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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적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우경화
지구적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우경화
  • 성일권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 승인 2022.05.02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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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ey makes money’.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현대 사회에서 더 이상 지구적 국제정치 구도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우파와 좌파, 보수주의와 진보주의로 재편되지 않는다. 사회주의나 좌파, 진보주의는 이젠 기억이 바랜 운동권의 낡은 이념으로 치부되며, 자본주의와 우파, 보수주의도 집권을 위해서라면 본질적 가치를 내던지고 얼마든지 변용 가능한 ‘불가사리’ 이념이 됐다. 선거 때마다, 좌도 우도 아니고 보수도 진보도 아니며, 자본주의자도 사회주의자도 아닌 ‘정체불명’ 후보들이 약진하고 정권까지 움켜잡는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중국의 시진핑, 영국의 보리스 존슨, 최근 재집권에 성공한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이들 모두가 이념이나 사상의 잣대로 정치적 ‘색채’를 파악하기 힘든 카멜레온 같은 존재들이다. 정권을 잡기 위해서라면, 한쪽에서는 자신들이 ‘좌빨’이라고 조롱했던 좌파, 진보, 사회주의의 이념이나 사상을 감쪽같이 베끼고, 다른 한쪽에서는 보수꼴통이라고 비난했던 이념들도 스스럼 없이 차용한다. 

이런 좌우의 교차는 유권자들의 표심을 얻기 위한 과정이라지만, 그 결과는 탈(脫)이념적·반(反)역사적 일신교(Monotheism)에 오른 신(新)자유주의의 제패로 귀결된다. 카멜레온이 자신의 빛깔을 감춰 방심하는 먹잇감을 긴 혀로 날름 낚아채듯, 신자유주의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정체를 감춘 채 유권자들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며 표심을 낚아챈다. 잠시나마 착시현상에 마음을 뺏긴 유권자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신자유주의자들이 흔히 희생양으로 삼는 이들이다. 신자유주의 세력의 집권은 중도실용정치를 표방하며 자신들의 욕망을 위해 금융자본세력 및 다국적 기업들의 대변자를 자칭하며, 유권자들을 좌우로 극단화시킨다. 

극좌와 극우는 이데올로기의 상극에 위치하지만, 신자유주의자들의 중도실용정치에 밀려났다는 점에서 과녁에 대한 공동전선의 동질감을 자주 갖는다. 지난 4월 프랑스 대선 결과를 보면, 미국 컨설팅사 맥킨지의 거액 자문을 받아온 마크롱 대통령의 재선과정은 유권자들의 계급에 반하는 ‘배반의 드라마’다. 소외되고 천대받아온 지역인 해외령에서의 1차 투표는 극좌 후보 멜랑숑이 압도적 1위(56%)를 차지했고, 그 다음은 마크롱(18%), 마린 르펜(13%) 순이었으나, 마크롱과 마린 르펜, 단둘이 맞붙는 2차 결선에서는 마린 르펜이 거의 더블 스코어로 이겼다. 

가이아나(르펜 60.7%, 마크롱 39%), 과들루프(르펜 69.6%, 마크롱 30%) 마르티닉(르펜 60.9%, 마크롱 39.1%). 5년 전에는 정반대로 마크롱이 64%, 르펜이 36%이었다. 이번 선거는 금융자본가들과 깊은 이해관계를 가진 마크롱에 대한 절대 저지 세력과 서민과 소외층을 타깃으로 한 극우 마린 르펜에 대한 절대 지지세력 간의 대결이었다. 

주류 언론과 주요 정당, 심지어 노조연맹과 연예계, 스포츠계 스타 500명이 합세해 마린 르펜을 절대악으로 지목했으나, 해외령 주민들은 그들의 주적을 마크롱으로 본 것이다. 본토에서의 선택은 조금 다를 테지만, 해외령에서 멜랑숑을 찍었던 표의 대부분은 르펜에게 갔다. ‘인종주의자’로 악명 높은 르펜에게 인종차별의 주 대상이던 해외령 주민들의 표가 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가장 취약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극좌에서 극우로 넘어가는 의식 전환의 순간을 보여준다.

이런 특징은 한국의 대선 결과에서도 비슷하게 드러난다. 저소득층이 난민, 외국인, 젠더, 경제정책 등에서 극우화 성향을 보이는 후보에게 압도적으로 표를 몰아준 것은, 어쩌면 국제정치의 흐름에 부응하는 셈이다. 프랑스에서처럼 유력한 극좌와 극우 후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소외계층이 우경화하는 현상은 기존 좌파 정당이나 진보 정당, 중도 정당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국적 기업들을 대변하는 법무법인 김앤장에서 수억 원의 성과급을 받은 이가 총리가 되고, 투기와 탈세와 찬스의 귀재들이 장관들로 채워지는 차기 정권의 면모를 보면서, 이 정권을 탄생시킨 소외계층의 뒤늦은 탄식을 느껴본다. 집권당 국민의힘이 극우화하는 것은 '배제'의 가치를 담은 신자유주의의 필연적 귀결이라 할 수 있지만, 민주당과 정의당의 우경화는 소외계층의 기댈 곳이 부재함을 의미한다. 

소외계층과 저소득층이 더 이상 배반의 선택을 하지 않게 하려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아무래도 민주당과 정의당의 제자리 찾기 노력일 것이다. 지금은 중도와 보수 사이의 준(準) 극우 정권을 맞고 있지만, 5년 후에 어쩌면 한국판 ‘르펜’ 정권을 맞게 될지 모를 일이다. 반(反)통일적이고, 반젠더적이며, 반사회통합적인 젊은 유력 정치인들에게서 극우의 데자뷔가 보인다. 이 씁쓸한 우려는, 나만의 기우일까? 

 

 

글·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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