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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참한 이들의 서커스
비참한 이들의 서커스
  • 도미니크 오트랑
  • 승인 2018.04.30 15: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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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돌이 일꾼이 몰래 화물열차를 타고 이 마을 저 마을로 이동하며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인생을 알아간다는 것은 미국 문학의 흔한 소재다. 이런 소재의 자전적 소설로 유명한 작가로는 잭 런던과 잭 케루악 등이 있다. 또 한 명의 대표적인 작가로 짐 툴리(Jim Tully)가 있다. 1886년 출생으로 추정되며 1947년 작고한 짐 툴리는 15세 때 고향인 오하이오를 떠나 이듬해인 1901년부터 1907년까지 감옥에 다녀오는 등 온갖 일을 겪는다. 그러면서 인간의 본성을 깨닫게 된 짐 툴리가 가출한 지 20년이 되던 때 출간한 이 책에는 그의 경험이 오롯이 녹아 있다. 그는 출간 후 곧 인기작가가 되지만, 직설적이고 거친 스타일 때문에 문단과 비평가들로부터 혹평을 받기도 한다. 1925년 할리우드에 가서 찰리 채플린의 <황금광 시대>의 특별자문 역할도 했던 짐 툴리, 14편에 이르는 그의 저서들을 재발견하게 해준 소눼르 출판사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1) 1927년 출간된 『서커스 행진』(Circus Parade)은 한 서커스단이 전국을 유랑하며 겪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세심한 묘사는 작가가 이 세계를 얼마나 잘 아는지 보여준다. 서커스 단원이 사는 세계에는 마술도, 신기루도 없고 냉혹함이 감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개봉되는 토드 브라우닝의 <프릭스>와 비슷하다. CFA 서커스 곡예단(미국 아마추어 서커스 협회)에서 이 작품을 본다면 심기가 몹시 불편해질 것이다. 


캐머런 서커스단의 열차 10량에는 사회에서 천대받고 감옥에 다녀오고 헐벗은 사람들로 빼곡하다. 이들은 서커스 단원이 돼 기괴한 얼굴과 몸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재주를 부리고 동물들의 묘기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외에도 서커스단에 소속된, 서커스의 진행을 돕고 잡일을 하고 말뚝을 박고 천막을 치는 이들이 있다. 파렴치한 사기꾼 캐머런 단장은 이들 모두를 착취한다. 단장은 단원들을 시켜 고성으로 호객 행위를 하고, 암표를 팔고, 카드놀이에서 속임수를 쓰고, 사라지는 묘기를 보여주고, 주사위 놀이를 보여주며 사기를 친다. 단원에게 한 푼도 주지 않고 내쫓으려면 하수인을 시켜서 ‘빨간불’을 보여주면 그만이다. 달리고 있는 기차에서 던져버리는 것이다. 

만연한 폭력을 건조하고 빠르게 다루는 작가의 방식은 미국의 로망 누아르의 출현을 예고한다. 잔혹한 장면은 멈출 줄 모른다. 동물의 묘기를 보여주는 서커스 단원의 옷은 하이에나에 의해 거칠게 찢겨 있고, 난투극을 보여주다가 피투성이가 되고, 인종차별주의자인 관객들은 타르가 발라져 있는 흑인 단원의 셔츠에 불꽃을 붙이며 그를 죽음에 내몬다.

책에는 멋진 인물도 몇몇 등장한다. 세상에서 가장 뚱뚱하지만 불운한 사랑과 목숨을 맞바꿀 수 있는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몽상가인 릴라. ‘모르핀에 중독돼 20년 동안 감옥’에 있다가 나와서 말을 돌보고 있지만 우정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는 기수 출신의 작. 피부병에 걸렸으며 개성이 강한 고양이를 데리고 다니는 동부 유럽 이민자 출신의 흑인 광대. 

“우리 셋의 공통점은 비참함이었다. 떠돌이의 삶은 절망적이었지만 우리는 정체불명의 혜안을 가지고 있었다”고 짐 툴리는 책에서 말한다. 그 혜안으로 저자는 최하층민들의 대변인이 돼, 마크 트웨인이나 막심 고리키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그리고 그가 마주했던, 괴롭힘을 당하던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글·도미니크 오트랑 Dominique Autrand

번역·권경아 jaimelapomme@naver.com

(1) 첫 번째 제목, 『Vagabonds de la vie. Autobiographie d’un hobo(삶의 방랑자, 떠돌이의 자서전)』, 티에리 보샹 번역본이 같은 출판사에서 2016년 발간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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