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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생각하는 ‘역사란 무엇인가?’
다시 생각하는 ‘역사란 무엇인가?’
  • 성일권
  • 승인 2015.11.02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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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는 조국 근대화의 주역인가, 친일독재자인가? 김대중은 공산주의자인가, 민주화의 주역인가? 실증주의 역사학자 레오폴트 폰 랑케의 주장대로, 역사가의 고유 목표가 단지 역사적 사건과 인물이 실제로 어떠했는가를 보여주기만 하는 것이라면, ‘본래 있던 그대로’라는 테두리 밖의 ‘발견되지 않는 역사’는 역사가 아니다. 그러나 특정 세력이 역사의 기록을 독점하고 보여주고 싶은 것만 강조한다면, 과연 그것이 정당한 역사라고 할 수 있을까? 랑케의 주장이 식민사관의 근원으로 비판받는 이유다. E.H.카의 지적대로, “역사의 ‘사실들’이라 해도, 그것들이 역사가들의 ‘선택적 산물’에 불과하다”는 것은 객관성의 결여를 우려함이다.(1)  
 박정희가 친일행각과 좌익운동을 했고, 사회 민주화를 억압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가들은 그의 ‘근대화 공로’만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모든 역사적 ‘사실들’은 그 시대의 규준과 가치에 영향을 받은 역사가들의 해석상 선택의 결과로 기록된다. 하지만, 그 역사가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인가? 과연 그들이 당대에 가장 합당한 규준과 가치를 지녔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카에 따르면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 또는 ‘과거의 사실과 현재의 역사가의 대화’다.  여기에서 카가 중요시한 것은 과거 그 자체, 혹은 과거의 사실이 아니라 그에 대해 역사담론과 지식을 생산할 ‘현재의 역사가들’이 현재의 사회와 현실에 대해 어떤 문제의식과 가치관을 가졌는지다. 이미 잊혀버린 과거의 ‘사실들’을 소환하고, 아직 진행 중인 현재의 ‘사실들’을 취사선택하는 것은 바로 그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역사가의 현재에 대한 문제의식과 가치관은 결국 미래에 대한 믿음 및 전망과 연관된다고 카는 주장한다. 인간의 역사는 더 나은 사회를 향해 전진해왔다. 그리고 그러한 진보의 과정이 합리적 이성을 지닌 인간의 존재성을 역사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인간의 역사는 미래에도 더욱 합리적인 방향으로 변화하고 진보할 것이다. 이처럼, 장차 과거가 될 현재의 사회가 더 민주적이고 더 평등한 사회로 진보해갈 것이라는 ‘역사적 신념’이 현재의 역사가와 과거의 사실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대화의 성격을 결정하고, 과거에 대한 역사가의 인식 내용을 결정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박 대통령의 말대로, “자라나는 세대가 올바른 역사관과 국가관을 확립하고 통일시대를 대비하면서 미래로 나아가야”겠지만(10월27일,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 교과서 국정화가 그 정답이 될 수는 없다. 박 대통령은 “역사교과서 국정화로 역사왜곡이나 미화가 있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지만, 그런 교과서가 나오는 것은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들’만 나열하는 것은 역사가 아니다. 박 대통령과 그를 돕는 역사학자들에게 묻고 싶다. “우리 사회가 더 민주적이고 더 평등한 사회로 진보할 것이라는 역사적 신념을 갖고 있는가?”  
 <르 디플로> 11월호에선 프랑스의 보수적 역사학계가 근거없는 ‘사실들’을 나열해 수없이 악마화한 ‘혁명가’ 로베스피에르를 소환하여, 그의 순수함과 열정을 재평가한 도발적 글이 눈길을 끈다.  먼 훗날, 어쩌면 머지않아 우리 사회의 수많은 ‘로베스피에르'들이 권력에 의해 악마화되고, 또 다른 세력에 의해 재평가되는 악순환이 빚어질까 걱정된다. 교과서 국정화 논란에 즈음하여, 독자분들의 일독을 권한다.  
 
 
(1) E. H. 카, <역사란 무엇인가>(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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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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