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묘>가 개봉 열흘 만에 5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 극장가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이 와중에 감독의 의도와 관계 없이 이 영화는 얼마 전 개봉한 한 다큐멘터리의 열성 팬들과 대립 중이다. 아마도 그들에게 극의 내용 중 가장 크게 다가온 캐릭터는 일본 장군이었고, 그것을 다루는 태도 중 가장 도드라진 것은 반일 정서였던 모양이다. 물론 영화의 작품성과 완성도를 떠나 이야기의 소재나 주제가 하나의 설전거리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회자된다는 것은 이 작품을 향한 한국 대중들의 관심도를 방증한다.
그러나 이러한 일부 관객들이 문제 제기하는 정치성 때문에 <파묘>를 연출한 장재현 감독의 장르적 근성이 묻혀 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한국영화 안에서 오컬트(occult)적 세계관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으며, 그것이 한국문화와 결합될 때 어떻게 민족지학적 특성을 통합하여 보편적 장르성을 확보하면서도 특수화할 수 있는지가 이 영화 <파묘>를 통해 이전보다 더욱 선명해지기 때문이다. 과연 한국영화계에서 오컬트에 이토록 꾸준하고도 집요한 감독이 있었던가? 장재현 감독의 오컬트적 세계관의 정점으로 보이는 그 이야기는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산 속의 한 무덤에서 시작한다.
재미교포 사업가로부터 거액의 비밀 작업을 의뢰 받은 무속인 화림(김고은)과 봉길(이도현)은 지관 상덕(최민식) 그리고 장의사 영근(유해진)과 함께 파묘 작업에 착수한다. 의뢰인은 관을 파낸 후 절대 열어 보지 말고 바로 화장할 것을 요구하지만 갑작스럽게 내린 비와 함께 일이 틀어지고, 이로 인해 의뢰인의 집안에서 자손 대대로 흘러 내려오던 조상의 비밀이 봉인해제 돼 걷잡을 수 없는 파문을 몰고 온다.
그동안 한국영화가 스타일이나 장르, 서사의 측면에서 그 다양성을 확장했음에도 유독 오컬트 장르만은 늘 제자리 걸음을 하는 듯 그 출현도 행방도 모두 묘연했었다. 그렇다고 한국 영화사에서 오컬트 장르가 미개척지였던 것도 아니다. 물론 이 장르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따라 그 시발점과 해당 작품의 선정 방식 또한 달라질 것이나 ‘신비주의’와 ‘주술’, ‘영적 현상’ 등과 같은 오컬트 장르의 핵심어로만 본다면 <너 또한 별이 되어>(이장호, 1975), <깊은 밤 갑자기>(고영남, 1981), <여고괴담>(박기영, 1998), <불신지옥>(이용주, 2009), <곡성>(나홍진, 2016) 등 시대별 대표작을 쉽게 나열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토속 신앙과 서양 오컬트 무비의 장르적 특성을 적절히 배합하며 지속적으로 이 장르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연출자는 쉽게 찾아볼 수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파묘>를 연출한 '장재현'이라는 이름 석 자는 한국영화사에서 오래도록 기억될 필요충분조건을 이미 갖췄다고 할 수 있겠다. 단편은 말할 것도 없고, 장편 데뷔작 <검은 사제들>(2015)부터 <사바하>(2019)에 이어 이 영화 <파묘>에 이르기까지 장재현의 영화적 세계관은 오컬트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파묘>에만 국한한다면 무속 신앙이 뿌리 깊은 한국 정서에서, 이 영화가 지니고 있는 오컬트라는 장르의 태생적 속성과 그 뼈대를 이루는 스릴러적 요소는 분명 한국 관객들에게도 큰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며, 실제로 이 영화는 현실의 한계를 파괴하고 전복함으로써 극장을 찾는 관객들에게 장르적 쾌감을 선사한다.
한편으로는, 흥미로움이 곧 한 영화의 작품성이나 완성도와 연동되는 것은 아닌 것처럼 <파묘>를 ‘보는 맛’은 소재에 대한 호기심과 장르적 특수성이 자아내는 일시적 후광일 뿐 영화의 완성도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무엇이 문제인가? 그것은 보편적으로 '고전' 혹은 '명작'이라 회자되는 작품들의 속성을 보면 알 수 있다. 문학을 비롯해 문화예술계에서 고전(classic)이란 곧 불멸의 명작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일반적으로 어떤 것들에 '고전' 내지는 '명작'이라는 타이틀이 붙을까? 일례로, 고전이라 불리는 영화나 문학 작품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소재나 주제의 면에서 그것이 탄생한 당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면서도 시대를 초월하는 파급력을 지니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를테면 모든 이야기에는 힘이 있는데, '고전' 내지는 '명작'으로 일컫는 작품들은 그 힘이 동시대에만 효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세월을 거듭하며 지속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시대성’과 ‘역사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영화 <파묘>를 돌아보면 동시대 극장이라는 공간 ‘지금 여기’에서 누릴 수 있는 영화적 재미 즉, 현재적 가치는 분명 뛰어나다. 그러나 끝까지 채워지지 않는 빈약한 서사와 전반부와 후반부가 긴밀히 결속되지 못한 채 겉돌게 되는 주제의 비약은 이 영화에 역사성을 부여하기 어렵게 만든다. 무엇보다 이러한 한계는 장재현 감독의 장편 데뷔작에서부터 최근 작품인 <파묘>에 이르기까지 비교적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되고 있으므로 한국영화계에서 장재현이라는 이름 석 자의 지속 가능성은 후속작에서 판가름이 날 것으로 본다. 그래서 이 영화 <파묘>는 장재현의 정점인 동시에 변곡점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글·윤필립
영화평론가, 응용언어학자. 대학에서 강의하며 한국 언어/문화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학부와 대학원에서 국어국문학(한국어교육)을 전공했으며, (사)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 영상작가전문교육원 수료 후 무궁화 스토리텔링 공모전(동화), 서울국제사랑영화제 기독교 영화비평상,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부문 등에서 수상했다. 만화평론상, 대종상,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의 심사위원 및 영평상 집행부 등을 역임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 봉사단원으로 필리핀 관광부(마닐라) 관광 개발 기획국에서 일했으며, 에모리대(미국) 대학원 펠로우십 후 국립정치대(대만) 한국어문학과와 난양공대(싱가포르) 인문대학 교수로 지냈다. 2019년 귀국 후 현재 세종사이버대학교 한국어학과 초빙교수이자 한국어교육원장으로 재직 중이며, 연세대학교 강사 및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총무간사 등을 역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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