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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영의 시네마 크리티크] 미래 사회의 벌거벗은 생명: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미래의 범죄들>(2022)
[정문영의 시네마 크리티크] 미래 사회의 벌거벗은 생명: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미래의 범죄들>(2022)
  • 정문영(영화평론가)
  • 승인 2024.02.26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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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디 호러 영화의 전유를 통한 인간의 몸에 대한 ‘명상’ 영화

<미래의 범죄들>(Crimes of the Future, 2022)은 “바디 호러”(body horror)의 주요 창시자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8년만의 신작이고 바디 호러 장르로는 <엑시스텐즈>(1999) 이후 23년만에 제작된 영화이다. 2022년 제75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작이었고, 한국에는 2022년 제27회 부산영화제에서 소개되었고, 그리고 2023년 캐나다 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되었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정신으로부터”(From the Mind of David Cronenberg)라는 부제가 붙은 이 영화는 인간 육체의 미래에 대한 감독 자신의 주관적 생각을 표출하고 있다. 따라서 일인칭 시점의 내레이션은 아니지만, 영화의 서사는 마치 감독의 “마인드스크린”을 보는 것 같은 불연속적인 구조, 즉 막으로 구성된 연극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도록 전개된다. 이것이 호불호를 나누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리스에서 촬영한 이 영화의 고전극과 같은 분위기의 연극성은 “야한”(gross) 또는 “과도한”(excessive) 장르가 될 수도 있는 바디 호러의 “저급한”(low) 차원을 고양시키는 효과를 거두기도 한다.

 

바디 호러는 포르노그래피와 멜로드라마를 비롯하여 “세 가지 야한 바디 장르”(three gross body genres)로 꼽힌다. 이 영화는 인간의 신체를 기괴하게 변형시킴으로써 선정적(sensational) 자극 뿐 아니라 공포감과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하위 호러 장르 중 하나인 바디 호러로 분류될 수 있다. 그러나 “비정상적인 성별, 돌연변이, 절단, 좀비화, 불필요한 폭력” 등과 같은 신체에 대한 그로테스크하거나 심리적으로 불안한 잠식을 고의적으로 보여주는 바디 호러 영화와는 차별성이 분명히 부각되는 영화이다. 따라서 바디 호러의 장르적 요소들을 전유하여 미래 인간의 몸의 진화 문제에 대한 “명상” 영화를 만들고자 한 감독의 의도를 확실하게 읽어낼 수 있다.

 

2. 인간의 몸의 진화에 대한 상반된 입장 충돌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프롤로그로 그리스 비극작가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의 자식 살해에 비유될 수 있는 비극적 사건을 도입한다. 생명의 근원인 바다의 오염을 상징하는 전복된 배를 배경으로 해변에서 혼자 놀고 있는 아이 브레켄과 거기서 주운 것을 먹지 말라고 당부하는 엄마 듀나(리히 코르노우스키), 두 모자의 등장으로 시작하는 프롤로그는 이 영화의 주요 이슈들을 함축하고 있다. 플라스틱을 먹을 수 있는 최초의 자연인 브레켄을 낳은 듀나는 존속살인이라는 죄를 범하는 비극적 선택을 감행한다. 프로-돌연변이 액티비스트로 플라스틱 식용화에 앞장서고 있는 브레켄의 아버지이자 그녀의 전남편인 랭(스콧 스피드먼)에게 전화로 이 사실을 알리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프롤로그는 메데이아의 경우처럼, 듀나의 아들 살해 또한 남편에 대한 최상의 복수임을 시사한다.

인간 몸의 미래와 진화에 대한 서로 상반되는 입장을 대변하는 신인류의 최초의 부모의 대립 관계와 듀나의 복수는 앞으로 전개되는 플롯과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는 사건이다. 플라스틱을 먹는 잠재적 특이성을 지닌 아들을 살해한 듀나와 급진적인 사상과 혁명을 추종하는 랭의 상반된 입장의 충돌은 새로운 신체의 미래와 진화의 문제가 도달하게 될 디스토피아적인 SF 영화의 비극적인 전망을 예견하게 한다.

 

3. 플라스틱과 미래 인간 몸의 새로운 생존방식

개봉을 앞두고 한 인터뷰에서 감독은 이 영화가 기후 위기와 환경오염과 같은 인류가 야기한 문제들을 해결 가능할 수 있도록 인간의 몸이 진화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음을 암시했다. 그가 상상한 미래 인간 몸의 성장과 생존방식은 인공 플라스틱의 섭취를 통한 것으로, 이 영화는 “플라스틱”을 주요 화두로 삼고 있다. 플라스틱(plastic)은 쉽게 원하는 모양으로 가공할 수 있다는 의미의 그리스어 플라스티코스(plastikos)에서 유래한 용어로 열과 압력을 가해 성형할 수 있는 많은 종류의 합성수지를 통칭한다. 생태계 오염의 주범인 플라스틱에서 신인류의 생존 방안을 찾는 획기적인 사고의 전환은 아이러닉하게도 인류 역사의 결정적인 갈림길에 선 우리에게 혁명적이면서도 실질적인 방안의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심각한 환경 문제의 주범인 생분해도, 재활용도 거의 되지 않는 합성된 인조물로 둘러싸여 살게 될 미래를 직면한 우리에게 인공 플라스틱의 재활용은 환경 문제뿐아니라 식량 부족으로 인한 인간의 생존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최상의 방안임은 분명하다. 사실 이 영화는 미래 세계의 혁명을 꿈꾸는 랭과 그의 집단이 추구하는 플라스틱의 식용화가 성공한다면 가장 완벽한 환경 문제의 해결 방안이자 미래 인간 몸의 진화와 새로운 생존 방식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상상을 전제로 하고 있다.

 

4. 미래 사회의 호모 사케르들: 잠재적 특이성을 지닌 특수 인간들

미래사회의 신인류를 대변하는 브레켄과 같은 기이하고 특이한 존재는 조르조 아감벤의 주요 화두로 거론되는 호모 사케르(Homo Sacer)에 비유될 수 있다. 고대 로마 사회의 호모 사케르를 직역하면 신성한 생명이지만, 희생물로 바치는 것이 허용되지 않고, 죽이더라도 살인죄로 처벌받지는 않는 인간, 즉 제도권 속에서 배제를 당하는 ‘벌거벗은 생명’을 뜻한다. 이 영화는 미래사회가 이러한 호모 사케르들, 잠재적 특이성을 가진 존재들이 도래하는 공동체 사회가 될 것임을 예견한다.

 

브레켄 뿐 아니라 주인공 사울 텐서(비고 모텐슨)와 같은 “특수 인간들” 또한 호모 사케르이다. 미래 인간의 몸은 살을 가르고 내장을 꺼내도 고통을 느낄 수 없게 된 상황, 방향성을 도저히 파악할 수 없는 변이를 겪는 부조리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러한 돌연변이의 “가속 진화 증후군”이라는 특이한 질환에 시달리는 사울은 몸 안에서 기능을 파악할 수 없는 새로운 장기가 수시로 생겨나는 병을 앓고 있는 환자이자, 이러한 특이 질환을 앓고 있는 자신의 몸을 예술로 승화시킨 행위 예술가로, 팬덤을 형성하고 있는 인플루언서이기도 하다. 비밀 장소에서 그의 파트너 성형외과 의사 카프리스(레아 세두)의 도움으로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그의 장기에 멋진 타투를 새기고 악성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 퍼포먼스는 일종의 밀교 의식이자, 죽음을 초월하기 위한 죽음의 무도를 보여주는 스펙터클이다.

사울과 카프리스의 수술과 브레켄의 시신 해부 공연에 관객이 몰리는 것은 물론 시각적 쾌락 충족에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공연에 참가하고자 하는 이유 또한 예술의 열정만이 아니라 극단적인 촉각적 감각의 쾌락을 추구하는 ‘새로운 섹스’로 수술을 통해 성욕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다. 미래 인간의 새로운 섹슈얼리티는 전라로 사울과 카프리스가 시체 검시기계 사크에 들어가 레이저 메스로 몸을 절개하고 훼손시키며 성적인 절정감에 이르는 시퀜스를 통해 구현된다. 사울의 퍼포먼스가 팬덤을 형성할 수 있는 동인은 바로 이러한 은밀한 쾌락의 만족에서 발견된다.

 

사울과 같은 특수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돌연변이의 장기들을 등록 관리하는 기관의 공무원들인 위펫(돈 맥켈러)과 그의 조수 팀린(크리스틴 스튜어트)은 인간 신체에 대한 국가 권력의 관리와 통제를 위해 일하는 인물들이다. 따라서 이들은 생명정치(Biopolitics))의 메커니즘을 상징하는 체제의 생명권력(Bio-pouvoir) 행사를 대변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생명정치란, 푸코에 의하면, 인간의 삶의 모든 국면에 정치적 권력을 적용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생명권력을 통해 인간을 통제하는 통치의 스타일을 일컫는다. 그러나 이들은 사울의 극성 추종자로 그의 퍼포먼스 예술에 빠진 광팬들로 등장한다. 특히 팀린은 후반부의 브레켄 시신 부검 퍼포먼스에서 사울의 사생팬으로 그와 그의 예술에 대한 주체할 수 없는 열정의 분출을 충격적인 방식으로 드러낸다.

그러나 팬덤을 형성할 정도로 주목을 받지만, 특이성이 잠재된 존재들은 미래사회의 호모 사케르, 벌거벗은 생명으로 여전히 현 체제의 법질서 외부에 위치한 예외적 존재로 취급된다. 예외라는 것은 일종의 배제이며, 역설적으로 배제된 것은 배제되었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법질서와 무관할 수 없고, 오히려 법질서의 효력을 정지시킴으로써 내부로 포함된다. 사실 법질서는 예외를 창출하고, 그 예외와의 관계를 유지함으로써만 비로소 자신을 법질서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울은 현 체제를 유지하는 법질서의 역설을 드러내는 호모 사케르로서의 그의 존재를 입증해준다.

잠재적 특이성를 지닌 사울의 몸의 퍼포먼스는 배제를 불가능하게 하는 자유로운 잠재성을 구현하는, 배제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시도를 수행하는 수행성을 발휘한다. 이 영화는 안과 밖을 가르는 경계에 선 배제를 거부하는 잠재적 특이성을 지닌 사울의 몸의 퍼포먼스를 통해 폭력과 억압에 맞설 수 있는 미래 사회의 새로운 체제를 전망하고자 한다.

 

5. 미래 인간의 실존적 그리고 정치적 상황과 선택

사실 이 영화의 주요 주제는 사울의 퍼포먼스 무대 위가 아니라 무대 밖에서 전개된다. 그가 생체 의자에 앉아 신음 소리를 내며 고통스럽게 식사를 하는 일상적인, 그러나 부조리한 현실 속 장면에서 포착된다. 무대 위에서 외과적 수술과 훼손으로 고통을 느끼는 대신 예술로 승화시키기도 하고 성욕을 만족시키기도 하는 사울의 몸은 일반적인 음식의 섭취와 소화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느낀다. 이러한 고통을 감내하며 비정상적인 몸과 끊임없이 싸워야하는 실존적 상황에서 그의 선택을 통해 이 영화는 새로운 인간 신체의 미래와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다.

사울이 처한 상황과 그의 선택을 통해 일방적으로 고도로 발전한 기술로 인간 신체의 통제와 자유로운 변종이 가능하게 된 미래에 오히려 자신의 몸과 생명의 의미를 더욱 의식하게 되고 인간다운 존재 방식을 추구하는 실존적 선택과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는 역설을 이 영화는 부각시킨다.

또한 이 영화는 막후에서 은밀하게 사울과 같은 행위 예술가들을 감시해온 코프 형사(월켓 분게)를 통해 생명정치학의 작동을 드러내 보인다. 프로-돌연변이를 선전하기 위해 아들 브레켄의 시신 부검의 공개적인 공연을 의뢰한 랭과 그의 프로-돌연변이 그룹들에 대한 감찰과 압박을 위해 사울에게 접근한 형사의 역할은 생명권력의 권력 행사를 주목하기 위한 것이다. 코러스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였던 여자 기계 수리공 커플 라우터(나디아 리츠)와 베르스트(타나야 비티)가 조직에서 보낸 집단 말살을 자행하는 해결사였다는 사실 또한 막후에 작동하고 있는 생명정치학의 통제력을 입증한다.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코프가 대변하는 집권 체제가 랭과 그의 급진적 집단에 대하여 행사한 생명권력의 과격한 물리적 폭력의 사건으로 전개된다. 이러한 사건을 통해 사울과 카프리스는 생명을 끊임없이 “벌거벗은 생명”으로 만들어가는 정치권력의 존재를 직면하게 된다. 바로 이러한 생명권력이 막후에서 은밀하게 작동하며 자신과 같은 특이성을 지닌 존재를 호모 사케르로 몰아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깨달음에 근거하여 두 사람은 생명권력이 과잉으로 작동하는 현 체제를 비판적으로 극복하려는 실존적인 그리고 정치적인 선택과 노력을 결심한다. 이러한 결심은 두 사람의 상호 신뢰와 함께 새로운 지평에 대한 믿음을 시사하는 영화의 결말로 이어진다.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글·정문영
영화평론가, 계명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명예교수. 한국영화평론가협회와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다양한 매체와 장르의 텍스트들을 상호텍스트(intertext)와 팔림세스트(palimpsest)로 읽는 각색연구가 주요 관심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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