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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상호의 시네마 크리티크] <리볼버>, 얼굴과 얼굴 사이의 영화
[송상호의 시네마 크리티크] <리볼버>, 얼굴과 얼굴 사이의 영화
  • 송상호(영화평론가)
  • 승인 2024.08.19 10: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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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볼버'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리볼버'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얼굴의 영화?

오승욱 감독의 코멘트로 보나, 관객과 평단의 반응으로 보나 <리볼버>는 아무래도 ‘얼굴의 영화’로 규정되는 모양새다. 내겐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리볼버를 ‘얼굴과 얼굴 사이의 영화’로 호명하고 싶다. 다시 말해 <리볼버>의 크레딧이 올라간 뒤에 기억에 남는 건, 꽁치에 소주를 들이켜는 하수영(전도연)의 메마른 맨얼굴 클로즈업 숏이 아니었다. 오히려 클로즈업 직전에 배치됐던 장면들, 이를테면 돈다발에서 5만원권 한 장만 무심히 빼가는 노점상 상인의 손길, 그리고 그 상인이 커다란 플라스틱 컵에 따라주는 소주 따위의 것들이 얼굴보다 여운을 남겼다.

 

영화 '리볼버'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리볼버'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빈자리를 채우는 영화

이건 나만의 착각이 아니다. <리볼버>가 어떻게 구성된 영화인지 들여다본다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테다. 기본적으로 이 작품이 빈자리를 채워가는 영화라는 점에서 출발해 보자. <리볼버>는 끊임없이 공허를 메운다. 아니 어쩌면 ‘비어 있는 상태’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봐도 좋다. 영화 내내 바싹 말라붙은 감정을 내버려둘 여유 따윈 없고, 텅 빈 집에 새 세입자가 들어오고, 곁엔 늘 누군가가 맴돌아야 하고, 사라진 연인의 존재감을 지워 낼 새로운 동반자가 찾아오지 않았나.

 

하수영에게만 국한되는 일은 아니다. 그 누구도 ‘무(無)’의 상태에 안주할 수 없다. 하수영이 출소한 뒤, 다른 인물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었나. 모두 하수영을 까맣게 잊었다. 바꿔 말하면 하수영은 잊힌 존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앤디(지창욱)가 약속했던 돈 내놓으라고 찾아온 하수영을 보고 기억을 더듬는 장면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그러므로 한동안 삭제됐던 하수영이 되살아나 각자의 인지 체계에 침투하는 순간, <리볼버>는 작동하기 시작한다. 그들의 일상에 하수영이 계속해서 침범하고 개입된다. 결국 <리볼버>는 그 누구의 내면이든 뭐가 됐든 간에 비어 있는 무언가가 계속해서 채워지는 과정을 따라가야만 하는 영화다.

 

영화 '리볼버'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리볼버'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시점과 종점만 고정된 영화

오승욱이 그 동선을 어떻게 구성해 놓았나. 바로 사람이 사람을 만나 의사소통하는 장면들이다. <리볼버>에서 오승욱은 폭력을 남발하지도 않고, 이미지를 과도하게 배치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영화에 들어차 있는 건 하수영이 여러 사람을 만나러 다니면서 나누는 대화들이다. 문제는 인물 사이 오가는 말들이 그들의 내면에 접속하는 데 큰 도움이 안 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리볼버>는 하수영과 관객의 동행을 쉽사리 허용하지 않는 영화다. 가령 하수영과 정윤선(임지연)이 위스키를 나눠 마시는 신만 봐도 그렇다. 우리는 하수영이 감옥살이를 하는 동안 임석용(이정재)의 허전해진 곁을 정윤선이 채웠다는 사실을 말 몇 마디에서만 알아낼 수 있다. 플래시백도 없고, 더 이상의 묘사도 생략되지 않았나.

 

이 지점에서 오승욱의 동선을 맞닥뜨린 관객이 어떻게 그 길을 헤쳐 나가는지 정리해 보자. 결론부터 말하겠다. 영화는 시작점과 종착점을 정해두긴 했으나, 그 사이에 펼쳐진 요소들을 특정한 논리나 규칙에 따라 가둬놓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리볼버>는 관객들의 능동적인 감상을 자연스럽게 이끄는 영화가 된다. <리볼버>가 대중의 기대를 벗어나거나, 예측을 빗나가는 순간들이 더욱 도드라지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 측면에서 후반부 화종사 인근 외길에서 다수의 차량들이 통로를 가로막고 벌이는 촌극 시퀀스는 이 영화의 근간과 맞닿아 있다. 이들이 화종사로 모여들게 된 경위나 배경을 생각해 보자. 다중 첩자 노릇을 수행하는 정윤선의 사전 연락을 통해 인물들이 모일 수밖에 없는 필연의 논리가 생성됐다. 하지만 누가 먼저 도착할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각본 상 순서가 짜여져 있어도, 그건 관객 입장에서 가늠할 수 없는 요소다. 그렇기에 이 시퀀스가 끝나기 전까지의 중간 과정은 단순한 표면보다 그 이면에 자리한 장치들을 가늠하기에 더 좋은 구간으로 비친다. 특히 하드보일드 공식으로 점철됐던 톤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나면, 그 빈자리를 어떤 요소가 채우는지 살펴볼 기회이기도 하면서 극 전반에 녹아든 테마가 형상화된 지점이라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영화 '리볼버'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리볼버'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얼굴로만 지탱될 수 없는 영화

그렇다면 우리는 인물을 따라 종착지에 어떻게 도달해야 할까? 가장 손쉬운 방법이자 유일한 방법은 그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작업뿐이다. 문제는 이 영화가 얼굴보다도 얼굴과 얼굴 사이에 어떤 요소들이 자리 잡고 있는지 살펴볼 때 그 매력을 음미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것. 그렇기에 <리볼버>에선 단순히 얼굴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는 인물과의 접속에 실패할 확률이 높다. 이제부터 그 이유를 살펴보겠다. 사실 얼굴 클로즈업은 인물과 밀착하는 데 있어 굉장히 효과적인 수단이다. 포착된 얼굴이 대변하는 감정이나 현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매개체가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단순히 하수영의 얼굴을 클로즈업한다고 해서, 그를 투명하게 파악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왜 그런가. 배우의 퍼포먼스 때문이다. 하수영이 끊임없이 감정을 갈아 끼우지만, 전도연이 아주 철저하게 그이의 표정을 메마른 공허처럼 느껴지도록 연기하지 않았나. 그 덕분에 채도가 한껏 빠진 하수영의 맨얼굴 아래 뭉근하게 들끓는 감정의 파고가 더욱 선명해질 뿐, 표면에서 파악할 수 있는 요소는 많지 않다. 하수영을 제외한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다. <리볼버>의 인물들은 모두 각자만의 여건과 환경을 고려해, 온전한 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애초에 그럴 수 없기도 하고. 앤디를 연기한 지창욱도, 정윤선을 연기한 임지연도, 임석용을 연기한 이정재도 모두 표층과 심부의 격차가 느껴지는 캐릭터를 소화해 냈다.

 

그렇다면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지점은 따로 있다. 얼굴이 드러날 때 어떤 게 드러나지 않고, 또 얼굴이 감춰질 때 어떤 것들이 고개를 내미는지 살펴봐야 한다. 그 교차와 공존을 응시하는 작업이 바로 <리볼버>의 핵심을 꿰뚫는 일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가령 하수영이 호텔을 잡고 위스키를 마실 때, 술에 물을 살짝 타는 장면을 들여다 보자. 이때 카메라는 술과 물이 섞이는 광경을 프레임에 가득 차도록 찍는다. 이런 구간이 얼핏 보면 잉여 숏처럼 느껴질 수 있겠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하수영이 위스키를 마신다는 행위 자체가 중요했다면, 이렇게 촬영되고 편집될 필요가 없다. 물이 술에 섞여들어가는 그 몇 초의 순간 동안 카메라가 잔 내부를 클로즈업하고 있을 때, 얼굴이 드러나지 않은 하수영이 어떤 생각과 감정을 굴려보고 있을지 가늠해 볼 수 있게 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 찰나 이후 모습을 드러내는 하수영의 얼굴을 바라본다. 이제서야 그의 푸석푸석한 맨얼굴에 깃든 사연이 한층 풍부해졌다.

 

결국 <리볼버>를 음미하는 데 있어 우리는 얼굴을 파악하기 위해, 전후 맥락을 함께 보듬어야 할 필요가 있는 셈이다. 이게 바로 <리볼버>가 얼굴로만 지탱될 수 없는 이유다. 얼굴과 얼굴 사이를 수놓는 모든 숏과 신에서 관객들은 각자 인물과 가까워지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 그 경로가 제한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리볼버>는 감상할 때마다 매력을 발산하는 세기와 밀도가 시시각각 달라지는 영화처럼 느껴진다. 포섭될 것 같다가도 어느새 손아귀를 빠져나가는 <리볼버>의 기묘한 매력은, 영화를 한두 번 봐서는 도저히 만끽할 수 없는 게 당연할지도.

 

영화 '리볼버'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리볼버'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글‧송상호
영화평론가, 경기일보 기자로 활동하며 글을 쓰고 있다. 2021년 박인환상 영화평론 부문 수상. 2023년 영평상 신인평론상 우수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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