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혁명과 법학과 4학년 학생, 신성일
영화<예라이샹>은 1966년에 개봉했지만, 시대적 배경은 1960년 4·19 혁명 기간이다. 4.19가 영화 소재로 사용된 경우는 극히 드물어서인지 참신하게 느껴진다. 난희(문정숙)는 시위 중 총상을 입고 대문을 두드리는 학생 조세영(신성일)을 헌신적으로 도와준다. 이들이 사랑에 빠지는 것은 자연스럽다. 정창화 감독도 이들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과정에 별도의 영화적 장치를 사용하지 않는다. 둘 다 고아로 혈혈단신 외롭게 살아왔기 때문에 도움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친절이 사랑으로 기운다 한들 어색할 것도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이들의 사랑을 방해하는 요소는 조세영이 법학과 4학년 고학생이라는 것. 지금도 그렇지만 특히 ‘대학생’이라는 것이 특별한 사회적 신분으로 존중받던 그 시절, 그것도 법학과 4학년이라는 의미는 곧 판검사가 되어 권력의 핵심이 될 기반을 갖추고 있는 미래 권력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친일파로 암시되며 권력에 기생하여 부를 챙기는 박 사장(최남현)이나 허상무(허장강) 등의 관심과 기대 그리고 감시를 받게 된다. 박 사장과 허상무의 파행은 멜로드라마의 클리세로 작동하고, 이들의 음해와 폭력이 심해질수록 세영의 확고한 사랑이 뚜렷하게 드러날 뿐이다.
거침없고 담백한 60년대 여성, 예라이샹 문정숙
정창화 감독은 홍콩 쇼 브라더스 소속 감독 시절이나 재미 한국인으로 자칭 ‘이방인’(The Man of Action p.17)이 되기 오래전부터 해외로 시야를 넓혔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홍콩 합작영화 <망향>(1958)부터 만주 대륙물의 시대를 열었던 <지평선>(1961), 미얀마의 한국 젊은이들을 포착한 <사르빈강에 노을이 진다>(1965)나 일본, 홍콩, 대만 등에서 현지 로케이션과 순발력 넘치는 몰래카메라식 촬영으로 쇼 브라더스에서 작업할 기회를 얻게 했던 영화 <순간은 영원히>(1966) 까지 그는 해외를 염두에 둔 영화들을 성공시켰다.
<예라이샹>도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이국적이다. 정확히는 중국적이다. 일제 강점기에 중국에서 살던 어린 여자아이가 부모를 잃고 홀로 한국에서 살아가며 나이트클럽에서 일하는 직업여성이 되었지만, 순수한 사랑만큼은 지켜낸다는 내용이다. ‘밤에 찾아드는 향기’라는 뜻의 예라이샹은 그녀. 난희의 별칭이며 그녀를 상징한다. 원작자 김석야 작사, 황문평 작곡의 영화 주제가 ‘예라이샹’ 역시 예라이샹 역의 문정숙이 직접 불러, 이러한 상징적 의미를 밀착시킨다. “한낮에는 수줍음 많고 밤을 기다려 피는 순정의 꽃…시름겨워 피어난 애달픈 꽃”이라는 노래 가사 역시 영화의 서사적 기능을 한껏 끌어 올린다. 그녀는 70년대 한국에서 뿌리내렸던 일명 ‘호스티스 영화’의 주인공들 즉, ‘영자’와 ‘O 양’의 원형쯤 된다. 그러나 이들에 비해 성숙하고 솔직하며, 대담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여성이라는 점이 도드라진다. 그녀는 사랑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거침없고 담백해서 조세영과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주도한다. 그런 그녀도 세상의 시선을 내면화하며 괴로워하지만, 사랑을 통해 극복하고 성장한다. 그녀가 이 과정에서 보여주는 히스테리와 알코올중독 그리고 정신병원의 등장은 보이지 않는 (여성)금기를 넘어선다. 미국에서 조차 비슷한 접근방식을 위해 독립영화의 아버지라는 존 카사베츠 감독이 <영향 아래 있는 여자>(1974) 를 통해 겨우 암시할 수 있었던 것에 비하면 시대를 성큼 앞서간 탁견이다.
친일파 기회주의자, 최남현과 허장강
‘일본 앞잡이’였고 상해에서 예라이샹의 부친을 살해 후 그의 아내와 재산을 빼앗았던 과거가 드러난 박 사장(최남현)과 허상무(허장강)의 이야기는 이 영화의 다른 한 가닥이지만 결국 그들과 같은 친일파는 지금까지도 면면히 기회주의자로 한국 사회에 숨어있는 악당이라는 것이 복선이다.
박 사장은 예라이샹의 입을 통해 ‘악마’라고 표현되며, 정창화 감독의 화면구성을 통해 시각화된다. 이미 박 사장 집 천장에 장식된 새 박제들이 암시하고 있었지만, 그와 허상무가 조세영을 살해하려고 모의하는 장면에서 박제된 새의 양날개 사이에 놓인 박 사장의 얼굴이 낮은 앵글로 그로테스크하게 묘사된 장면은 히치콕의 <새>는 물론 더 거슬러 올라가면 <전함 포템킨>(에이젠슈테인, 1925)의 장갑+새 몽타주까지 연상되는 놀라운 장면이다. 그 순간 그의 존재는 시각적으로 완벽한 악마이기 때문이다.
액션영화 거장의 마무리는 역시 대담한 액션이다. 허장강과 신성일의 결투는 <황혼의 검객>(1967)에서 허장강과 남궁원이 하얀 도포를 휘날리며 검을 휘두른 사극 액션을 예고 한다. 창고 액션 장면을 이렇게 찍은 감독이 있었을까. 먼지와 바람, 서부극의 클리세인 남북 동선, 창고 벽이 만들어내는 프레임인 프레임, 그리고 흑백 콘트라스트가 대미를 장식한다. 이 영화에서 창고는 뒷골목 범죄 공간이 아니라 공공의 적, 악당을 응징하는 한국형 서부극의 역사가 된다.
글·김 경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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