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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애의 시네마 크리티크] 어우러짐에 관한 영화 <땅에 쓰는 시>
[송영애의 시네마 크리티크] 어우러짐에 관한 영화 <땅에 쓰는 시>
  • 송영애(영화평론가)
  • 승인 2024.07.09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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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 <땅에 쓰는 시>(정다운, 2024)는 땅, 꽃, 나무, 인간, 역사, 시, 조경, 건축 등을 망라하는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방대해 보이는 이야기는 영화 안에서 자연스럽게 흐트러지고, 어우러진다. 오늘은 <땅에 쓰는 시>가 담고 있는 여러 층위의 어우러짐에 관해 생각해 보고 싶다.

- 조경과 시, 그리고 아름다움

<땅에 쓰는 시>는 정영선 조경사에 관한 영화다. 어릴 적, 실제 시인을 꿈꿨다는 정영선은 꽃과 나무로 땅에 시를 쓰는 조경사가 됐다. 정영선이 1980년대부터 작업해 온 조경 프로젝트는 ‘경치를 아름답게 꾸밈’이라는 사전적 의미의 조경을 뛰어넘어, 땅, 꽃, 나무, 인간, 역사 등을 아우른 창작과 재구성 작업의 결과다.

 

이 영화가 소개하는 정영선의 작업 과정을 보면, 주변 환경과 그곳을 이용할 사람들을 고려하고, 4계절 내내 다양한 색감과 모양새로 공존할 수 있는 꽃과 나무, 돌 등을 찾아 배치한다. 이 모든 조경 작업은 땅에 쓰는 시라고 할 만하다. 정의하기 나름인 아름다운 경치를 꾸미는 과정은 시 쓰기만큼 많은 공을 요구한다.

정영선은 자신을 ‘연결사’라고 한다. 그 지역의 풍경, 꽃과 나무를 누군가의 공원, 마당으로 연결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조경 프로젝트를 맞게 되면, 주변 환경, 사람들에 집중해서 주제를 정하고, 자기 생각을 추가하는데,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배치한 후, 관리, 보존하는 노력도 빠뜨리지 않는다. 특히 이 과정에서 지역 자생 식물을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공간에서 오래 살아남을 꽃과 나무들로, 계절마다 꽃이 피는, 그 지역만의 특색까지 지닌 경치로 꾸미기 위해 노력한다.

이 모든 과정을 영화를 통해 지켜보다 보면, 어느새 영화 밖 주변도 살펴보게 된다. 그리고 궁금해진다. 과연 주변 환경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경치란 무엇인가? 혹시 천편일률적인 아름다움에 익숙해진 건 아닐까?

 

- 경계의 흐트러짐과 연결

정영선이 그동안 추구해 온 조경은 자연적 공간과 인공적 공간 사이에 경계를 두지 않는다. 영화에서 여러 번 등장하는 정영선의 양평 자택 정원은 진달래, 돌단풍, 조팝나무, 이스라지, 하늘매발톱, 오이풀꽃, 큰산꼬리풀, 부처꽃 등 낯선 이름이지만 어디선가 본 듯한 꽃과 나무로 가득하다. 원래 그런 숲에 집을 지은 건지, 그렇게 꾸민 건지 구분하기 어렵다. 정영선이 그동안 추구해 온 조경은 자연적 공간과 인공적 공간 사이에 경계를 두지 않기 때문이다.

정영선은 제철 꽃이 일 년 내내 필 수 있도록, 전국 방방곡곡 길에서 발견한 꽃과 나무를 각각의 특성에 맞는 자리에 심었고, 여기에 자연의 힘이 더해져 자라고, 번식한다. 그렇게 꽃과 나무, 숲과 집, 자연과 인간은 서로 연결된다.

이는 자연스러운 조화와 연결을 중요시했던 우리의 전통 조경 방식과도 맞닿는데, 정영선의 조경이 추구하는 방향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마냥 전통만 고수하는 건 아니다. 정영선이 추구하는 흐트러짐과 연결에는 과거와 현재도 포함된다. 그리고 그 과거는 가까운 과거도 포함한다.

 

정영선의 조경 작업 중 일부만 가나다순으로 적어 보자면, 경춘선 숲길, 광릉수목원, 국립중앙박물관, 남양주 다산생태공원, 대전 엑스포, 서울 아산병원 숲, 선유도공원, 성수 디올, 아모레퍼시픽 용산 사옥, 여의도 샛강생태공원, 예술의 전당, 호암미술관 희원 등이다. 혹시 가본 곳이 있는지? 꽤 다양한 규모와 형태의 작업이라 할 수 있는데, 도시 속 현대 건물과 어우러진 경관이 인상적이다. 특히 선유도공원의 경우, 꽃과 초록 나무들 사이에 남아있는 옛 정수장의 잔해와 골조는 철거의 대상이 아니라 보존의 대상이고, 어우러질 대상으로 자리한다.

 

하루아침에 모든 게 사라지고 바뀌는, ‘개발’이라는 이름의 변화에 관해 새삼 생각하게 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동영상, 사진, 스케치, 정영선의 말, 동료의 말, 꽃과 나무들 옆에서 이름을 알려주는 글(자막), 그리고 새소리, 바람 소리, 사람 소리, 차 소리까지 영화 <땅에 쓰는 시> 역시 시청각적 어우러짐 그 자체이기도 하다. 그렇게 <땅에 쓰는 시>는 정영선과 정영선의 철학, 수많은 작업을 관객에게 연결한다.

 

영화 밖에선 이런 연결도 진행 중이다. 지난 4월 5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시작한 전시는 영화로 만난 공간을 전시장의 다양한 미디어와 콘텐츠를 통해 다시 연결한다. 영화와 사진, 그림, 음악, 시, 전시관 안팎 정원 조경까지 영화 안팎으로 어우러져, 공존, 어우러짐의 가능성과 중요성을 생각하게 하는 영화 <땅에 쓰는 시>이다.

이미지 제공: 영화사 진진

 

 

글·송영애
영화평론가. 서일대학교 영화방송공연예술학과 교수. 한국영화 역사와 문화, 교육 관련 연구를 지속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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