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과 한국의 근대>
김욱동 지음, 소명출판 펴냄
일본의 지성 마루야마 마사오와 비평가 가토 슈이치의 대담집 <번역과 일본의 근대>를 연상시키는 책이다. 실제로 저자는 머리말에서 <번역과 일본의 근대>와 중국계 미국 학자인 리디어 H. 류가 출간한 <통언어적 실천>이 책의 모태가 됐다고 털어놓는다.
알려졌다시피 <번역과 일본의 근대>는 일본이 서구식 근대화를 이룩하는 과정에서 번역이 결정적 역할을 했음을 밝히는 책이다. 근대 일본의 시대 상황과 당시 일본 지식인들이 무엇을, 왜, 어떻게 번역했으며 이것이 일본의 사회·문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조명했다. <통언어적 실천> 또한 20세기 전반 중국의 근대화를 ‘번역한 근대’라고 명명하면서, 서구와 유럽에서 번역한 문헌이 없었으면 중국의 근대화가 불가능했다는 것을 주장한 책이다.
이쯤 되면 <번역과 한국의 근대>가 어떤 책인지 가늠하기 어렵지 않다. 실제로 책은 근대 한국에서 서구 문헌을 왜, 누가, 무엇을, 어떻게 번역했는지를 육하원칙에 따라 추적한다.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메이지 이후 범국가적인 노력으로 수만 종의 고전과 학술서를 번역해 근대화를 이룩한 일본과, 그 후 100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 일본의 수준에 못 미치는 한국의 상황이 천양지차인데, 같은 제목의 책을 만들어도 되는가 싶은 것이다. 이 땅에서 탈근대 담론이 등장한 지 오래건만 아직도 제대로 된 근대는 없었다. 적어도 19세기 말~ 20세기 초 한국에 관한 한 ‘번역과 근대’, 또는 ‘번역한 근대’라는 말이 성립하지 않는다. 책이 <번역과 일본의 근대>보다 10년이나 늦게 나오면서 그 어깨 위에 올라서 있음에도 조망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래도 이 책이 던지는 문제는 무겁다. 여전히 산더미처럼 밀린 외국 고전과 학술서를 번역해 양질의 한글 콘텐츠를 확보해야 하는 과제와 함께, 아직도 예속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 땅의 번역 실태를 아프게 돌아보게 한다. 오래전 김병철의 <한국근대번역문학사연구> 이래 전무하다시피 한 한국의 번역사를 더욱 체계적으로 정리한 성취도 가볍지 않다.
책의 육하원칙 중에서 현재도 유효한 주제는 ‘왜’, ‘어떻게’ 번역했느냐는 것이다. 책에 따르면 19세기 중반 이후 일본·중국·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서구식 근대화였다. 예나 지금이나 앞선 나라를 배우는 방법은 몇 가지밖에 없었다. 그 나라에 유학생을 보내는 것, 교사를 초빙하는 것, 그리고 그 나라의 문헌을 폭넓게 수집해 번역하는 것이다.
개항 초기 서구에 대규모 유학생을 파견한 일본이 그 뒤 국가 차원에서 큰 노력을 기울인 건 번역이었다. 돈과 시간, 그리고 효율 면에서 번역이 압도적으로 유리했음이다. 일본보다 여건이 좋지 않은 한국에서도 근대화의 길은 번역밖에 없었다. 이는 당시 이 땅의 지식인도 모르지 않았다. 책이 인용한 1896년 나온 <독립신문> 영문판 창간호 논설은 ‘젊은이들이 외국어를 배우지 않고도 역사·과학·예술·종교 등의 중요한 사실들을 접할 수 있도록 외국 교과서들을 속히 한국어로 번역하는 일’을 강령에 포함시키고 있다.
문제는 당시 그것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지금도 현재진행형 과제라는 것이다. 매년 국내 서점에 쏟아지는 책의 태반이 번역서지만, 주요 고전이나 학술서의 번역 수준은 당시 일본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게 정설이다. 외국 지식을 접하는 데 번역과 외국어 습득의 기회비용을 비교하면서 번역이 유리하다는 <독립신문>의 논설도 눈길을 끈다. 국제화 바람을 타고 너나없이 외국어를 배우려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통하는 지적이기 때문이다. 이는 ‘영어 몰입교육’ 운운하며 들이는 천문학적인 재원과 노력의 일부라도 번역에 투자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는 말과 통한다.
책에 따르면 한·중·일 삼국에서 이룬 번역의 양과 질은 근대화의 성패에도 정확하게 반영됐다. 가장 앞선 일본에서는 원서에서 직접 번역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중국도 일본에 못 미치지만 원서에서 직접 번역하려고 애쓴 것 같다. 하지만 한국에서 대세는 번역된 일본책이나 중국책의 이중 번역 또는 삼중 번역이었다. 그러니 한국의 근대 또한 ‘번역한 근대’가 아닌, ‘중역한 근대’일 수밖에 없었다.
원서에서 직접 번역할 외국어 실력이 부족한 탓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일본이 번역한 책만 번역하다 보니 ‘남이 노래하면 나도 노래하고, 남이 춤추면 나도 춤추는’, 번역의 사대주의가 불가피한 것이다. 근대화를 위해 번역이라는 방법을 사용했는데, 일본을 통해 서양을 만나다 보니 근대 자체가 일본에 예속되고 만 것이야말로 근대 한국 번역사의 가장 큰 비극이었다. 그러나 돌아보면 오늘날 이 땅을 휩쓰는 영어 열풍이 당시 일본어 열풍과 무엇이 다르며, 현재의 미국 의존이 당시의 일본 의존과 또 얼마나 다른가. 이쯤 되면 ‘중역한 근대’는 ‘불구의 현대’와 다르지 않다.
책에서 번역이 콘텐츠를 들여오는 것 못지않게 이것이 모국어와 민족 문학에 끼치는 영향에 주목했음도 특기할 만하다. 근대의 주요 번역가로 서재필·최남선·김억을 선정하고, 이들을 중심으로 번역을 둘러싼 문제 등을 다룬 <근대의 세 번역가>도 같은 저자, 같은 출판사에 의해 동시 출간됐다.
글•김종락
농부. 오랫동안 신문의 문화부·국제부 등에서 일하다 문화부장을 잠시 지냈다. <스코트 니어링 평전>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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