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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숙의 문화톡톡] 다큐멘터리영화 <아치의 노래, 정태춘> ― 영원한 청년, 서정적인 음유시인에서 행동하는 실천가로
[서곡숙의 문화톡톡] 다큐멘터리영화 <아치의 노래, 정태춘> ― 영원한 청년, 서정적인 음유시인에서 행동하는 실천가로
  • 서곡숙(문화평론가)
  • 승인 2024.06.17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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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치의 노래, 정태춘>: 정태춘 노래의 연대기

 

다큐멘터리영화 <아치의 노래, 정태춘>(고영재, 2022)은 세상을 노래한 시인, 불의를 참지 않는 실천가로서의 정태춘을 그려낸다. 행동하는 예술가 정태춘은 끊임없는 창작열로 현재까지 12집의 정규 앨범, 총 17집의 앨범 등 많은 노래를 남겼다. 정태춘 박은옥의 정규 앨범은 정태춘 1집 <시인의 마을>(1978), 정태춘 2집 <사랑과 인생과 영원의 시>(1980), 정태춘 3집 <새벽길/ 우네>(1982), 정태춘 박은옥 4집 <떠나가는 배/ 사랑하는 이에게>(1984), 정태춘 박은옥 5집 <북한강에서/ 봉숭아>(1985), 정태춘 박은옥 6집 <무진 새 노래>(1988), 정태춘 박은옥 7집 <아, 대한민국>(1990), 정태춘 박은옥 8집 <92년 장마, 종로에서>(1993), 정태춘 박은옥 9집 <정동진/ 건너간다>(1998), 정태춘 박은옥 10집 <다시, 첫 차를 기다리며>(2002), 정태춘 박은옥 11집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2012), 정태춘 앨범 <2019‘ 사람들>(2019) 등이다.

이 영화는 <워낭소리>, <똥파리> 등 25년 동안 독립영화를 제작하고 프로듀싱한 고영재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이 영화는 정태춘, 박은옥의 음악 인생을 가장 심도 있게 다룬 뮤직 다큐멘터리이며 2021년 제13회 DMZ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 특별상(DMZ특별공헌상)을 수상하였다. 이 영화는 1집 <시인의 마을>에서 11집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까지 정태춘 음악의 연대기를 통해서 고독의 서정성에서 분노의 서사성으로 변화하는 음악 세계의 변화를 따라간다. 이 영화는 정태춘의 과거/현재 공연 영상과 현재 인터뷰를 교차편집으로 보여주면서 정태춘 음악 세계의 안과 밖을 성찰한다. 필자는 영화를 보기 전에 왜 고영재 감독은 영화 제목을 <아치의 노래, 정태춘>으로 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겨났고, 이 평론은 그 의문을 생각하는 과정일 수 있겠다.

 

2. 시인의 마을: 1972-1983, 노래하는 음유시인

 

<아치의 노래, 정태춘>은 ‘시인의 마을’을 통해 노래하는 음유시인 정태춘을 그려낸다. 이 다큐멘터리 영화의 전반부는 현재 2019년 정태춘 박은옥 40주년 공연 연습, 기자간담회, 기념전, 전국 투어 제주 콘서트와 함께, 과거 1집 <시인의 마을>(1977)의 성공, 1979 MBC 10대 가수 가요제 신인가수상, 정태춘·박은옥의 만남, <사랑과 인생과 영원의 시>(1980)와 3집 <새벽길/ 우네>(1982)의 실패를 다룬다.

 

1972-1983년은 1집의 성공과 2집·3집의 실패를 대비시키며 정태춘의 딜레마를 표현한다. 정태춘은 첫 앨범인 1집 <시인의 마을>(1977) 앨범을 통해 천재성과 대중성을 보여준다. 노래 ‘시인의 마을’과 ‘촛불’은 대학생들에게 큰 인기를 얻게 되고 정태춘은 ‘79 MBC 10대 가수 가용제 신인가수상’을 수상하게 된다. ‘시인의 마을’은 “누가 내게 손수건 한 장 던져주리오. 내 작은 가슴에 얹어주리오. 누가 내게 탈춤의 장단을 쳐주리오. 그 장단에 춤추게 하리오. 나는 고독의 친구, 방황의 친구. 상념 끊기지 않는 번민의 시인이라도 좋겠소. 나는 일몰의 고갯길을 넘어가는 고행의 방랑자처럼 하늘에 비낀 노을 바라보며. 시인의 마을에 밤이 오는 소릴 들을 테요.” 등의 가사로 이루어져 있다. ‘시인의 마을’은 고독의 친구, 방황의 친구, 상념 끊기지 않는 번민의 시인을 형상화하고, ‘촛불’은 어두운 밤의 길손과 촛불의 외로움을 형상화한다.

 

반면에, 정태춘은 전권을 위임받아 자신의 취향대로 만든 2집 <사랑과 인생과 영원의 시>(1980)와 3집 <새벽길/ 우네>(1982)의 실패로 딜레마를 겪게 된다. 정태춘은 3집을 통해 국악 반주와 양악 반주를 혼합시켜 서양음악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국악 음악을 넣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담지만, 창작자의 취향과 수용자의 대중성 문제에서 간극이 생겨나게 된다. 이영미 평론가는 이러한 실패가 정태춘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1980년대 조용필과 송골매의 등장, 포크에서 락으로의 변화를 이유로 꼽는다. 사실상 이러한 국악 음악의 접목은 1980년대 후반부터 대학가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한다는 점에서 정태춘의 음악적 행보는 선구자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정태춘은 박은옥의 고운 목소리와 현란한 기타 핑거링에 반하고, 박은옥은 정태춘의 서정적 노래에 반하게 되어, 정태춘과 박은옥은 평생의 음악적 동지가 되면서 정태춘의 깊이 있는 울림과 박은옥의 고운 목소리가 아름다운 화음을 이루게 된다.

 

3. 우리들의 죽음: 1984-1992, 사회를 돌아보는 성찰

 

<아치의 노래, 정태춘>은 ‘우리들의 죽음’을 통해 사회를 성찰하는 정태춘을 그려낸다. 이 다큐멘터리영화의 중반부는 대과거, 과거, 현재를 교차시킨다. 대과거는 중고교 시절 바이올린 재능, 대학교 음대 진학 실패 이야기를 들려준다. 과거는 4집 <떠나가는 배>와 5집 <북한강>의 성공, 밤무대 부적응과 생활고, ‘얘기노래마당’ 소극장 콘서트 공연, 노동운동 지원 공연, 전교조 지원 공연, 참교육 실현을 위한 노래극 <송아지 송아지 누렁 송아지> 공연, 한국의 고문 및 정치 폭력 희생자를 위한 모금 공연, 7집 <아, 대한민국> 앨범 이야기를 들려준다. 현재는 <아, 대한민국> 앨범 중 ‘우리들의 죽음’ 공연 장면을 보여준다.

 

1984-1992년은 4집·5집의 성공과 생활고의 대비, 소극장 콘서트를 통한 대중과의 소통, 운동 집회 지원 공연을 통한 강력한 분노의 표출 등 서정적 대중가수에서 고뇌하는 언더그라운드 가수로의 급격한 변화 과정을 그려낸다. 4집 <떠나가는 배>(1983)와 5집 <북한강에서>(1983)의 성공은 정태춘의 작곡가 언더그라운드 위상을 확고하게 만든다. ‘떠나가는 배’(1983)는 “저기 떠나가는 배. 거친 바다 외로이. 겨울비에 젖은 돛에 가득 찬바람을 안고서. 언제 다시 오마는 허튼 맹세도 없이. 봄날 꿈같이 따사로운 저 평화의 땅을 찾아” 등의 가사를 담고 있다. ‘북한강에서’(1983)는 “서울이라는 아주 낯선 이름과 또 당신 이름과 그 텅 빈 거릴 생각하오. 강가에는 안개가 안개가 가득 피어나요.” 등의 가사를 담고 있다. ‘떠나가는 배’는 어두운 거친 바다와 찬 바람 속에서 평화의 땅을 갈망하는 자아를 그려내고, ‘북한강에서’는 어두운 밤하늘의 먹구름, 짙은 안개, 텅 빈 거리에서 낯선 이름 속에서 신비한 소리를 찾아 나서는 자아를 그려낸다는 점에서 두 노래는 ‘시인의 마을’의 자아와의 연결성과 한층 깊어진 고뇌를 그려낸다.

 

하지만, 정태춘은 4집과 5집의 성공을 통해 언더그라운드 작곡가로서의 명성을 얻고 예술성과 대중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게 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생활고에 시달리게 된다. 4집과 5집의 성공은 포크의 쇠퇴와 락의 등장 등 취향의 변화라는 시기적 특성에도 불구하고 이루어낸 성과라는 점에서 정태춘 음악의 작품성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시 가수들의 주된 수입원이 밤무대였지만, 정태춘은 자신의 노래만을 부른다는 점에서 다양한 레퍼토리의 노래를 불러야 하는 밤무대에 적합하지 않은 가수였기 때문에 생활고에 시달리게 된다.

 

정태춘과 박은옥은 1981-1987년 생활고에서 벗어나기 위해 ‘얘기노래마당: 젊음을 사색해보는 음악과 시와 대화의 자리’라는 소극장 콘서트 투어를 하게 되며, 대중과 소통하는 이러한 소극장 콘서트 공연으로 이후 김광석 공연에도 영향을 주는 선구자적 시도였다. 이러한 소극장 투어를 통해 정태춘과 박은옥은 음반 검열이 있던 시기에 자신들의 노래에 대한 창작 의도를 진솔하게 밝히면서 대중과 소통하기 시작한다. 이 시기 ‘고향집 가세’(1984)는 고향집 무너진 장독대의 햇살을 그려내고, ‘들 가운데서’(1984)는 외딴집 굴뚝, 하늘의 바람과 연을 그려내는 등 자연과 고향을 통해 외로움과 따스함의 공존을 형상화한다.

1987년부터 정태춘은 이전과의 행보와는 다른 행보를 보여준다. 1987년 민주화 격변의 시기에 정태춘은 대학교의 집회에 참석하여 자신의 노래가 아니라 민요연구회의 ‘광주천’ 노래를 부르고, 청계피복노조 일일찻집에 가서 노동운동가와 교류하고 노동운동 지원 공연을 하게 되고, 1989년 전교조 단식농성장에서 공연하고 <송아지 송아지 누렁 송아지> 노래극을 통해 ‘참교육 실현을 위한 전국 순회 무료 공연’을 하게 되고, 1992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한국의 고문 및 정치 폭력 희생자를 위한 모금 공연’을 하게 되는 등 운동의 현장에서 노래하는 예술가의 모습을 보여준다. 정태춘은 노동운동 지원 공연이나 전교조 지원 공연을 하는 것에 갈등이 없었다고 밝힌다는 점에서 집회에 참석하기 전에 이미 사회현실에 대한 고민이 많았음을 보여준다.

7집 <아, 대한민국>(1990) 앨범은 이전과는 다른 음악적 색채로 이러한 정태춘의 변화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정태춘은 참 좋은 세상을 위한 갈망이 있었지만 현실에서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현실을 계속 떠나고자 했지만, 현실을 변화시키지 않고서는 그 어떤 삶도 변화될 수 없다는 점에서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되었다고 밝힌다. 이전의 서정적 노래는 아름다웠지만 힘겨운 현실에서 떠나고자 하는 고독한 시인의 모습이 많았다면, 7집부터는 사실적인 표현, 직설적인 표현, 강력한 단어, 거침없는 분노를 담으며 참 좋은 세상을 향한 실천적 의지를 노래한다.

‘우리들의 죽음’(1990)은 “성냥불은 그만 내 옷에 옮겨 붙고 내 눈썹, 내 머리카락도 태우고 여기저기 옮겨 붙고 훨, 훨 타올라 우리 놀란 가슴, 두 눈에도 훨, 훨. ... 엄마, 아빠 잘못이 아냐.” 등의 가사와 독백을 담고 있다. 1990년대 초반 대학가에서 정태춘의 ‘우리들의 죽음’이란 노래가 종종 불렸다. 이 노래는 1990년 3월9일 서울 마포구 망원동 연립주택 지하 셋방에 불이 나 5살 혜영양, 3살 영철군이 숨진 사건이 배경이다. 방문을 열었을 때, 누나는 엎드린 채, 동생은 옷가지에 코를 묻은 채 숨져 있었고, 방문에는 옅은 손톱 자국이 있었다. 이 노래는 이러한 어린 남매의 죽음이 엄마, 아빠의 잘못이 아니라, 생활고로 도망친 고향 마을, 가난한 사람들을 축복하지 못하는 세상, 엄마·아빠가 주인이 아닌 세상의 잘못이라고 외치며 점층법을 통해 사회현실의 모순을 비판한다.

 

4. 92년 장마, 종로에서: 1993-현재, 세상을 변혁하는 실천가

 

<아치의 노래, 정태춘>은 ‘92년 장마, 종로에서’를 통해 세상을 변혁하는 실천가로서의 정태춘을 그려낸다. 이 다큐멘터리영화의 후반부는 과거에서 가요음반심의결과 전면 개작 지시, <아, 대한민국>의 불법음반을 통한 저항, 음반법 불법 철폐 운동, <92년 장마, 종로에서> 불법 음반을 통한 저항, 검열 철폐 운동과 사전 심의 거부, 방송국의 불법 음반 방송, 정태춘 피고인소환장을 통한 기소, 헌법재판소 위헌제청신청 승소, 60년만의 음반사전심의제 철폐, 도두리 마을의 미군기지 강제수용 반대 투쟁을 그려내고, 현재에서 40주년 공연에서 ‘봉숭아’, ‘사랑하는 이에게3’을 노래하는 영상을 보여준다.

 

1993-현재는 불법 음반 운동을 통해 음반 검열 철폐 운동의 승리를 이끌어내는 정태춘의 행동가적 면모를 그려내지만, 저항적 노래의 울림과 외로운 투쟁의 길을 통해 일반 대중의 호응에서 멀어지는 이상주의자적 면모도 함께 그려낸다. 정태춘의 음반법 불법 철폐 운동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의 노래에 대한 사후 기소로 인한 방어가 아니라 처음부터 사전 심의에 대한 저항으로 7집 <아, 대한민국>과 8집 <92년 장마, 종로에서>라는 두 앨범을 불법 음반으로 발매하여 5년 동안 저항적 실천 운동을 했다는 점이다. 정태춘은 ‘시인의 마을’에서도 2-30군데의 수정 지시로 원곡의 의미를 훼손시키는 경험을 하였고, 저항적이지 않던 이전 시기에도 정태춘만의 독특한 상상력을 불쾌하게 생각한 공윤의 개작 지시가 많았다는 점에 예술가로서의 존엄성에 상처를 입었다. 방송국의 심야토론에서도 정태춘은 학자들의 사전 심의 일반론에 맞서 사전 심의를 따르지 않으면 형벌을 부과하는 사례가 전 세계 어디에 있냐고 구체적으로 반박하는 학자적 치밀함을 보여준다. 마침내 정태춘의 투쟁으로 음반사전심의제가 60년만에 폐지되고 1996년 가요 검열제 철폐를 기념하는 ‘자유’ 콘서트가 열리고, 정태춘과 박은옥도 <아, 대한민국>과 <92년 장마, 종로에서> 앨범을 합법적으로 재발매하고 콘서트 순회공연에 나선다.

 

하지만, 9집 <정동진/ 건너간다>(1998), 10집 <다시, 첫 차를 기다리며>(2002), 11집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2012) 등은 대중적 호응과는 다소 멀어졌지만, 개념 있는 세계관, 완성도 높은 음악을 선보인다. 정태춘은 ‘정동진1’(1998)을 통해 진지한 예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회에 대해 고민하며, ‘건너간다’(1998)를 통해 세상과 관계 맺기에 대해 고민하며, 자본주의 체제에 대해 고별 선언을 하고자 한다. ‘아치의 노래’(2001)는 “대대로 양아치라고 불리우기도 하는 그는 하루 종일을 동그란 플라스틱 막대기 위에 앉아 비록 낮은 방바닥 한 구석 좁다란 나의 새장 안에서 울창한 삼림과 장엄한 폭포수 푸르른 창공을 꿈꾼다.” 등의 가사를 담고 있다. ‘아치의 노래’는 행실과 인성이 불량한 자를 의미하는 ‘양아치(아치)’를 통해 주변인으로서의 사회 인식을 그려낸다. 이후 정태춘은 2006년 고향 도두리 마을의 미군 기지 강제수용에 대한 결사반대 투쟁을 하였지만 실패한 후 오랫동안 노래를 접었다.

 

‘92년 장마, 종로에서’(1993)는 “다시는, 다시는 종로에서 깃발 군중을 기다리지 마라. 기자들을 기다리지 마라. ... 비에 젖은 이 거리에 사람들이 흘러간다. 흘러가는 것이 어디 이 거리뿐이냐. 우리의 한 시대도 묻혀간다. 저기 우산 속으로 사라져 가는구나. ... 다시는, 다시는 시청광장에서 눈물을 흘리지 말자 다시는 물대포에 쓰러지지 말자.” 등의 가사를 담고 있다. 이 노래는 직설적이고 저항적인 가사를 담고 있으며 이후 집회에서 많이 부르는 노래가 된다. ‘5.18’은 1998년 아티스틱 국가대표 유남이가 곡으로 선택하여 광주 세계 마스터지 대회에 출전한다. ‘5.18’은 “무엇을 보았니 아들아. 나는 깃발 없는 진압군을 보았고. 무엇을 들었니 딸들아. 나는 탱크들의 행진 소릴 들었소 ... 무엇을 보았니 아들아. 옥상 위의 저격수를 보았고. 무엇을 들었니 딸들아. 나를 저격하는 기관총 소리를 들었소 ... 무엇을 보았니, 아들아. 나는 태극기 아들의 시신을 보았고. 무엇을 들었니, 딸들아. 나는 절규하는 통곡 소리를 들었소.” 등의 가사를 담고 있다. 이 노래는 “무엇을 보았니 아들아”와 “무엇을 들었니 딸들아”라는 가사를 계속 반복하면서 깃발 없는 진압군과 탱크들의 행진 소리, 옥상 위의 저격수와 나를 저격하는 기관총 소리, 태극기 아들의 시신과 절규하는 통곡소리 등 518 광주 항쟁의 비극적 사건을 시각과 청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2010)는 제주에서 비극적 선택을 한 젊은 엄마의 실화 사건을 담고 있으며, 마지막 순간까지 아기가 추울까봐 이불로 꼭 안고 간 애절한 사연을 전하고 있다.

 

 

5. 아치의 노래: 행동하는 예술가, 시적 언어에서 분노의 서사로

 

<아치의 노래, 정태춘>은 시적 언어에서 분노의 서사라는 변화를 통해 행동하는 예술가로서의 정태춘을 그려낸다. 이 다큐멘터리영화는 정태춘의 음악 연대기를 그려내면서 서정적인 음유시인에서 실천하는 행동가로의 변화를 강조하며,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후자의 이미지를 부각시킨다. 이 영화는 가수, 시인, 싱어송라이터, 문화운동가, 사회운동가 등을 통해 정태춘의 여러 면모를 그려낸다. 정태춘은 시적인 가사를 초탈한 음색으로 깊이 있는 울림을 전달하는 독특한 특징을 보여주며, 국보급 포크 뮤지션, 한국 포크의 정당한 상속자, 한국적 음악 정체성, 국악과 사물놀이의 차용 등의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안치환, 류금신, 권진원처럼 민중가요의 영역에서 기존 가요로 진출을 시도한 예는 간혹 있지만, 기성 가요계의 신인가수였다가 노래하는 투사로의 방향 전환은 정태춘이 유일하다.

정태춘의 앨범은 음악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보여준다는 점에서 괄목한 성과를 자랑한다. 정태춘 1집 <시인의 마을> 타이틀 곡 ‘시인의 마을’은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에서 1998년 66위, 2007년 56위, 2018년 66위를 차지한다. 정태춘 박은옥 5집 <북한강에서> 타이틀 곡 ‘북한강에서’는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에서 1998년 95위를 차지한다. 정태춘 5집 <아, 대한민국>에서 ‘우리들의 죽음’은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에서 1998년 76위, 2007년 80위를 차지하고, ‘100 BEAT 선정 90년대 베스트 앨범 100’에서 63위를 차지한다. <92년 장마, 종로에서>의 타이틀 곡 ‘92년 장마, 종로에서’는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에서 1998년 91위, 2007년 63위, 2018년 29위를 차지한다.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정태춘의 음악 세계를 심도 깊게 그려낸다는 점에서 영화를 보는 내내 울림이 있는 작품이었다. 이 영화는 연대기 순으로 그려내고 있어서 정태춘의 음악 세계의 변화를 잘 보여주며, 전반부의 서정적인 음유 시인에서 후반부에 실천하는 행동가로의 변화를 강조한다. 특히 후반부에서 음반 심의 철폐 운동, 운동의 장에서 함께 고민하고 실천하는 행동가의 이미지 등 대중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을 배치하고 있어서 그 의미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다양한 방식으로 정태춘을 성찰하고 음악 세계의 변화를 진중하게 그려낸다. 정태춘의 현재 인터뷰, 과거 공연/생활 영상, 현재 공연/생활 영상, 지인들 인터뷰, 음악전문가 인터뷰 등 종횡 구조로 다룬 점 혹은 씨실과 날실로 촘촘하게 엮어간 점이 이 영화의 미덕이다.

하지만 80년대에 정태춘의 음악을 향유했던 세대로서 편집 부분에서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남는다. 연대기 순서로 배치된 편집은 대중들이 잘 알고 향유하는 노래가 대부분 전반부에 배치되고 깊이 있는 울림과 개념 있는 가사를 선보이지만 대중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노래들이 후반부에 배치되고 있어서 뒤로 갈수록 몰입도가 다소 떨어지는 면이 있다. 뒷부분에서 공연 앵콜 곡으로 ‘사랑하는 이에게3’을 배치하여 강렬한 느낌을 받았으며, 그 부분은 관객에게 힘을 주고자 했지만 오히려 관객에게 힘을 받았다는 박은옥의 말에서 암시하듯이 가수와 관객의 소통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래서 이 노래의 배치와 같은 방식이 영화에서 전체적으로 이루어졌으면 하는 개인적 소망이 생긴다. 즉, 정태춘의 노래를 두 가지 방식으로 사용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하나는 정태춘이라는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음악 세계의 변천을 보여주는 흐름으로 사용하고, 다른 하나는 현재 40주년 공연에서 사용하는 음악들 중에서 각각의 흐름에 맞게 마치 영화음악처럼 테마를 살릴 수 있는 음악으로 배치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덧붙여 당대의 예술인들에게 어떤 영감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정태춘의 말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도록 가수 강산에뿐만 아니라 많은 가수들의 인터뷰도 함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영화를 보기 전에 왜 고영재 감독은 영화 제목을 <아치의 노래, 정태춘>으로 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겨났다. 우선, 왜 주옥같은 많은 명곡 중에서 ‘아치의 노래’를 선택했을까 하는 의문이다. ‘아치의 노래’는 정태춘의 노래 중에서 음악성, 대중성, 이념성 측면에서 주목받지 못한 노래이기 때문이다. 그 의문은 정태춘의 인터뷰에서 밝혀진다. ‘아치의 노래’는 “때때론 양아치라고 불리우기도 하는 그는 하루 종일을 동그란 플라스틱 막대기 위에 앉아 비록 낮은 방바닥 한 구석 좁다란 나의 새장 안에서 울창한 산림과 장엄한 폭포수, 푸르른 창공을 꿈꾼다 ... 아치의 노래는 그의 자유, 태양빛 영혼 그러나 아치의 노래는 새장 주위로만 그저 뱅뱅 돌고...” 등의 가사를 담고 있다.

‘아치의 노래’는 좁다란 새장 안에 갇혀 양아치라고 불리는 새이지만 울창한 산림, 장엄한 폭포수, 푸르른 창공, 자유, 태양빛 영혼을 꿈꾸는 자아를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상주의적 면모를 보여준다. 정태춘은 영원히 현재형이며 음악적 힘을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아치의 노래’를 언급하면서 자신의 노래가 새장 안에 갇힌 ‘양아치’라고도 불린 새의 노래 같다는 자조를 내뱉는 점에서 그의 겸허한 삶의 자세를 읽을 수 있다. 고영재 감독도 ‘아치의 노래’가 그의 절망 끝에 나온 독백이라는 점에서 정태춘의 음악 세계를 상징한다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

다음으로, 왜 정태춘 박은옥이 음악적 동지로서 하나로 묶여 있는데 ‘정태춘’만을 제목에 넣었을까 하는 의문이다.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정태춘과 박은옥의 얼굴을 보고는 깊이와 연륜이 느껴지는 모습에서 ‘나이 40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링컨의 말을 실감하게 되었다. 가수로서 정태춘과 박은옥은 부부이자 음악적 동지로서 평생을 함께 했으며, 묵직하고 깊이 있는 정태춘의 음색과 맑고 세련되고 고운 박은옥의 음색은 조화를 이룬다. 하지만 작곡자이자 예술가로서 정태춘이 이룬 음악적 업적이 탁월하며, 대부분의 노래가 정태춘의 작사, 작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다큐멘터리는 가수 정태춘뿐만 아니라 가수, 작곡가, 싱어송라이터, 시인, 사회운동가, 사회운동가의 모습을 예술가 정태춘의 음악 세계와 삶을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정태춘’에 주목한다.

 

 

사진 출처: 네이버 <아치의 노래, 정태춘> 포토

 

 

글·서곡숙
문화평론가 및 영화학박사. 현재 청주대학교 영화영상학과 교수로 있으면서, 한국영화교육학회 부회장, 한국영화학회 대외협력상임이사, 계간지 『크리티크 M』 편집위원장, 전주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대종상 심사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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