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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경의 시네마 크리티크] 파묘로 꺼낸 거대 담론, 영화<파묘>(장재현, 2024)
[김 경의 시네마 크리티크] 파묘로 꺼낸 거대 담론, 영화<파묘>(장재현, 2024)
  • 김 경(영화평론가)
  • 승인 2024.04.15 11: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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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묘>는 장재현 감독의 세 번째 장편영화다. 그는 영상원 졸업 단편 <12번째 보조 사제>(2014) 이후 지속해서 오컬트 영화(신비주의 소재 영화. 예컨대, 초자연적, 신비주의(occultism) 현상이나 유령, 악마 등을 다룬다)를 만들고 있다. 그의 오컬트에 관한 관심은 가톨릭(<검은 사제들>(2015))에서 기독교와 불교(<사바하>(2019)) 그리고 한국 무속(<파묘>(2024)에 이르렀다. 주인공이 어떤 옷을 걸치던 핵심은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것이다. 

 

‘험한 것’이라는 타자를 꺼낸 오컬트 영화

 

장재현 감독은 <파묘>의 실체 없는 혼령과 괴물을 통해 역사를 드러냈다. 

 

한반도가 형상화된 <파묘>포스터

영화라는 매체도 실체가 없는 ‘그림자 연극’이고, 눈속임 마술이며, ‘시뮬라시옹’ 이라고 볼 수 있으니 영화 매체 속성 자체가 도깨비다. 그러한 이유로 억압된 진정성과 내포된 의미에 접근하는 표현주의적 영화나 판타지 영화, 오컬트 영화들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 연장선에서 오컬트 영화 <파묘>는 관객들에게 어떤 공명을 일으켰을까.

이를 위해 <파묘>는 일본제국주의라는 타자를 꺼냈다. 이 타자의 발현 방식에 따라 전후반이 나눠진다. 전반부는 파묘되는 과정에서 친일 인사 원혼이라는 타자가 등장하며, 후반부는 친일 인사 묘 아래 숨겨져 있던 중세 일본 영주 괴물이 타자로 등장한다. 실체가 없는 악령에서 실체가 있는 괴물로 바뀐 것이다. 이 괴물은 ‘도깨비’나 일본 도깨비인 ‘오니’ 등으로 분류되고 있지만 ‘살아 움직이는 시체’라는 의미에서는 좀비에 가깝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과거 조선을 침략한 타자(일본제국주의)가 본질일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파묘된 친일 인사가 살아서도 죽어서도 말 그대로 쇠말뚝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첩장’(한 묫자리에 관이 중첩으로 묻혀 있는 것)이라는 설정과 쇠말뚝 역할을 위해 숨겨둔 세로로 꽂힌 관의 주인이 세키가하라에서 서군이었던 다이묘(일본 중세 시대 영주)라는 것이다. (서군 측의 상당수는 임진왜란에 참전한 자일 확률이 높다) 일제 강점기의 풍수사가 조선의 지기를 끊기 위해 만 명 이상을 죽인 그의 칼과 함께 조선의 허리에 해당하는 위치에 꽂아 묻었다는 것이다. 잃어버린 성궤도 아니고 보물 지도도 아닌데, 이를 찾는 과정은 의도적으로 꼭꼭 숨겨 놓은 ‘험한 것’ 이기 때문에 음산하고 미스터리하다. 그곳에 출몰하는 불길한 여우 무리나 여자 얼굴 뱀( 누레 온나. 인간 여성의 머리가 달린 기괴한 뱀으로 일본문화에 등장하는 요괴.) 등으로 겹겹이 은닉되어 있지만 결국 그 모습을 드러낸다.

 

한국 역사라는 거대 담론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지키는 무당과 풍수사 그리고 장의사

이 과정에서 무당과 풍수사 그리고 장의사가 협력한다. 이 직업군은 한국 역사 속에서 오랫동안 한국인의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지켜왔으나,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의도적으로 폄훼된 자들이다. 그러므로, 이들이 일제강점기에 묻어둔 ‘험한 것’을 해결한다는 설정은 의미 심장하다.

영화 전반부 첫 번째 파묘는 무당 화림(김고은)과 법사 봉길(이도현)이 주도한다. 이들은 악지에서 불길한 기운을 느낀 풍수사 상덕(최민식)의 반대에도 위험에 빠진 박지용(김재철 분)의 가족을 도와 ‘대살굿’을 한다. 이들이 묫바람을 해결해서 그 집안의 갓난아기를 구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첩장의 존재를 알게 된다.

 

진짜 '험한 것'

첩장으로 은닉한 흉측한 쇠말뚝 무덤은 풍수사 상덕이 해결한다. 영화<명량>의 충무공 최민식이 열두 척의 배로 왜구를 무찔렀다면, <파묘>의 풍수사 상덕 최민식은 음양오행으로 왜구 오니를 쓰러뜨린다. 여기에서 ‘쇠막대기’에 해당하는 묘를 파묘하는 것은 쇠막대기 제거 작업에 해당하고 민족의 정기를 회복하는 과정이다. 영화 촬영 과정에서 상덕이 던진 100원짜리 동전마저도 우연히 충무공 면이 위로 올라오는 해프닝도 있었다한다. 등장인물들이 모두 실제로 우리나라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이라던가, 등장하는 자동차 번호가 광복절(0815), 삼일절(0301) 등인 것처럼, 영화 구석구석에 숨은그림찾기처럼 소소한 배치를 해 놓았다. 장재현 감독은 음지에서 고생한 독립운동가들을 보고 감명받아 그들을 소환하고 싶었고 우리나라의 상처와 두려움, 트라우마를 하나하나 꺼내어 관객들이 후련함을 느낄 수 있게 해 주고 싶었다고 하니 (tvND 유퀴즈) 이런 숨은 그림은 상징적인 거북선들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오컬트 영화 <파묘>는 귀신이나 무덤, 시체 같은 터부를 중심에 배치하기보다 역사를 끌어올려 두려움의 본질에 접근시킨다. 혼령이나 괴물보다 친일이나 왜구라는 역사가 더’험한 것’이라고 강변하는 것처럼. 그리고, 과거 청산의 상징, 친일 인사의 손자, ‘갓난아기’부터, 민족의 끊어진 혈을 다시 이어 친일 잔재를 청산하고 민족정기를 회복한다는 거대담론까지 가볍지 않은 공감을 일으킨다.

 

 

글·김 경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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