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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의 문화톡톡] 영화와 액티비즘
[김소영의 문화톡톡] 영화와 액티비즘
  • 김소영(문화평론가)
  • 승인 2024.06.17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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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액티비즘

‘액티비즘(activism)’이란 여러 형태의 집단적인 활동과 사회운동을 포괄하는 행동주의를 의미한다. 따라서 액티비즘은 문화예술 영역 전반에 걸쳐 나타날 수 있다. 순수미술의 경우, 공공예술을 통해 예술가가 액티비즘의 정신을 직접적으로 드러내 왔다. 영화는 어떠한가? 일반적으로 영화는 이전의 예술과 달리 제7의 예술로 탄생하며 대중예술로서의 새로운 위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에 걸맞게 대중들이 쉽게 즐길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적인 특성도 지니게 된 것이다. 따라서 영화는 일차적으로 대중에게 즐거움을 제공하는 오락거리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영화는 어떤 장르를 취하느냐에 따라,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충분히 그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에게 특정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사회비판적 주제가 담긴 영화는 그것과 연관된 감독의 세계관이나 가치관이 자연스럽게 관객에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로 인해 형성된 집단의식은 사회적, 정치적 제도에 변화를 가져오기도 한다. 또한 그 어떤 예술보다 영화는 대중에게 시공간을 초월하여 가장 친숙하고 빠르게 전파될 수 있다. 이러한 영화의 매체적 특성이 바로 영화의 사회적 기능과 연결되는 지점이다.

 

영화적 액티비즘과 정치의 예술화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사진과 영화를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이라 호명했다. 그는 기술의 등장과 발전으로 말미암아 예술작품 원본의 아우라(aura)라는 제의적 가치가 전시적 가치로 변화되었다고 말했다. 이전의 예술작품은 오로지 원본만이 가질 수 있는 신성함으로 인해 제의적 가치를 지녔지만, 기술 복제로 탄생한 예술작품은 전시적 기능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벤야민의 주장대로, 영화야말로 그러한 양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기술 복제 시대의 대표적인 예술이다. 중요한 점은 영화의 전시적 기능이 위에서 말한 사회적 기능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이다. 기술 복제에 의해 시공간을 초월하여 전달되는 영화는 작품에 내재된 특정한 이데올로기나 주제의식이 빠르게 전파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것에 관한 집단 지성이 사회적으로 형성될 경우, 국가 혹은 정부 차원에서 이를 반영하는 일련의 조치가 일어나기도 한다. 

그런데 영화는 역사적으로 이러한 사회적 기능을 오용하기도 하였다. 국가 권력을 정당화하는 영화를 만들어 대중이 무의식적으로 그것에 지지하도록 한 사례는 드물지 않다. 벤야민의 주장대로 예술의 정치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와 반대로 정치적 이슈가 영화의 소재가 된 경우는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즉 예술을 정치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그 어떤 정치적 사건도 영화가 담아낼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후자의 경우는 앞서 말한 영화의 액티비즘 기능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될 수 있다.

 

벨기에 다르덴 형제 감독의 영화적 액티비즘

벨기에 출신 형제 감독인 장 피에르 다르덴(Jean-Pierre Dardenne)과 뤽 다르덴(Luc Dardenne)은 그들의 필모그래피 전반이 영화적 액티비즘과 다를 바 없다. 장편 영화 <거짓(Falsch)>(1987)과 <그대를 생각해(Je pense à vous)>(1992)를 시작으로 <약속(La promesse)>(1996),  <로제타(Rosetta)>(1999), <아들(Le fils)>(2002), <더 차일드(L’enfant)>(2005), <로나의 침묵(Le silence de Lorna)>(2008), <내일을 위한 시간(Deux jours, une nuit)>(2014), <언노운 걸(La Fille inconnue)>(2016), <자전거 탄 소년(Le gamin au vélo)>(2011), <소년 아메드(Le Jeune Ahmed)>(2019), <토리와 로키타(Tori and Lokita)>(2022)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벨기에 자국의 청년 실업, 불법 이주민 노동자 및 난민을 비롯한 여러 약자 계층을 다루는 사회적 리얼리즘(social realism) 영화를 제작해 왔다. 

액티비즘의 사례로 특히 주목할 만한 영화가 바로 <로제타>이다. 일자리가 주어지지 않는 벨기에 소녀 로제타의 삶을 다룬 이 영화가 상영된 이후, 2000년 벨기에 정부는 청년실업에 대한 정책으로 일명 ‘로제타 플랜(Rosetta Plan)’을 시행하였다. 영화 한 편이 한 국가의 정책을 만들어낸 것이다. 2022년도에 개봉된 <토리와 로키타>에서도 증명했듯, 여전히 다르덴 형제 감독은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그들의 카메라는 벨기에 자국민뿐 아니라 불법이주민 노동자를 포착하며, 다시 한번 인류의 평등과 인권을 그들만의 시선(네 개의 눈)으로 재현하였다. 로제타가 보여준 흔들리는 핸드헬드 카메라와 클로즈업의 매력이 다소 흐려지긴 했지만, 이 영화는 이전의 작품들에서 보여준 묘한 긴장감의 스릴러적 전개 방식이 관객의 몰입을 강화한다. 조만간 또 어떤 영화로 우리에게 영화적 액티비즘을 보여줄지 여전히 기대가 된다.

 

로제타 @http://www.cine21.com/movie/info/?movie_id=13359
로제타 @http://www.cine21.com/movie/info/?movie_id=13359

영화 관객과 액티비즘

그렇다면 사회적 리얼리즘을 관람하는 영화 관객들의 행위는 어떻게 규정할 수 있는가? 이것 또한 감독의 영화적 액티비즘과 연동하여 논할 수 있는가? 영화의 스크린을 통해 지각되는 주제, 즉 감독의 제작 의도는 당연히 관객과 마주하게 된다. 영화이론가 비비안 솝책(Vivian Sobchack)은 전통적 영화이론이 영화의 스크린과 관객의 능동적 상호작용을 놓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표현대로 스크린은 능동적 행위를 수행하는 ‘영화 몸(film’s body)’이며, 따라서 스크린과 관객은 상호 전위하는 관계라는 것이다. 솝책의 논의로 바라보면, 사회적 리얼리즘 영화야말로 관객과 대단히 능동적인 상호작용을 일으킨다고 할 수 있다. 영화 몸이 전하는 주제는 우리가 현실에서 직면한 사회적 문제이자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어떤 장르영화보다 강한 인식과 성찰을 불러일으킨다. 

영화의 기능은 다양하다. 아름다운 시청각 이미지가 불러일으키는 미학적 기능이야말로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겠지만, 이를 통해 창출되는 사회적 기능 역시 간과할 수 없다. 특정 장르에 주목하지 않고, 다양한 영화를 관람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때로는 감성적 충만함으로, 때로는 이성적 냉철함으로 많은 명작영화를 만나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글·김소영
문화평론가. 한국외국어대학교 학술연구교수 겸 서울사이버대 객원교수. 한국영화학회 국제학술상임이사. 현재 홍익대학교에서 <영화의 이해>를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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