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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이후 한국영화의 지속가능성
코로나19 이후 한국영화의 지속가능성
  • 안치용 l 영화평론가
  • 승인 2022.08.01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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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Theater’ 너머엔 Co-untact’

과거 영화에서 발견한 오래된 미래, ‘Co-untact’

1993년에 개봉한 영화 <데몰리션맨>은 2032년의 미래를 다룬다. 마르코 브람빌라 감독이 연출하고 실베스터 스탤론(존 스파탄 역), 웨슬리 스나입스(사이몬 피닉스 역), 산드라 블록(레니나 헉슬리 역) 등이 출연한다. 스탤론과 스나입스가 나오는 영화인 만큼 당연히 주된 줄거리는 선과 악을 대표한 두 사람의 액션 대결이다.

 

영화 <데몰리션맨>의 존 스파탄과 레니나 헉슬리

<데몰리션맨>에서 스탤론과 블록이 연인 사이가 되면서 20세기 사랑과 21세기 사랑이 충돌한다. 영화 속 2032년 세계에서는 예컨대 비말을 포함해 모든 종류의 체액과 관련한, 또는 체액을 교환하는 성적인 관계를 금한다. 대신 ICT기술을 활용해 가상현실과 비슷한 상태에서 비대면(Untact)의 섹스를 즐긴다. 섹스를 하기 위해서 굳이 만날 필요가 없다. 정확하게는, 두 사람이 섹스하려면 각자의 방에서 헤드셋 비슷한 것을 쓴 채로 온라인상 어디쯤에서 가상의 몸으로 만나야 하기에 둘은 각자의 방에 머물러야 한다. 공간을 함께 하지 않고 물리적 접촉이 없는 <데몰리션맨>의 섹스는 비대면이지만 함께하는 ‘Co-untact’의 정수다. 

<데몰리션맨>에서 코믹하게 표현한 ‘고립된 나’ 사이의 가상섹스는 감염가능성이 전무한 ‘안전한 섹스’여서,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새삼 주목하게 된다. 2032년의 세계는 ‘타인이 지옥’인 관점을 철두철미하게 관철해 건설한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유토피아’다. 그 유토피아의 섹스법이 바로 비대면 가상섹스다. <데몰리션맨>이 20세기에 만들어진 영화이기 때문일 텐데, 이 영화에서는 아무튼 재래의 20세기 사랑법이 승리한다. 앞으로도 그럴까.

 

달라진 세상: ‘Over The Top’에서 ‘Over The Theater’로

 

한국 영화 100주년이 되는 2019년의 이듬해,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4관왕에 오르는 낭보가 있었지만, 코로나19와 함께 한국 영화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한국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이는 전세계적 현상이다. 제시한 통계표에서 한눈에 드러날 정도로 변화가 뚜렷했다. ‘2021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에서 가져온 몇 가지 통계는 구체적 해석은 생략하더라도 변화가 너무 뚜렷해 직관적 이해가 가능하다. 

가장 분명한 변화는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영화는 극장에서 본다’는 논리가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OTT 시대의 본격화에는 이견이 없다. 관객이나 제작자나 OTT 플랫폼에 익숙해지고 있어 관심사는 OTT보다 오히려 극장에 쏠리고 있다. 극장이란 공간의 쇠락과 변화는 기정사실인데 변화가 어떤 방향이 될지 모색에 들어갔다.(물론 극장에 여전히 미련을 두는 사람도 있다.) 개인용 휴대 단말기가 보급되며 공중전화부스가 어느 날 자취를 감추었듯 극장이 그렇게 될까. 

개인적으로는 극장을 중심으로 한 영화산업의 재편이 영화의 미래에 먹구름을 드리운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다고 본다. 사실 극장은 모더니즘과 포디즘, 또는 근대주의의 오래된 흔적이어서 현재의 사회체제나 인식체계와 부합하지 않는다. 산업화와 관련한 공급망 관리의 대상으로서 극장은 산업재편에 따라 자연스럽게 청산에 직면할 것이다. 

영화 또는 영화산업과 관련된 극장과 자체로서 극장 또한 포스트모더니즘과 고전주의에서 답을 찾아낼 수 있으리란 생각이다. 그러나 그 답은 아주 제한적인 해법만 줄 것이다. 복합화 등 다양한 마케팅 수단을 내세우며 영리한 상업화를 모색한다고 해도 시장 자체의 변화에 저할 수 있는 시장존재는 없기 때문이다. OTT는 극장의 보완재라기보다는 대체재일 가능성이 크다. 아이맥스, 4D 등 전문성을 강화한 상영관은 특정한 유형의 영화 관람에 최적화한 공간으로 살아남고 다수의 영화관은 간판을 바꿔 달아야 할 것이다. OTT는 “Over The Top”에 그치지 않고 “Over The Theater”를 의미한다. “Over The Top”이 “Over The Theater”로 이어지는 논리적 귀결은 불가피했고, 다만 코로나19가 앞당겼을 뿐이다. 컴퓨터 저장장치의 변화가 ICT기술 발달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뤄졌듯 “Over The Top”이 “Over The Theater”로 이행하는 것이 필연적이다. 속도만 문제였다.

코로나19로 영화를 보는 플랫폼의 이동이 기정사실화했고 이런 소비패턴의 변화는 처음에 익숙해지기 어렵지만, 소비자 편의를 증진하는 것이어서 자물쇠효과를 발생시키게 된다. “안 써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쓴 사람은 없다”라는 쿠팡에서 생생한 예를 본다. 코로나19에서 벗어나면 관객을 되찾을 수 있다는 판단은 매우 안이한 것이다. 전문화, 특성화, 고급화, 복합화하는 극장만이 살아남을 것이고 ‘탈상업적 상업화’가 유효한 마케팅 전략이 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스적 민주주의 공간화 또한 염두에 둬야 한다. 지자체 및 공공기관 등 공공영역과 결합한 문화민주주의는 물론 민주주의 문화를 확산하는 거점으로 극장이 리모델링될 수 있다. 어쨌든 광장기능이 필요하다면 극장만큼 좋은 공간이 없다.

어떤 길이 열리든, 팝콘 냄새가 진동하는 상업주의 공간으로서 극장의 수명은 다했다고 봐야 한다. 그런 극장이 일부 살아남기는 하겠지만, 극장 생태계의 하단을 차지하는 기이한 하부문화의 공간이 될 확률이 높다. 극장의 양태는 양극화할 것이며, 일부는 우리가 기존에 알던 극장과는 작별을 고하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살아남을 수 있겠지만, 그것이 과도적일지 아닐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오늘날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은 OTT플랫폼을 영화를 발전시킬 기회로 여겨야 하고, 영화 산업발전의 한 부분인 영화관이 OTT플랫폼과 다른 “공간의 기억”으로 관객들을 다시 끌어모을 수 있다는 희망 섞인 전망과, 코로나19라는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다소 모범적인 낙관론은 극장산업의 미래에 오히려 매우 위험한 주장이다. “Over The Theater”는 OTT만큼이나 불가피하다. 위험을 알아야 위험을 피할 수 있다.

 

새로운 생태계, “Black Money Matters”

제작 측면의 변화는 내용상 더 심대하지만, 겉으론 극장산업만큼 심각하지 않은 듯하다. 2017년 칸 영화제가 넷플릭스가 제작한 봉준호 감독의 신작 <옥자>를 거부한 것과 같은 사태는 더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영화제 또한 많은 온라인 경험을 축적해서, 전통적인 오프라인 영화제만으로 돌아가는 상황은 상상하기 힘들다. 영화제는 코로나19 이후에 극장을 기본으로 하겠지만, 온라인을 보완재로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 제작의 관행은 많이 변할 것이다. 소비시장이 “Over The Theater”로 탈모더니즘 경향을 뚜렷이 한다면 반대로 제작자는 포디즘 같은 모더니즘과 세계화의 시장 속으로 뛰어 들어가야 한다. 영화 제작자가 세계화에서 말하는 ‘바닥을 향한 경주(Race to the bottom)’에 어쩔 수 없이 말려 들어가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비교적 동일한 목표, 획일적 가치 아래 전세계적 범위에서 영화가 만들어져 전세계적 범위로 유통되는 상황이 일상적으로 펼쳐지면 충무로 술집을 전전한 많은 영화인이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예술가라는 소명의식 또는 허위의식을 완전히 떼어버려야 하는 산업화 논리가 범람하게 된다. 새로운 모습이 아니지만, 더 심해진다. 아주.

세계화의 폐해는 세계주의의 희망으로 상쇄돼야 한다. UCLA의 ‘할리우드 다양성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한 해 동안 넷플릭스의 영어권 작품 60편 중에서 13%가 흑인 감독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 수치는 극장 개봉작 5.5%의 2배가 넘는 수치다.

극장개봉작 중에서 일반 대중을 위한 작품은 백인 감독이 아닌 감독을 채용할 위험을 감수하지 않았고, 지상파와 케이블이 광고 매출을 올리기 위해 시청률에 목매는 동안 넷플릭스는 세계적 범위에서 가입자를 늘리고 유지하는 데 집중했다. 넷플릭스의 여성 감독 작품의 비중 또한 극장개봉작에 비해 높았다.

넷플릭스는 다양성에서 할리우드를 압도한다. 직원의 성과 인종 비율을 직군 및 직급별로 공개하고 2018년에 ‘포용과 다양성 부사장’ 직을 만들어 베르나 마이어스를 채용했다. 마이어스는 “다양성은 파티에 초대하는 거고 포용은 춤을 같이 추자는 것이다”라는 말로 명성을 얻었다.

넷플릭스의 변화는 넷플릭스의 시장이 소비자의 인종적·성적·종교적 다양성을 매일 대면하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Black Lives Matter”라고 할 수는 없지만 “Black Money Matters”(이 표현에 BLM을 폄훼하려는 의도는 없다. 정확한 의미 전달을 위해 흔히 쓰는 수사법의 하나로 활용한 표현임을 밝혀둔다)인 건 사실이다. 할리우드의 영화가 전 세계에 배급되지만, 제작을 맡은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은 매출의 직접적 주체가 아니어서 로열티만 받는 반면, 넷플릭스는 스스로 자신이 제작한 콘텐츠로부터 발생하는 매출의 주체가 된다. 따라서 넷플릭스는 콘텐츠 제작에서도 시청자의 다양한 욕구에 부응해야 한다. 

넷플릭스는 2015년 여름 내부 회의에서 흑인 가입자의 숫자와 “이들을 위한 맞춤형 콘텐츠를 따로 만들어야 한다”는 제안을 들은 후에 인력의 다양성과 콘텐츠 다양성을 추구했다고 한다.

이런 변화는 자발적이지 않고 시장에 순응한 것이긴 하지만 긍정적이다. 소규모 제작자가 기업으로서 자각이 없고 제작 외의 시장 대응에 소홀했거나 역량이 부족했다면, 다국적기업인 넷플릭스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외면하기 힘들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성 있는 CSR 활동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CSR과 ESG가 시장 대응이라는 측면에서 이 흐름은 계속 갈 수밖에 없고 그렇다면 기본적인 제작환경으로 자리잡게 된다. 영화 콘텐츠의 ESG와 함께 영화 제작 과정의 ESG를 공급망 관리 관점에서 점점 더 강화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지속가능한 영화제작자가 되려면 지속가능성을 이해하고 제작의 전과정에서 그것을 실천하는 시대가 OTT와 함께 한층 빨리 도래한 셈이다. 모든 OTT는 (중소 규모) 제작자와 달리 기업이라고 자각하고 있으며 시장요구에 예민하게 반응하기에 OTT로 새로운 기회와 위험을 안게 되면서 과거에 고민하지 않은 지속가능성이나 ESG 등을 선도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Over The Nation”의 세계적 환경, 그리고 국민국가... 영화제작의 ESG제작 매뉴얼 필요

유럽영상제작사협의체(EPC)는 코로나19 국면에 중장기적인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 특히 독립영화는 변화하는 환경에서 활로를 찾기 더 힘들어진다. 결국 정부와 공공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세계시장을 겨냥한, 또는 세계시장 표준에 맞춘 ‘넷플릭스 스타일’ 영화가 앞으로 새로운 주류 영화가 된다고 할 때 예술영화나 독립영화는 별도의 유통구조를 마련해 고사하지 않고 독자적인 생태계를 유지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한국은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실력 있는 영화인을 많이 키워놓은 만큼 그들이 더 큰 시장에서 활개를 치게 북돋아 주고, 독립영화는 별도의 지원체계를 구축해 제작과 수용을 활성화하는 정책 측면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제작과 유통 전반의 ESG는 지속가능한 산업을 만들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노동권, 인권이 보장되고 침해되지 않는 제작환경과 결과물, 또 온실가스를 덜 배출하고 환경오염을 최소화하는 제작관행을 수립해야 한다. 한국 영화계에서 선도적으로 영화제작의 ESG 매뉴얼을 만드는 방안을 검토함 직하다. 

직접적인 오염물질을 배출하지는 않지만, 화력발전에 기반한 전력 사용량이 과다해지면서 데이터센터 산업은 글로벌 탄소 배출량의 0.8%를 차지할 정도로 탄소 다(多)배출 업종이 됐다. 철강(7.2%)과 석유화학(3.6%)을 제외한 다른 대부분 업종의 탄소 배출량 비중(0.5~0.7%)보다 높아지면서 일부에서는 데이터센터를 굴뚝산업으로 보기도 한다.

따라서 OTT가 겉보기와 달리 친환경산업이 아닐 수 있음을 인식하면서 탄소중립에 관한 계획을 세우는 것도 영화계 전반에서 논의해야 한다.

EPC의 Alvaro Longoria 대표가 글로벌 OTT를 대상으로 ‘디지털 세금’을 물려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두고두고 유효한 이슈가 될 전망이다. 소득을 올린 곳에서 적정 수준의 세금을 내는 것은 기본적인 기업의 책임에 속한다. 더불어 탄소국경세가 본격 시행됐을 때 수출산업으로 막 가능성을 열고 있는 영화산업에는 영향이 없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OTT는 “Over The Nation” 흐름이기에 자칫 세계화 논리에 대충 말려 들어갈 우려가 상존한다. “Over The Nation”은 두 방향으로 전개된다. 어떤 것은 일상적으로 국경을 넘나들지만, 어떤 것은 국경 안에만 머무른다. 즉 어떤 문제는 국민국가(Nation)의 개입 없이 해결하지 못한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적절한 활용과 별개로) 효율적이고 강력한 국민국가가 있고 재능 있는 영화인이 많다.  

2020년 7월 25일 일본 화물선 와카시오호가 인도양의 섬나라 모리셔스 연안에서 암초에 부딪혀 좌초해 해안에 1,000톤이 넘는 기름을 유출하는 대형 해양오염 사고를 일으켰다. 암초에 부딪히게 된 원인이 와이파이에 접속하려고 배를 육지에 근접해 운항했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모리셔스 바닷가에 대형참사를 일으킨 원인이 고작 와이파이라니, 그런 반응이 이어졌다. 인터넷이나 와이파이는 줌과 같은 언택트 기술을 작동시키기 위한 현대문명의 기반인프라다. 그러므로 관점에 따라서는, 일단 와카시오호의 잘못과 책임을 논외로 한다면 “고작 와이파이”라는 반응 대신 현존 인류의 특질과 한계, 그리고 미래를 생각하며 “아, 와이파이!”라는 복잡한 심경의 탄식을 내뱉을 수 있겠다 싶다. 

결국 언택트는 기술이나 솔루션을 넘어 메가트렌드로도 수용돼야 하겠지만 언택트는 콘택트의 반의어가 아니라 차라리 유의어에 가깝다는 사실 또한 기억돼야 한다. 언택트(Un-tact)의 정확한 표기가 코언택트(Co-untact)라고 한다면 우리는 다시 근대인의 숙명으로 되돌아가게 되는 셈이다. 정확하게는 근대인을 탈피하지만 근대국가의 숙명에서는 벗어나지 못한다는 얘기다.

‘Co-untact’란 패러다임 하에 OTT시대를 잘 대비하는 것으로, 비록 그것이 원론이긴 하지만 한국 영화의 발전과 지속가능성을 도모하는 데에 영감을 얻을 수 있다. 한국 영화 또한 지구와 우리 국가의 지속가능성에 기여할 의무를 지닌다. “Over The Theater”는 불가피하다 해도, “Over The Nation”까지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글·안치용
인문학자 겸 영화평론가로 문학·정치·영화·춤·신학 등에 관한 글을 쓴다. ESG연구소장으로 지속가능성과 사회책임을 주제로 활동하며 사회와 소통하고 있다. 


<참고문헌>
‘코로나인문학’, 안치용, 김영사
‘2021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kofic
‘유럽영상제작사협의체(EPC)의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10대 제언과 시사점’, Media Issue & Trend_Vol.32(2020.5) 
‘축소지향의 생존전략, 뉴노멀 시대의 한국영화-코로나 이후 한국영화산업의 변화에 대해’, 송경원
‘코로나 19시대 이후 극장체재 변화에 관한 연구 한국 영화 산업을 중심으로‘, 서정인
’코로나19와 영화제의 미래 온 · 오프라인 상영을 중심으로‘, 박문칠
’포스트 코로나, OTT 그리고 온라인 연극 공연의 가능성’, 우석훈
‘플랫폼은 영화 다양성을 살릴까? : 코로나19로 초래된 영화시장의 플랫폼 변화와 영화 다양성 증진을 위한 법적 접근’, 박경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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