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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미의 문화톡톡] 옷을 사지 않을 결심
[장윤미의 문화톡톡] 옷을 사지 않을 결심
  • 장윤미(문화평론가)
  • 승인 2024.08.09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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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옷을 사지 않은 이유가 없다

하루에 한 번이라도 쇼핑 앱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마치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것처럼 허전하다. 오늘은 진짜 구경만 하고 사지는 않을 거라고 마음먹지만, 예쁜 것도 모자라 가격까지 착한 신상을 알리는 팝업창을 외면하고 앱을 닫는 일은 지극히 드물다. 겨우 참아보지만 지금 사지 않으면 당장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가격 세일, 타임 세일, 폼목별 세일, 주말 세일, 1+1세일 등 폭탄 던지듯 온갖 세일 쿠폰을 던지며 나의 소비 심리를 마구 공격하니 무슨 수로 이 공격을 피할 수 있을까. 바야흐로 대(大)소비의 시대, 대(大)쇼핑의 시대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혹적인 쇼핑을 꼽으라면 역시나 패션 분야일 테다. 특히나 패션산업은 온라인을 기반으로 하여 몇 년 사이에 급성장했는데 SPA 브랜드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자라와 h&m, 유니클로, 그리고 한국형 SPA 브랜드인 에잇세컨즈, 스파오, 탑텐. 10~20대를 주요 고객으로 하는 쇼핑몰 앱 에이블리와 지그재그, 대량 신상 제품 출시와 저렴한 가격을 장점으로 공격적으로 고객을 끌어모으고 있는 중국 패션 쇼핑몰 쉬인과 샵 사이다, 여기에 각종 홈쇼핑몰 앱과 쿠팡, 알리, 테무 등 온라인 복합 쇼핑몰 앱까지. 대충 생각나는 패션 쇼핑몰 앱만 떠올려도 최소 십수 개가 넘는다.

옷값이 부담스러웠던 과거엔 중요한 자리에 참석해야 할 때, 계절이 바뀔 때, 또는 작아지거나 헤져 입을 수 없을 때 옷을 사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퇴근길에, 지나가는 길에, 기분 전환하고 싶을 때, 하다못해 심심할 때 옷을 산다. 쉽게 말하면 시간과 조건을 가리지 않고 옷을 산다는 뜻이다. 옷을 자주 산다는 것은 곧 많이 산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옷을 ‘자주’ 그리고 ‘많이’ 사는 이유는 무엇보다 저렴한 옷값 덕분이다. 실제로 물가 상승률 대비 옷값은 십 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거나 오히려 더 싸졌다. 명품이란 불리는 하이엔드 브랜드나 고급 브랜드의 경우를 제외한다면 옷값에 대한 부담은 훨씬 줄어든 셈이다. 덕분에 누구나 예쁜 옷, 멋진 옷을 입게 된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옷이 날개라는데 예쁘고 멋진데 저렴하기까지 하니, 옷을 사지 않을 이유는 없다!

2. 저렴한 옷 가격 뒤엔 착취

콘텐츠 에디터 이소연이 쓴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는 한때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었던 그가 옷을 사지 않게 된 계기를 비롯하여 패션 사업에 가려졌던 착취 과정을 담은 책이다. 그는 저렴한 옷값의 원인을 폭력적이고 부당한 착취에서 찾는데 그중에서도 환경 착취, 노동 착취를 심각한 문제로 제기한다.

 

이소연,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 돌고래. 2003.
이소연,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 돌고래. 2003.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이지만 대부분 옷은 합성섬유라 불리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다. 옷안감에 붙은 태그를 보면 폴리에스테르, 나일론, 아크릴이라고 쓰여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것들은 모두 석유로 만든 합성섬유의 일종이다. 그중에서도 폴리에스테르는 “가장 많이 쓰이는 합성섬유이자 패스트 패션을 폭발적으로 성장하도록 만든 핵심 동력”(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 44쪽)이기도 하다.

폴리에스테르는 구김이나 변형에 강한 덕분에 쓰임이 다양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폴리에스테르를 만드는 과정에서 면섬유보다 화석연료가 3배 더 필요하고, 썩는 과정에서는 자동차 730만 대가 내뿜는 정도의 유독 가스가 배출된다. 특히 최근 환경오염의 심각한 문제로 인식되고 있는 미세플라스틱 역시 전체 배출량의 50% 이상이 이 합성섬유에서 배출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더불어 옷 염색 과정에서 사용되는 물은 산업용 폐수의 20%를 차지할 만큼 엄청날 뿐만 아니라 염색 과정에서 쓰이는 화학물질은 물의 자정 능력을 현저하게 떨어뜨려 환경오염을 심화시킨다. 옷을 만드는 과정부터 폐기 되는 과정까지 자원 착취는 물론이고 그로 인한 오염은 심각한 자연환경 착취가 아닐 수 없다.

또 하나의 착취는 폭력적이고 비윤리적인 노동 착취다. 초국적 패션 기업은 임금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개도국이나 빈국으로 생산 공장을 이전하여 그 나라의 노동자를 고용함으로써 해당 국각의 경제 부흥에 기여하고 있다고 평가받지만, 이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비인간적인 노동 착취는 잔인하다고 못해 악독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를 대표적으로 증명하는 방글라데시의 ‘라나플라자 건물 붕괴 사건’은 가난한 노동자들이 어떻게 초국적 패스트 패션 기업으로부터 노동을 착취당하고 있는지 세상에 알린 비극적인 사건이다.

명품 브랜드를 비롯한 세계적인 SPA 기업의 하청을 받아 옷을 만드는 공장인 라나플라자에서 일하는 노동자 대부분은 저임금을 받는 여성 노동자들이었다. 이들은 법적 노동 시간보다 훨씬 긴 노동을 해야 했고, 노동 환경이 열악한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화장실을 갈 수 있는 자유조차 허락받지 못했다. 본청에서 밀려드는 주문량을 채워야 했기 때문이다. 주문 물량을 채우지 못할 경우 그들을 기다리는 건 해고였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옷은 상표와 브랜드에 따라 가격이 매겨졌는데, 패스트 패션 기업은 가격을 저렴하게 매겨 많이 파는 방식으로, 명품 브랜드 기업은 가격을 비싸게 매겨 파는 방식으로 각자 이윤을 챙겼다. 그러나 자본가들이 어떤 방법을 선택하든 달라지지 않는 건 노동자의 임금이다. 물건이 많이 팔리든 비싸게 팔리든 노동자의 임금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노동자는 그저 자신의 일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 생계를 위협당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노동을 갈아 넣을 뿐이다. 이들에게 적이란 노동 착취를 일삼는 기업이나 자본가가 아니라 나보다 더 저렴한 노동자다.

 

3. 내가 버린 옷은 재활용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하는 착각 중 하나가 옷은 재활용된다는 믿음이다. 재활용 옷 수거함에 넣는 것이 곧 재활용이라고 믿으며 환경오염에 대한 죄책감을 덜곤 한다. 하지만 실제로 옷이 재활용되는 확률은 10퍼센트 미만이라는 것이 통설이다.

옷을 재활용하기 어려운 이유는 버려지는 옷의 양이 재활용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나기 때문이다. 이미 위에서 말했듯이 저렴한 옷 가격 덕분에 사람들은 더 자주, 더 많이 옷을 구입한다. 이러한 행위는 결과적으로 소비의 간격은 좁히고, 속도는 빠르게 만든다. 실제로 최근 패션 동향을 살펴보면 유행보다 신상에, 계절보다 속도에 더 민감하다는 걸 알 수 있는데 이로 인해 옷의 신상 개발 시기는 빨라지고, 교체 주기는 짧아진다. 이러한 소비 욕구를 이끄는 것은 역시나 패스트 패션 기업이다.

패스트패션의 선두인 각종 SPA 브랜드가 신상품을 만들어 매장에 거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개 몇 주, 빠르면 단 며칠도 가능하다. 이들의 최종 목표는 오로지 소비자의 잦은 소비를 통한 이익 창출이다. 어제의 신상품은 자연스럽게 오늘의 재고로 남는 건 이들에게 당연하고 또 자연스러운 결과다. 운이 좋은 재고는 그나마 “미친 사장님”이라도 만나 간판도 없는 가게에서 정가에 90%가 할인된 가격에 팔리기라도 하지만, 브랜드가 생명이자 돈인 명품 브랜드 기업의 경우 자신들의 브랜드 가치를 지켜야 한다는 명분으로 재고를 헐값에 파는 대신 전부 폐기를 선택한다.

옷이 재활용되기 어려운 또 하나의 이유는 옷의 특성상 재활용이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옷은 단일 천으로 만들어진 것도 있지만 지퍼, 단추가 사용된 경우도 많고, 접착제를 이용하여 만들어진 것들도 많다. 이 옷들을 재활용하려면 각각의 부속을 모두 따로 분리해야 하는데 이 작업은 엄청난 노동력이 필요할 뿐 아니라 노동력을 대거 투입한다고 해도 새로 만들어지는 옷의 양에 비하면 그 가치가 형편없어 무의미하다. 그나마 재질이 좋은 섬유일 경우 재활용의 가치가 있겠지만, 이미 언급했듯이 대개는 저렴하고 질이 떨어지는 섬유가 많아 이런 재료로 옷을 만든다고 한들 그 상품의 질이 얼마나 나쁠지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사람들이 종종 놀라는 것 중의 하나는 재활용되어 만든 상품이 새 상품보다 왜 저렴하지 않냐는 질문이다. 사람들은 재활용된 상품이라고 하면 으레 저렴한 가격을 떠올리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다. 그 이유는 재활용하는 데 드는 노동력과 처리 과정에 드는 돈이 새 상품을 만들어낼 때보다 더 많이 들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재활용품은 상품의 질에서 밀리고, 가격 경쟁력에서 또 한 번 밀린다. 재활용하는 것보다 버리는 것이, 아니 새로 사는 것이 오히려 친환경적이라는 논리를 이길 수 없는 것도 사실이라면 사실이다.

 

4. 속도의 희생자가 되지 않기

이소연은 패션 유튜버 밀라논나의 말을 빌려 ‘유행의 희생자’가 되지 말라고 조언한다. 유행을 만들고는 소비자의 욕망을 자극하는 패션업계의 희생자가 되지 않길 바란다는 뜻이다. 여기에 하나 더 보태자면 ‘속도의 희생자’가 되지 않길 바란다. 빠른 속도는 깊은 사고를 할 수 없게 만든다. 좋은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생각을 해야 하고, 그러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시간이 부족하면 생각할 수 없게 되고, 생각할 수 없게 되면 좋은 판단을 할 확률은 낮아진다.

가격 세일, 한정 세일, 기간 세일을 하는 가게를 지나면 마음이 급해진다. 저 상품이 나에게 필요한지보다 지금 저 상품을 사지 않으면 손해라는 생각이 빠르게 스쳐 간다. 오늘이 지나면 이 가격은 사라진다는 말에 마음은 더 조급해지고, 어느새 내 손에는 신용카드가 들려 있다. 사는 순간에는 즐거웠지만 침대에 누워 떠올리니 나도 모르게 이불킥을 하며 후회한다. 저것들 중에서 반은 입지도 못하고 옷장에 보관해 둘 것이 뻔하니. 그렇게 시간과 조급함에 치여 깊이 생각하지 못한 책임은 고스란히 다음 달 카드값이 되어 돌아온다.

속도의 부추김에 춤추지 말자. 가격경쟁이 미덕인 시장경제에서 오늘부터 싼 물건은 있어도 오늘만 싼 물건은 없다고 생각하면 조금 느긋해지면서 많이 살 것도 적게 사고, 돈을 더 쓰게 될 것도 덜 쓰게 된다. 옷이든 다른 물건이든 사는 속도를 조금씩만 늦추면 자원은 그만큼 오래 쓸 수 있고, 환경은 그만큼 덜 해친다.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소비가 미덕이라 외치는 보이지 않는 자본주의의 입에, 많이 사고 빨리 쓰는 게 미덕이라 유혹하는 기업의 손에 끌리지 말도록. 당신은 자연을 아끼고, 노동의 가치를 아는 현명한 소비자다.

 

 

글·장윤미
소설가 겸 문화 평론가. 저서로 독서 에세이 『우세한 책들』, 장편소설 『플랫폼; 또다른 세계로 가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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