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19년은 한국에게는 매우 뜻깊은 해다. 한국이 일제강점기 일본의 무단통치를 뒤흔들었던 3·1독립운동과 한국이 근대적 국민주권 국가임을 표방한 헌법을 선포하고, 이를 바탕으로 상해 임시정부를 선포한 지 100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또한, 3·1독립운동, 4·19민주혁명, 5·18광주민주화운동, 1987년 6월 민주항쟁, 2017년 촛불혁명을 거치면서 서구의 전유물로만 여겨왔던 민주주의가 아시아에서도 가능하며, 이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동양에서도 보편 문명이 가능함을 보여주는 해이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의 일방적인 경제보복 조치에 이어, 일본 정부는 ‘신뢰할 수 있는 수출대상국’ 목록인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조치를 내렸다. 한국 측의 시정요구를 무시한 아베정권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8월 22일 한일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IA)을 유지하는 것이 더 이상 국익에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하고 이를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한일관계의 미래는 한층 격랑에 휩싸이게 됐다. 문제는 이 같은 격랑의 파고가 한일관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일본과 아시아에 속하는 모든 국가들의 관계에도 확산될 것이라는 점에 있다. 아시아의 모든 국가들에서 일본은 중국과의 대결 구도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마다 일본이 한국에 가했던 경제보복 조치를 취한다면, 일본이 아시아에서 누려왔던, 경제적인 선도국이자 정치적인 모범국으로서의 지위와 신망을 상실할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2019년이 일본에도 중요한 해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는 아시아의 평화와 공영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으며, 세계사의 맥락에서 볼 때 동양문명과 아시아 대륙을 영원한 2류 문명, 2등 대륙으로 고착화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아시아의 산업과 자유시장을 선도한 일본이 정치외교적인 이유에서 그동안 누려왔던 지위를 추락시키는 것은, 아시아 경제에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세계사와 인류 보편의 관점에서 작금의 사태를 냉정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근거로 다섯 가지를 들고자 한다.
그러나 한국 대법원의 징용판결이 나온 후 한국을 겨냥해서 한국 반도체기업을 대상으로 정밀타격을 한 ‘불의타(不意打)’는 21세기 국가 간 외교의 일반적 규범 같은 정경분리의 원칙을 어긴 것이다. 더구나 아베는 그 직전에 열린 2019 G20 오사카 정상회담에서 “자유롭고 공평한 무역”을 강조했던 선언문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경제제재를 걸었다는 점에서 비판받아 마땅하다. 영국의 유력지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에 대해, “일본이 자유무역에 위선적 태도를 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라며 비판했다.
둘째, 아베 총리는 한국에 대해 국가 상호 간 기본적 윤리인 ‘내정불간섭’의 원칙을 무시했다. 그는 일제의 한국강점이 불법임을 전제로 한 한국 사법부의 판단을, 양국 정부기관 간의 이중적 배신행위로 본다. 한국의 어떤 국가기관도, 어떤 대일협상에서도 “일본은 한국을 합법적으로 병합한 것”이라는 일본의 주장에 동의한 적이 없다. 더구나 이번의 판단 주체는 대법원, 대일협상을 담당하는 행정부와는 별개로 헌법상 독립적 권한을 행사하는 기관이다. 일본 입장에서는 한국대법원이 옛(舊) ‘일제 전범기업(미쓰비시, 히타치 등)’을 대상으로 한 생존 강제징용자에 대한 배상판결과 그 집행결정이 부당한 것이고, 종전의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이 맞다고 판단할 수는 있다. 하지만 한국 행정부가 개입할 수도 없고, 개입해서도 안 되는 대법원판결에 대해 초헌법적 권한을 행사하라는 것인가? 아베의 생각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한국 대법원은 법률이나 법률적 효력을 가지는 조약 및 협정 등에 대한 해석에 있어 한국 내 최종적 권한을 가지고 있다. 한국 대법원이 35년간 일본의 강제점령은 불법이고, 그 시기에 자행된 일본의 반인륜적 행위, 반자의적 동원에 대한 개인의 청구권이 유효하고, 이들을 ‘강제노동’시켰던 일본 전범기업의 종전 이후의 법적 승계인이 손해배상의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면, 한국 행정부는 이를 존중해야 한다. 한국 행정부가 나서서 법원의 판결에 영향을 미치거나 판결 결과를 무시하라는 것처럼 들리는 아베의 입장은, 한국의 오랜 민주화 투쟁으로 쟁취한 사법기관의 독립성을 침해하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셋째, 아베는 경제제재의 필요성에 대해서 잘못된 사실과 고의적인 거짓말을 근거로 삼았다. 국가 간 분쟁의 소지가 있는 중대조치는 그 근거가 정확하고 명확해야 한다. 그런데 일본 정부의 설명에는 모순이 드러난다. 경제산업상 세코우 히로시게(世耕弘成)는 한국이 수출관리 의견교환에 응하지 않은 점, 수출관리에 관한 부적절한 사안이 발생한 점, 그리고 징용노동자 문제에서 신뢰 관계가 무너진 점 세 가지를 들었다.
이와 달리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안전보장을 목적으로 수출관리를 적절하게 실시하려는 것일 뿐, 징용문제나 외교 문제의 신뢰와 관련된 대항조치가 아니라고 발표했다. 정치보복에서 안보 논리로 말이 바뀐 것이다. 특히 3개 품목은 수출관리 틀 안에서 군용품으로 전용되지 않도록 규제하는 품목임에도, 부적절한 사안이 발견돼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라고 북한을 끌어들였다. 일본의 설명이 총리마다, 각료마다 다른 것은 이유가 있다. 일본도 정경분리 원칙의 훼손이나 WTO 위반 논란을 피하고자 안보 이슈를 끌어들인 것이다.
그런데 이는 그 이후의 팩트가 하나씩 드러나면서 잘못된 것으로 판명됐다. 군용품 전용 가능성이 있는 물자의 대북 수출량이, 한국보다 일본이 더 많았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그리고 한국은 대량파괴 무기에 대한 4개의 다자수출통제체제인 NSG(Nuclear Suppliers Group, 핵공급그룹), MTCR(Missile Technology Control Regime, 미사일 기술 통제체제), WA(Wassenaar Arrangement, 바세나르 협정. 재래식 무기에 대한 수출통제 및 제한), AG(Australia Group, 오스트레일리아 그룹. 생화학 무기에 대한 감시 및 통제)에 모두 가입했으며, 이 모두를 엄격히 준수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즉 북한으로의 수출통제가 미약하다는 주장은 근거가 빈약함이 밝혀진 것이다. 일본은 타국에 큰 영향을 미칠 조치를 근거 없이 단행하거나, 견강부회하는 오점을 남긴 것이다.
넷째, 아베 총리는 선거에 안보 이슈를 이용하는 후진국적 행태를 보였다. 후진국의 독재자들은 흔히 가상적국들과의 대립이나, 안보위협 등의 정세를 인위적으로 조장해 선거에 활용해왔다.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아베 총리는 평화헌법으로의 개헌추진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다. 그동안 가상적국이었던 북한의 핵 위협이 북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약화되자, 아베는 그 대안으로 한국에 대한 불안감과 경계심을 조장하기 위해서 경제보복 조치를 내린 것이다. 선거에서 보수집권층이 지지율을 높일 목적으로 안보 이슈를 조작하는 행태는 한국 정치에서 낯선 경험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아베 정권의 행태는 개헌발의선 확보에도 실패하고, 일본 정치도 퇴행시키는 우를 범한 것이다.
다섯째, 아베 정권의 대한(對韓) 수출규제 조치는 공정한 세계무역 질서를 해치는 경제보복이다. 또한, 그로 인해 타격을 입는 것은 한국경제만이 아니라, 일본 경제도 마찬가지임이 분명해졌다. 아베 정권 각료들은 “일본 경제에는 별 영향이 없다”며 애써 태연한 척하지만, 이는 허세에 불과하다. 게다가 일본은 전후 자유무역, 자유경제의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린 국가다. 이번 조치는 자신들이 누려왔던 자유무역 경제 질서를 근본적으로 흔드는 행위다. 이에 대해, 영국의 유력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일본의 수출규제는 경제적으로 근시안적이며 무모한 자해 행위”라고 일침을 놓았다.
그렇다면, 왜 하필 한국일까? 나는 아베의 이 선택에서 일본의 우월감과 초조감, 그리고 분노를 읽는다. 한국경제는 6.25 전쟁 이후 부흥하게 된 일본의 ‘관서경제권’에서 노동집약적이며 단순가공적 생산기지였다. 청구권 자금과 경제협력자금, 기술이전 등은 한국경제 성장의 발판이 됐고,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인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경우 일본 기업을 모방하면서 발전해왔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이는 일본의 우월감을 낳았다. 그런데, 이런 경제적 속국이었던 한국이 ‘감히’ 일본 경제를 넘보고, 정보통신분야 서비스 등에서 일본을 능가하는 사태가 생긴 것이다. 이는 일본의 불안감과 초조감으로 이어졌다.
게다가, 한국의 현 정부는 북한과의 적대행위를 근본적으로 해소하는 데 명운을 걸고 있다. 단합된 한반도는 일본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될 수가 있다. 이런 배경이 작용한 것이다. 한국을 향한 일본 보수층의 감정은 우월감, 초조감, 분노와 공포감까지 복합적으로 응집되고 있다. 감정에 사로잡히면 냉정한 판단을 못 한다. 한국을 표적으로 삼아 단기간에 승리를 거둘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아베는 오판한 것이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일본의 수출 제재가 한국기업들의 신용등급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하면서도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은 Aa2, 등급 전망은 안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아베 총리를 비롯한 일본 우파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아베는 한국이 과거사와 관련해 충분한 보상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 보상의 근거인 1952년의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1937년에 도발한 태평양전쟁에 한정된 것이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반에 일본 제국주의는 한반도 주변에서 청일전쟁, 러일전쟁, 만주사변, 중일전쟁을 도발했다. 한국에서의 동학 농민전쟁 진압, 의병진압, 관동대지진 시기에 재일 한국인 학살 등도 자행했다. 일본은 독일과 마찬가지로 패전국이었지만, 천황제도 유지했고 일급전범들도 대부분 복권돼 전후 정치의 주역이 됐다.
역지사지해보자. 이를 ‘불행했던 과거’라며, ‘유감’을 표명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는 한국인이 몇이나 될까? 결국, 아베 총리의 조치는 모순적인 효과를 낳고 말았다. 그는 정상국가화를 목표로 하지만, 한국과의 지소미아(GSOMIA) 연장 실패를 초래함으로써 더욱 미국에 의존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군사비 지출의 급증은 일본 경제의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는 일본의 비판적 지성인인 우치다 타츠루(內田樹)와 시라이 사토시(白井聰)가 말한 허구적인 민주주의 환상에 취하는 ‘속국민주주의’로의 길이 강화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나는 일본이 전쟁과 패전이 가져온 미국 종속국가라는 불편한 현실에 눈감고 침묵한 채 허구적인 민주주의 환상에 취하는 가장된 나라이며, 그동안 교묘히 감춰온 잔학한 5대 전쟁과 반인륜적 대규모 학살. 그리고 패전 후 미국의 속국을 자처해서 ‘손쉽게’ 보상받은 경제력과 그 경제력을 바탕으로 얻은 비윤리적이고 반규범적인 주도적 지위를 누리는 나라라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과거 침략에 대한 사죄를 외면해온 아베의 전략은, 패전 이래 진정성 있는 반성과 배상을 토대로 얻은 유럽 주도국인 독일의 전략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나라임을 보여준다.
독일이 과거사에 대한 사죄와 반성을 통해 유럽 대륙을 얻은 반면, 일본은 과거사를 외면함으로써 아시아 대륙을 잃고 있다. 아베 총리가 목표하는 평화헌법 9조를 개헌해 전쟁이 가능한 ‘대일본주의’ 방향성은 철저한 대미종속 구조에서 작동하면서 전후 체제로부터 탈각을 말하는 모순되고 분열적 태도이며, 아베의 개헌 시도는 아시아 대륙에 군국주의를 부활시키고, 아시아 국가들을 신(新)냉전체제로 몰아가고 있다는 의심과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그 자신의 장점과, 일본인들의 장점을 좋아하는 우방, 친구들을 잃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아베는 일본의 ‘정상국가화’를 강조하고 있다. 진실로 정상국가, 문명국가로서의 자격을 원한다면, 군사적 정상국가화 이전에 도의적·인류 보편적 관점에서 이성과 합리적인 정신이 작동하는, 진정한 의미의 ‘정상국가’를 먼저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미 너무 늦었지만, 더 늦어지기 전에 말이다.
글‧이종걸
더불어민주당의 5선 의원이며, 독립운동가 우당(友堂) 이회영 선생의 손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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