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페미니즘의 역사는 100년이 넘었지만, 아직 단일한 이론체계는 없으며 그 정의를 규정하기도 어렵다. 18세기 산업혁명과 프랑스 대혁명 과정에서 여성들이 처한 비참한 상황은 남성과 동등한 권리 요구로부터 전개되기 시작했다. 이후 1960~1970년대에 들어서 폭발적인 여성운동 전개와 함께 페미니즘의 다양한 실천이 이뤄졌다.
서구 페미니즘의 역사와 종류, 딜레마
페미니즘의 목적은 간략하게 말해 ‘여성의 지위와 권한 강화'라 할 수 있다. 페미니즘의 사상적 흐름은 보통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하는데, ‘물결(Waves)’이라는 접근법으로 정의하는 것이 보편적으로 사용된다. 이른바 ‘제 1물결’은 19세기 말 무렵 여성들의 정치적 권리 및 법적 권리 요구의 핵심인 ‘여성참정권 보장’이었다. 여성의 정치적‧법적 권한 획득의 역사로부터 시작됐다. 세계 최초로 여성 투표권을 허용한 나라는 1893년 뉴질랜드다. 유럽 최초로 핀란드가 1906년, 독일이 1918년이다. 프랑스는 1944년에야 여성 투표권을 허용했다.
‘제 2물결’은 1960년대 말 청년반란으로 불리는 청년저항운동과 함께 페미니스트 단체들이 대거 출현하면서 일어났다. 이 때 ‘여성해방’이라는 의제가 두각을 나타내며 새로운 페미니스트들이 등장했다. 1970년대 들어서며 급진적인 여성운동으로 발전해, 이 시기부터 ‘페미니스트’라는 명칭이 보편화됐다. 페미니스트운동의 기본적인 개념은 국가, 국가제도, 사회구조를 ‘가부장적 구조’로 분석해 가부장제 타파를 주요 모토로 하는 저항과 투쟁의 방식이 오늘날에까지 이르고 있다. 제 2물결은 다양한 의제를 가진 페미니스트 단체들이 급증하는 흐름을 낳았으며, 법과 제도를 바꾸기 위한 수십 년의 투쟁은 위대하고 자랑스러운 성과를 이뤄 낸 사회운동으로 평가한다.
페미니즘은 본질적으로 모순을 지니고 있다. 페미니즘은 여성들의 다양한 입장에 따라 세 가지로 분류된다. 자유주의 페미니즘,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 급진적 페미니즘으로 구체화됐는데, 여기에 사회주의 페미니즘을 추가하기도 한다.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부르주아 중심의 평등권 페미니즘으로, 미국과 북유럽에서 발달했으며 기존의 젠더 관계에 반발하지 않는다. 자유주의 페미니즘에 반대하는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은 남녀 간의 권력차이를 중심에 두고 남성권력에 대항하는 여성들의 투쟁이다. 즉 가부장제를 포함한 자본주의 타파 운동이다. 급진적 페미니즘은 자유주의 페미니즘과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 두 가지 모두에 반발하며 가부장제 사회구조, 즉 남성지배 사회와 가부장제 억압에 가장 주목하며 도전한다. 마르크스주의 분석 틀에 기초한,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사회주의 혁명만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입장을 취한다.
페미니즘의 갈래는 이처럼 복잡하고, 각기 딜레마를 내포하고 있으며 논란거리가 존재한다. ‘여성해방'과 ‘가부장제 타파'는 성격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어디까지인가, 실천 방향은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들어가면 딜레마에 봉착한다. 서구의 페미니즘운동은 교육받은 중산층 백인여성이 중심이 돼 이끌었다. 페미니즘의 발상은 ‘백인 여성을 위한 페미니즘’에서 시작됐다. 그로 인해 페미니즘의 모순점 중 중요한 부분은 ‘여성들간의 계급차이는 간과'되고 있으며, ‘여성이 여성을 착취하는 문제'는 빠져있다. 즉 백인여성의 억압을 받으며 최하위 노동을 하며 살아가는 흑인여성, 소수민족, 이민여성, 빈곤층 여성의 문제는 제외돼 있는 것이다. 현재의 페미니즘 운동도 빈곤층 여성 문제는 빠져있어, 페미니즘의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이 요구된다. 오스트레일리아의 흑인 여성운동가 이브 페슬은 말했다. “우리는 백인 여성이 흑인 남성보다 더 흑인 여성을 억압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국내 페미니즘,
호주법 폐지 이후 담론을 잃다
국내 페미니즘 역사는 서구와는 달리 역사가 짧다. 여성참정권 획득은 서구 여성들의 격렬한 투쟁의 결과와는 달리, 1958년 민주적인 법체계 수립과 동시에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페미니즘 담론은 일종의 문화운동 차원에서 대학의 ‘여성학’ 교육을 통해 페미니즘 이론과 페미니스트 활동가가 대부분 양성됐다. 대학 강단 범주에서 생성된 페미니즘은 1970년대 후반 최초로 ‘여성학’강좌가 개설됐고, 1990년까지 약 69개 대학에 ‘여성학’이 개설돼, 이때 교육받은 여성 운동가들이 민주화운동과 맞물려 여성운동은 1990년대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
그러나 대학의 ‘여성학’은 2000년대 중반 무렵 폐지되기 시작했다. 최근 조사에 의하면, ‘여성학’을 별도의 전공으로 운영하는 여성학과는 없으며, 교양수업 정도에 그치고 있는 현실이다. 이는 서구의 페미니즘이 1980년대 이르러 분열되고,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길을 잃었으며, 더 이상 새로운 담론을 생산하지 못하는 침체기에 접어든 현상과 궤적을 같이한다. 애초에 대학 강단에서 시작된 한국의 페미니즘은 여성학의 폐지와 동시에 젠더 이슈, 페미니즘 담론을 더 이상 생산하지 못하는 한계에 직면하고 말았다. 2003년 뜨거운 이슈였던 ‘호주제폐지’를 끝으로 페미니즘은 거의 죽은 상태나 다름없었다. 물론 압축적인 경제성장에 따른 시대적 변화와 더불어, 여성들의 정치적 권리 법적 권리획득과 성평등 의식은 매우 높아졌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국의 페미니스트 역시 대학 강단에서 배출한 중산층 계급 여성들이 여성단체를 결성하며 페미니즘운동을 이끌었다. 여성운동가들이라 해서 ‘페미니스트’라고 불러야할지 사실 분명하지 않다.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든다. 여성단체에서 활동하는 여성운동가가 반드시 페미니스트일까? 여성단체에서 활동하니까 당연히 페미니스트로 분류되는가? 본인이 스스로 “나는 페미니스트다”라고 해야 정확한 게 아닐까? “나는 페미니스트다”라고 밝힌 페미니스트는 어떤 조류의 페미니즘을 중심 철학으로 삼고 있는가? 여성운동가들이 속해있는 여성단체의 성격으로 대략 짐작해야 하는가?
한국의 페미니즘 사상은 1970년대의 미국의 급진적 페미니즘의 영향과 자유주의 페미니즘이 혼재돼있어, 한국의 페미니즘 경향을 정의하기도 어렵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연대와 상생,
21세기 페미니즘이 취할 방향
현 시기 페미니즘은 양성간의 조화로운 협력관계에 기초한 양성평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회구조적 변화에 따라 페미니즘의 강조점도 성평등 사회로 이동해 제도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중점을 둔다. 스웨덴과 노르웨이는 최초로 성평등법을 제정한 국가로 노르웨이가 1978년, 스웨덴이 1979년이었다. 이 두 나라의 급진적 페미니즘 운동은 격렬하게 전개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스웨덴 급진 페미니즘의 유명한 슬로건은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로 성평등 개념에 매우 비판적이었다. 그러나 자유주의 페미니즘이 정책에 영향을 미쳐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성평등한 국가가 됐다.
우리나라는 1995년에 ‘여성발전기본법’이 제정됐으며, 20년 만에 ‘양성평등법’으로 전면 개정돼 2015년 7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양성평등법의 골자는 “성별에 따른 차별, 편견, 비하, 폭력 없이 인권을 동등하게 보장받고 모든 영역에 동등하게 참여하고 대우 받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여성노동자 평균 임금은 남성의 60%에도 미치지 못하는 현실이다.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발표한 2015년 기준 ‘세계 성격차 보고서'에 의하면, 조사 대상 145개국 중 최하위 수준인 115위를 기록하며 남녀임금격차, 정치권한 분야에서 낙제점을 받았다. 이는 대한민국의 성평등이 매우 낙후됐음을 보여준다.
양성 불평등의 개선은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더욱 진전돼야 할 문제다. 여성의 지위는 강화돼야 하고,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고 서로 존중하는 세상이 돼야 함은 당연하다. 복잡한 현대사회의 양성 불평등 문제는 보다 다층적이고 다차원적으로 해결해가야 한다. 남성도 역차별에 항의하는 시대다. 사회구조적으로 현실적이고 차별화된 접근으로 페미니즘이 전개돼야 한다. 예컨대, 한국의 미혼모 실태를 보자. 수많은 미혼모들이 취업, 생계, 양육 문제라는 삼중 사중의 고통을 안고 살아간다. 한국의 고아 수출은 OECD국가 1위다. 여성 임금노동자의 대다수가 일과 가정을 양립하고 있으며, 약 절반이 비정규직으로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기 때문에 출산휴가 혜택을 받지 못한다. 미국의 경우,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국가 중 유일하게 출산휴가가 법적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따라서, 미국에서는 풀타임 보육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주부들이 차라리 일을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돌아가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나는 오래 전부터 아동수당 도입을 주장해 왔다. 스웨덴의 경우 1947년에 16세 이하 모든 아동에게 아동수당을 지급해 왔다. 이런 제도는 남녀 모두에게 이로운 복지정책이다. 빈곤층 여성, 미혼모들이 아동수당을 받는다면 자녀양육에 큰 힘이 될 것이다. 노인 인구 증가로 여성 노년빈곤층의 문제는 더욱 심각해 질 것이다. 20세기 일련의 저항운동으로 일어난 페미니즘은, 21세기 페미니즘으로 재탄생돼야한다. 더욱 발전된 성평등 문화와 그에 맞는 가사 분담, 아동수당, 출산휴가 전면 보장, 보육비 경감, 노인복지 확대 등 법적 제도 개선을 중심에 두고, 모두에게 이로운 성평등 정책 이슈를 전면에 내세우는 페미니즘 운동이어야 한다.
메갈리아 사태는 우리 사회 병리현상의 일종이다. 나는 이 사태를 불평등 심화 시대에서 발생한, 일시적인 사회 현상의 한 단면이라고 본다. 한국에서의 페미니즘 담론 부재, 성평등 가치에 대한 공공의 장 논의 부족도 페미니즘으로 데코레이션한 메갈리아 사태를 일으킨 중요한 요인이다. 메갈리아식 증오와 혐오 방식은 우리 사회에서 절실한 연대정신, 여성과 남성 모두 평등하고 자유로우며, 상호 협조하고 상생하는 문화를 헤친다. 21세기에 걸맞은 페미니즘을 추구한다면, 증오와 혐오를 멈추고 현실적인 문제에 집중해야만 한다.
글·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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