상황에 몰입하며 동일시하게 된다.
<닥앤닥>은 전혀 다를 것 같은 주양육자의 변경에서 오는 재미와 더불어 공감의 재미 또한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임신의 과정과 ‘유산’의 과정을 담은 ‘안녕 우리 아가’ 에피소드는 아기를 잃은 아빠의 시점을 보여주며 먹먹한 일상을 표현한다. 특히 ‘안녕 우리 아가’ 7편인 15화는 본인의 일상이 공론화되어 발생할 일들에 대해 적확하게 인지하며 이런 에피소드를 통해서 서로의 위로가 되고자 한다는 점을 밝힌다.
‘육아’를 도맡으면서 박사 학위를 유예하며 육아에 열중하는 상황에 관한 에피소드인 7-8화는 주양육자가 겪게 되는 불안함을 드러낸다. 육아가 곧 경력 단절이라는 현실적인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이는 여성이든 남성이든 아이를 위한 시간을 보낸다는 것 자체가 본인이 이뤄놓은 커리어가 멈추는 것에서는 동일하다. 이는 곧 다른 에피소드들과 연속성을 지닌다.
임신과 출산의 과정과는 다르게 ‘육아’와 관련한 에피소드는 변별보다는 공감의 지점을 소환한다. 52-53화 ‘공동육아’의 경우 아내 안다보다 더 빠르게 육아에 익숙해져 닥터베르로 육아가 쏠리는 현상에서 빚어지는 갈등이 가감없이 드러난다. 또한 <우울감 파트1>(61-63화), <우울감 파트2>(83-85화)는 육아를 하면서 주양육자가 느낄 수 있는 도태감과 우울감을 보여준다. 결국 주양육자가 되어 육아를 하면서 느낄 수 있는 복합적인 감정은 성별로 나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집에서 혼자 말하지 못하는 아이와 둘이 남겨져서 겪는 일상, 느끼는 감정이 동일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각 에피소드에 강한 유대감을 형성한다.
<패닉> 에피소드는 공감의 진폭을 넓힌다. 레서가 갑자기 발생한 경련으로 인해서 쓰러지자 너무 놀란 엄마 안다는 의사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 레서는 여러 검사를 통해서 지켜보는 것으로 일단락된다. 그때 겪는 고통과 두려움은 <닥앤닥>을 접하는 독자들에게 자신들의 육아를 돌이켜보는 계기가 된다. 특히 패닉 4편, 104화의 의사 친구 부부의 아픈 아이의 에피소드는 아이가 한 번이라도 아파봤다면 느끼는 괴로움과 두려움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안 괜찮아도, 괜찮아지더라”라는 말 이후 아이가 천진난만하게 레서도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또다시 무너지는 부모의 모습은 ‘지금-여기’의 육아의 모습 그대로다.
그렇기에 공동육아
사실 육아툰은 일상툰과 달리 예민한 지점을 내포한다. 당연히 일상의 에피소드를 담고있는 웹툰은 분명한 각색이다. 화자를 이루고 있는 환경은 구체적이지만 작중인물과 완벽히 동일한 인물은 아니다. 따라서 내포화자가 나타내는 일상툰은 적극적인 ‘나’의 일상의 공유이자 적당한 선의 안전거리를 내포한다. 하지만 육아툰에서는 그러한 안전거리가 지켜지기가 쉽지 않다. 작위적 설정과 지나친 각색은 몰입을 방해하고, 특히 아이와 아이를 둘러싼 본인의 괴로운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적당선을 지키며 공감을 요청하는 것이다.
<닥앤닥>에서 특히나 본인의 경험과 응원 공감의 댓글이 많다. 각 에피소드마다 자신이 겪었던 비슷한 상황을 공유하면서 공동육아를 경험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언택트’의 네트워크다. 서로의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최전선의 위치에 서 있다. 특히나 육아는 보편적인 기준이 없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고 스스로의 기준들을 넓히고 사회적인 기준까지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내비친다. 애환이라는 단어로 치환되지 않는 지점들을 적극적으로 발화하며 아이를 기다리는 ‘나’, 아이를 키우는 ‘나’는 우리로 환산된다. 서로 모르는 사이지만 아이의 일상을 매개했기 때문에 충분히 내적인 친밀감이 높아질 수 있다.
특히나 유산, 우울증, 패닉 에피소드에 진심어린 댓글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당신’의 육아에 ‘나’라는 사람이 진심으로 공감하여 위로하는 것이다. 이는 작가인 닥터베르에게만 향하지 않는다. 댓글을 통해 알게 된 다른 사람들에게도 향하며 함께 육아의 고충과 슬픔을 나눈다.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한다. 육아툰은 아이를 키우는데 모든 사람들의 관심과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해나간다. 우리 아이를 자랑하는 것도, 우리 부부를 자랑하는 것도 아니다. 내 힘듦만을 알아 달라는 것도 아니다. 닥터들의 육아는 다른 이들의 육아와 크게 다르지 않은 지점들을 보여준다.
산부인과 의사지만 유산을 겪고, 아이가 경기를 일으키는 응급 상황에서 아무 일도 하지 못하기도 한다. 전문가인 엄마, 고학력자인 아빠도 결국 아이를 마주하며 무너지기도 하고 또다시 일어설 힘을 얻는 존재임을 드러낸다. ‘엄마’와 ‘아빠’라는 전통적인 육아 역할의 전복에서 빚어지는 상황들 또한 마찬가지다. 누가 주양육자가 되더라도 결국은 아이에 대한 사랑이 같다는 점을 다시금 보여준다. <닥앤닥>은 그렇게 ‘당신’의 육아가 ‘우리’의 육아가 될 수 있는 공동육아의 감각을 일깨운다.
글·한유희
문화평론가. 제 15회<쿨투라> 웹툰부문 신인상으로 등단. 2021년 만화평론 공모전 우수상 수상. 경희대 K-컬처 스토리콘텐츠 연구원으로 웹툰과 팬덤을 연구하고 있다.
- 정기구독을 하시면, 유료 독자님에게만 서비스되는 월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잡지를 받아보실 수 있고, 모든 온라인 기사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온라인 전용 유료독자님에게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모든 온라인 기사들이 제공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