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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앞에 무릎 꿇는다는 것의 의미
역사 앞에 무릎 꿇는다는 것의 의미
  • 노명환
  • 승인 2016.03.02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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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 1925-제랄드 머피

 지난 1월 31일,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5·18 영령들 앞에 무릎 꿇고 사죄했다. 광주민주항쟁 무력진압 후 등장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참여에 대해 참회한 것이다. 그 참회의 진실성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정통 야당인 민주당의 지도자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보기도 하고, 진심어린 참회로 보기도 한다. 

 필자는 매우 긍정적으로 본다. 이 시기에 그가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해 이러한 행보를 한다는 자체가 그 자신의 정치적 입지 확보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우리 사회와 사람, 그리고 역사를 위해 헌신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로 비치기 때문이다. 김종인 위원장의 이번 행보는 그 자체로 참회의 길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그가 자신의 과거 행적에 대해 “후회한 적이 없다”고 한 것은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몇 마디 말로 변상할 수 없다는 것, 따라서 신념의 정치와 경제정책으로서 실행하고자 하는 의지로 해석된다. 물론 필자의 이런 긍정적인 시각은 주관적인 것이다. 그리고 그가 앞으로 우리 사회와 사람, 그리고 역사를 위해 진정한 헌신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기대에서 비롯된 것일지 모른다.
 1970년 12월 7일, 빌리 브란트 독일 수상은 폴란드 바르샤바의 게토에 있는 나치 희생자 위령탑(1) 앞에서 무릎 꿇고 사죄했다. 사실 빌리 브란트는 나치에 저항해 투쟁했던 민주투사였기에 개인적으로는 역사 앞에 떳떳한 사람이었다. 그의 사죄는 그 자신의 개인적인 허물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과거 나치 시대 독일이 폴란드와 폴란드 내 유대인에게 저지른 반인륜적인 범죄에 대해, 가해국의 지도자로서 역사 앞에 사죄한 것이다.
 나치에 저항한 민주투사였던 빌리 브란트가 독일 수상으로서, 나치 시대 독일의 범죄에 대해 무릎 꿇고 사죄하는 모습은 폴란드는 물론, 갈라져있던 두 독일과 전 세계인의 심금을 울렸다. 그의 이러한 사죄는 ‘다시 태어난 독일’, ‘다시 태어나고자 하는 독일인들의 몸부림’으로 세계에 전파됐다. 그리고 이에 대한 화답으로 동독은 물론 동유럽 국가들과 화해 협력의 길, 동방정책을 닦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전 세계 사람들은 빌리 브란트의 사죄를 어떤 정치적 전략이나 즉흥성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자유와 민주주의, 그리고 인권을 위한 그의 삶과 철학의 연장선이라 보았기에 신뢰할 수 있었다. 그의 동방정책은 ‘서독과 동독의 과거를 진솔하게 대면하고, 현재와 미래를 위해 더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정책’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는 자유와 민주주의, 그리고 인권의 가치가 결핍된 동유럽 사회주의권에 대해 깊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그러한 가치가 그곳들에 전파돼야 한다고 믿었다.

김종인의 참회에서 브란트를 떠올려
 
 그러한 관점에서, 김종인 위원장이 5월 영령 앞에 무릎 꿇은 모습을 보면서 빌리 브란트를 떠올리는 것은 유사성이 아닌 차이점을 되새기는 과정이다. 그럼에도 김종인 위원장의 사죄가 개인의 흠결을 넘어서 ‘당시 역사의 물결 가운데 제 위치에 서지 못한, 그러나 뒤늦게나마 가야 할 역사의 방향을 깨달은 사람들’의 사죄임을 기대한다. 김 위원장은 “광주의 상황을 와서 보니, 사죄의 말씀을 드려야 되겠다는 마음이 저절로 생겨난다”고 했다. 극악무도한 탄압이 자행됐던, 그리하여 끝없는 집단 트라우마가 이어지고 있는 비극의 현장. 그곳에서 역사의 깨달음을 얻고 참회하며 일심으로 새로운 길을 간 사람들을 우리는 역사 속에서 많이 대면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비범한 사례들을 남긴 역사의 영웅들을 볼 수 있는데, 사도 바울이 그 대표적 인물이다. 기독교도를 박해하던 사울이 참회하고, 기독교 이론 정립과 복음 전파에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업적을 쌓은 지도자 바울로 변신했다. 이러한 지도자들이 우리 사회에서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고 본다. 이들은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역사의 행보를 통해, 우리 사회를 진정한 발전과 화해의 길로 이끌어 갈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김종인 위원장이 한결같이 주장하는 경제민주화를 바탕으로, 개인과 사회에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의 가치가 온전히 꽃피기를 희원한다. 그리고 이러한 가치들이, 남과 북 지도자들의 인정과 감동 속에서 북한으로 전파되기를 바란다. 이것이 김종인의 ‘무릎 꿇음’을, 역사적인 빌리 브란트의 ‘무릎 꿇음’으로 승화시키는 과정이 아니겠는가.
 김종인 위원장이 말하는 경제민주화는 과거 서독에서 뿌리내린 ‘사회시장경제제도’와 통한다고 본다. 이는 빌리 브란트가 속한 사회민주당의 정책이 아니고, 그 반대당인 기독교민주당의 핵심정책이었다. 나치 시대 망명 생활을 했던 빌헬름 뢰프케, 발터 오이켄, 프란츠 뵘, 루드비히 에르하르트, 그리고 김 위원장의 모교인 뮌스터대학교 알프레드 뮐러-아르막 교수 등 개혁적 보수주의자들이 그들 자신이 겪은 나치 시대의 전체주의에 대한 반성과 함께 고안한 경제이론과 정책이었다. 
 그들은 전체주의 계획경제 제도나 다른 극단의 자유방임주의 모두를 반대하고, 개인의 자유에 의거한 시장제도와 국가 공동체의 개입을 통한 사회제도 사이의 공존과 상생의 상호작용을 추구했다. 그들은 시장원리에서 자유와 규범의 조화를 생각했고, 이를 ‘질서 자유주의’라는 개념으로 발전시키면서 사회시장경제제도의 이론적 기초로 삼았다. 사회시장경제제도는 자유시장경제제도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그들은 공정한 자유 경쟁을 중시하면서도, 경쟁에서 소외된 약자에 대한 배려, 중소기업 보호·육성 등의 정책과 사회보호망 확충을 중시했다. 사회복지정책은 자유 시장원리의 자본주의 체제하에서도 최대한 공정한 분배를 가능하게 하고, 이에 기초해 건강한 사회를 담보하고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위한 유효수요의 원천으로 기능할 수 있었다.
 사회시장경제제도는 ‘라인강의 기적’을 일으킨 경제장관으로 추앙받으며 후에 수상 자리까지 오른 에르하르트에 의해 보수당인 기독민주당의 중심 정책으로 뿌리내렸다. 보수 진영의 사회시장경제제도 도입은 그들 나름의 진지한 나치 과거사 청산 정책의 결과였다. 이는 전후 독일 사회의 통합과 조화로운 발전에 중대한 역할을 수행했다. 사민당 소속인 빌리 브란트는 반대당의 이러한 사회시장경제 정책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리고 전통적인 사민당의 ‘기간산업 국유화 정책’을 폐기하고자 했는데, 이를 실천한 결과가 1959년 도입된 사민당의 고데스베르크 강령이었다. 
 사회시장경제제도를 중심으로 보수당인 기독민주당과 진보당인 사민당의 정책이 수렴돼 갔던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서도 기독민주당은 성장에, 사민당은 사회복지에 보다 역점을 두었다는 점이 다르다. 그러나 사회시장경제제도 하의 독일 정치지도자들은 물론, 시민들도 성장과 복지, 분배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한 동전의 양면임을 분명하게 인식해왔다. 이러한 사회시장경제제도는 서독과 동독의 통일 좌표로서 기능하기도 했다. 김종인 위원장의 역사 앞에서의 사죄, 경제민주화 정책, 그리고 모든 측면의 민주주의 실현이 우리 사회 각 정치세력의 목표들을 수렴시키고 화해시키는 구심점이 되기를 희망한다. 우리 사회가 진정한 변화를 이룰 수 있기를 바란다. 그 화해와 민주주의 그리고 평화의 기류가 북한으로 이어져, 북한 사회가 진정으로 변화되고 한민족 공동의 번영을 구가하는 통일의 미래를 꿈꾸어 본다.  
 
 
※ 이 글은 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독자 여러분의 반론을 기대합니다.  
 
 
 
글·노명환
독일 두이스부리크-에센대학교 사학과에서 철학박사 (유럽현대사 전공)를 받았으며,한국외국어대 사학과와 대학원 정보·기록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연계하는 연구를 수행하였다. 현재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과 김대중의 햇볕정책을 비교하는 연구들을 수행하고 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 인문대학장 및 역사기록관 관장, 세계민속박물관 관장을 겸하고 있다.
 
(1) 1943년 나치에 대항해 폴란드의 유대인들이 봉기했다가 5만6000명이 학살당했는데, 이 영령들을 잊지 않고 위로하기 위한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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