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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콘크리트 유토피아> ― 공존의 유토피아와 공멸의 디스토피아
[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콘크리트 유토피아> ― 공존의 유토피아와 공멸의 디스토피아
  • 서곡숙(영화평론가)
  • 승인 2024.10.07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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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재난영화: 폐허의 서울과 <콘크리트 유토피아>

 

<콘크리트 유토피아>(엄태화, 2023)는 대지진 속에서 살아남고자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을 다룬 극영화이다. 이 영화는 김숭늉의 웹툰 『유쾌한 왕따』를 원작으로 기반으로 만들었으며, 384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여 대중성을 확보했다. 또한 2023년 44회 청룡영화상의 감독상, 남우주연상, 59회 대종상 영화제의 최우수작품상,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시각효과상, 음향효과상, 미술상, 43회 황금촬영상 시상식의 시각효과상, 32회 부일영화상의 최우수작품상, 남우주연상, 촬영상, 여자 올해의 스타상을 수상했고, 2024년 22회 디렉터스 컷 어워즈의 올해의 남자배우상, 올해의 여자배우상을 수상했다. 이 영화에서 황궁아파트는 대지진으로 인해 폐허가 된 서울에서 유일하게 건재하여, 주민 대표 영탁(이병헌)을 중심으로 외부인의 위협 속에서 출입을 통제하고, 방범대장 민성(박서준)과 방범대원들이 식료품을 확보하고, 부녀회장 금애(김선영)와 간호사 명화(박보영) 등 주민들이 협력하여 안전하고 평화로운 유토피아를 구현한다. 하지만, 끝이 없는 생존의 위기 속에서 생존 규칙은 또 다른 갈등을 유발하면서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2. 주민 수칙: 이타심/이기심의 갈등과 구조/폭력의 변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주민 수칙은 이타심/이기심의 계층 갈등과 구조/폭력의 변화를 나타낸다. 이 영화는 위기 대처 방안 논의로 인한 입주민/외부인의 계층 갈등, 주민 수칙의 배제의 원칙, 외부인에 대한 배척/우호, 이기심/이타심의 갈등과 입주민 분열, 대표 영탁의 희생-투쟁-단결의 영웅성, 민성의 구조/폭력의 변화를 드러낸다.

 

황궁아파트 입주민의 위기 대처 방안은 입주민/외부인의 계층 갈등으로 이어지고, 주민 수칙은 배제와 이분법의 원칙을 드러낸다. 부녀회장 금애가 보증하는 입주민들이 모여 논의한 위기 대처 방안은 세 가지이다. 외부인을 내보내자는 의견은 함께 살기/ 함께 죽기라는 논쟁으로 이어지며 투표를 하게 되고, 비상 상황 매뉴얼을 만들어 시스템을 구축하자는 의견과 책임과 결단력을 가진 대표를 뽑아 구심점을 만들자는 의견이 받아들여진다. 이 과정에서 황궁아파트 입주민과 드림팰리스 외부인 사이의 갈등이 드러나고, 이러한 갈등은 이전의 서민아파트/고급아파트, 중류층/상류층의 계층 갈등과 연관된다. 황궁아파트 입주민의 위기 대처 방안 논의는 황궁아파트 주민 수칙으로 명문화된다. 입주민만 출입하며 기여한 만큼 배급하며 16-60세 남자로 방범대를 구성한다는 주민 수칙은 입주민/외부인, 방범대/비방범대, 16-60세 남성/ 나머지 등 배제의 원리를 작동시키며 이분법으로 갈등의 원천이 된다.

 

대표 영탁과 부녀회장 금애는 외부인에게 배타적인 반면, 간호사 명화와 지식인 도균은 외부인에게 우호적이라는 점에서 입주민은 이기심/이타심으로 나눠지며 분열되기 시작한다. 대부분의 인물들은 생존의 위협 때문에 공존이 공멸로 이어질 것이라는 불안감으로 외부인에게 배타적인 태도를 견지한다. 평화주의자 도균은 방범대의 역할이 외부인을 막기 위해서 무력을 사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공개적으로 방범대에서 빠져 입주민의 비난을 받는다. 배려심 많은 명화는 드림팰리스 모자를 보살피면서 외부인과의 공존을 추구한다. 민성은 이타심과 이기심의 대립 사이에서 고민하는 중도파이지만, 방범대 대장을 맡으면서 폐쇄적인 주민 수칙에 동조하게 되어 아내 명화와 갈등하기 시작한다. 민성은 처음에 드림팰리스 모자를 받아들이는 문제에 대해서는 자기 생각을 굽히고 아내 명화의 의견에 따르지만, 점차 식료품이 없는 힘겨운 현실과 다수결로 정해진 주민 수칙 때문에 외부인을 배척하는 입장을 취하게 된다. 드림팰리스 모자는 민성/명화의 사적 갈등과 외부인 수용에 대한 찬성/반대의 공적 갈등의 복선이 된다. 외부인을 몰아내는 과정에서 벌어진 치열한 몸싸움 후에 영탁이 “아파트는 주민의 것‘이라는 구호를 외치자 모두가 동참하여 구호를 외치고 마침내 민성도 함께 구호를 외치게 되자, 명화는 불편한 시선으로 민성을 내려다보면서 사적 갈등을 예고한다.

 

입주민 대표 영탁은 희생정신, 투쟁정신, 단결정신으로 영웅이 되며, 그의 시선은 아파트와 자신에 대한 자부심을 나타낸다. 부녀회장 금애가 입주민 대표의 요건으로 “위기 상황에서는 불구덩이라도 뛰어들 수 있는 그런 사람. 그런 책임과 결단력이 있는 분”을 언급하자, 입주민들의 시선이 점차 영탁에게 향하면서 영탁이 만장일치로 입주민 대표가 된다. 영탁은 방화 사건에서 몸을 사리지 않는 희생정신으로 입주민의 목숨을 구해내고, 외부인과의 몸싸움에서 머리에 피를 흘리면서도 싸우는 투쟁정신으로 입주민의 승리를 이끌어내고, 방범대원을 단결시켜 이끌고 밖으로 나가 식료품을 확보해 온다. 영탁이 ’아파트는 주민의 것‘이라고 외치면서 아파트를 올려다보는 시선은 서울에서 유일하게 건재한 황궁아파트의 입주민이라는 자부심, 그 아파트의 입주민 대표라는 자부심이 묻어난다.

 

민성의 손은 영탁의 손과 악수하면서 구조-실패의 손에서 폭력-해결의 손으로 변화한다. 이 영화에서 민성이 자기 손을 바라보는 장면이 여러 번 등장한다. 처음으로 손이 나오는 장면에서 민성은 구조를 실패한 자신을 떠올리며 손을 바라보며 죄책감을 느낀다. 대지진이 일어난 당일 민성은 다른 남성들과 함께 트럭에 깔린 여성을 구조하려고 하지만, 대지진이 스나미처럼 밀려와 구조를 멈추고 자동차에 들어가고 구조해 달라는 여성의 애원을 보지만, 자신도 대지진으로 인해 나뒹구는 자동차 안에서 부상을 입는다. 다음으로 손이 나오는 장면에서 민성은 자기 손과 영탁 손을 바라본 후 영탁과 악수를 하여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동참한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전반부 스타일은 핸드헬드, 포커스 아웃/인, 로우 앵글, 편집으로 폭력의 현장, 비밀에 대한 복선, 자부심, 낙관적인 희망을 표현한다. 입주민과 외부인이 몸싸움을 하는 장면은 울부짖는 민성, 깨어진 유리조각, 목을 졸린 민성, 민성을 구하는 영탁을 핸드헬드로 담아내어 폭력의 현장을 표현한다. 부녀회장이 재난 상황에서 살인자나 목사나 똑같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부녀회장의 포커스 아웃과 영탁의 포커스 인으로의 전환은 살인자 영탁의 비밀에 대한 복선을 암시한다. 입주민 대표가 된 영탁이 아파트를 올려다보는 로우 앵글은 서울에서 유일하게 무너지지 않은 황궁아파트의 주민이라는 자부심, 입주민 대표라는 자부심을 표현한다. 주민 수칙을 정한 후 대표, 부녀회장, 방범대, 봉사대 등의 활동을 담은 모습들의 편집은 유토피아에 대한 낙관적 희망을 표현한다.

 

 

3. 방역 작업: 유토피아/식인의 이중성과 은폐된 비밀

<황궁아파트>에서 방역 작업은 유토피아/식인의 이중성과 은폐된 비밀을 나타낸다. 방역 작업은 바퀴벌레 외부인을 추방하는 작업이다. 이 영화는 외부인 추방과 폭력 문제로 인한 사적 갈등, 유토피아/식인의 이중성, 대표의 은폐된 비밀로 인한 놀람과 긴장을 드러낸다.

 

민성과 명화는 드림팰리스 모자의 추방 문제와 식료품 확보를 위한 폭력 문제로 갈등한다. 도균이 추방된 드림팰리스 모자를 집에 들여 보살피고, 명화가 이 사실을 알게 되어 함께 도와준다. 민성이 방범대 대장으로서 외부인 추방에 앞장서는 반면, 명화는 간호사로서 봉사하지만 은밀하게 주민 수칙을 어기고 외부인을 보살핌으로써, 공적 갈등으로 인한 부부의 사적 갈등을 예고한다. 민성을 비롯한 방범대는 서울을 돌아다니면서 식료품을 찾아내고, 심지어 다른 사람의 식료품을 폭력으로 갈취하기도 한다. 일한 만큼 배급받는다는 원칙에 의해서 방범대가 없는 가정은 방범대가 있는 가정보다 적게 배급받아 불만을 토로하면서 방범대의 폭행, 살인에 대해 비난한다. 명화는 배급량이 적어도 되니까 민성이 남을 해치거나 폭력을 사용하는 것을 반대하고, 민성은 방범대장으로서 모두 참여하는 방범대를 그만둘 수 없다고 말함으로써 방범대/일반인의 공적 갈등이 민성/명화의 사적 갈등으로 변화한다.

 

방범대의 도둑질과 폭행, 유토피아/식인의 이중성은 내부의 갈등을 심화시킨다. 전반부에서 몸싸움은 외부인의 폭력에 대한 입주민의 방어라는 점에서 폭력의 정당성이 부여된다. 하지만 중반부에서 외부인의 식료품을 무력으로 빼앗는 몸싸움은 폭력의 정당성이 부여되지 않는다. 쓰러진 외부인을 둘러싸고 그의 아내와 딸이 우는 모습을 보는 민성의 시선에는 죄책감이 묻어난다. 방범대는 식료품을 구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들의 도둑질, 약탈, 폭력을 정당화하고, 민성은 방범대와 명화 사이에서 갈등하기 시작하면서 명화의 시선을 피하게 된다. 황궁아파트가 천국이라고 소문을 내고서 찾아오는 사람들을 잡아먹는다는 헛소문은 유토피아/식인의 이중성으로 입주민의 풍요와 안정에 불길한 전조를 보여준다.

 

대표 영탁이 902호 입주민 김영탁이 아니고 김영탁을 죽인 살인자라는 정보가 서서히 밝혀지면서 긴장감을 유발한다. 902호 영탁의 옆집에 사는 902호 혜원이 갑자기 아파트로 찾아오면서 영탁의 얼굴이 긴장하기 시작한다. 영탁은 황궁아파트 잔치에서 윤수일의 ‘아파트’를 부르면서 지진 당일의 과거를 회상한다. 그는 자신에게 사기를 쳐서 아파트 입주를 못 하게 만든 진짜 김영탁에게 따지러 왔다가 몸싸움 끝에 김영탁을 죽이지만, 지진이 발생하고 부녀회장에 의해 얼떨결에 입주민 김영탁이라는 확언을 듣게 된다. 영탁의 회상이 끝나고 영탁이 부르는 ‘아파트’의 노래 중 ‘언제나 나를 언제나 나를 기다리던 너의 아파트’라는 가사는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이 아파트는 ‘나의’ 아파트가 아니라 ‘너의’ 아파트라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밝혀주는 노래 가사이다. 영탁은 “우리 아파트가 한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아파트. 제일 비싼 아파트. 아파트 처음으로 증원하였습니다. 새 주민이자 새 식구를 박수로 받아주시기 바랍니다.”라며 새로운 입주민 혜원을 챙기지만, 옆집에 사는 자신의 정체를 알아볼까봐 긴장하기 시작한다. 영탁은 외부인을 추방하는 데 가장 앞장선 입주민 대표이지만 사실상 입주민이 아닌 외부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정보의 제공으로 놀람이 발생한다. 이후 영탁이 903호 집에 들어와서 혜원에게 자신을 기억하는지 물으면서 압박하는 장면, 혜원이 명화에게 대표가 옆집의 미친 새끼가 아니며 남의 집에 살고 있다고 말하는 것을 영탁이 몰래 듣는 장면은 정보의 제공으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중반부 스타일은 시선, 클로즈업, 멀어지는 카메라, 숏 크기, 조명을 통해 이분법, 비밀의 복선, 감시, 긴장감을 표현한다. 방범대가 절벽 위를 걷는 장면에서 외부인의 올려다보는 시선과 방범대의 내려다보는 시선은 외부인/입주민, 무력감/권력을 대비시킨다. 902호에 사는 대표 영탁이 903호에 사는 혜원의 등장으로 긴장하는 장면은 영탁의 얼굴 클로즈업과 밝은 조명으로 영탁의 숨겨진 비밀에 대한 복선을 암시한다. 영탁이 진짜 김영탁을 죽인 살인자이자 외부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장면에서 클로즈업에서 롱숏으로 멀어지는 카메라는 주관적 시선에서 객관적 시선으로의 변화, 공감의 시선에서 냉정한 시선으로의 변화를 통해 인물의 기만적인 면모를 표현한다. 명희가 도균 집에 들러 드림팰리스 모자를 위해 식량을 나눠주는 장면은 카메라가 멀리서 지켜보는 영탁을 익스트림롱숏에서 클로즈업으로 가까이 다가가며 숏 크기의 변화로 감시의 시선과 긴장감을 표현한다. 영탁이 혜원의 집에 불쑥 들어오는 장면은 얼굴의 부분 조명을 통해 혜원에 대한 압박감을 표현하고, 혜원이 명화에게 영탁의 비밀을 누설하는 장면은 영탁이 있는 어두운 공간으로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한다.

 

 

4. 죽음: 내부의 분열, 외부인과의 혈투와 쌓여가는 시체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죽음은 내부의 분열, 외부와의 혈투와 쌓여가는 시체를 나타낸다. 이 영화는 외부인 추방으로 인한 대립, 평화주의자 도균의 투신자살, 비밀의 폭로와 혜원 살인, 입주민/외부인의 혈투와 영탁의 죽음, 민성의 부상과 죽음 등 비극적 결말로 끝이 난다.

 

대표 영탁이 자신의 정체를 알아챈 명화를 압박하기 위해서 도균의 집을 습격해서 드림팰리스 모자를 찾아내 추방시키자, 평화주의자 도균이 울분을 터트리며 투신자살하여 주민 수칙의 배타성에 대한 비판을 드러낸다. 도균은 아파트 난간에 서서 “세상이 이 난리가 되었어도 해도 되는 일이 있고 해도 안 되는 일이 있고. 짐승같은 새끼들.”이라고 말한 뒤 뛰어내린다. 민성은 아내 명화가 외부인을 숨겨줌으로써 주민 수칙을 어긴 사실을 알게 되자 대표에게 무릎을 꿇고 ‘시키는 거를 모두 하겠다’며 빈다. 대표는 “민성씨가 앞으로 아파트를 위해서 더 힘써주세요.”라는 말로 민성을 통해 명화를 압박하고자 한다. 영탁이 명화를 압박하기 위한 행동, 즉 도균 집 습격, 모자 추방, 도균의 자살, 민성의 굴복은 오히려 조용히 비판의 시선만 보내던 명화가 과감히 행동에 나서게 만드는 동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물이 나온다는 사실로 인한 기쁨은 영탁의 정체를 눈치챈 명화, 외부인과의 충돌과 지혁의 죽음, 대표 영탁의 비밀 폭로로 인한 대립, 영탁의 혜원 살인으로 인한 충돌 등 점점 나락으로 떨어지면서 입주민의 죽음으로 끝이 난다. 부녀회장이 식료품이 없다는 불만을 토로하자, 혜원의 폭로와 명화의 인지로 인해 날카로워진 영탁이 부녀회장을 멸시한다. 영탁과 민성이 이끄는 방범대원은 외부인의 공격을 당하고 지혁이 심각한 부상으로 죽게 되며, 지혁의 어머니인 부녀회장 금애는 아들 지혁의 죽음으로 대표 영탁을 강하게 비난한다. 이때 명화가 나타나 ‘아파트는 주민만 살 수 있다’는 주민 수칙을 말하며 진짜 김영탁의 시체를 끌고 오고 진짜 김영탁의 주민등록증이 든 지갑을 바닥에 던지며 대표 영탁이 가짜 입주민이라는 사실을 폭로한다. 영탁은 자신이 집값을 다 냈지만 사기를 당했다는 점에서 자신이 902호 김영탁이라고 울부짖으며, 자신의 정체를 폭로한 혜원을 절벽 아래로 떨어뜨려 죽인다. 지혁의 죽음은 대표 영탁에 대한 부녀회장의 비난으로 이어지고, 명화는 대표 영탁의 정체를 밝히고, 궁지에 몰린 영탁이 혜원을 살해하는 등 도미노식 사건으로 인물들이 계속 죽음을 맞이한다.

 

외부인의 침입으로 인한 혈투와 영탁의 죽음, 민성의 부상과 죽음 등 내부의 분열은 내부인의 죽음으로 끝난다. 영탁은 외부인이라는 정체가 밝혀져 추방 직전의 상황에 몰리지만, 외부인이 침입하자 입주민 대표로서 치열하게 싸우다가 죽음을 맞이하여 누구보다 입주민의 진정성을 보여준다. 영탁은 902호에 들어가서 엎드려 누워 자신의 진짜 가족사진을 바라보면서 눈물을 글썽이며 죽어가며, 외부인들이 자신의 집을 침입하자 “씨발. 남의 집에 신발을 신고.”라는 말을 남기고 죽음을 맞이한다는 점에서 902호의 진정한 주인임을 입증한다. 민성도 외부인과의 격투로 부상을 입게 되고, 죽기 직전 갈등하던 아내에게 사과하고 화해한다. 민성은 “내가 잘못한 게 많잖아. 그래도 확실히 잘했다고 생각하는 거 하나 있어. 너랑 결혼한 거.”라고 말하자, 명화가 민성의 얼굴을 쓰다듬고 민성은 눈물을 흘린다. 생존을 위해 외부인을 배척한 주민 수칙은 오히려 외부인과의 혈투로 주요 인물들을 죽게 만든다는 점에서 공생의 가치를 떠올리게 한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후반부 스타일은 밝음/어둠의 조명, 다가가는 카메라, 시선, 숏 크기, 카메라의 회전을 통해 감추기/드러내기의 대비, 죽음, 반전, 배척/수용의 대비를 표현한다. 영탁이 햇빛을 받으며 물을 보고 환호의 함성을 지르는 장면과 명화·혜영이 그늘에서 나오는 장면은 밝음/어둠의 대비를 통해 감추기/드러내기의 대비를 나타내고, 영탁을 보는 명화의 시선(미디엄숏), 혜원의 얼굴(밝은 조명)로 영탁의 비밀이 드러났다는 사실과 그로 인한 긴장감을 표현한다. 영탁이 902호로 들어가 쓰러지는 장면에서 미디엄숏에서 바스트숏으로 다가가는 카메라는 진짜 가족을 눈에 담으며 죽어가는 영탁에 대한 연민을 표현한다. 부상을 입은 민성과 그를 부축하는 명화가 절벽 위를 걷는 장면은 비틀거리는 두 사람의 내려다보는 시선과 앉아 있는 외부인의 올려다보는 시선을 통해서 불안정/안정의 대비를 나타내며, 전반부에서 내려다보는 시선과 올려다보는 시선에서 나타나는 권력/무력함과는 역전의 상황을 보여준다. 민성이 부상으로 죽는 장면에서 누워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익스트림롱숏)에서 일어나는 명화를 바라보는 시선(익스트림클로즈업)으로의 차이는 극과 극의 대비로 평온함과 죽음을 대비시킨다. 명화가 외부인의 안내를 받아 아파트로 들어서는 장면은 90도로 회전하는 카메라를 통해 세로로 쓰러져 달라진 구조의 아파트 내부, 명화를 따뜻하게 맞이하는 외부인들의 태도로 정상/비정상, 배척/수용의 대비를 표현한다.

 

 

5. 생존 전략: 공존/배척과 유토피아/디스토피아의 아이러니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생존 전략을 통해 공존/배척과 유토피아/디스토피아의 아이러니를 그려낸다. 이 영화는 재난영화인데 아파트를 중심으로 전개된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부촌 아파트의 붕괴와 서민 아파트의 건재가 대비를 이루며, 부촌 아파트 주민이 거주지를 잃어 죽어가고 서민 아파트 주민이 입주민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유토피아를 구현한다. 자연적 재난에서 현실의 상황과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진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하다. ‘아파트는 주민만 살 수 있다’는 수칙으로 인해 입주민 대표로서 가장 헌신한 영탁은 외부인이라는 정체가 밝혀지면서 죽음으로 대가를 치른다. 아파트는 편의시설과 편리한 관리로 살기 좋은 주거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최근에는 재산의 척도가 된다. 서민아파트인 황궁아파트는 대지진이라는 재난에서 유일하게 건재한 아파트로서 ‘아파트는 주민의 것’이라는 구호 아래 선민사상을 보이며 유토피아를 꿈꾼다. 황궁아파트 입주민을 이끄는 지도자들은 그들만의 유토피아를 구현하기 위해, 공멸하지 않기 위해 외부인과의 공존을 거부하고 배척하지만, 결국 외부인들의 침입으로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디스토피아로 막을 내린다.

 

영탁의 바둑돌 이미지는 세 번에 걸쳐 반복되면서 상징과 더블링을 구축하며 내부/외부의 문제를 제기한다. 전반부에서 바둑돌은 흰돌/검은돌로 다수결 투표를 하여 외부인 배척/수용의 의미를 나타내며, 이때 영탁의 불안한 표정을 잡아낸다. 중반부에서 바둑돌은 사기를 당한 가짜 김영탁이 사기꾼 진짜 김영탁을 질식시켜 살해하는 도구로 쓰이면서, 입주민 대표 영탁이 실상은 외부인이라는 아이러니를 나타낸다. 후반부에서 바둑돌은 영탁이 명화와 혜원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자신을 바라보는 명화의 시선을 느낀 후, 바닥에 떨어진 바둑돌을 보면서 자신의 정체가 드러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긴장을 느끼게 만드는 작용을 한다.

그리고 민성의 시선과 명화의 시선에 대한 수미상관식 구성은 배척/공존의 문제를 제기한다. 첫 장면은 민성이 일어나서 잠든 명화를 바라보는 시선이고, 마지막에 가서는 명화가 일어나서 잠든(죽은) 민성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두 시선의 간극은 재난에서 시작해서 죽음으로 끝나는 비극을 보여준다. 생존을 위해 주민 수칙을 따르고 외부인을 배척하게 된 민성이 죽고, 공존을 위해 주민 수칙을 어기고 외부인을 수용하고 돌본 명화가 살아남는다는 설정으로 배척/공존의 의미를 되새긴다.

또한 민성과 명화에게서 멀어지는 카메라에 대한 수미상관식 구성은 재난에 대한 두려움/극복의 문제를 제기한다. 초반부에 아파트 창가에 선 민성에게서 멀어지는 카메라는 민성, 우뚝 선 황궁아파트, 무너진 서울의 폐허로 공간을 확대해 가면서 재난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한다. 마지막 장면에 아파트 창가에 선 명화에게서 멀어지는 카메라는 명화, 옆으로 무너진 아파트, 마당의 활기찬 외부인들, 무너진 서울의 폐허로 공간을 확대해가면서 재난에 대한 극복을 표현한다. 이렇듯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바둑돌의 상징과 더블링, 시선과 멀어지는 카메라의 수미상관식 구성으로 내부/외부, 배척/공존, 두려움/극복의 대비를 표현함으로써 유토피아/디스토피아의 문제를 제기한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글·서곡숙
영화평론가, 영화학박사, 청주대학교 영화영상학과 교수. 한국영화교육학회 부회장, 한국영화학회 대외협력상임이사, 계간지 『크리티크 M』 편집위원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부산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부천국제영화제, 대종상 등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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