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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민영화’ vs. 시간의 국영화
‘시간의 민영화’ vs. 시간의 국영화
  • 성일권 l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 승인 2022.06.30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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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좌파정치인 장 뤽 멜랑숑이 “시간을 국영화하자”라며 자신이 이끄는 정당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a France insoumise, 이하 LFI)’를 비롯해 공산당, 생태주의당 등과 함께 좌파연합 NUPES('새로운 생태-사회 인민연합'이라는 뜻)를 결성해 친기업 우경화로 치닫는 마크롱 집권당의 과반석을 저지했다는 뉴스가 전해질 무렵, 윤석열 정권이 ‘시간의 민영화’에 본격 착수했다는 소식이 신문 지면과 TV의 톱뉴스를 장식했다. 

고용노동부의 이정식 장관은 일주일에 12시간 이상 초과근무할 수 있도록 노동시간 관련 개편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며, 현재 ‘주 단위’로 관리하는 연장 노동시간을 노사합의로 ‘월 단위’로 관리할 수 있게 하는 등 총량 관리단위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1) 노동부 발표대로라면 월 단위로 연장 노동시간을 관리하게 되며, 월 48시간(4주 기준) 한도만 지키면 그 안에서 일주일에 12시간, 기업의 입맛대로라면 48시간까지도 초과근무가 가능해진다. 기업의 입장에서 비상 철야근무를 이유로, 기본 40시간에 연장 48시간을 더해 일부에 총 88시간까지도 초과노동을 부과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이와 관련, 노동계는 사실상 주 52시간제를 무력화하는 것이라고 반발하지만, 오히려 정부는 ‘노사 선택권 보장’이라고 반박한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정부의 근로기준법 개정안 통과가 쉽지 않겠지만, 이번 노동시간 개편안은 지난 5월 취임식 때 윤석열 대통령이 35번이나 외친 그 ‘자유’가 노동자의 인권적 자유가 아니라, 기업에게 몰아주는 자본주의적 자유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시켜준다. 급기야 천부인권적인 노동권, 특히 노동시간마저 기업의 입맛대로 더하거나 곱할 수 있게 된다면, 노동자들의 삶은 예측불가능해진다. 상사의 특근 명령에 노동자들이 회사의 ‘자유’에 맞서 자신의 ‘자유’를 주장하기란 쉽지 않다. 휴가 날짜도 마음대로 정할 수 없고, 일상의 사생활이 급격히 침해당하면서, 노동자들의 삶은 리듬감을 잃게 된다.

프랑스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 1901~1991)는 『리듬분석(Rhythmanalysis)』이라는 책에서 ”리듬은 사전적으로 강한 요소와 약한 요소, 또는 상반되거나 상이한 조건들이 규칙적으로 연속되는 움직임을 의미하며, 특히 다중성을 지향해 이런 다중적인 리듬들이 하나의 앙상블을 구성한다”라며, “나의 리듬을 ‘타자’의 리듬에 마구 투입하려고 할 경우 갈등과 충돌이 일어난다”라고 지적했다. 마르크주의자인 르페브르의 영향 탓일까? 좌파 정치인 멜랑숑은 총선 유세 막판에 “시간을 국유화하자”라는 낯설면서도 의미심장한 화두를 꺼내 유권자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기도 했다. 시간을 국유화한다니, 무슨 뜻인가? 지금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에서는 권력이 자본에게 몰아준 ‘단기(短期)’라는 시간의 괴물이 노동자의 자연스러운 시간을 잡아먹고 있다는 것이었다. 권력과 자본은 유연성이라는 미명하에 노동을 파편화시켜 계약직 특히 단기계약직을 양산하는 바람에, 노동자들은 늘 불안 속에 삶의 리듬을 찾기가 힘들다. 시간이 기업의 입맛대로 철저하게 민영화된 탓이다. 

이런 자본의 지배에서 시간을 온전하게 되돌리자는 것이 멜랑숑의 시간 국유화 주장이다. 생태사회주의자로서 그는 시간 국유화는 ‘생태적 계획’의 일환이라고 강조했다. 자본의 생산 리듬을 인간과 자연의 리듬에 맞추는 것이 우리의 새로운 모델이 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윤석열 정권이 ‘주 12시간 보호막’을 허물려 하자, 재계는 한술 더 떠, “유연근무제 도입요건을 개선하고, 취업규칙 변경절차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동시에, “최저임금을 9,160원으로 동결하자”라고 주장한다. 정권과 재계가 모두 시간의 민영화에 급발진을 하겠다는 각오다. 

친기업 우경화의 길목에서 프랑스의 마크롱 정권은 시간의 민영화를 가속화하려다가 제지를 당했지만, 출범 초기부터 기업의 자유를 부르짖어온 윤석열 정권에게는 시간의 민영화가 급선무로 받아들여진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장기화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고물가, 경기침체 등으로 그 어느 때보다도 삶의 리듬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치인들이여! 적어도 시간은 민영화에서 빼주길 바란다. 휴식시간마저 내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사용자들의 눈치를 봐야 한다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고단할까? 

 

 

글·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1) 이혜리, ‘주 초과시간 12시간 보호막 허문다’, <경향신문> 6월24일자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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