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에 담기기로 한 육체의 단호함
코로나가 한참이던 2020년 12월 12일 사카모토 류이치는 도쿄 NHK 509 스튜디오에서 무관객 콘서트를 열었다. 불투명한 미래와 불확실한 현재에 대한 위안이라는 어젠다로 열린 2020년 공연은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전세계에 송출되었으며, 티켓을 보유한 관객에 한하여 4번 재관람할 수 있는 권한을 주어졌다. 당시 사카모토 류이치는 직장암이 재발한 상태였으며 폐와 간, 그리고 림프에도 암이 전이됐다는 진단을 받은 상태였다.
그 후 2022년 12월 11일 사카모토 류이치는 다시 한 번 더 같은 장소에서 무관객 공연을 열게 된다. 당시 공연은 라이브는 아니었다. 사카모토 류이치는 전이된 암으로 인해 건강이 악화되어 죽음을 앞 둔 상태였으며, 20여 곡을 라이브로 연주할 수 있는 체력이 없었다. 때문에 여러 차례에 걸쳐 연주를 녹음하고 녹화해야 했으며, 이는 카메라와 녹음 장치를 통해 기록되어 타임 라인 위에서 편집된 뒤 방송으로 송출되었다. 그리고 2022년 12월 11일 송출된 영상의 로데이터들은 다시 영화로 편집되어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이하 <오퍼스>)라는 이름으로 개봉되었다.
<오퍼스>는 사카모토 류이치의 아들인 소라 네오의 감독 하에 만들어졌다. 스스로 전시되기 위해 무대에 올라온 사카모토 류이치를 케어해야 하는 중대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적임자였기 때문에 그가 감독을 맡은 것이리라. 다만, 나는 사카모토 류이치의 아들이 영화를 감독하며 <오퍼스>가 사카모토 류이치라는 인물의 마지막 연주를 담은 영화라기 보다는, 그가 마지막으로 피아노 앞에 선 모습을 담아놓은 개인적인 사진첩 같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었다.
<오퍼스>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쇼트 중 하나는 클로즈업이다. 피아노를 치고 있는 손, 사카모토 류이치의 눈 등 신체의 부분들을 화면에 담아놓은 장면들이 피아노의 선율에 맞춰 지나간다. 이러한 카메라 워킹들은 궁극적으로 관객의 자리에서는 확인할 수 없는 것들,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을 담는다. 이는 사카모토 류이치라는 인물을 특별하게 만드는 힘이 있지만, 그를 어떤 인물로 기억하기보다는 어떤 장면으로 기억하게 만든다.
이러한 카메라 워킹에는 그 순간을 자세하게 담고자 하는 욕망이 내재되어 있다. 그 순간을 자세하게 담으려는 욕망 안에는 앞으로 사카모토 류이치를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유한성에 대한 조바심과 불안함이 웅크리고 있다. 그러나 사카모토 류이치는 “전에는 할 수 있었던 일을 지금은 할 수 없게 된 상황”에 대해 조바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 도리어 영화의 초반에서 중반에 이르기까지, 사카모토는 힘겹게 피아노 치고 있음을 숨기지 않는다. 그리고 더 칠 수 없을 것 같을 때에는 “잠깐 쉬었다 가자”는 말을 할 정도로 본인의 시간이 유한하게 흐르고 있다는 점에 대해 수용적이다.
결국 사카모토 류이치의 공연하는 순간을 포착하고자 하는 <오퍼스>는 사카모토 류이치의 공연 영화라기보다는, 차라리 그를 놓아주지 못한 사람들이 만든 영화로 보인다. 그 자리에서 사카모토 류이치의 육체는 자신이 음악하는 사람이었음을 증언하는 몸이라기보단, 차라리 이내 사라지고 없어질 유한성을 받아들인 이가 기꺼이 남겨놓은 허물에 가까워 보인다. 여러모로 <오퍼스>에 등장하는 사카모토 류이치는 표면적이다. 그러나 그렇게 표면으로 남기를 두려워하지 않은 육체야말로 유한성을 수용하는 사카모토 류이치의 단호함을 드러낸다. <오퍼스> 안의 사카모토 류이치가 남긴 그 단호함은 '보이는 대로 담는' 카메라의 냉혹함을 앞질러 있다.
육체 앞에 카메라를 놓아두기로 한 단호함
한편, 왕 빙의 <맨인블랙(黑衣人, 2023)>은 2022년 5월 27일 떼아르트 데 부르 뒤 노르에서 왕시린이 홀로 퍼포먼스를 수행하는 육체의 모습을 담고 있다. 왕시린은 1966년 문화대혁명 당시 우익분자로 몰려 중국 공산당이 자행한 자아비판 고문의 피해자 중 한명이며, 2017년 중국 허난성에서 독일 마인츠로 이민 간 음악가이다. 왕빙의 왕시린을 자신의 유일한 극영화 <바람과 모래(夾邊溝, 2010)>을 통해 알게 되었다.
<바람과 모래>는 <이름 없는 남자(無名人, 2010)>과 함께 2010년에 공개되었다. 고비사막 안에 천막으로 만든 강제수용소에서 지내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은 위 두 편의 영화는 단편 <흔적들(遺址, 2014)>을 거쳐 집단수용소 생존자의 증언을 담은 <사령혼: 죽은 넋(死灵魂, 2018)>의 출발점이 되었다. 왕 빙의 데뷔작 <철서구> 이후 두 번째 커리어하이로 꼽히도 하는 <사령혼>의 지위 덕분인지 많은 평자들은 왕빙이 왕시린의 육체를 통해 지난 10여년 간 다큐멘터리 작업을 통해 증언해왔던 ‘인민을 배반한 중국정부’를 겨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맨인블랙>은 왕 빙의 오랜 다큐멘터리 커리어 내에서도 대단히 이질적인 작업 방식과 분위기를 가진 작품이다. 왕빙이 중국의 공산당을 비판하고 있다고 지적한 평자들은, 왕빙이 그 어느 때보다 감정적으로 중국을 바라보고 있음을 언급했다. 그러나 오랜 시간 왕 빙의 영화를 쫓아왔던 정성일 평론가의 경우, KMDb 기고문을 통해 “왕시린을 누구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일까. (중략) 아마도 그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만 같다”며 왕 빙의 <맨인블랙>이 과거 정부의 과오를 비판하는 데 있지 않다는 점을 넌지시 언급했다.
정성일의 지적을 따라가보면, 우리는 <맨인블랙>에서 왕 빙이 두 가지 대상을 카메라에 담아놓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는 많은 평자가 지적하는 왕시린의 육체다. 그의 육체는 중국 공산당이 자행한 자아비판 고문을 통과했다. 더불어 그 이후의 삶과 시간이 부여한 피로와 노화를 안게 되었다. 따라서 왕 빙이 왕시린의 육체를 통해 담아놓은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고문의 흔적이며, 다른 하나는 노화의 흔적이다.
그리고 왕 빙은 <맨인블랙>을 떼아르트 데 부르 뒤 노르, 정확히 짚어서 말하면 공연장에서 찍었다. 공연장은 세 가지 공간적 특징이 있다. 하나는 외부와 구분을 지을 수 있도록 벽을 통해 일상으로부터 격리된 일탈적인 공간이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무대가 있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무대는 한정된 공간에서 전시될 수 있도록 공연장에 한 해 열려있다.
왕 빙이 찍어놓은 대상을 따라가보면, 우리는 보다 정확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왕빙은 왜 왕시린을 일탈적이며 한정된 공간 안에서만 열린 전시 공간에 데려갔을까? 혹자는 왕빙이 왕시린의 육체를 전시하여 중국 공산당의 과오를 비판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공간을 설정했다고 말할 것이고, 또 다른 이는 왕시린이 공산당이 자행한 자아비판 고문 이후의 시간을 견뎌온 공간이기 때문이라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정성일이 오랜 시간 지적해왔듯이, 왕 빙은 무언가를 전시하기 위해 공간을 편집하는 경우가 없다. 이 점은 왕 빙이 어떤 작업에서든 포기하지 않는 일종의 윤리강령이다. 그러므로 왕 빙이 공간을 편집했다는 주장은 옳다고 보기 어렵다.
나는 왕시린의 육체를 전시하겠다는 기획의 주체가 왕 빙이 아닌 왕시린의 아이디어 였을 것을 가능성을 생각해본다. 왕시린은 왕 빙이 10년이 넘는 오랜시간동안 ‘고비사막의 집단수용소’에 대해 작업하고 관심을 기울여 왔으며, 20여년 간 대상을 관찰한 방법론을 택한 다큐멘터리스트로써 카메라로 기록하는 방식과 태도에 대한 노하우를 가진 작가라는 점을 존중하여 그 동안 왕 빙이 쌓아온 작업을 초과하는 방식을 제안했을 가능성이 〈맨인블랙〉을 설명하는데 더 적합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경우 <맨인블랙>은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를 담은 공적인 영화가 된다. 이 관점에서 왕 빙이 왕시린을 촬영한 공연장이라는 공간은 일종의 고해소에 가까운 장소였으리라 생각된다. 그 곳에서 카메라는 일종의 신이며, 카메라를 운영하는 감독은 신부이고, 왕시린 육체는 “헛된 희망을 줄 수 없었기에 동화를 팔고 영광스러운 미래를 그릴 수 없었다”고 고하는 죄인이 된다. 이 순간 왕시린의 육체는 감정없이 ‘그저 돌리면 기록되는’ 냉혹한 관찰자 앞에 선 죄인이 된다.
이 지점에서 나는 그 카메라 뒤에 있는 왕 빙의 육체를 생각한다. 오랜 시간 마음에 안고 있던 죄책감과 책무감을 쏟아내는 인물과 함께하는 이의 육체. 육체를 전시하겠다는 아이디어가 왕 빙의 기획이 아니었음에도 <맨인블랙>이 왕 빙의 영화라고 말 할 수 있는 요소가 있다면, 그것은 카메라 앞이 아닌 뒤에 있다. 절대적인 관찰자가 필요한 곳에, 그 절대성을 강림시키는 능력. 이는 <맨인블랙>을 왕 빙의 영화로 만드는 중요한 요소다. 영화는 보이지 않는 요소를 통해 완성되기도 한다.
글‧이현재
경희대학교 K컬쳐・스토리콘텐츠연구소, 리서치앤컨설팅그룹 STRABASE 뉴미디어・콘텐츠 섹터 연구원. 「한류 스토리콘텐츠의 캐릭터 유형 및 동기화 이론 연구」(경제·인문사회연구회) 「글로벌 게임산업 트렌드」(한국콘텐츠진흥원) 「저작권 기술 산업 동향 조사 분석」(한국저작권위원회) 등에 참여했다. 2020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부문, 2021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만화평론부문 신인평론상, 2023 게임제네레이션 비평상에 당선되어 다양한 분야에서 평론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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