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대통령을 맞이하는 한국, 새로움도 기대도 없이 마크롱의 임기를 이어가는 프랑스, 우크라이나와 유럽,미국을 모두 적으로 돌린 러시아의 핵위협까지... 이번 5월은 그 어느때보다 정치적이다. 정치란 무엇인가? 국민을 대변하고 이끌어가는 행위인가? 만약 그 목적을 상실했다면, 정치는 적을 상대로 승리하기 위한 싸움의 기술로 전락하는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5월호는 파란만장한 국내외 정치상을 날카롭게 분석했다.
정치는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것?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군부’와 ‘지식인’은 환상의 호흡을 보여줬다, '미디어전(戰)의 나팔수로 전락한 지식인들' 기사에 따르면 국가는 군사개입의 정당성을 설득하기 위해 여론전에 의지하고 있다. 전문가와 지식인은 전쟁을 ‘정의로운 대의’라고 소개하거나, 적은 악마로, 동맹은 영웅으로 둔갑시켜 군사적 “결단”을 촉구한다. 이를 착실히 돕는 건 미디어고, 행동에 옮기는 건 군부다. 칼 슈미트에 따르면 정치적인 것은 투쟁이 아닌 적에 대한 단호한 결단에서 나온다. 여기서 나치가 연상되는 건 위험한 일일까?
한편 프랑스 그르노블 정치대학이 ‘대학교의 정치화’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교수에게 정직처분을 내렸다. 이번 사건은 이슬람 혐오가 팽배한 프랑스 정치대학의 실태를 보여주면서도, 최근 대학 내에 쌓여온 분노와 갈등이 촉발했음 의미한다. 구성원들이 위계적 권력관계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대화 나누던 과거의 모습은 어디로 갔는가? 철저히 기업화되어온 학교는 끝내 스스로 내부의 적을 색출하는 정치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고야 말았다. 대체 언제부터, 대학 교수가 언론에서 의견을 표출하는 것이 금기사항이 된 걸까. '종교의 자유는 없다! 프랑스 정치대학의 실태' 기사에서 확인해보자.
국민을 대변하지 않는 정치인
프랑스 대선이 마크롱의 승리로 끝났지만 새로운 기대보다는 의문만이 가득하다. 무려 28%의 유권자가 기권표를 던진 것이다. 왜일까? ‘마크롱 재선, 프랑스 냉소주의의 승리’ 기사에 따르면 프랑스 정치체제는 대표성을 잃었다. 특히 청년층과 빈곤층은 자신을 대변해줄 대표자를 찾지 못해 투표에 나서지 않고 있다. 이번 대선은 마크롱의 승리가 아니라, 말 그대로 ‘프랑스 냉소주의’의 승리인지도 모른다.
이는 프랑스만의 일이 아니다.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현대 사회에서 더 이상 지구적 국제정치 구도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우파와 좌파, 보수주의와 진보주의로 재편되지 않는다. ‘지구적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우경화’ 기사에 따르면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중국의 시진핑, 영국의 보리스 존슨, 최근 재집권에 성공한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이들 모두가 이념이나 사상의 잣대로 정치적 ‘색채’를 파악하기 힘든 카멜레온 같은 존재들이다. 한국에서는 정권을 잡기 위해서라면, 한쪽에서는 자신들이 “좌빨”이라고 조롱했던 좌파, 진보, 사회주의의 이념이나 사상을 감쪽같이 베끼고, 다른 한쪽에서는 “보수꼴통”이라고 비난했던 이념들도 스스럼 없이 차용한다.
쉽지 않은 예술의 길
고대 이집트인들의 명망 높은 역작들은, 현대 압둘팟타흐 시시 정권아래 무한한 권력의 상징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집트, 파라오에 건 미래' 기사에 따르면 이집트 정부는 관광의 메카를 만들어 수익을 올리겠다는 환상 속에서 끝없이 정비사업을 벌이고 있다. 도심의 흔적을 지우고 ‘야외 박물관’을 만든다는 구상이다. 문화유산보존과 인권은 뒷전이다. 이들은 파라오의 유산들을 흙바람 앞에 내놓고, 주민의 도로접근을 막았다. 그러나 투자자들의 마음이 돌아서는 상황에서, 이집트 정권은 ‘현대화된 카이로’라는 목표를 이룰 수 있을까?
현대의 예술도 녹록치는 않다. 평론가들과 열성적인 팬들로부터 찬사를 받는 예술가의 삶도 그렇다. 이들 중에서는 인지도가 낮아 라디오나 TV에 전혀 출연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예술가, 그 사치스러운 직업'에 따르면 음악가 대다수는 순전히 가수로만 사는 것이 어렵다고 말하며, 부업으로 많은 일을 한다고 했다. 재능 있는 한 가수는 전염병이 휩쓴 지난 2년간 소중한 관객을 빼앗긴 예술가들의 비참한 사연을 말하기도 했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5월호는 이밖에도 ‘민중의 꿈을 되살린, 『레미제라블』과 『삼총사』’와 ‘탱고, 정치와 춤을…’ 기사를 실어 예술에 깃든 정치사를 흥미롭게 소개한다. 또한 ‘기아 공포’ 기사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전 세계에 미치는 나비효과를 상세히 설명한다.
목차
■ Editorial ■ Article de couverture ■ Focus ■ Mondial 지구촌 ■ Université 대학 ■ Histoire 역사 ■ Culture 문화 ■ 기획연재 |
글 · 김유라, 정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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